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cienceBooks

『초유기체』 서문 -독자 여러분에게 본문

책 이야기

『초유기체』 서문 -독자 여러분에게

Editor! 2017. 6. 28. 10:10

『초유기체』 서문 -독자 여러분에게 



인류가 등장하기 오래전인 100만 년 전 외계인 과학자 무리가 생명체를 연구하기 위해 지구에 왔다고 상상해 보자. 그들의 첫 보고서에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 행성은 적어도 2만여 종, 1경 마리 이상의 고도로 사회적인 생명체로 가득 차 있다! 또 최종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점이 분명히 포함될 것이다.


•  고도의 사회성을 띤 이 동물들은 대부분 곤충으로(다리 6개, 머리에 더듬이 2개, 세 부분으로 나뉘는 몸체), 모두 땅 위에 살며 바다 속에는 없다. 

•  성숙 단계에 이른 각 군락은 종에 따라 적게는 10마리에서 많게는 2000만 마리 개체로 이루어진다.

•  각 군락 구성원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계급에 속한다. 즉 한 마리 혹은 적은 수의 번식하는 개체이거나, 아니면 군락을 위해 이타적 노동을 하면서 원칙적으로는 자기 스스로 번식을 시도하지 않는 다수의 일꾼 계급에 속한다.

•  군락을 형성하는 대다수 종(예컨대 벌목(-目, Hymenoptera, 개미, 벌, 말벌 등)에 속하는 곤충)에서 군락 구성원은 모조리 암컷이다. 번식기 직전 짧은 기간 동안에만 수컷이 태어나는데, 이 번식용 수컷은 일은 하지 않고 다른 암컷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리고 번식기가 끝날 때까지 둥지에 남아 있던 수컷은 자매뻘인 암컷들이 모조리 둥지 밖으로 쫓아내거나 죽여 버린다. 

•  반면 고도의 사회성을 지닌 곤충들 중 비교적 적은 수인 흰개미목(Isoptera) 곤충들은 수컷 왕이 번식을 담당하는 여왕과 함께 산다. 벌목 곤충 일꾼과는 달리 흰개미 일꾼은 대개 암수가 섞여 있으며, 어떤 종에서는 일꾼이 담당하는 작업이 어느 정도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  이 희한한 사회적 동물들이 사용하는 의사소통 신호의 90퍼센트 이상은 화학 물질이다. 신호 물질인 페로몬은 몸의 여기저기에 있는 외분비샘에서 분비된다. 군락 구성원이 이 페로몬을 후각 또는 미각을 통해 감지하면, 경보(alarm), 이끌림(attraction), 집결(assembly), 충원(recruitment) 등 특정한 행동 반응을 보인다. 많은 종의 사회성 곤충들은 또한 음파나 매질 진동, 접촉 등도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하나, 대부분 페로몬의 주된 효과에 대한 보조 수단이다. 어떤 신호는 냄새, 맛, 진동(음파), 접촉이 모두 합쳐져 복잡하다. 꿀벌의 꽁무니춤(waggle dance), 붉은불개미(fire ant)의 충원용 냄새길(recruitment trail,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먹이나 적 등이 있는 목적지로 많은 군락 동료를 빨리 불러 모으기 위해 안내자 역할을 하는 개체들이 특별한 페로몬으로 표지해 놓은 길 — 옮긴이), 베짜기개미(weaver ant)의 복합 감각 의사소통(multimodal communication, 한 가지 이상의 감각 체계, 이를테면 시각과 청각, 혹은 후각과 시각 등을 동시에 사용하여 신호나 자극 

따위를 주고받는 소통 방식 — 옮긴이) 등을 들 수 있다.

•  사회성 곤충은 더듬이에 달린 수용체로 외골격 각피에 묻어 있는 탄화수소 냄새를 감지해 같은 군락 동료를 구별할 수 있다. 이들은 탄화수소 화합물의 다양한 조합을 알아차림으로써 같은 군락 동료의 계급, 성장 단계, 나이까지 구별해 낸다.

