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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 본문

완결된 연재/(完) 협력의 공식 시즌2

12화.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

Editor! 2017.12.22 13:00

《과학동아》와 사이언스북스 블로그에 병행 연재되고 있는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협력의 공식」 시즌 2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즌 1에서는 이타성과 협력이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 사이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탐구한 진화 과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이 주제였다면 이번 시즌 2부터는 친족이 아닌 존재들 사이에서 이타성과 협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탐색하는 과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이 주제입니다.

전중환 교수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인류를 ‘지구의 정복자’로 만든 진정한 원동력인 이타성, 협력, 사회성이 어떻게 진화해 나왔는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시즌 2 연재의 첫 번째 주인공은 평범한 문제에서 비범한 해법을 발견해 낸 로버트 트리버스입니다.  



왜 도움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없을 때도 남을 돕는가?

어느 여름날, 여러분이 한국 전력으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았다고 가정하자. 


“귀하의 도움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여름에 전력 사용량이 치솟으면 대한민국 전체가 정전되는 블랙아웃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가정 내의 에어컨 사용이 대규모 비상 사태를 초래하지 않도록 ‘더불어에어컨’ 공익 사업에 부디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업에 참여 신청을 하면 한국 전력에서 여러분의 집을 방문해서 에어컨에 원격 조종 장치를 무료로 설치해 준다. 블랙아웃이 우려되는 상황이 오면, 에어컨의 설정 온도가 적정 냉방 온도인 섭씨 26도 이하로 못 내려가게 한국 전력에서 개입한다. 걱정하지 마시라. 실제로 이 장치가 가동되는 경우는 1년에 기껏해야 두세 번일 것이다. 국민들이 조금씩만 불편을 감수하면 국가적인 대재앙을 미리 피할 수 있다. 신청하시겠는가?


유전적으로 무관한 구성원들이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풍경은 인간 사회에 흔하다. 환경을 지키려고 종이컵 대신 머그잔으로 커피를 마신다. 악덕 기업을 혼내 주려고 소비자들이 불매 운동을 벌인다. 왜 사람들은 개인적인 비용을 기꺼이 치르면서 공통의 이익을 위해 나설까? 나 하나쯤 빠지더라도 남들이 노력한 덕분에 그럭저럭 공통의 이익이 달성된다면, 슬쩍 무임 승차하는 편이 내게는 가장 합리적일 텐데! 한국 전력의 공익 사업에 나는 신청 안 했어도 남들이 다투어 신청한 덕분에 우리나라가 블랙아웃 걱정으로부터 해방되는 편이 나에게는 최상의 결과다.


진화 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는 피붙이가 아닌 두 사람이 자주 만나서 상호 작용한다면, 상호성(reciprocity)이 협력을 이끄는 열쇠임을 밝혔다.  상호성은 “내가 너를 도와줄게, 나중에는 네가 나를 도와다오.”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러나 여럿이 공익을 위해 힘을 보탤 때처럼, 내가 도와준 상대가 장차 내게 도움을 갚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을 때조차 인간은 종종 착하게 행동한다. 구세군 자선 냄비에 돈을 집어넣으면서 그 돈을 전달받은 불우 이웃이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갚아 주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보답을 바라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 또는 “불쌍하고 짠해서” 행해지는 일방적인 선행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보자.



내가 널 도와줄게, 다른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겠지

리처드 알렉산더(Richard Alexander)는 주걱턱에다 털털하고 너그러운 사람이다. 1950년대부터 귀뚜라미, 베짱이, 매미가 노래하는 행동을 연구했다. 곤충학자로 미시간 대학교 교수가 되었지만, 관심사가 곤충에서 인간으로 옮겨 갔다. 50여 년 동안 유머, 종교, 도덕, 예술, 지능 등 인간 행동의 거의 모든 면에 걸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진화 사회 과학의 태두로 오늘날 인정받는다. 은퇴 후 자신이 소유한 목장에서 말을 기르며 지내고 있다. 


알렉산더는 1987년에 『도덕 체계의 생물학((伊)The Biology of Moral Systems (伊))』이라는 책을 냈다. 그는 트리버스가 발견한 기제를 ‘직접 상호성’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이 발견한 ‘간접 상호성(indirect reciprocity)’과 구별했다. 보은을 기대하지 않고 행해지는 인간 사회의 대규모 협력은 직접 상호성이 아니라 간접 상호성으로 잘 설명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달리 말하면, 반드시 내가 도와준 사람이 나중에 내게 도움을 돌려주어야 비친족 간의 협력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을 돕는 광경을 보았거나, 도와주었다는 소문을 전해 들은 제3자가 나중에 나를 도와주어도 협력은 가능하다. 즉 간접 상호성은 “내가 너를 도와줄게, 나중에는 다른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겠지.”라는 말로 요약된다. 


간접 상호성의 논리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림을 한번 보시라. 직접 상호성의 경우, A가 B를 돕는다. 다음에 B가 A를 돕는다. 도움을 주고받음으로써 둘 다 이득을 얻는다. 간접 상호성의 경우, A가 B를 돕는다. 이를 지켜본 C가 A를 돕는다. 왜 엉뚱하게 C가 A를 도울까? 누가 남을 잘 도와주는 호인인지 알아내어 그를 파트너로 택해서 상호 협력하면 당연히 이득을 얻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누가 남을 돕지 않는 사기꾼인지 알아내어 그를 파트너로 택하지 않는다면 역시 이득을 얻는다. 어쨌든 A의 선행을 본 C는 A에 대한 평판을 마음속에서 높인다. C는 믿음직한 A에게 먼저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상호 협력의 문을 열고자 한다. (물론 C와 A 사이의 직접 상호성이 반드시 요구되지는 않는다. C가 A를 돕는 광경을 지켜본 D가 C를 돕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우도 흔할 것이다.) 


