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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여행] 10화 이스라엘 발굴 현장에서 마주친 낯선 익숙함 본문

완결된 연재/(完) 인류학 여행

[인류학 여행] 10화 이스라엘 발굴 현장에서 마주친 낯선 익숙함

Editor! 2017.03.31 15:29

ⓒ이희중


『인류의 기원』으로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인류학 교과서를 선보였던 이상희 교수(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님께서 고인류학의 경이로운 세계를 속속들이 살펴보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인류의 기원』은 최근 인류학계의 최신 성과들을 통해 고인류학의 생생한 면모를 알린 자연 과학 베스트셀러입니다. 이번 「인류학 여행」에서는 『인류의 기원』이 소개한 고인류학의 세계들을 보다 자세히 돌아볼 예정인데요. 급속히 발전 중인 유전학과 오랜 역사와 정보가 축적된 고고학이 만나는, 자연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 학문인 현대 고인류학의 놀라운 면모를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상희 교수님이 미국에서 고인류학자로 자리 잡는 여정을 따라가며, 현대 고인류학계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과학자의 일상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현생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21세기 고인류학의 구석구석을 누비게 될 「인류학 여행」, 지금 출발합니다.


전공을 고고학에서 고인류학으로 바꾸고 미국으로 유학 와서 대학원 과정을 열심히 따라가고 있던 어느 날 지도 교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 발굴 경험을 좀 해야겠다.”


저는 펄펄 뛰었습니다. (『인류의 기원』 서문을 읽은 여러분께서는 이쯤에서 피식 웃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륙 횡단하라는 선생님의 제안을 받고 펄펄 뛰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죠. 그렇다고 제가 지도 교수께서 조언하실 때마다 항상 펄펄 뛴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고고학 전공으로 열심히 발굴 현장을 쫓아다녔지만, 학부를 졸업할 즈음에는 다른 분야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더는 삽질하기 싫었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 고고학 전공이었던 대학교 시절에는 수업이 없는 날이나 주말, 여름방학, 겨울방학에도 발굴 현장에 나가서 땅을 팠습니다. 그래서 ‘발굴 경험’은 충분한 데다가, 이제 고고학 전공이 아닌 고인류학 전공자로서 더 이상의 발굴 경험이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여름방학에 다시 삽질을 해야 한다는 것이 싫었습니다. 다른 멀쩡한 사람들처럼 여름방학에는 유유자적하며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도 교수께서는 완강하게 권유하셨습니다. 제 발굴 경험이라고 해 보았자 모두 한국에서 해 본 경험이며, 그 발굴들이 모두 고인류 화석과는 상관없는 요즘 시대의 유적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사실 맞는 말씀이기는 했습니다.


지도 교수께서 저를 보내고 싶어 하시던 발굴 현장은 이스라엘 북부의 하요님이라는 동굴 유적이었습니다. 1만여 년 전 홀로세의 나투피안 문화에서부터 수만 년 전 중기 구석기 문화까지 계속 인류가 들락날락하던 동굴입니다. 이곳은 당시 미국과 프랑스의 학자들로 이루어진 발굴단에 의해 거의 10여 년 동안 발굴되어 오고 있었습니다. 중기 구석기 문화의 특징적인 석기들이 나오면서 발굴 책임 연구자들은 중기 구석기를 만든 고인류 화석의 발견을 학수고대했습니다. 중기 구석기 문화를 만든 고인류 화석 종이라 하면…. 바로 네안데르탈인이죠! 이 발굴 현장에 참가해 고인류 화석 발굴 현장을 경험할 수도 있는 중요한 기회였던 것입니다.


학생 신분으로서 당연히 여행 경비는 자비 부담이었습니다. 돈을 털털 털어서 비행기 삯을 마련했습니다. 일단 발굴 현장까지만 가면 현장에서 숙식은 제공되니 걱정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하요님 유적은 유명 도시 하이파에서 약간 북쪽으로 떨어진 곳,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접경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당시 미국에서 이스라엘로 가는 직항 노선이 없어서 프랑크푸르트에서 하룻밤 묵고 가는 일정을 택했습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공항과 호텔을 벗어나지 않았죠.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당시에 가장 검문 검색이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공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까다로운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공항에 도착해서 북부 하이파라는 운치 있는 도시까지 갔습니다. 알고 보니 하이파는 유명한 휴양 도시였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유적을 찾아 들어갔죠. 


하요님 동굴 유적. 아침에 도착하면 저녁에 일을 마칠 때까지 아무 곳에도 갈 수 없다.


짐을 숙소에 풀고 하룻밤 묵은 다음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숙소에서 발굴 현장까지는 마을 버스급의 봉고 차를 타고 갔습니다. 발굴단은 저 외에도 미국이나 프랑스, 스페인,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발굴 현장인 동굴은 산 중턱에 있어, 겨우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역한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이 동굴은 발굴 작업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목동들이 양과 염소를 치면서 쉬어 가던 휴식처로 이용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람 키 두세 배가 족히 넘는 높이의 흙으로 메워져 있었던 동굴입니다. 바로 그 흙에서 역한 냄새가 난 것입니다. 흙 위를 걸어 보니 폭신폭신한 느낌이었지만 한 발짝 한 발짝 뗄 때마다 먼지 같은 것이 풀썩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흙이 왜 이렇게 폭신한지, 그리고 이 이상한 냄새는 왜 나는 것인지, 저는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아…….


