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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적응’이라는 특별하고 번거로운 개념 본문

(연재) 협력의 공식 시즌2

3화. ‘적응’이라는 특별하고 번거로운 개념

Editor! 2017.03.17 10:45


《과학동아》와 사이언스북스 블로그에 병행 연재되고 있는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협력의 공식」 시즌 2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즌 1에서는 이타성과 협력이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 사이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탐구한 진화 과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이 주제였다면 이번 시즌 2부터는 친족이 아닌 존재들 사이에서 이타성과 협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탐색하는 과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이 주제입니다.

전중환 교수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인류를 ‘지구의 정복자’로 만든 진정한 원동력인 이타성, 협력, 사회성이 어떻게 진화해 나왔는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시즌 2 연재의 첫 번째 주인공은 평범한 문제에서 비범한 해법을 발견해 낸 로버트 트리버스입니다.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는 일단 사냥해서 배가 부르면 며칠간 늘어지게 잠만 잔다. 바람도 쐬고 좀 돌아다닐 법도 한데, 왜 허구한 날 잠만 자는지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한 다큐멘터리 PD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사자가 자지 않고 부지런히 돌아다닌다고 해 보자. 얼마나 초식 동물들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겠는가? 그러니 사자는 먹잇감들을 쓸데없이 괴롭히지 말고 식사 후에는 얌전히 잠이나 자라는 하늘의 지엄한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다. 세렝게티 초원은 “갑질하는 강자도 없고, 그래서 그에게 당하는 약자도 없다. 오로지 섭리에 따르는 자연의 조화만 있을 뿐이다.”[각주:1]


그럴듯하게 들리는가? 사실 이 설명은 틀렸다. 사자는 먹잇감의 행복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생명계의 적응을 이처럼 허술하게 설명하는 태도를 일거에 몰아낸 사람은 키가 크고, 온화하고, 조용한 어류학자 조지 윌리엄스(George C. Williams)였다. 사회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윌리엄스가 “20세기 후반 진화 생물학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고 했다.[각주:2] 도킨스의 맞수였던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조차 윌리엄스가 “진화 이론에 거대한 업적을 남겼다.”라고 평했다. [각주:3] 윌리엄스가 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사회 생물학자들과 사회 생물학 비판자들이 한목소리로 칭송했을까?


조지 윌리엄스 ⓒ Michael Shavel




모든 형질은 어쨌거나 이로우니까 만들어진 적응이라고?

윌리엄스는 1955년에 UCLA 대학교에서 어류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해에 그는 시카고 대학교에서 저명한 진화학자이자 흰개미의 권위자인 앨프리드 에머슨(Alfred Emerson)의 강의를 들었다. 에머슨은 노화가 이로운 형질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늙으면 병약해져 죽는 까닭은 창창한 청년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개체들이 종족 보존을 위해 장엄하게 죽음을 맞이한다고? 말도 안 된다고 윌리엄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진화 생물학의 전부라면 차라리 보험 외판원이 되는 것이 낫겠어.”[각주:4]


에머슨은 진화학자를 자처했지만, 노화에 대한 그의 설명은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과 모순된다고 윌리엄스는 확신했다. 자연 선택 이론은 개체들 사이의 유전적 변이에서 출발한다. 개체의 번식 성공도를 높여 주는 형질은 무엇이든지 선택되어 개체군에 널리 퍼진다. 종의 보존이 아무리 숭고한 목표이건 간에, 남보다 더 오래 살아서 자식을 더 남기게 하는 유전자는 노화를 촉진해 죽음을 재촉하는 유전자를 제치고 선택될 것이다.


그렇다면 노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노화는 자연 선택의 힘이 생애 후반으로 갈수록 점차 약해짐에 따라 발생하는 불가피한 결과라고 윌리엄스는 설명했다. 개체가 첫돌을 맞았을 때 발현되는 치사 유전자 A와 개체가 100세가 되었을 때 발현되는 치사 유전자 B가 있다고 하자. 자연 선택은 전자를 후자보다 훨씬 더 빠르게 솎아낼 것이다. 치사 유전자 B의 경우,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이전에 다른 이유로 벌써 죽은 개체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이제 개체의 생애 시점에 따라 각기 다른 효과를 내는 유전자를 생각해 보자. 예컨대, 칼슘을 축적시키는 유전자는 청소년기에는 뼈를 빨리 굳게 해 주지만 노년기에는 동맥 질환을 유발한다. 자연 선택의 힘은 나이가 들수록 점차 약해진다고 했다. 늙었을 때 아무리 큰 손실을 끼치더라도, 젊을 때 아주 조그마한 이득이라도 준다면 그러한 유전자는 제거되지 않고 개체군에 퍼질 것이다. 결국 나이가 들면 신체 기능이 급속도로 떨어지게 된다. 바로 노화다. 윌리엄스는 노화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설명하는 이론을 1957년에 학술지 《이볼루션(Evolution)》에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끌었다.[각주:5]


