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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한 비합리적으로" : 행동 경제학은 어떻게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나

Editor! 2017. 10. 31. 10:08

과학 Talk.

“가능한 한 비합리적으로”

행동 경제학은 어떻게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나



2014년을 누군가는 ‘허니버터칩’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그야말로 ‘없어서 못 팔던’ 허니버터칩은 가판대에 진열되기가 무섭게 사라지기 일쑤였고, 언론에서도 이 과자의 선풍적인 인기를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허니버터칩의 인기를 체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없어서 유명했던, 유명했던 것으로 유명했던 허니버터칩은 이제 사람들이 서로를 따라 하며 유행을 창출해 내는 ‘밴드웨건 효과(편승 효과)’의 사례로 언급되곤 합니다.


이미지 출처: 해태제과 홈페이지



행동 경제학, 실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다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은 미국 시카고 대학교의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에게 돌아갔습니다. 노벨 위원회는 “행동 경제학에 대한 탈러의 학문적 공로”를 이유로 들어 수상을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탈러의 업적인 “행동 경제학”이란 무엇일까요? 과학 저술가 마크 뷰캐넌은 『내일의 경제』에서 행동 경제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연하기도 했습니다.


“이론 경제학자들의 편리한 신화보다는 실제 사람들이 행동하는 방식에 맞춰진 경제학”


이 문장에서 “이론 경제학자들의 편리한 신화”는 경제적 활동의 행위자로서의 인간을 ‘합리적’이라고 본 주류 경제학의 가정을 말합니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Homo Economicus)’이다.”라는 명제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최적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 곡선에 따라 합리적으로 결정된다고 주류 경제학은 주장합니다. 이는 개인의 필요와 취향, 이해 관계를 이기적으로 따진 후에 행동하는 합리적 행위자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내일의 경제』 [도서정보]


사회적 선호란?


하지만 행동 경제학은 심리학, 복잡계 과학 등에서의 연구를 이론적 기반으로 삼아, ‘합리적’ 행위자를 가정하지 않고도 실제 사람들의 행동을 설명하는 경제학을 꾀합니다. 따라서 행동 경제학의 의사 결정자는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공정함이나 도덕과 같은 사회적 선호 등을 고려하게 됩니다. 탈러의 업적 중 하나가 바로 이 ‘사회적 선호’를 연구한 것입니다. 이처럼 이기적이지 못한 기준들은 주류 경제학의 관점에서 ‘비합리적’이라 칭할 만합니다.


사회적 선호를 보여 주는 일화 가운데는 ‘최후통첩 게임’이 있습니다. 두 명의 참가자가 진행하는 이 게임에서 한 명은 제안자, 한 명은 수용자를 맡습니다. 제안자에게 1만 원을 주고, 이 돈을 수용자와 나눠 가지라고 할 때, 몇 대 몇으로 나눌 것인지를 제안자에게 맡깁니다. 이때 수용자는 제안자의 제안을 수용하거나, 수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공정하지 못한 게임은 때로 싸움을 낳습니다. 얀 스테인(Jan Steen, 1626~1679년), 「카드 게임 중의 다툼(Argument over a Card Game)」.


이때 제안자와 수용자 모두 (주류 경제학에서 주장하듯) 합리적이라면, 제안자는 최대한의 몫을 챙길 것이고 수용자는 최소한이나마 수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반대의 양상을 보였습니다. 제안자의 절반가량은 수용자에게 5 대 5를 제안했으며, 수용자의 절반가량은 9 대 1의 비율을 제안받았을 때 거절한 것입니다. 게임 참가자들의 뇌를 분석한 결과, 수용자가 제안을 거절할 당시에 뇌에서 역겨움을 표상하는 뇌섬(insula) 영역이 활성화되었다고 정재승 교수는 『1.4킬로그램의 우주, 뇌』에서 설명합니다. 이러한 뇌과학의 연구는 도덕성과 혐오의 상관 관계를 실험한 진화 심리학의 연구와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입니다. 『오래된 연장통』의 저자인 전중환 교수는 진화 심리학의 틀에서 최후통첩 게임을 다음과 같이 분석합니다.


“반복적인 상호 작용이 대부분이었던 먼 과거의 환경에서는, 무임승차자를 이타적으로 처벌하는 사람들이 무임승차자를 그냥 내버려 두는 사람들보다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했을 것이다.”


『1.4킬로그램의 우주, 뇌』 [도서정보]


『오래된 연장통』 [도서정보]



“인간은 적응적인 기회주의자”


마크 뷰캐넌의 『사회적 원자』는 이처럼 인간의 비합리적인 사고 본능을 보여 준 탈러의 실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런던 《파이낸셜 타임스》에는 한 대회를 알리는 글이 실렸습니다. 이 대회는 0부터 100까지의 숫자 중 하나를 골라 보내면 참가할 수 있으며, 사람들이 보내 온 숫자의 3분의 2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 우승자가 됩니다. 이 대회의 모든 참가자들의 합리적이라면, 0을 보낸 사람이 우승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분의 2를 무한히 적용하다 보면 0에 수렴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실제 실험 결과 18.9가 나왔다고 합니다.


『사회적 원자』에서 마크 뷰캐넌은 개인을 “사회적 원자”로 지칭하면서, 원자와 흡사한 개인 간의 상호 작용을 관찰함으로써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연구들을 소개합니다. 뷰캐넌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적인 계산기”가 아니며, 오히려 “적응적인 기회주의자”입니다. 이는 인간의 의식이 논리가 아니라 적응하는 능력, 즉 시도와 실패를 반복함으로써 배우고, 타인의 선택을 모방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수요와 공급 곡선의 합리적 작용을 무색하게 하는 밴드웨건 효과도 ‘사회적 원자’의 한 현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리처드 탈러 ⓒ Chatham House, London


『사회적 원자』 [도서정보]



“가능한 한 비합리적으로”


리처드 탈러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노벨상 수상 상금을 “가능한 한 비합리적으로 쓰겠다.”라며 행동 경제학자다운 너스레를 보여 주었습니다. 똑같은 금액의 돈이라도 그 목적에 따라 차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심리적 계정’ 이론 또한 탈러가 발전시켰습니다. 이 이론에 따라서 그는 노벨상 상금을 가장 비합리적이며,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영역에 배정하겠다고 선언한 셈입니다.


행동 경제학은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신화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나섰습니다. 한편 과학으로 이해하기에는 인간이 너무나 복잡하다는 신화 또한 행동 경제학이 논파해 갈 것입니다. 행동 경제학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 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