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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으로 읽는 칼 세이건 : 25세 청년, 우주 생물학을 창시하다! 본문

책 이야기

논문으로 읽는 칼 세이건 : 25세 청년, 우주 생물학을 창시하다!

Editor! 2017.08.08 14:59

1960년 6월 칼 세이건은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합니다. 제목은 「행성의 물리적 연구(Physical Studies of Planets)」. 

이 논문은 지극히 독특했던 탓에 천문학자들만으로는 심사할 수 없어 의사까지 참여시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논문은 행성학과 우주 생물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칼 세이건의 단행본을 포함한 저작들은 여러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 천문학과 과학사는 물론이고 발생 생물학과 진화 생물학을 넘어 뇌과학에 이르기까지 그 분야는 방대합니다. 그의 방대한 사상의 궤적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그의 저작들을 깊이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명현 박사의 글로 칼 세이건의 논문과 그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25세 청년, 

우주 생물학을 창시하다!


1960년 6월 칼 세이건은 미국의 시카고 대학교에서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5세 때의 일이다. 「행성에 대한 물리적 연구(Physical Studies of Planets)」이라는 제목을 단 칼 세이건의 박사 학위 논문은 한 명의 천문학자의 탄생을 넘어서서 ‘우주 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태동함을 이 세상에 알리는 선언문이었다. 박사 학위 논문에 수록된 네 편의 논문은 각각 새로운 학문의 영역을 개척하는 동시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우주 생물학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었다. 칼 세이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중첩된 변곡점이었다.


인생의 변혁기마다 칼 세이건은 ‘사람’을 만났다. 책을 통해서 만나기도 했고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그들과의 만남은 그가 삶의 변곡점을 늘 지혜롭게 잘 이어 가는 동력이 되었다. 칼 세이건의 출발점을 확인하려면 논문을 쓰기 대략 20년 전 1939년에 미국 뉴욕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 뉴욕에서는 만국 박람회가 열렸고 그 박람회장에 꼬마 칼 세이건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미래’와 ‘비전’을 목격했다.


 

1939년 뉴욕 만국 박람회의 포스터 중 하나. 1939년 4월 30일부터 10월 31일까지, 그리고 1940년 5월 11일부터 10월 27일까지 미국 뉴욕의 플러싱 메도스 코로나 파크에서 개최된 박람회. 조지 워싱턴 대통령 취임 150주년을 기념해 열렸다. 슬로건은 ‘새로운 날의 새벽’, 주제는 ‘미래 세계의 건설과 평화’ 등이었다.


칼 세이건은 이 날을 “자신의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하루”였다고 자주 회상하곤 했다. 청소년기에는 책을 통해서 SF 작가 아서 클라크를 만났다. 우주 여행을 꿈꿨고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어느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전업 천문학자인 할로 섀플리를 만났다. 아마추어 천문가였던 그는 천문학을 공부하고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진짜 천문학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월반을 거듭한 칼 세이건은 16세 때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했다. 어린 학생을 받아 주는 대학교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여키스 천문대가 있는 시카고 대학교가 그가 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학교였다. 아직 앳된 소년이었던 칼 세이건은 시카고 대학교에 입학했고 본격적으로 사람과 코스모스를 향한 그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노벨상 수상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천재 소년, 칼 세이건 

시카고 대학교 시절 세이건은 그의 일생을 통해서 학문과 인생의 조언자가 된 과학자들을 만났다. 허먼 멀러와 해럴드 유리는 이미 노벨상을 받은 석학이었고 조슈아 리더버그는 노벨상 수상이 임박해 있던 최고의 과학자였다. 이들은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세이건의 관심에 공감했고 열정에 감탄했고 비전에 동의했다. 당시 거의 유일한 행성학자였던 맥도널드 천문대의 제러드 카이퍼를 만나면서 화성 관측과 행성 대기 그리고 외계 생명체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스탠리 밀러 실험실에서의 칼 세이건.


세이건은 나이 어린 대학생이었지만 이들과의 관계에서 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멀러와 세이건은 우연히 만났는데 바로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SF 작품으로부터 생명이 기원과 외계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지적 토론을 즐기는 사이가 되었다. 세이건은 멀러의 실험실의 초파리 연구팀에 합류해서 연구 활동을 할 기회를 얻었다. 당시 멀러의 연구실은 생명체의 발현 원리를 파악하려는 유기 화합물 합성 연구가 한창이던 곳이었다. 


