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cienceBooks

4화. 진정한 이타성은 불가능한가? 본문

(연재) 협력의 공식 시즌2

4화. 진정한 이타성은 불가능한가?

Editor! 2017.04.14 10:03

《과학동아》와 사이언스북스 블로그에 병행 연재되고 있는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협력의 공식」 시즌 2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즌 1에서는 이타성과 협력이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 사이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탐구한 진화 과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이 주제였다면 이번 시즌 2부터는 친족이 아닌 존재들 사이에서 이타성과 협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탐색하는 과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이 주제입니다.

전중환 교수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인류를 ‘지구의 정복자’로 만든 진정한 원동력인 이타성, 협력, 사회성이 어떻게 진화해 나왔는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시즌 2 연재의 첫 번째 주인공은 평범한 문제에서 비범한 해법을 발견해 낸 로버트 트리버스입니다.  


‘진정한 이타주의자’의 죽음

1975년 1월 6일, 런던은 춥고 음산했다. 교외의 한 공동 묘지에서는 조용히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신문의 부고 기사는 고인을 이렇게 소개했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University College London)의 저명한 유전학 연구자가 종교적 믿음을 위해 그의 모든 것을—목숨까지—포기했다. 조지 로버트 프라이스(George Robert Price, 1922~1975년) 박사는 갖고 있던 돈과 옷, 소지품 전부를 알코올에 중독된 노숙자들에게 나누어 준 다음, 블룸즈버리의 고급 아파트를 나와 드러먼드 거리의 빈 건물에서 노숙자들과 불법으로 거주해 왔다. 존경받는 과학자였던 프라이스 박사는 자신이 ‘예수님과 통하는 핫라인’을 갖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날 장례식에 참석했던 윌리엄 해밀턴은 프라이스가 살던 방에 들러 유품을 정리했다. 방은 넓고 허전했다. 전기 난로가 있었지만, 누군가 들고 가 버렸다. 매트리스 하나, 책상 하나, 의자 하나, 탄약 상자 몇 개가 가구의 전부였다. 책상 위에는 옷 몇 벌, 마르셀 프루스트의 책 두 권, 그리고 타자기가 놓여 있었다. 싸구려 여행 가방과 종이 상자 안에는 미발표 논문들이 들어 있었다. 해밀턴의 시선은 마룻바닥에 엉겨 붙은 핏자국으로 향했다. 죽어서도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매트리스가 아니라 맨바닥에 누워서 미용 가위로 목의 경동맥을 자른 것이다. 진정한 이타주의자의 죽음이었다. 

1922년 뉴욕에서 태어난 프라이스는 화학자, 과학 저술가, 컴퓨터 프로그래머, 경제학자, 수학자, 그리고 심리학자였다. 강경한 무신론자였던 그는 45세가 되던 해에 가족을 버리고 홀로 런던으로 왔다. 이때부터 진화 생물학을 독학해서 약 7년 동안 진화학계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러던 어느 날 돌연히 하느님을 영접한 그는 노숙자들을 위해 헌신하다가 자살했다. 일설에 따르면 자신이 발견한 등식이 인간 본성의 암울한 속내를 들추어 냈다는 사실에 절망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는 대체 무엇을 보았을까?





불행으로 점철된 천재 과학자의 인생

프라이스가 네 살 때, 조명 회사를 경영하던 그의 아버지가 폐렴으로 사망했다. 전직 오페라 가수이자 배우였던 어머니는 어떻게든 회사를 살리려 노력했지만, 대공황 시대에 집안은 점차 기울어 갔다. 여자 혼자서 프라이스와 네 살 터울의 친형을 돌보기는 쉽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수학과 과학에 천재성을 나타낸 프라이스가 어머니에게는 큰 위안이었다.


프라이스는 사시였다. 목소리는 높고 깩깩거렸다. 수학 시간에는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이따금 던져서 선생님을 당황하게 하는 소년이었다. 체스 팀을 이끌어서 지역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장래 희망은 물리학자였다. 프라이스가 어떤 유형의 학생이었는가는 고등학교 때 학생 문집을 엮은 친구들이 쓴 감사의 글에서도 알 수 있다. “이 문집을 낼 수 있게 해 준 버치 선생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에 한 문장이 첨가된다. “프라이스에 따르면 모든 무한은 유한하지만, 우리의 감사는 예외예요.”