•  각 군락은 구성원 사이 의사소통 체계와 계급에 따른 노동 분담을 통해 똘똘 뭉쳐 있어서 하나의 초유기체(‘Superorganism’은 ‘초유기체’라는 단어로 번역하였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사회성 곤충의 ‘군락’은 단순한 ‘개체들의 집합’이 아닌 ‘유기체’에 비견할 만한 고도의 조직과 정교한 기능적 면모를 가진 별도의 생물학적 조직 단계임을 강조하여 ‘개체’와 ‘개체군’ 사이에 그 고유한 진화적 위상을 주창하고 있기 때문에, 그 뜻을 잘 반영하기에는 개체를 강조한 ‘초개체’보다 ‘초유기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다고 보았다. — 옮긴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사회 조직화 정도는 종마다 매우 다르며, 이를 통해 초유기체적 구성이 진화적으로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 ‘원시적(사회 조직이 덜 분화된)’ 수준의 초유기체 사회 구성의 대표적 사례는 군락의 모든 구성원이 완전한 번식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구성원 사이에 번식 독점을 놓고 상당한 경쟁을 벌이는 몇몇 침개미아과(-亞科, ponerine) 종을 들 수 있다. 매우 진보된 사회 구성 사례로는 잎꾼개미(leafcutter ant) 아타속(-屬, Atta)과 아크로미르멕스속(Acromyrmex), 그리고 베짜기개미 오이코필라속(Oecophylla)을 들 수 있다. 이들 사회에서는 여왕이 번식을 독점하고, 날 때부터 몸 크기가 다른 완전히 불임인 수십만 마리 일꾼들이 각자 몸 크기에 맞는 노동을 맡아서 하는 정교한 사회 조직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 정도로 진보된 개미 사회는 군락 안 개체 사이 갈등이 최소화되었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등 궁극적 초유기체 상태를 보여 준다.

•  초유기체라는 생물학적 조직 단위의 생태적 지위는 그것의 구성단위인 개체와, 다시 그 초유기체 자체가 구성단위가 되는, 숲의 한 구역과 같은 생태계라는 조직 단위 사이에 자리한다. 생물학 전반에 있어 사회성 곤충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 지구인 생물학자 두 명은 이 책에서 이러한 현상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우리 둘이 잘 알고 있는 개미, 벌, 말벌, 흰개미는 인간을 제외하고는 사회성이 가장 잘 발달된 생명체라 할 수 있다. 생물량(biomass) 및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이라는 기준으로 볼 때 이들 곤충 군락은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과거 5000만 년 동안 육상 환경 대부분을 지배해 왔다. 물론 그 이전 5000만 년 동안에도 사회성 곤충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번성하지는 않았다. 그 옛날 개미 중 어떤 것들은 지금 살고 있는 것들과 비슷한 종들도 있었다. 실수로 자기 둥지를 밟은 공룡에게 침을 쏘거나 개미산을 뿌려 대는 개미를 상상해 보면 절로 미소가 떠오르지 않는가? 


신열대구 개미 다케톤 아르미게룸 일꾼 두 마리가 구강 먹이 교환을 하며 접촉 신호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초유기체』 200쪽, 제공: 베르트 횔도블러


현존하는 곤충 사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는 엄청나다. 이들은 어떻게 페로몬으로 복잡한 메시지를 ‘말할’ 수 있는지 알려 주고, 각 작업군마다 최적 효율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융통성 있는 행동 프로그램으로 노동을 분담하는지 수천 가지 사례를 통해 우리에게 그 방법을 보여 준다. 또한 협동하는 개체 사이 조직망은 새로운 컴퓨터 디자인을 제안해 주었으며, 정신이 형성될 때 두뇌 속 뉴런들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곤충 사회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면에서 영감을 준다. 하버드 대학교 애벗 로렌스 로웰(Abbott Lawrence Lowell) 총장은 1920년대의 위대한 개미학자 윌리엄 모턴 휠러(William Morton Wheeler)에게 명예 학위를 수여하는 자리에서 개미 연구가 “사회성 곤충이 이성을 사용하지 않고도 인류처럼 문명을 건설할 수 있음”을 밝혔노라고 말했다. 