세이건을 높이 평가한 멀러는 해럴드 유리에게 세이건을 소개했다. 추천서를 써주면서 세이건을 유리의 실험실로 보냈다. 유리는 당시 대학원생이던 스탠리 밀러를 세이건에게 소개했다. 밀러는 생명의 기원에 관한 유리-밀러 실험으로 후에 노벨상을 탄 인물이다. 유리-밀러의 실험 결과를 발표하는 현장에 세이건도 있었다. 반대 진영의 질문에 세이건이 답변을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세이건은 이미 유리-밀러 실험의 중요성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고 이 실험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었다.


이런 학술 활동을 바탕으로 세이건은 1954년 학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은 밀러-유리 실험이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한 것이었다. 세이건의 생명에 대한 긴 학술적인 탐험이 시작되는 변곡점이었다. 석사 학위 전공 선택의 갈림길에서 세이건은 잠시 망설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시카고 대학교에 입학한 후 만난 멀러의 유전학은 그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유리-밀러의 화학 또한 마찬가지였다. 생물학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었다. 세이건의 선택은 물리학이었다. 이 모든 것을 공부하기 위한 기초를 다지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세이건은 1955년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 학위를 마친 후 세이건은 드디어 천문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이미 물리학과 화학과 생물학의 최전선을 경험한 세이건이 드디어 고향과도 같은 천문학을 돌아온 것이다. 이후의 세이건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1956년 여름은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에서 보냈고 가을은 여키스 천문대에서 행성 관측을 하면서 보냈다. 1957년에는 생명과 우주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이 시절 세이건은 이미 다방면에 두각을 나타내는 전설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1957년에 첫 부인인 린 마굴리스와 결혼을 했는데 그들은 그 해 여름을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연구를 하면서 보냈다. 세이건은 이 시기에 주로 화학과 핵물리학을 공부했다. 생물학과 물리학 그리고 천문학에 이어서 본격적으로 화학 분야의 전문 지식을 쌓아 가고 있었다.



칼 세이건과 린 알렉산더(후일 린 마굴리스)의 결혼식 날 사진(1957년).


칼 세이건의 일생을 통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 중 한 명인 조슈아 리더버그와의 만남은 칼 세이건이 우주 생물학의 태동에 기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분자 생물학의 권위자였던 리더버그는 노벨상 수상을 앞둔 석학이었고(195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세이건보다 아홉 살 위였지만 그를 허물없이 대했다. 그들은 서로를 위한 사적인 강의를 나누기도 했다. 리더버그는 세이건에게 유전학을 가르쳤고 세이건은 리더버그에게 천문학과 로켓 공학을 가르쳤다. 세이건이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진리에 목말라 있었고 열린 태도로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세이건이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탐색하는 작업에서 생물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가치를 깨닫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도 바로 리더버그였다.


대장균 같은 세균의 유전적 재결합 메커니즘을 밝혀낸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분자 생물학의 석학 조슈아 리더버그. 세균 유전학 분야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그는 인공 지능 연구와 우주 생물학을 비롯한 우주 개발 분야에서 공헌을 했다. 지구 외 기원 세균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들어올 경우 새로운 질병을 대규모로 일으킬 수 있다는 위험성을 처음 제기하고, 지구에서 발사된 인공 위성 등의 탐사선에 부착된 미생물에 의해 지구 외 생물들이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제러드 카이퍼.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 천문학자이자 행성학자. 천왕성의 위성인 미란다와 해왕성의 위성인 네레이드를 발견했고, 화성의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있다는 사실,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 메탄 대기층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해왕성 궤도 바깥에 소형 천체의 띠가 존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띠는 현재 발견되었고 카이퍼대라고 부른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했다. 첫 인공위성 발사의 영광을 소련에 빼앗긴 미국은 과학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통한 상황의 역전을 노렸다. 자연을 탐구하는 순수 과학으로 여겨지던 천문학이 갑자기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천문학자를 찾는 곳이 많아졌다. 천문학자 기근 현상이 이어졌다. 이즈음의 상황에 대해서 고 조경철 박사의 회고담을 들은 적이 있다. 천문학자는 귀하고 대학마다 강의 요청은 쇄도해서 조 박사 자신도 한 학기에 6∼7개 대학교를 돌면서 천문학 강의를 했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이 박사 학위를 받기도 전인 칼 세이건이 리더버그의 추천으로 ‘스푸트니크 충격’의 여파로 막 생겨난 미국 항공 우주국(NASA)의 자문 위원으로 위촉되어 우주 생물학의 태동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칼 세이건은 학계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정책  결정자의 위치에서 학문 수행과 프로젝트를 결정하는 과정을 모두 체험하면서 경험을 넓혀 갔던 것이다. 당시 우주 생물학 분야의 NASA의 관점은 곧 리더버그의 관점이었다. 세이건의 관점이 곧 NASA의 우주 생물학에 대한 관점에 직접 반영되었다는 의미였다. 리더버그와 세이건은 관점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었고 이미 우주 생물학의 동반자가 되어 있었다.




