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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협력의 공식 시즌2

10화. 어떻게 유전자가 ‘이기적’일까?

Editor! 2017.10.28 10:00

《과학동아》와 사이언스북스 블로그에 병행 연재되고 있는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협력의 공식」 시즌 2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즌 1에서는 이타성과 협력이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 사이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탐구한 진화 과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이 주제였다면 이번 시즌 2부터는 친족이 아닌 존재들 사이에서 이타성과 협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탐색하는 과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이 주제입니다.

전중환 교수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인류를 ‘지구의 정복자’로 만든 진정한 원동력인 이타성, 협력, 사회성이 어떻게 진화해 나왔는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시즌 2 연재의 첫 번째 주인공은 평범한 문제에서 비범한 해법을 발견해 낸 로버트 트리버스입니다.  


1973년, 영국에서 보수당의 노동 정책에 반발해 석탄 광부들이 총파업을 일으켰다. 전력 생산이 중단되어 영국 전역에 비상 사태가 선포되었다. 일주일에 사흘만 전기가 들어왔다. 덕분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귀뚜라미 수컷의 구애 노래를 연구하던 어느 조교수는 실험을 당분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전기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렇다. 양초 불빛 아래에서 타자기로 책 쓰기였다. 그는 1966년에 처음으로 동물 행동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되었을 때 만든 강의록을 토대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섭섭하게도, 겨우 두 장(章)을 마쳤을 때 전력 공급이 정상화되었다. 이태 후에 안식년을 맞아 다시 집필을 시작했다. 서랍 속에서 잠자던 원고 뭉치는 비로소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바로 리처드 도킨스의 명저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1976년)였다.


당시에는 열등한 유전자를 박멸한다는 나치 우생학의 공포가 과학자들을 무겁게 짓누르던 시절이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전자’라는 불경스러운 단어에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 ‘이기적’이라는 단어를 버젓이 결합한 제목을 단 책 『이기적 유전자』는 서구 사회에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이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자리를 수십 년째 굳건히 지키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이 책에 대해 열광적인 찬사와 저주 섞인 비난이 동시에 쏟아진다. 누군가에게는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을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뒤바꿔 놓은 책이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간사의 모든 것을 유전자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호들갑”을 만든 구닥다리 책이다.


비평가들은 책 제목만 읽는 경향이 있다고 나중에 도킨스가 투덜댄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 대해 양극단을 오가는 반응들은 주로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에서 나온다. 정확히 어떤 의미에서 유전자가 ‘이기적’인지 살펴보자.


『이기적 유전자』 ⓒ Oxford University Press



맙소사! 인간이 유전자의 생존 기계라니!

『이기적 유전자』를 처음 읽고 나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독자를 동요시키고, 경탄시키고, 좌절시키고, 불쾌하게 하고, 분노하게 한다. 실제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독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소개한 바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책이 주는 냉혹하고 암울한 메시지가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사흘이나 잠을 설쳤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사람은 그런 책을 써 놓고서 어떻게 도킨스 당신은 매일 아침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한 학생은 그 책을 읽고서 “삶이 공허하고 아무런 목적도 없음을 깨달았다.”라며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울먹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 유전자’라는 문구를 대개 이렇게 이해한다. 유전자는 이기적이어서 오로지 다음 세대에 복제본을 더 많이 남기려 애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유전자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유전자를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다 …… 우리는 유전자의 생존 기계다.”(『이기적 유전자』 한국어판, 65쪽) 따라서 인간은 본래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도킨스에 따르면, 친자식이나 형제, 배우자, 친구 등을 향한 따뜻한 사랑과 헌신도 진정한 이타성이 아니라 유전자가 우리를 조종해 복제본을 더 남기려는 이기적인 책략에 불과하단다.


사람은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니라 유전자를 섬기는 노예에 불과하다고 일갈한 뒤, 도킨스는 선심 쓰듯 해결 방안도 던져 준다. “관용과 이타성을 가르치도록 노력하자. 우리는 이기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유전자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 이해하자. 그러면 유전자의 계획을 무산시킬 기회라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이기적 유전자』 한국어판, 41쪽). 이쯤 되면 “아유, 노예를 벗어날 방법까지 알려 주시니 감사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라고 쏘아붙이고 싶어진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어구는 정말로 인간을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 기계로 깎아내리는 말일까?



‘이기적 유전자’는 은유일 뿐이다

꼭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이 있다. ‘이기적 유전자’는 단지 은유일 뿐이다. 은유가 무엇이던가? ‘내 입술은 앵두’처럼, 새로 묘사하고 싶은 낯선 대상을 사람들에게 이미 친숙한 대상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은유가 마음에 안 들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화자의 입술이 아주 붉다는 얘기구나.”라고 바로 이해하면 된다. 어떤 은유가 형편없음을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의 입술이 어떻게 과일이 될 수 있냐며 정색하고 따지면 곤란하다.