목동들이 데리고 다니던 양과 염소 들은 시원한 동굴 안으로 들어와서 볼일을 보았던 것입니다. 적어도 수천 년 동안 말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양과 염소가 싼 똥이 쌓이고, 굳고, 삭으면서 박테리아와 다른 생물 들이 거쳐 간 결과, 폭신하면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흙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퇴비 냄새와 비슷하기도 했습니다. 


역한 냄새의 원인을 알고 나니 더 비위가 상했습니다. 다행히 숙소에서 먹고 온 아침 식사는 뱃속에 조용히 머물렀습니다. 저는 구획을 맡아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발굴단원들은 모두 동굴의 가장 안쪽으로 들어와 모여 쉬었습니다. 작은 낚시 의자에 앉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땅바닥에 그냥 앉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실은 ‘땅바닥’이 아니라 ‘똥 바닥’이었죠. 


오전 간식 (새참) 시간이 되었습니다. 발굴단원들은 작업을 중단하고 또 다시 동굴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서 나눠 주는 새참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단원들은 역시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 샌드위치를 먹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막강한 비위를 가지고 있기로 많은 친구들이 인정했는데도 도저히 똥 더미(?) 위에 앉아서 밥을 먹을 엄두는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모두들 멀쩡히 먹고 있는데 비위가 상해서 못 먹겠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은 바로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간식은 사양했습니다. 점심도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맡은 구역에서 하루 종일 보냈습니다. 계속 일했습니다.


발굴단원 중에는 프랑스에서 온 예쁜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현장에 온 지 몇 주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에게서 역시 이상한 냄새가 났습니다. 주변 학생들이 귀띔해 주었습니다. 그는 한동안 씻지 않고, 똑같은 옷을 계속 입고 지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그동안 땀과 흙(?)으로 범벅 된 옷을 벗어 버리고 몸도 씻은 다음, 다시 그 상태로 지낸다고 했습니다. 


화장실은 따로 없었습니다. 발굴 현장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일을 보고 와야 했습니다. 멀찌감치 걸어가 사람이 오지 않나 두리번거리면서 긴장한 채로 볼일을 보는 동안 가끔 염소가 와서 매~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기절초풍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겪었던 그 어떤 발굴 현장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작업 환경이었습니다. 그렇게 괴로운 일주일이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발굴 현장에 갔는데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약간 고소한 듯한(?) 느낌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낚시 의자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간식과 점심을 먹게 됩니다. 급기야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풀썩 주저앉게 됩니다. 날리는 먼지를 마셔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게 됩니다. 이 먼지가 ‘마른 똥’이 만들어 낸 먼지라는 사실은 거의 잊습니다. 특이한 목욕/착복 스케줄을 지키고 있는 프랑스 학생과도 서슴없이 말을 섞게 됩니다.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첫 일주일간 거의 못 먹었던 경험은 완전히 만회가 됩니다. 발굴 시즌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올 즈음에는 오히려 체중이 더 붙었습니다.


화장실도 당당하게 가게 됩니다. 오가는 길에, 심지어 일을 보다가도 동료와 눈이 마주치면 “안녕?” 인사합니다. 가끔 깜짝 등장하는 염소에게는 지지 않고 눈을 맞춥니다.


저는 이스라엘에서 우리의 적응 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생생히 경험했습니다. 어느 환경에도 익숙해질 수 있는 막강한 적응 능력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합니다. 


요즘 한국과 미국 정치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그때를 다시 생각합니다. 인간의 위대한 적응 능력은 양날의 칼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믿을 수 없이 고약한 냄새에도 익숙해지듯이, 어처구니없는 부패와 막무가내와 억지에도 익숙해집니다. 더 이상 고약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특별 검찰의 활약에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기업 후계자가 법률상 내야 할 액수의 상속세를 고스란히 다 냈다는 소식을 전하는 한국의 뉴스와 이에 감동하는 SNS를 봅니다. 법의 공정함과 공평함을 느끼기보다는 그동안 제 구실을 하지 못하던 지도층, 불법으로 세금을 착복해 온 재벌의 행각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운동 내내, 그리고 취임 이후 보이는 말과 행동 들은 초지일관으로 저급하고 믿을 수 없이 고약합니다. 지금은 매일매일 경악하고 악취를 느끼지만 앞으로 이렇게 계속된다면 어느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고 익숙해질 것입니다. 인간의 막강한 적응력을 발휘해서는 안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20년 만에 한국 공주에서 열린 학술 대회에서 만난 바요셉 교수.


[에필로그]

이스라엘에 간 지 20년이 지난 후 한국 공주에서 열린 국제 학술 대회에서 당시 하요님 발굴 책임 교수를 다시 만났습니다. 제가 가서 인사했습니다.

“교수님,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0여 년 전에 하요님 발굴 현장에 있었던 이상희입니다.”

“오, 기억하고말고요! 오자마자 쉬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열심히 일만 하던 한국 학생을 아주 잘 기억하지요.”

아, 그게……. 그렇게 기억을 하시게 되었군요. 왜 쉬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열심히 일만 했는지는 굳이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다.




※ 관련 도서


『인류의 기원』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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