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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의 의미』를 옮기고 나서 본문

완결된 연재/(完) <인류세 3부작> 옮긴이 후기

『인간 존재의 의미』를 옮기고 나서

Editor! 2018. 3. 7. 16:50

이한음 선생님의 특별 SF, 재미있게 읽으셨는지요? 「인류세 3부작」을 읽으며 인류, 인류가 만든 세계를 에드워드 윌슨과 함께 들여다보신 분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셨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 읽지 않으셨거나, 혹은 “「인류세 3부작」이 뭔가요?”라고 궁금증을 품으신 분도 계실 텐데요. 그런 당신을 위해 맛보기를 준비했습니다. 『지구의 정복자』와 『인간 존재의 의미』, 『지구의 절반』을 함께 번역하신 이한음 선생님의 후기를 순차적으로 여러분께 살짝 들려드립니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이 책에서 저자는 수십 년 동안 붙들고 씨름한 그 의문을 깊이 탐구한다. 얇은 지면에 오랜 세월에 걸쳐 탐구하고 깨달은 내용들이 고도로 압축되어 담겨 있다.


저자가 전작인 『지구의 정복자』에서 보여 주었듯이, 우리가 어떻게 다른 종들을 제치고 지성과 문명을 갖춘 유일한 종이 되었는지는 진화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비열한 동시에 고상하며, 이기적인 동시에 이타적인 존재다. 본래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이 모순되는 성격을 지닌 인간이 “본래 그러하다.”라고 넘어가고서 희로애락을 담은 온갖 작품 속에서 그 모순을 드러낸다. 하지만 과학은 본래 그렇게 태어난 이유를 붙들고 꼬치꼬치 따져든다.


그리고 그 대목에서 저자는 다른 저명한 진화론자들과 갈라선다. 다른 이들은 유전자의 이기적인 속성을 수학 기법을 통해 개체 수준까지 확장시킨 혈연 선택이라는 개념만으로 그 모순되는 성격을 다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저자는 그 개념이 극도로 특수한 사례에만 적용될 뿐, 일반론이 될 수 없다고 본다. 그리고 개체 수준에서 일어나는 경쟁과 집단 수준에서 일어나는 경쟁을 둘 다 고려하는 다수준 선택이야말로 인간의 모순을 설명해 줄 개념이라고 말한다. 이기적인 개인은 이타적인 개인을 이길지 모르지만, 이기적인 집단은 이타적인 집단에 진다. 그런 일이 반복되는 진화 역사를 통해, 인간은 이기적인 행동과 이타적인 행동 사이에 줄타기를 하는 모순되는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모순 덩어리가 인간의 본질이라면 그것을 떨쳐 버리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최근 점점 더 그 가능성을 손에 잡힐 듯이 제시하는 생명 공학과 인공 지능 같은 첨단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저자는 고개를 젓는다. 그 모순이야말로 지금까지 인류 발전을 추진한 원동력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상세히 설명한다.


더 나아가 외계에서 온 우주인이 인류를 조사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라고 말한다. 그들은 인류의 과학 기술에 경탄할까? 머나먼 시공간을 통해 지구까지 날아올 과학 기술을 지닌 이들이? 저자는 인문학이야말로 그들이 탄복하면서 매료될 대상이라고 본다. 온갖 모순되는 감정과 생각을 절묘하게 녹여낸 인문학이야말로 인류가 이룬 독창적인 성과물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인문학이 다루는 희로애락은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인류의 모순되는 성격이 인류 문명만의 산물이 아니라, 선사 시대, 더 나아가 선행 인류와 영장류를 거쳐 지구의 모든 생물과 연결되는 지구 생물의 진화 역사 전체의 산물임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거의 30년 전에 운을 띄웠던 화두를 다시금 제시한다. 이제야말로 과학과 인문학이 다시금 하나가 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400년 전에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실패로 끝났던 계몽 운동을 부활시킬 때가 되었다고 설파한다.


저자는 우리가 왜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으로부터 그 주장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펼친다. 강경하면서도 부드러운, 충격적이면서도 반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함축된 어조로 쓰인 『인간 존재의 의미』는 우리가 지금의 문명 발달 수준에 걸맞게 더욱 원대하고 장대한 관점을 취할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 준다.


이한음





※ 인류세 3부작 ※


『지구의 정복자』 [도서정보]


『인간 존재의 의미』 [도서정보]


『지구의 절반』 [도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