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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사이언스-오픈-북

탱크인가, 전차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Editor! 2018. 6. 1. 11:56

6월 호국보훈의 달을 앞두고 DK 대백과사전 시리즈 최신작 『탱크 북: 전차 대백과사전』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책 제목에서 뭔가 발견하셨나요? 탱크와 전차의 차이점이 어디에 있는지 혹시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물탱크와 탱크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전차전의 주인공들을 만나기에 앞서, 『탱크 북』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해 주신 김병륜 선생님의 후기를 먼저 소개해 드립니다. 몇 해 전 방송된 KBS TV <역사저널 그날>에서 얼굴이 낯익은 분도 계실 텐데요, 김병륜 선생님은 한국사를 전공하신 군사사 연구자로서 강연과 집필, 취재, 방송 자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오고 계십니다. 이번에 김병륜 선생님이 번역하신 『탱크 북』은 찾아보기 항목만 2,000개에 달하는 책인 만큼 전문가들의 번역과 감수가 아주 절실했습니다. 최초의 전차는 영국에서 유래되었지만 이후 여러 나라에서 전차가 개발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라마다 사용하는 용어가 달라졌다는 점에서 김병륜 선생님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탱크인가, 전차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

『탱크 북』을 번역하며 한 고민들


중형 전차 마크 A 휘핏, 『탱크 북』 23쪽에서. Dorling Kindersley: The Tank Museum


대중 교양서일지라도, 기본적으로 전문 분야를 다루는 책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의역이냐, 직역이냐의 뿌리 깊은 논쟁을 논외로 하더라도, 한국처럼 사전이 부실한 나라에서는 수많은 용어들을 어떤 기준으로 번역하느냐부터 당장 갈림길에 놓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이 그렇다. 군에서 번역했으면 제목에는 ‘탱크’가 아니라 ‘전차(戰車)’가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 누구나 이 책을 읽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탱크’라는 제목이 조금 더 어울린다.


사실 ‘탱크’, ‘전차’ 같은 용어에는 나름의 역사와 나라별 관행이 담겨 있다. 영미권에서 ‘탱크(tank)’는 원래 액체 혹은 가스를 저장하는 탱크를 의미했다. 하지만 영국이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무한궤도와 장갑, 포(砲)를 갖춘 신무기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탱크라는 위장 명장을 쓰면서 탱크는 무기의 한 종류를 지칭하는 의미도 가지게 되었다.


원래 한자를 사용했던 동북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도 용어의 번역은 제각각이다. 한국군은 전차(戰車)라는 용어를 주로 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전차는 원래 중국 고대에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싸우던 시대의 무기 명칭이다. 한자 자체의 뜻을 보면 전투용 차라는 의미이므로 이를 현대 무기에 재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민간 영역에서는 ‘탱크’라는 용어가 보다 흔하게 사용된다. 중국에서는 전차(戰車)로 표기할 때도 있지만, 군은 물론이고 민간 영역에서도 발음을 그대로 따온 ‘탕크(坦克)’라는 표기를 더 많이 사용한다. 북한에서 주로 쓰는 ‘땅크’라는 용어는 탱크의 러시아식 발음(танк)에서 유래한 것이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동아시아에서 의미를 중시하는 전차(戰車) 계열과, 발음을 중시하는 탱크-땅크-탕크 계열의 두 용어가 여전히 선명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발음 때문에 용어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상대적으로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전차는 크기, 무게, 용도에 따라 ‘중전차(heavy tank)’, ‘중형 전차(medium tank)’, ‘경전차(light tank)’의 구별이 좀 더 엄격했다. 문제는 중전차와 중형 전차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heavy tank’를 ‘重戰車’, ‘Medium Tank’를 ‘中戰車’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어 한자 음독에서 ‘中’은 ‘ちゅう’, ‘重’은 ‘じゅう’으로 발음되고, 중국에서도 ‘zhōng’과 ‘zhòng’으로 성조가 약간 달라서 구별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中’의 한자음도 ‘중’이고, ‘重’의 한자음도 ‘중’이다. 1940~1980년대처럼 국한문 혼용을 하던 시기라면 상관이 없지만, 지금처럼 본문에서 한자를 거의 쓰지 않는 한글 전용의 시대에는 구별이 애매해진다. 이 책에서는 중전차(heavy tank), 중형 전차(medium tank)로 각각 구분하고, 일부 대목에서는 한자까지 병기해서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하려 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표기법이 낯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고유 명사의 선택도 어려운 영역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아프리카 전역에서 독일군을 이끌고 싸웠던 ‘에르빈 롬멜’ 장군의 표기법만 봐도 그렇다. 예전에 근무하던 곳 교열 담당자가 공식적인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로멜’이 맞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출판된 책 제목이 ‘롬멜’인데, ‘로멜’로 소개하면 독자들은 어떤 기분일까? 지금도 비슷한 논쟁은 꾸준히 이어져서 ‘로멜’과 ‘롬멜’이라는 표기법은 각종 용어 사전 곳곳에서 소리 없는 힘겨루기를 계속하고 있다.


