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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제81항공정비창의 비밀 본문

완결된 연재/(完) 비행기, 역사를 뒤집다

15. 제81항공정비창의 비밀

Editor! 2017. 9. 25. 10:04


15. 제81항공정비창의 비밀


우리 나라의 전략 무기 중 하나인 F-15K. 크기만큼이나 비싸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 동안 우리나라 주력 전투기 F-15K와 F-16 계열의 수리 부속 및 정비 비용은 무려 1조 1967억 원으로, F-16 한 대를 10년 운영하는 데 F-16 한 대 값이 들어간다. 그중 상당 부분을 ‘바가지’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F-15K의 경우 제작사인 보잉과 맺은 기술 협약서(TAA) 때문에 기술 통제가 심하다. 우리나라가 기술이 없어서 못 고치는 경우는 어쩔 수 없겠지만 간단한 교체나 수리 기술이 있는 상황에서도 쉽사리 고칠 수 없는 상황이다. 수익성이 낮아 제조사가 생산 라인을 폐쇄하면 부품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아예 다른 장비를 장착하는 개량 사업이나, 다른 기체의 해당 부품으로 교체해 운용하는 동류전환에 들어간다. 비행 자체에 영향을 끼치는 부품이 아니라 레이더 경보 수신기(Radar Warning Receiver, RWR. 적군의 레이더 전파를 수신하여 자신이 탐지되고 있음을 알리는 장치)처럼 전시(戰時)에 필요한 장비가 고장 난 경우도 있다. 100퍼센트 성능은 발휘하지 못하지만, 평시 후방 훈련에는 쓸 수 있는 불완전 가동 항공기(F-NORS)라면 그대로 띄운다.


미 공군 소속 F-16과 한국 공군 소속의 F-16. 같은 F-16이지만, 대우는 같을 수 없다.


KF-16과 F-15K의 평시 가동률은 각각 75퍼센트, 83퍼센트 대를 유지한다. 조사 시기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해도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준수한 편이다. 전투기 4대 중 1대, 혹은 5대 중 1대는 고장 나서 계류장에 박혀 있는 듯이 보이지만, 전투기가 4대라고 4대를 다 띄울 수는 없다. 고장 나지 않더라도 순차적으로 시한성 부품을 갈아 주든가 정비를 해야 하는 경우가 계획 정비다. 더 큰 고장이 나기 전에 미리 정비한다는 개념이다. 미국도 F-15E형의 가동률이 75퍼센트 수준이다. 역시 부품 단종이나 부품 수급 지연, 계획 정비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이 생산해 낸 무기이기에 수리나 정비에 있어서 제약이 없지만 한국의 경우 미국의 제약을 받는다. 부품 수급에도 어려움이 많다. 평균적으로 30만 개가 넘어가는 전투기 부품 중 한 부품이 단종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F-4팬텀같이 전 세계에서 운영했던, 혹은 지금도 운영하는 기체라면 부품을 찾아 전 세계를 뛰어다닌다. 실제로 이란-이라크가 한참 전쟁을 할 때 우리나라는 이란에 F-4팬텀의 부속품을 팔아 나름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여의치가 않아 F-4를 운영하는 국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는 부품을 구입하기 위해 전 세계를 뛰어다녔고, 이도 안 되면 국내 생산을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F-4D형은 이미 다 퇴역한 상태이고, 지금 운영 중인 F-4E형도 퇴역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또한 팬텀이 워낙에 많이 생산된 기체이기에 부품을 구하는 것이 다른 기체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F-5E형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에서 라이선스 생산을 했고, 완벽하게 창정비를 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 이르러 정비에 대한 문제는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F-5, F-4 시리즈는 퇴역이 얼마 남지 않기도 했고 노하우와 부품 수급 여력이 된다는 이유로 아직도 운영 중이다.


대한민국의 창정비(오버홀, overhaul) 능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오버홀이란 공군의 경우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항공기, 해군은 잠수함을 포함한 군용 함선, 육군은 탱크를 비롯한 장갑차까지, 덩치 크고 값비싼 기계 장비들을 시간에 맞춰서 수리하는 행위다.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정도의 수리가 아니라 전체를 분해해서 재조립하는 것이다. 잠수함은 배의 특성상 선체를 반으로 가른 뒤 장비를 다 빼내 분해 조립해 정비를 다 끝낸 후 다시 선체를 용접한다. 주력 전차인 K-1 탱크들도 때가 되면 창원에 있는 종합 정비창으로 들어가 바퀴 하나하나까지 다 분해돼 정비를 받는다. 


비행기는 배나 전차보다 훨씬 더 정비가 중요하다. F-5시리즈의 경우 정비 후 6년이 지나면 81 정비창에서 분해된 뒤 재조립된다. 기체에 도색된 페인트까지 화학약품을 통해 다 벗겨내고 동체와 날개에 무수히 박혀 있는 리벳(rivet)까지 다 분해한 후 X-ray로 일일이 다 찍어 기골에 문제가 있는지를 검사한다. F-5 시리즈의 경우 부품 수만 23만 개 정도 되는데, 오버홀 한 번에 평균 1만 개 이상의 부품을 갈아 끼운다. 81 정비창의 수준을 보면 대한민국의 전투기 창정비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데, 엔진 터빈 블레이드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용접하고 갈아내 새것처럼 만들어 낸다. 민간에서도 이런 창정비를 하는데, 대한항공의 경우에는 국내 군용기뿐만 아니라 미군의 군용기들도 정비한다. 미군의 F-15, F-16은 물론, A-10 공격기, 공중 급유기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에 주둔한 미군기들을 도맡아 수리한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벌어들이는 외화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주력 전투기라 할 수 있는 F-16과 최신예기인 F-15 시리즈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창정비는 할 수 있고, 실제로 하고 있다. 문제는 역시나 부품 수급이다. 미국에서 기술 통제를 하는 경우도 있다. 


도장까지 다 벗겨내고, 분해 조립한다.


일반인들의 관점에서 무기 구입 프로그램, 그중에서 전투기 구입에 들어가는 예산은 어마어마하다. 최근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3차 FX사업의 경우만 보더라도 8조가 넘어가는 비용이 투입된다. 그런데  전투기 도입 이후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는 개념조차 없다. 전투기 한 대를 도입하면 평균 8,000시간 비행 후 퇴역한다. 30년을 넘어서는 것은 비용 대비 효과에서 오히려 낭비로 정비 비용이 더 들어간다. 보통 전투기 도입 사업에서 초기 구입비는 전체 비용의 30퍼센트로 전투기 한 대를 30년간 굴리려면 구입 비용의 2배 이상의 군수 지원 비용이 발생한다. 후속 군수 지원 비용이 나머지 70퍼센트인 것이다. 단순히 전투기가 비싸다고 분노하기 전에 도입 비용보다 더 비싼 것이 운영 비용임을 기억하자. 역시 전투기는 돈 먹는 하마가 맞다.




펜더 이성주

《딴지일보》 기자를 지내고 드라마 스토리텔러, 잡지 취재 기자,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SERI CEO 강사로 활약했다. 민간 군사 전문가로 활동하며 『펜더의 전쟁견문록(상·하)』와 『영화로 보는 20세기 전쟁』을 썼다. 지은 책에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1』, 『글이 돈이 되는 기적: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 : 인물과 사료로 풀어낸 조선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 『아이러니 세계사』,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  등이 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있는 지방으로 이사해 글 쓰는 작업에만 매진하는 삶을 살고 있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도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