프라이스는 시카고 대학교에서 물리 화학을 전공했다. 1957년에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의 핵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해 인체에서 우라늄을 검출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중대사였지만 젊은 프라이스에게는 성에 차지 않았다. 프라이스는 자신이 획기적인 돌파구를 낼 수 있는 더 중요한 문제들을 계속 찾아다녔다. 그는 상원 의원에게 편지를 보내 미국이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리할 방안을 알려주었다. (“소련이 헝가리를 해방해 주기만 한다면, 우리가 모든 러시아 인에게 신발을 두 켤레씩 선물하는 것입니다.”)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MIT)의 저명한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에게 새로운 최적화 모델을 제안해 격려를 받기도 했다.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는 등의 초자연적인 현상이 순전히 사기임을 고발하는 글을 《사이언스》에 실어, 과학을 신봉하는 저널리스트로도 명성을 잠시 떨쳤다.


개인사는 불행했다. 아내 줄리아는 독실한 천주교인이었다.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합리적인 논거는 어디에도 없음을 일찍이 깨우친 전투적인 무신론자 프라이스는 아내와 사사건건 부딪쳤다. 결국 결혼한 지 8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두 딸의 양육을 맡은 아내는 그 후에도 줄기차게 위자료를 받아 내며 프라이스를 힘들게 했다. 한편 홀어머니는 영매를 통해 죽은 남편이 말을 걸어온다고 믿었다. 프라이스가 그토록 경멸한 유사 과학에 어머니가 빠진 것이다. 위대한 연구 성과를 발표해서 대학 교수로 정착하고 싶다는 그의 꿈은 점점 멀어져 갔다.


1966년에 프라이스의 삶은 일대 전환점을 맞는다. 갑상샘암이 발견된 그는 병원에서 갑상샘 절제술을 받았다. 그런데 맙소사, 의료 사고가 일어나는 통에 오른팔을 거의 못 쓰게 되었다. 얼굴, 목, 오른쪽 어깨도 완전히 감각을 잃었다. 그는 수술을 집도한 의사를 “도살업자”라 부르며 저주했다. 어쨌든 상당한 액수의 의료 사고 보상금을 받게 된 프라이스는 마지막 반전을 기대하며 이듬해 런던행 여객선 티켓을 끊었다. 그때까지 그의 몸은 망가졌고, 빚쟁이들에게 시달렸으며, 직업은 계속 바뀌었다. 전처는 돈을 요구했고, 10대가 된 두 딸은 몇 년째 못 만났다. 어머니는 죽은 남편과 대화하기까지 했다. 45세의 무직자 조지 프라이스는, 어쩌면 자연스럽게, 가족과 부성애의 진화적 기원을 연구하기로 한 것이었다.   





진화 생물학 초심자가 위대한 발견을 이룩하다 

런던에서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진화 생물학 문헌들을 탐독하던 1968년 어느 날, 프라이스는 흥미로운 논문과 마주쳤다. 바로 해밀턴의 1964년 논문 「사회적 행동의 유전적 진화 I, II」였다. 해밀턴에 따르면, 프라이스는 “인간이 원숭이에서 유래했다는 진화론에 충격받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두 귀부인만큼이나 혈연 선택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해밀턴의 논문은 자연 선택으로 진화한 생명체가 프라이스가 믿어 왔던 것처럼 마냥 자비롭고 선하지는 않음을 암시했다. 고작 자기 피붙이만 열심히 챙기는 제한된 이타성이 진화가 빚어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인가? 해밀턴은 혈연 선택의 이면, 즉 친족에 대한 사랑은 비친족에 대한 증오를 뜻한다는 것도 알아차렸는가? 인간은 결국 유전자의 노예란 말인가? 정말 그렇다면, 인류에게 희망은 없는 것인가?

 