우주 생물학의 출발점이자 로드맵이 된 박사 학위 논문 

1959년 세이건은 리더버그가 제안한 행성 오염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서 학술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운석의 먼지에 파묻힌 탓으로 자외선의 파괴를 벗어난 유기 분자가 달에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제안을 했다. 지구의 세균이 달을 이미 오염시켰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논의했다. 우주 탐사 경쟁을 하고 있던 소련의 과학자들과 만나서 이런 종류의 오염 문제의 심각성과 방지 방안에 대해서 토론하기도 했다. 우주 탐사의 빈도가 가속화되면서 더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고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지구 생명체의 다른 천체 오염 문제를 처음으로 심각하게 학술적으로 제기한 사람이 바로 세이건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리더버그의 관점이 탄생 단계에 있던 우주 생물학의 주류 패러다임이었다. 리더버그를 계승한 소장 학자 칼 세이건의 주장에도 이미 권위와 힘이 실려 있었다.


1960년 6월 칼 세이건은 드디어 박사 학위 논문을 시카고 대학교 천문학과에 제출했다. 논문의 제목은 “Physical Studies of Planets”. 우리말로 옮기자면 「행성에 대한 물리적 연구」쯤 되는 도발적인 제목이었다. 한 분야의 대가가 그 분야를 해설하는 것 같은, 마치 한 권의 책을 연상시키는 제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칼 세이건의 학문적 행적과 성과와 비전을 생각하면 이런 제목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세이건은 그 자신이 몸소 새로운 학문 세계를 개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성의 물리∙화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외계 생명체 탐색으로 뻗어 나가는 논문들이 칼 세이건의 박사 학위 논문에 포함되었다. 따라서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은 모두 네 편의 독립된 연구 결과로 구성되었다.



칼 세이건의 박사 학위 논문. 


리더버그의 영향을 받아서 수행한 「달의 토착 유기물(Indigenous Organic Matter on the Moon)」과 「달의 생물학적 오염(Biological Contamination of the Moon)」에 「금성의 복사 평형(The Radiation balance of Venus)」과 「금성의 대기에서의 유기 분자의 생성(Production of Organic Molecules in Planetary Atmospheres: A Preliminary Report)」이라는 논문이 순서대로 편집되어 있다.


달의 유기 물질에 대한 두 편의 논문은 성간 물질, 행성 그리고 위성에서 생명의 재료가 되는 유기 화합물을 찾는 우주 생물학의 한 연구 분야의 첫 장을 열었던 기념비적인 논문들이다. 우주 탐사선에 실려 간 지구 생명체에 의한 다른 행성이나 위성의 오염 가능성에 대해서도 세이건은 혜안을 가졌다. 화성에서 살아 있는 미생물 같은 생명체를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가장 우려되는 일 중 하나가 그동안 우리가 보낸 화성 탐사선에 묻어갔던 미생물이나 유기화합물이 화성 표면에 생존할 가능성이라는 것을 돌이켜볼 때 세이건의 통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행성이나 위성에 대한 물리적 연구를 넘어서서 결국은 생명체의 연구로 논점을 집중시키고 있던 당시 세이건의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논문들이다.


      


       

달의 형성 과정을 나타낸 그림. 약 45억 년 전 달의 표면은 수많은 천체들과의 충돌로 인해 용융 상태에 있었다. 이것이 식어 현재의 달 표면을 이루었다. 그리고 39억 년 전 소행성이 출동해 만들어진 구덩이가 현무암질 용암으로 뒤덮였고 이것이 우리가 달에서 보는 얼룩 무늬, 즉 달의 ‘바다’가 되었다. 이런 격렬한 과정은 분명 달에서의 유기 물질 생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코스모스』에서


금성에 대한 두 편의 논문은 우리 지구의 형제 행성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1960년 당시 금성은 지구와 거의 비슷한 행성이라고 여겨지고 있었다. 칼 세이건은 당시 거의 유일한 행성 과학자였던 카이퍼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 금성의 진실을 파헤치는 연구도 했다. 당시의 최신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금성이 지구와는 달리 아주 뜨거운 곳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기존 학계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지만 후속 관측 결과는 모두 칼 세이건의 주장이 맞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금성 적도 지역의 레이다 지도. 전파 세기 지도에서 밝게 보이는 지역이 금성 표면에 서 전파를 잘 반사하는 곳이다. 더 자세히 연구된 지역들은 원으로 표시했다. 그중의 한 지역이 아래 사진에 실려 있다. 『코스모스』에서