초유기체는 한 단계의 생물학적 조직으로부터 또 다른 단계의 조직이 출현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창구 역할을 한다. 거의 모든 현대 생물학이 복잡한 체계를 간단한 구성단위로 환원한 뒤 다시 종합해 가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초유기체의 이러한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환원적 연구는 일단 복잡한 체계를 개별 구성 요소와 과정으로 해체한다. 이렇게 해체한 요소를 개별적으로 잘 이해한 뒤에야 비로소 다시 합쳐 복잡한 체계로 종합하고, 해체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각개 요소의 과정과 특징은 합쳐진 복잡한 체계에서 창발적으로 드러나는 현상과 특징을 설명하는 데 사용한다. 대부분 종합은 환원보다 훨씬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생물학자들은 생명체의 근간을 구성하는 분자나 세포 소기관을 정의하고 묘사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다음 생물학적 조직 단계에 이르러 생물학자들은 또 세포 전체에 나타나는 수많은 창발적 구조와 특징을 꼼꼼하고 정확하게 묘사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조차 어떻게 분자와 소기관이 모이고, 조직되고, 활성화되어 하나의 살아 있는 세포를 완성하게 되는지를 완전히 설명하기에는 한참 모자라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생물학자들은 예컨대 연못이나 숲의 일부분과 같은 생태계의 생물상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생물 종의 특성을 연구해 왔고, 물질과 에너지 순환을 포함한 여러 거대한 규모의 과정에 대해서도 이해해 왔다. 그러나 생물 종이 상호 작용하여 더 높은 단계의 양상을 만들어 내는 수많은 복잡한 과정을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아직도 많은 것이 부족하다. 


이와는 달리 사회성 곤충은 두 가지 생물학적 조직 단계 사이 연결을 훨씬 이해하기 쉽게 해 준다. 군락의 하위 구성 단계인 개체는 군락을 이루기 위해 서로 소통하는 방식이 비교적 단순하므로 군락 자체도 세포나 생태계에 비하면 그 구조나 작동 원리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간단하다. 또 개체와 군락 두 단계 모두 관찰하거나 실험적으로 조작하기가 쉽다. 그리하여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제는 한 단계의 단순한 조직으로부터 새로운 복잡한 체계가 발생하는 과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생물학의 근본 문제에 대해 훨씬 더 나은 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추측을 하면서 이 도입부를 끝맺으려 한다. 만약 외계인 과학자들이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의 지구를 연구하기 위해 왔다면, 그들의 처음 계획 중 하나는 아마도 벌집이나 개미 사육 상자를 짓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는 사회성 곤충에 매료된, 특히나 과학 경력의 전부를 개미에 바친 우리 두 저자의 편견이 가미된 생각이다. 여러분은 이런 편견을 이 책 여기저기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언급하는 사례의 대부분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대상인 개미에서 주로 찾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허나 사회성 곤충 중에서도 특별히 가장 잘 연구된 곤충인 꿀벌의 사례는 계속해서 ‘빌려 오기’도 했다. 이 책은 1990년에 출판된 『개미(The Ants)』만큼 광범위한 저작은 아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곤충 사회의 초유기체적 특성이 잘 드러나는 풍부하고 다양한 자연 생태적 사실을 제시하고, 진사회성(eusociality)이라는 가장 높은 단계의 사회 조직에 이르는 진화 경로를 추적하고자 했다. 노동 분담이나 의사소통 같은 군락 수준의 적응 형질을 강조하면서 초유기체라는 개념을 상기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 나감으로써 사회성 곤충 군락이 자기를 조직하는 존재이자 자연 선택의 대상임을 보이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다. 