도킨스는 책에서 ‘이기적 유전자’는 하나의 은유에 불과함을 지겨울 정도로 강조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보라. “간결하고 생생한 표현을 위해 우리는 은유를 사용할 것이다.”(『이기적 유전자』 한국어판, 102쪽) “지금껏 유전자를 의식적인 행위자에 은유했던 작업을……”(『이기적 유전자』 한국어판, 167쪽) “각각의 동물을 마치 자기 유전자를 보존한다는 ‘목적’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생존 기계에 은유하는 우리의 접근법을 활용해……”(『이기적 유전자』 한국어판, 230쪽)


그러나 이런 노력은 모두 헛수고였다. 스티븐 제이 굴드나 리처드 르원틴 같은 비판자들은 ‘이기적 유전자’라는 문구가 이기적인 의도를 실제로 지닌 유전자가 인간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극단적인 유전자 결정론을 내포한다며 분노했다. 과학 사회학자 김동광은 “마치 유전자가 자율적 능력과 기제를 갖춘 복제자인 것처럼 과장했다.”라며 도킨스를 비판했다.  도킨스는 유전자가 정말로 이기적인 동기를 지닌다고 주장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말이다.


우리는 ‘이기적 유전자’가 조종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할까?



강조점은 ‘이기적’이 아니라 ‘유전자’에 찍어라

‘이기적 유전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30주년 기념판 서문에서 이 은유를 정확히 이해하는 요령을 알려 준다. “책 제목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강조점을 제대로 찍는 것이다. …… 이 책의 제목에서 강조해야 할 핵심 단어는 (‘이기적’이 아니라) ‘유전자’다.”(『이기적 유전자』 한국어판, 8쪽)


‘이기적’이라는 단어가 왜 별로 중요하지 않을까? 생명의 계층 구조를 이루는 실체로 유전자, 개체, 집단, 종, 생태계 등이 있다. 선택이 어느 실체에 작용하든지 간에, 장구한 세월에 걸친 자연 선택의 체를 통과해 오늘날 지구상에 흔하게 된 실체는 어떤 특성을 갖추고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다. 마치 어떤 남자가 시카고 갱단에서 오랫동안 활약했다면, 그가 배짱 두둑한 ‘상남자’이리라 기대할 수 있듯이 말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다음 세대에 후손을 더 많이 남겼던 실체가 이 점에서 그리 능숙하지 못했던 다른 실체들을 제치고 자연계에 흔하게 퍼졌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 실체가 ‘이기적’이라고 은유할 수 있다. 이 은유가 싫으면 안 따르면 그만이다. 어쨌든, 그 실체가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의도를 정말로 가진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예를 들어 보자. 인류의 진화에서 추우면 덜덜 떨어서 열을 내서 체온을 유지했던 사람들이 아무리 추워도 가만히 있어서 저체온으로 동사했던 사람들보다 후손을 더 많이 남길 수 있었다. (선택이 작용하는 단위가 개체라고 잠시 가정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추우면 몸을 덜덜 떠는 사람을 도킨스는 ‘이기적’이라고 은유한다. 사실 자연 선택의 단위는 정의상 ‘이기적’일 것이기 때문에—다음 세대에 후손을 많이 남기는 특성이 있을 것이기에—이 은유는 싱겁게 들리기까지 한다. 


이제 왜 ‘유전자’가 정작 강조해야 할 핵심 단어인지 살펴보자. 자연 선택에 의해 후대에 많은 복제본을 남기게끔 정교하게 다듬어지는 실체는 유전자, 개체, 집단, 종 가운데 무엇인가? 즉 선택이 작용하는 ‘이기적인’ 단위는 무엇인가? “이기적인 종? 이기적인 집단? 이기적인 유기체? 이기적인 생태계? …… 그것들은 모두 틀렸다. 다윈주의의 메시지를 ‘이기적인 무엇’으로 간결하게 표현하고자 할 때, 그 무엇은 유전자이다.”(『이기적 유전자』 한국어판, 9, 10쪽)


선택의 단위가 유전자인 까닭은 명백하다. 유전자만이, 어떤 의미에서, 불멸하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복제본의 형태로 수십, 수백만 년 동안 안정적으로 전해진다. 자연 선택이 작용해 더 ‘이기적’인 유전자가 널리 퍼지는 발판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개체나 집단은 짧게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진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나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덧없다. 소크라테스라는 개체를 이루었던 독특한 유전적 조합은 그가 독배를 마시면서 함께 사라졌다. 유전자만이 불멸하므로, 자연 선택의 단위는 오직 유전자이다.


요약하자면, ‘이기적인 유전자’ 은유의 참뜻은 이렇다. 진화의 긴 역사를 통해 자연 선택에 의해 그 복제 성공도가 최대화되는—따라서 ‘이기적’인—단위는 종도, 집단도, 개체도 아니라 유전자이다. 선택의 단위가 유전자라는 명제로부터 유전자나 개체가 정말로 이기적인 동기를 지닌다는 함의를 끌어낼 수는 없다. 잠깐, “관용과 이타성을 가르치도록 노력하자. 우리는 이기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도킨스는 2006년에 새로 쓴 서문에서 이 문장은 틀렸으니 마음속에서 삭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이야기하자.


리처드 도킨스 ⓒ David Shankb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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