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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초유기체』 추천의 글 -최재천 교수

Editor! 2017.06.23 17:04

『초유기체』 추천의 글 -최재천 교수



「당신의 마.음.을 위한 무언가(Something for Your M.I.N.D.)」라는 노래가 있다. 2017년 이 노래로 데뷔한 밴드의 이름은 흥미롭게도 ‘Superorganism(초유기체)’다. 리드 보컬 17세 소녀의목소리에는 퇴폐와 냉소가 감겨 있다. 게다가 예전 아날로그 시대에 오래된 레코드가 튀듯 음악이 중간 중간 뚝뚝 끊기며 불편한 침묵을 강요한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자꾸 반복해서 듣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밴드는 모두 여덟 명으로 구성되었는데 미국 메인 주와 영국 런던에 흩어져 있다. 포스팅에는 “우리는 여덟인데 증식하고 있어. 우리는 지각 능력을 얻었어.”라고 적고 있다.


2016년 12월까지 내가 초대 원장으로 일한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에는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의 개미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수많은 일개미들이 나무에 매달려 제가끔 열심히 잎을 잘라 입에 물고 무려 10미터나 되는 먼 길을 달려 집에 다다르면 몸집이 더 작은 일개미들이 기다리고 있다 모아온 이파리를 더 잘게 썰고 침과 섞어 부식시켜 만든 퇴비를 거름 삼아 대규모 버섯 농장을 경영한다. 이름 하여 ‘잎꾼개미’라 부르는 이들은 인간 농부가 농사를 짓는 과정을 수많은 일개미들이 분업과 협동을 통해 나눠 수행하는 거대한 조직이다.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거름을 줘 경작한 다음 수확해서 저장하는 전 과정을 분담해서 수행하고 있는 일개미들은 마치 농부의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와 그 세포들이 모여서 만든 기관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데려와 안착시킨 베짜기개미는 또 다른 형태의 협업을 연출한다. 땅속에 굴을 파고 사는 대부분의 개미와 달리 베짜기개미는 살아 있는 나무의 잎들을 한데 엮어 방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산다. 베짜기개미 일개미들이 함께 잎을 끌어당기는 장면은 협동의 극치를 보여 준다. 오죽하면 개미 허리라고 하랴마는 그 가는 허리를 다른 개미가 입으로 물고, 그 놈의 허리를 또 다른 놈이 입으로 물고 하는 방식으로 긴 몸 사슬을 촘촘히 여럿 만들어 마치 현장에 작업 반장이라도 있어 구령이라도 부르는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한 반향으로 끌어당긴다. 그런 다음 애벌레를 데려다 고치를 틀 때 자기 몸을 감싸기 위해 분비하는 실크를 사용해 잎들을 엮는다. 베짜기개미가 둥지를 만드는 행동을 관찰하고 있노라면 장인이 설계에서부터 제작까지 일관되게 수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이같은 개미 군체를 초유기체라고 부른다.


베짜기개미의 일개미들이 집이 될 나뭇잎을 나란히 이어 붙이려 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초유기체』


사실 초유기체에 대한 생각은 퍽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나의 사회 또는 국가에는 제가끔 다른 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 또는 조직이 있고 그들이 유기적으로 잘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유지되는 걸 보며 인간 사회도 하나의 유기체와 같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다만 유기체의 조직보다는 조금 느슨할 뿐 기본 메커니즘은 같을 것으로 믿는다.


이 점에 있어서는 찬반의 여지가 다분해서 앞으로도 진지한 토론이 이어져야 할 것이지만 이미 지나치게 엇나간 몇몇 주장은 짚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가이아(Gaia) 가설이다. 지구가 스스로 조절 능력을 갖춘 하나의 시스템이라는 주장은 진화적으로 전혀 근거 없는 발상이다. 지구와 같은 행성들이 가까이 모여 있으면서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며 득세하거나 낙오하며 급기야 재생산(reproduction) 과정을 거치는 게 아니라면 무생물인 행성을 유기체에 비유할 수는 없다. 아울러 어느 특정 지역의 생태계 또는 생물 군집도 독립적이며 자가조직적인 단위로 보기 어려운데 생명계 전체를 온전한 하나의 생명으로 간주하는 일련의 생각들도 논리적으로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외계의 생명 존재 여부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듯이 개미, 꿀벌, 흰개미 군체의 경우는 다르다. 이 책을 읽으며 사회성 곤충의 군체가 독립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생명체와 흡사하다는 저자들의 주장에 설득당하지 않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시스템의 경이로운 효율성에 탄복할 수밖에 없다.


『초유기체』는 특히 개미 연구의 두 세계 최고의 권위자가 쓰고 실제로 개미를 연구한 경험이 있는 연구자가 번역한 책이라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 옮긴이 임항교 교수는 내가 서울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우리 연구실에서 일본왕개미 연구로 석사 학위를 한 본격적인 개미 학자이다. 그 후 미국에 유학해서 캔자스 대학교에서 나방의 화학적 의사소통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하고 오랫동안 미네소타 주 하천과 호수에서 잉어의 행동과 생태 프로젝트를 총괄해 온 탁월한 생물학자이다.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리 흔치 않은 조합이다. 믿을 수 있는 학자들의 연구 내용을 믿을 수 있는 번역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자신 있게 권한다. 귀한 배움과 행복한 책읽기를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다.


—  최재천(이화 여자 대학교 에코과학부 교수, 『개미제국의 발견』 저자)



『초유기체』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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