직접 상호성과 간접 상호성의 비교



도덕은 간접 상호성의 그물망이다

간접 상호성은 직접 상호성보다 더 섬세하다. 직접 상호성에서, 내가 널 도와줄지는 과거에 네가 날 도와주었는가에 달렸다. 간접 상호성에서, 내가 널 도와줄지는 과거에 네가 다른 누군가를 도와주었는가(그래서 내가 너를 높이 평가하는가)에 달렸다. 알렉산더의 말을 빌리면, “간접 상호성은 평판과 지위로 작동하며, 결과적으로 집단 내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과거에 행한 상호 작용에 따라 남들로부터 계속 평가되고 재평가된다.”(85쪽) 이처럼 간접 상호성은 나와 무관한 제3자가 남을 돕거나 외면하는 모습을 목격하거나 소문으로 전해 듣고서 제3자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마음을 진화시켰다. 알렉산더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도덕 체계는 간접 상호성의 체계다.”(93쪽)


간접 상호성은 여러 문화와 종교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윤리 준칙인 황금률에서도 포착된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장 12절)라고 예수가 산상에서 가르친 ‘황금률’은 착한 일을 해서 평판을 높임으로써 남들로부터 파트너로 선정되라는 간접 상호성을 설파한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누가복음」 6장 38절)라거나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하지 마라.”(『논어』, 「위령공」 23장), 또한 “선을 행하는 자는 하늘이 복을 내리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늘이 벌을 내린다.”(『명심보감』, 「계선편」)와 같은 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에 나서는 진화적 이유가 자신의 평판을 높이기 위함이라는 설명은 흥미로운 예측을 낳는다. 누군가가 내 선행을 지켜보고 있는지, 그래서 내 평판이 정말로 높아질지 세심히 챙기는 성향은 의식의 수면 아래로 꼭꼭 감추어질 것이다. 순전히 남들 눈에 들기 위해 착한 일을 한 사람을 높이 평가해 줄 제3자는 없기 때문이다. 즉 사심 없는 선행을 한 사람은 이에 따라 높아질 자신의 평판도 얼마간 고려했음을 ‘정말로’ 자각하지 못하게끔 진화했을 것이다. 미국의 작곡가이자 수학자였던 톰 레러(Tom Lehrer)는 이를 재치 있게 비틀었다. “아무도 너를 보고 있지 않을 때는 선행을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협력을 증진시키려면 관찰 가능성을 높여라

공익 활동에 동참하거나 수재민에게 성금을 내는 등의 선행은 이타적 행동이 아니다. 평판이라는 사회적 자본을 얻기 위한 일종의 투자다.  여기서 주의할 사항이 있다. 모든 선행이 반드시 평판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협력 혹은 배신을 남들이 지켜보고 있을 때만, 나의 협력이 내 평판을 높일 수 있다. 즉 누가 협력하고 누가 배신했는지가 집단 내 구성원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려지는 여건을 마련해 준다면, 사람들이 더 흔쾌히 협력하리라고 간접 상호성 이론은 예측한다.

한국 전력의 ‘더불어에어컨’ 공익 사업으로 돌아가자. 이는 물론 가상이지만, 실제로 행해진 실험에 바탕을 두었다. 한 연구팀은 1,408명의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가정 내의 에어컨을 비상 시 중앙에서 통제하는 것을 허락하는 공익 사업에 사람들이 참여하는 정도가 관찰 가능성 여부에 따라 달라짐을 실험했다. 한 아파트에는 우편물 보관실처럼 주민들이 많이 드나드는 장소에 가입 신청서를 게시하고 신청자의 이름과 동, 호수를 기록하게 했다. (“어, 옆집은 신청했네! 아랫집은 안 했군!”) 다른 아파트에도 같은 장소에 가입 신청서를 게시하되, 사업에 동참해 주기를 부탁하며 보낸 편지에 동봉된 익명의 무작위 식별 번호만을 신청서에 기입하게 했다.


그 결과, 누가 착한 일을 했는지 이웃이 알 수 있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에어컨 공익 사업에 주민들이 신청하는 빈도가 거의 3배나 더 높았다. 뿐만 아니라, 이처럼 관찰 가능성이 협력을 끌어내는 힘은 이웃들과 만날 일이 별로 없는 단기 세입자들보다 이웃들과 만날 일이 많이 남은 자가 주택 보유자들에게서 더 컸다. 


요약하자면, 사심 없는 선행은 자신의 평판을 높임으로써 나중에 남들로부터 파트너로 낙점받기 위함이다. 바로 간접 상호성 이론이다. 따라서 누가 협력하고 누가 배신했는지가 집단 내에 쉽게 알려지는 환경을 조성한다면, 실생활에서 협력을 더 꽃피울 수 있다. 여러분이 공공 정책을 입안하는 지도층이라면, 시민들로부터 협력을 유도하는 방안으로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라며 인성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까?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곡물 수확(De graanoogst)」.



※ 이번 편을 마지막으로 사이언스북스와 《과학동아》에서 공동으로 진행한 「협력의 공식」 연재를 종료합니다. 「협력의 공식」을 사랑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협력의 공식」은 2018년 책으로 출간되어 독자 여러분을 만나 볼 예정이니,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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