이 책에서 우리는 곤충 군락을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organism)로 보는데, 이는 군락을 형성하는 곤충의 생물학적 면모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연구해야 하는 단위이다. 사회성 곤충 중에서도 가장 유기체다운 곤충인 아프리카 군대개미(African driver ant, 영어로 driver ant, army ant, 혹은 legionary ant로 불리는 개미 종들은 모두 이 책에서는 ‘군대개미’로 통칭한다. 군대개미식 생활 방식은 세계적으로 많은 분류군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했고(6장 참조), 따로 우리말 이름이 지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임의로 이름을 붙이는 것보다는 군대개미로 통칭하되 학명과 서식지를 병기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옮긴이)의 거대 군락을 생각해 보자. 멀리서 바라보면 이 거대한 포식자 행렬은 마치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보인다. 거대한 아메바 위족처럼 펼쳐진 이 군락은 길이가 70여 미터에 이르는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땅 밑에 불규칙하게 그물처럼 파놓은 굴과 방으로부터 땅 위로 질서 정연하게 들락거리는 수백만 마리의 일개미가 만든 집합체임을 알 수 있다. 이 거대한 행렬이 지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마치 이불을 펼치는 것처럼 보이다가 이내 나무와 같은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지하 둥지에서 자라 나온 나무 둥치와, 진행 방향으로 작은 집채만 한 넓이로 퍼진 수관(樹冠)이 생기고 그 안에 무수히 많은 가지가 서로 이어진 모습이다. 이 무리에는 지도자가 없다. 앞장 선 일개미들은 앞뒤로 바삐 움직이는데, 최전방에 나가 있는 일개미들이 짧은 거리를 내달아 나갔다가 뒤에서 몰려오는 거대한 무리 속으로 되돌아 들어가고, 그 자리로 다음 무리가 치고 나오는 식이다. 이 포식자 행렬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움직이는 개미들의 물결이다. 맨 앞의 무리는 시속 20미터 정도로 움직이면서 미처 행렬을 피하지 못한 다른 곤충은 물론, 심지어는 뱀을 비롯한 커다란 동물까지 잡아 죽인다. 몇 시간 뒤 이 거대한 물결의 방향은 반대로 바뀌어 지하에 있는 둥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군대개미 혹은 거대한 잎꾼개미 군락(9장), 꿀벌 사회나 흰개미 군락과 같은 사회성 곤충 군락을 단지 개체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는 존재 이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곧 초유기체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는 것인데, 이를 위해 ‘사회’라는 개념과 통상적으로 말하는 ‘유기체’라는 개념을 좀 더 자세히 비교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개미』(1990년)를 쓴 이래로 (특히 여기 이 책의 8장에서 독립적으로 다루는) 계통 분류학적으로 원시적인 침개미아과에 속하는 종들에 대해 어마어마한 지식이 축적되어 왔다. 침개미아과 몇몇 종의 경우는 이미 초유기체가 지니는 중요한 형질, 즉 계급 제도나 노동 분담, 정교한 의사소통 방법(5장과 6장에서 따로 다룸) 등을 발달시켰지만, 또 다른 종들은 군락 안에서 번식 독점이라는 특권을 놓고 개체들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을 한다. 이들 군락에서는 구성원의 위계질서가 순위로 결정되어 있으나 가끔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개체들이 이를 바꾸기도 한다. 이처럼 이들 군락의 노동 분담이나 의사소통 수준은 꽤 원시적이지만, 우월 과시나 복종 행동, 번식 지위를 알리는 화학 신호, 개체 인식 같은 군락 구성원들끼리 하는 행동을 보면 여전히 복잡하다. 이들도 초유기체적 특성을 보이고는 있지만, 군대개미나 잎꾼개미가 보여 주는 궁극의 초유기체적 조직과 비교하면 턱없이 모자라다.




『초유기체』 [도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