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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Talk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인공 생체 시계, 그리고 마음의 시계

Editor! 2017. 10. 24. 14:31

과학 Talk.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인공 생체 시계,

그리고 마음의 시계



우리 몸 안의 생체 시계

2017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생체 시계의 작용 기작을 규명한 세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습니다. 수상자 제프리 홀, 마이클 로스배시, 마이클 영은 일주기리듬을 통제하는 유전자인 피리오드(period)와 이 유전자가 발현하는 PER 단백질 사이의 메커니즘을 밝혀냈습니다. 이후의 생체 시계 연구는 수면 패턴, 호르몬 조절, 대사, 체온, 혈압 등에 이 내부 기작이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사진 출처: 노벨상위원회


생체 주기의 교란은 몸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몸에 있는 생체 시계의 작용과 몸의 변화를 잘 파악하고 이 주기가 잘 지켜지도록 하는 것은 보조적인 치료방안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이를 ‘생체 리듬 치료’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생체 시계에 따라 달라지는 혈압, 체온 등 각종 수치를 고려해 투약 시간을 달리하여 투약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생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는 시간생물학(chronobiology)은 우리의 몸을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고, 2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서도 여러 주기를 반복하며 계속 변하는 상태라는 것을 섬세하게 고려합니다. 



마음의 시계

우리의 몸이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역동적인 존재라는 점을 주장하는 또 다른 연구가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앨런 랭어가 1979년에 행한 사회 심리학(social psychology) 연구입니다. 랭어 교수는 우리 몸 안의 시계가 흘러가는 것, 즉 노화 현상을 사회문화적이고 심리학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랭어 교수는 노화의 시계를 반대 방향으로 돌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 습관의 형성, 단어의 선택 등 수많은 사회적 요소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변화시킨다면 노화를 막거나 늦출 수 있다는 겁니다.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랭어 교수는 그녀가 했던 실험의 놀라운 결과를 소개합니다. 


1979년, 랭어 교수의 연구팀은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의 노인 16명을 실험 참가자로 모집하여 이들을 현대적인 편의 시설이 거의 없는 한적한 시골의 은둔처로 데려갑니다. 일주일 동안 실험 참가자들은 20년 전인 1959년 분위기로 꾸며진 집에서 1959년의 텔레비전 방송을 보고 1959년에 듣던 노래를 듣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마치 자신이 1959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랭어 교수팀은 1959년을 살고 있는 양 연기를 하지 말고, 실제 당시 자신의 모습이 되어 달라고 말합니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20년 전으로 돌아간 일주일간의 생활은 참가자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청력과 기억력이 향상되었고, 체중이 늘었고, 악력도 현저히 향상되었습니다. 랭어는 이러한 변화의 동력을 ‘육체를 지배하는 마음의 힘’이라고 부릅니다. 


랭어는 의학이 규정하는 늙음에 맞춰 우리 몸의 상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자고 말합니다. 기존 과학의 평면적인 진단 방식을 비판하며 개개인의 몸은 모두 다르고 분류에 의해 규정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느 틀 안에 넣지 않고,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다면 우리의 몸이 실제로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축시키는 사고방식이나 건강과 행복에 대해 우리가 설정해 둔 한계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수호자가 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자는 것이다.” ─엘렌 랭어, 『마음의 시계』


© Colin Davey/Express/Getty Images



다시, 생체 시계

시간과 인간의 몸이라는 같은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두 연구의 결과와 메시지는 어쩌면 정반대인 것 같기도 합니다. 생체 시계 연구는 2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서도 우리의 몸의 변화를 섬세하게 탐구합니다. 개인마다 생체 시계의 주기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의해 생겨난 질병이 생리학적으로 치료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생체 시계라는 개념은 인간의 몸을 단순화하던 의학 진단의 한계를 인정하고 더 나은 의학으로 나아가는 연구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같은 주제를 둔 과학 연구와 인문-사회과학 연구를 동시에 접하는 것은 그 주제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켜 줍니다. 전혀 다른 두 분야의 연구가 우리의 인식 속에서 충돌을 일으키거나 상보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생체 시계를 떠올리면서 앨런 랭어의 『마음의 시계』를 읽어 보면 어떨까요? 몸과 시간, 하루와 전 생애에 대한 인식이 넓어질 겁니다. 



『마음의 시계』 [도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