놀랍게도, 문제는 노화만이 아니었다. 윌리엄스는 전문적인 진화학자들조차 모든 형질이 어떤 식으로든 유익했기 때문에 자연 선택되었다는 식으로 게으른 설명을 남발하는 현실에 크게 실망했다. 왜 괭이갈매기는 자식을 더 낳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비교적 정해진 수의 자식들만 낳는가? 기존의 학설은 개체 수가 너무 늘어나 자원이 고갈되어 집단 전체가 공멸하는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보았다. 윌리엄스가 보기에 이런 식의 설명은 적응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왜곡하고 있었다.


권위 있는 진화학자들이 모두 놓친 중요한 입론 -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는 엄밀한 다윈주의 - 을 자신이 정립했다고 믿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허튼소리가 아닌가 내심 고민하는 젊은 생물학도. 우리는 이런 사람을 이미 만난 적 있다. 바로 윌리엄 해밀턴이다. 아니나 다를까, 1963년에 해밀턴은 윌리엄스가 《이볼루션(Evolution)》에 낸 논문을 읽고 반가운 마음에 편지를 보냈다. 해밀턴이 윌리엄스보다 10년 아래였지만, 두 사람은 평생 친밀하게 교류했다. 해밀턴이 윌리엄스를 자신의 “쌍둥이 형제”라고 칭할 정도였다.[각주:6]


해밀턴과 윌리엄스. 가장 왼쪽이 해밀턴, 가장 오른쪽이 윌리엄스다. ⓒ Paul Gabrielsen




적응은 설계상의 증거를 통해서만 판별된다

1960년 윌리엄스는 스토니브룩에 소재한 뉴욕 주립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1966년에는 명저 『적응과 자연 선택(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 A Critique of Some Current Evolutionary Thought)』을 출간했다.[각주:7]  부제가 “현대의 진화적 사고에 대한 비평”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적응이라는 개념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논의들에 대한 반론”(『적응과 자연 선택』 한국어판, 34쪽)으로 빼곡히 채워졌다. 자연 선택이 개체, 개체군, 종, 군집, 생태계 등 선택의 여러 단위들 가운데 어쨌든 무엇인가에 이득이 되는 적응을 항상 만들어 낸다는 느슨한 생각에 내리는 철퇴였다. ‘유전자의 눈’ 관점, 즉 복잡하고 정교한 적응은 오직 유전자의 이득을 위해 진화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안함으로써, 이 책은 현대 생물학에 우뚝 솟은 고전이 되었다.


윌리엄스가 펼친 논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어떤 형질이 하여튼 이롭다고 해서 무턱대고 그것이 적응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적응은 아무 때나 쓰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되어야 하는 특별하고 번거로운 개념”(『적응과 자연 선택』 한국어판, 27쪽)이다. 즉 어떤 형질이 이롭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이득은 우연히 만들어진 부산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형질은 바로 그러한 번식상의 이득을 제공하게끔 자연 선택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되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비로소 우리는 그 형질이 적응이라고 판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코는 정면으로 솟아 있다. 덕분에 우리는 안경을 코에 걸쳐서 흘러내림을 방지한다. 따라서 코는 안경을 걸치게끔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된 적응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코의 해부학적 구조를 찬찬히 살펴보면, 코는 호흡을 하게끔 설계되었지 안경을 걸치게끔 설계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코가 안경을 지지해 주는 이득이 아무리 크더라도 이는 우발적인 효과일 따름이다.


마찬가지로, 세렝게티 초원의 사자가 식사 후 며칠간 깊은 잠에 빠져드는 덕분에 초식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해도 이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효과이다. 사자의 수면 행동이 초식 동물들을 배려하게끔 정교하게 설계되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사자가 식후에 아무 데서나 자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사슴 떼 근처로 가서 보란 듯이 잠을 청한다는 증거가 얻어진다면, 그제야 이 결론을 재검토할 필요가 생길 것이다. 