프라이스는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해밀턴의 계산이 맞는지 직접 확인해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그러자면 유전학을 먼저 배워야 했다! 그는 수리 유전학을 벼락치기로 독학하는 한편, 해밀턴에게 논문의 별쇄본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프라이스가 받은 충격을 눈치챈 해밀턴은 장문의 친절한 답장을 보내 왔다. 해밀턴은 곧 브라질로 9개월간 현장 연구를 떠날 예정이어서 당분간 편지를 교환하기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런던에 남은 프라이스는 몇 달에 걸쳐 해밀턴의 유도 과정을 꼼꼼히 점검했다. 남을 돕게 하는 유전자가 정말로 혈연 관계를 통해서만 전해진다면, 모든 사람을 위하는 박애와 자비는 애초에 불가능할 터였다. 깊이 상심한 프라이스는 해밀턴의 계산이 틀렸기를 내심 바랐다. 실망스럽게도, 프라이스는 “몇 가지 작은 흠결을 제외하고”  해밀턴이 옳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피붙이에 대한 이타성이 진화가 만들 수 있는 최선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해밀턴이 틀렸음을 입증하고자 애쓰는 동안 프라이스는 예상치 못한 큰 성과를 얻었다. 그는 브라질에 있는 해밀턴에게 바로 편지를 보냈다. “당신 논문의 결과를 (비록 덜 엄밀하긴 하지만) 더 분명하게 도출하는 법을 찾았습니다.”  이 말은 지나친 겸손이었다. 프라이스는 그저 혈연 선택 이론을 말끔히 수리한 개정판이 아니라, 자연 선택을 계층적으로 분석하는 전혀 새로운 일반식을 발견했던 것이다. ‘프라이스 방정식(Price equation)’으로 명명된 이 식을 사용하면 “읽을 책이나 듣고 싶은 라디오 채널을 고르는 행동부터 유전자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선택을 설명할 수 있었다. 1세기에 걸친 진화 생물학 역사를 통틀어 그 어떤 학자도 생각하지 못한 경이로운 등식이었다.


1968년 9월, 프라이스는 미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다.


아주 놀랍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한 시간 전쯤에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수리 유전학과 진화에 대한 논문을 쓰던 중에 대단히 흥미로운 수학적 결과를 얻었어요. 그렇지만 너무 단순한 결과라서, 다른 누군가가 틀림없이 저보다 먼저 발견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전에 UCL의 인간 유전학과에 계시는 수리 유전학의 권위자 세드릭 스미스(Cedric Smith) 교수님과 면담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제 결과가 매우 아름답고 흥미롭다면서 그 비슷한 것조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덕분에 프라이스는 그 자리에서 UCL의 스미스 교수 실험실의 연구원으로 발탁되었다. 무보수였지만 독립적으로 연구할 개인 사무실 열쇠도 받았다. 프라이스가 그토록 좇아 온 꿈이 드디어 실현되려는 참이었다.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는 이타적 행동이 진화할 수 없다는 결론은 여전히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진화 생물학 초심자였던 프라이스가 자연 선택의 일반 이론을 단박에 찾아냈다는 사실이야말로 자비로운 신이 예정한 ‘기적’이 아닐까? 프라이스는 혼란스러웠다.





※ 사이언스북스 독자들을 위한 특별한 사족 ※

전중환의 「협력의 공식」 시즌 2 연재 계획(변경 가능)


1월직접 상호성의 역사적 맥락: 평범한 발상, 비범한 과학자를 만나다

2월직접 상호성 이론 완전 정복

3월조지 윌리엄스를 통해 보는 적응주의의 맥락과 이론

4월프라이스 등식과 집단 선택론은 어떤 역사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졌는가

5월프라이스 등식과 집단 선택론의 핵심

6월진화 게임 이론의 역사적 맥락

7월진화 게임 이론의 정수를 맛보다

8월이기적 유전자 이전과 이후

9월누가 과연 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다 안다고 할 수 있나

10월사회 생물학의 허와 실

11월가족 내 갈등 속에 감춰진 협력의 공식

12월간접 상호성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독자 여러분의 많은 기대와 응원 바랍니다."



※ 관련 도서 ※

연재 중에 소개 된 『이타성의 대가』는 곧 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

『본성이 답이다』 [도서정보]


『오래된 연장통』 [도서정보]


신고
2 Comments
  • 프로필사진 따사 2017.04.16 06:07 신고 이타적 본성이 진화할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이 자살까지 초래했다는게 놀랍군요. 아직도 세상에는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 많은데 그걸 보아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는 것도 놀랍구요. 그리고 그런 이유로 예수님이 이타심을 강조한게 아닐까요? 하느님을 영접하는 현상을 공식으로 만들수는 없나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나게 되면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로 이타심을 갖게될 수도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 프로필사진 재빈 2017.04.16 23:56 신고 나도 무신론자였는데, 인과론때문에 신을 믿게 됐다.
    태생적으로 최고조건 최악조건에서 태어난다.
    이게 로또라면 최악조건으로 태어나면 이번생은 꽝이네!
    하고 자살하면 그만이다.
    로또가 아니라면 신은 분명이 있는 것이다.
    인과론으로 윤회한다고 생각을 펼칠 수 있겠다.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