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cienceBooks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 ~ 담당 편집자에겐? 본문

책 이야기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 ~ 담당 편집자에겐?

Editor! 2010. 7. 1. 11:13

<기획회의> 273호에 실렸던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의 담당 편집자의 글입니다.


벌써 5년 전, 엔화 환율이 950원이 채 되지 않던 때의 일이다. 나는 APCTP(아시아 태평양 이론물리센터)에서 선발한 여학생들과 함께 ‘세계의 여성 과학자를 만나다’ 인터뷰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도쿄에 첫 발을 내디딘 참이었다. 신입 편집자의 첫 출장, 태풍이 몰려오기 직전의 무더운 도쿄 거리를 헤매던 사흘 동안 나는 디저트의 천국이라는 도쿄에서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쿄, 뉴욕, 워싱턴, 시카고, 그리고 서울과 천안, 포항을 오가며 이루어진 여성 과학자 인터뷰를 담은 책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에서 나와 APCTP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APCTP 기획 도서 전담이라는 내 임무는 어느덧 『과학이 나를 부른다』에서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로 이어지고 있다. 나름 영문학도로서 ‘가지 않은 길’을 따라 과학 책 편집자가 되고난 후로 APCTP는 그 길의 일부가 되었다.

내게 있어 APCTP와의 작업은 일단 기다란 주소록 정리에서부터 시작해 수십 통의 전화를 걸고 수백 통의 이메일을 보낸 다음 지루한 우편물 발송 작업을 마무리 짓고 더욱 긴 주소록을 새로 만들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면서도 매번 APCTP의 원고를 덥석 받아 드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과학하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자꾸만 귀가 솔깃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디 달팽이를 채집하다가 간첩으로 몰려 총부리 앞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읊어댄다거나, 아폴로 우주인 그림이 그려진 공책 표지가 더 갖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밤새 연습장 빈칸을 채울 수 있겠는가? 또 누가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와 헤파이스토스가 상징하는 첨단 미래 사회로의 이행을 설명하고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사랑 이야기에서 불멸에 집착하는 인류를 발견해 낼 수 있을까?

이번 책 작업은 스물세 분 선생님을 모시고 과학을 꿈꾸어 본 사람 누구라도 품었음직한 물음,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듣는 과정이기도 했다. 과학은 나라와 겨레를 위한다며 이리저리 휩쓸리거나 상아탑 속에 숨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과학은 혼자만의 꿈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곧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광장으로 나서는 원동력이 된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과학과 함께한 삶을 되돌아보며 같은 사랑을 고백한다.

과학의 길에 발을 들여놓은 나약한 젊은이에게 과학은 고통과 시련을 안겨 주기 일쑤다. 하지만 그만큼 기쁨과 희망이 보이기 때문에 그 길을 걸어갈 힘을 얻고 또 걷는다. 평생 한우물만 파든 먼 길을 돌아오든, 그들이 놓지 않는 과학에의 사랑이 부럽다. 예전 한여름 도쿄 거리를 함께 배회하던 학생들 역시 머지않아 자신들이 찾아낸 답을 말해 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