적응은 유전자의 이득을 위해 만들어진다

둘째, 윌리엄스는 최후의 방편으로 적응을 들먹여야 할 때조차 그 적응은 집단의 이득이 아니라 오직 유전자의 이득을 위함이라고 역설했다. 당시 유행했던 집단 선택론에 종지부를 찍고, 자연 선택의 단위는 유전자임을 못 박은 것이다. 유전자 선택론은 나중에 도킨스가 ‘이기적인 유전자 이론’으로 체계화했다. 실제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의 핵심은 조지 윌리엄스의 『적응과 자연 선택』에 나오는 두세 단락에 다 들어 있다.”라며 윌리엄스에 대한 존경심을 표한 바 있다.[각주:8]


당시에는 적응적 이야기를 마구 남발하는 과정에서 집단 선택론이 은근슬쩍 끼어들곤 했다. 어떤 형질이 개체에게는 이득이 되지 않았지만 개체군이나 종, 군집, 생태계 중의 어느 한 수준에는 이득이 되었다는 식으로 쉽게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었다. 괭이갈매기들은 개체군의 절멸을 막고자 자발적으로 산아 제한을 한다는 설명처럼 말이다.


왜 집단 선택론이 틀렸을까? 집단 간의 선택(어떤 집단은 번성하지만 다른 집단은 쇠락하는 과정)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집단 간의 선택은 물론 가능하다. 다만 일반적으로 진화에서 중요한 요인이 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선택은 여러 수준에서 일어나지만, 높은 수준보다 낮은 수준에서의 선택이 더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불필요한 가정의 수를 되도록 줄이라는 ‘검약의 원리’를 따르면, 어떤 형질이 개체 간의 선택으로 이미 잘 설명되는데 이유 없이 집단 간의 선택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고 윌리엄스는 강조했다.


예를 들어, 괭이갈매기가 자발적으로 산아 제한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개체 수준의 이기성으로도 잘 설명된다. 무조건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잘 성장해서 장차 나에게 손자를 가능한 한 많이 안겨 줄 수 있는 자식들만 낳으면 된다. 만약 이러한 개체 선택론에 기반을 둔 설명이 괭이갈매기 개체군을 실제로 연구한 결과 뒷받침되었다면, 집단 선택론 설명은 자연히 기각된다는 것이다.


요약하자. 조지 윌리엄스는 개체군 내에 존재하는 대립 유전자들 간의 선택이 복잡 정교한 적응을 만든다는 것을 확립했다. 적응에 대한 엄밀한 과학적 탐구를 개척한 그는 『적응과 자연 선택』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나는 자연 선택 이론이 빛이요 길임을 확신한다.”(『적응과 자연 선택』 한국어판, 280쪽)







※ 사이언스북스 독자들을 위한 특별한 사족 ※

전중환의 「협력의 공식」 시즌 2 연재 계획(변경 가능)


1월직접 상호성의 역사적 맥락: 평범한 발상, 비범한 과학자를 만나다

2월직접 상호성 이론 완전 정복

3월조지 윌리엄스를 통해 보는 적응주의의 맥락과 이론

4월프라이스 등식과 집단 선택론은 어떤 역사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졌는가

5월프라이스 등식과 집단 선택론의 핵심

6월진화 게임 이론의 역사적 맥락

7월진화 게임 이론의 정수를 맛보다

8월이기적 유전자 이전과 이후

9월누가 과연 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다 안다고 할 수 있나

10월사회 생물학의 허와 실

11월가족 내 갈등 속에 감춰진 협력의 공식

12월간접 상호성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독자 여러분의 많은 기대와 응원 바랍니다."




※ 관련 도서 ※


『본성이 답이다』 [도서정보]


『오래된 연장통』 [도서정보]



  1. 최삼규, 2016, 『다시 쓰는 동물의 왕국』, 이상미디어, 9쪽. [본문으로]
  2. Dawkins, R. (2010). George C. Williams (1926–2010). Science, 330, 49. [본문으로]
  3. Brockman, J. (1996). Third Culture: Beyond the Scientific Revolution. Simon and Schuster. [본문으로]
  4. Brockman, J. (1996). 앞의 책. [본문으로]
  5. Williams, G. C. (1957). Pleiotropy, natural selection, and the evolution of senescence. Evolution, 11, 398-411. [본문으로]
  6. Segerstråle, U. (2013). Nature's Oracle: The Life and Work of W. D. Hamilton.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본문으로]
  7. Williams, G. C. (1966).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 A Critique of Some Current Evolutionary Thought. 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NJ (전중환 옮김, 2013, 『적응과 자연 선택』, 나남). [본문으로]
  8. Brockman, J. (1996). 앞의 책.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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