그는 「금성의 복사 평형」 논문에서 금성 대기가 뜨겁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 이유가 온실 효과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짙은 금성 대기의 이산화탄소가 수증기를 머금고 있어서 온실 효과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요즘 유행처럼 회자되는 ‘지구 온난화’의 원조 연구가 바로 칼 세이건의 금성 대기 연구였던 것이다. 칼 세이건의 금성 대기 연구는 후에 지구 온난화 문제와 핵전쟁 이후 닥쳐올지도 모르는 핵겨울에 대한 아이디어로 연결되었다. 칼 세이건이 과학 연구를 넘어서 사회 현상에 대해 발언하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금성의 표면 온도에 잠깐 노출되어 녹아 버린 플라스틱 안전모. 위의 사진은 노출되기 직전, 아래는 녹아 버린 모습. 칼 세이건 등이 주도한 금성에 대한 전파 망원경 연구는 금성의 표면이 놀라울 정도로 뜨겁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코스모스』에서


이 논문에 이어지는 「금성의 대기에서의 유기 분자의 생성」은 유리-밀러 실험을 금성으로 확장한 것으로 행성 연구의 종착역이 생명체 연구여야 함을 과학계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 논문으로 칼 세이건은 당대 최고의 금성 연구자로, 최고의 행성 과학자로, 또 우주 생물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칼 세이건의 박사 학위 논문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생겼다. 천문학과 물리학에 연계된 화학과 생물학적 연구 결과를 감당할 심사 위원을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힘들게 섭외한 산부인과 의사가 세이건의 논문의 심사 위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리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박사 학위를 받고 세이건은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밀러 연구소에서 첫 연구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리더버그의 제안을 칼 세이건이 받아들인 결과였다. 칼 세이건은 그곳에서 유리-밀러 실험에 들어 있는 암모니아, 메탄, 수증기 같은 기체 연구를 통해서 목성의 대기를 탐구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세이건은 강의도 병행했는데 그야말로 인기 폭발이었다. 이 무렵 그는 대중 강연에도 나서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서서히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강의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의 논문은 미리 쓴 자서전이었다!

칼 세이건이 우주 생물학이라는 정착되지 않은 학문에 몰입하자 그의 조력자인 리더버그나 유리조차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우주 생물학 같은 미지의 학문 세계를 탐험하는 것은 러더버그나 유리같이 이미 노벨상을 수상해서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의 연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충고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칼 세이건의 열정에 감탄했으며 그가 이미 그들 자신을 뛰어넘어서 우주 생물학의 중심에 있다는 데 동의했다. 칼 세이건의 용기에 지지를 보냈고 평생 그의 동료이자 협력자가 되었다. 


그는 학문적으로나 강의에서나 대중을 향한 교육 강연에서 이미 최고였다. 대체 불가능한 우주 생물학자 그 자체였다. 박사 학위를 받던 1960년에는 NASA 최초의 행성 탐사선인 금성 탐사선 매리너 호 프로젝트에 리더버그와 함께 NASA 실험관으로 참가했다. 1961년에는 『화성과 금성의 대기』라는 논문집의 편집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1962년에 접어들어서는 칼 세이건은 달 탐사 계획인 아폴로 미션을 위한 최초의 과학 프로그램 입안에도 관여하기 시작했다. 우주 생물학의 역사적 현장에 늘 그가 있었다. 


1960년 박사 학위를 받은 시점은 이렇듯 칼 세이건의 과거의 작업이 총체적으로 집결된 그의 인생의 한 결집점이자 또 다른 시작을 위한 변곡점이었다. 그 변곡점은 이후 그의 우주 생물학을 향한 학문적 대중적 행보를 예언하는 전환점이기도 했다. 그 중심에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이 한 편의 자서전처럼 또 한편의 매뉴얼처럼 그리고 또 다른 한편의 예언서처럼 우뚝 솟아 있다. 행성에 대한 물리적 연구」은 칼 세이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중첩된 미리 나온 그의 과학과 삶의 자서전이다.




이명현 과학 저술가 / 천문학자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 천문학과 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 세계 천문의 해 한국 조직 위원회 문화 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했고 한국형 외계 지적 생명체 탐색(SETI KOREA) 프로젝트 리더로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이명현의 별 헤는 밤』, 『책 대 책』(공저), 『과학이 나를 부른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문더스트』 등이 있다.



[관련 도서]


『코스모스』 [도서정보]



[<코스모스> 3부작]


『코스모스』 [도서정보]


『혜성』 [도서정보]


『창백한 푸른 점』 [도서정보]



[칼 세이건 저서]


『지구의 속삭임』 [도서정보]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도서정보]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도서정보]


『에덴의 용』 [도서정보]


『에필로그』 [도서정보]


『콘택트 1』 [도서정보]


『콘택트 2』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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