샤르 B1 bis 전차, 탱크 북 70~71쪽에서. Dorling Kindersley: The Tank Museum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무기 명칭들도 이런 복잡한 힘겨루기의 산물이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도 실제 발음, 표기법 원칙, 독자들에게 익숙한 표기법 사이에서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시야가 좁은 번역자의 생각과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보는 편집자의 생각이 다른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영어권이 아닌 국가의 인명과 지명, 사물명의 경우 원래의 표기법과 영어화된 표기법의 차이, 그리고 그에 따른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의 적용, 독자들에게 익숙한 표기법이라는 네 가지 측면의 갈림길이 있어 고민의 폭이 더 컸다.


역사적 뿌리가 있는 용어들도 고민의 대상이다. 이 책에 나오는 용어는 아니지만 미국의 육군참모총장은 ‘Chief of Staff of the Army’, 미국의 해군참모총장은 ‘Chief of Naval Operations’으로 용어 구성 방식이 다르다. ‘Chief of Naval Operations’은 용어의 사전적 의미와 역사성을 살려 ‘해군작전부장’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은 번역일까, 아니면 한국의 해당 직책에 부합하게 ‘해군참모총장’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은 번역일까?


비슷한 의문을 품게 만든 용어가 이 책에 나오는 ‘구축 전차(tank destroyer)’였다. 해당 무기의 운용 국가, 한자 기반의 동아시아권 용어 사용 관행, 영미권의 용어 사용 관행이 엇갈리는 경우 더욱 고민이 된다. 이 책의 원서에서는 차륜형 장갑차에 대전차 미사일을 탑재한 경우도 ‘탱크 디스트로이어(tank destroyer)’로 분류하고 있다. 무기에 나름 익숙한 한국의 일부 독자층들에게는 매우 낯선 용어 사용 방식이다. 장갑차까지도 포함하는 이 책의 뉘앙스를 정확하게 살리려면 일반적 번역인 ‘구축 전차’ 대신에 ‘전차를 파괴하는 차’ 혹은 ‘전차를 물리치는 차’라는 의미에서 ‘전차구축차’로 번역하는 것이 문맥상 좀 더 자연스럽겠지만, “독자들이 ‘전차구축차’라는 낯선 용어를 과연 받아들일 것인가?”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옮긴이 주를 넣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독자들이 혹 불편함과 낯섦을 느낄까 걱정된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howitzer’를 ‘유탄포’ 대신에 ‘곡사포’로 번역하는 것은 크게 고민스럽지 않았지만, 활강포와 강선포의 구분 없이 원문에 단순히 ‘건(gun)’이라고 된 경우에 어떻게 번역하는 것이 최선일지도 나름 고민스러웠다. 직사포와 평사포에 대한 용어적 유래와 해석론에 대해 주석을 달 것인가? 최종 선택은 단순히 ‘구경 ○○밀리미터 포’라는 중립적 용어였다. ‘코액셜 머신 건(coaxial machine gun)’을 일본식 용어인 ‘동축기관총(同軸機關銃)’ 대신에 한국식 용어인 ‘공축기관총(共軸機關銃)을 선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여러 부속과 구조 명칭의 선택들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종감속기에서 전달받은 동력을 궤도로 전달하는 장치(sprocket)를 과거 한국군에서는 ‘스프로킷’으로 주로 표기했으나, 이제는 ‘기동륜’으로 부르거나, 혹은 두 용어를 같이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한국군 내에서도 병과에 따라서 이 부속을 그냥 구동륜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 민간에서는 일본이나 중국식 한자표기에서 유래한 ‘구동륜’이라는 용어가 더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유동륜과 수동륜, 보기륜과 주행전륜, 궤도지지롤러와 상부지지륜 혹은 보조보기륜 등 용어의 엇갈림은 거의 전 부속에서 나타난다.


M103A2, 탱크 북 146~147쪽에서. Dorling Kindersley: The Tank Museum


무한궤도와 관련된 부속에 한정되지 않고 동력부 전반에 걸쳐 군에서 쓰는 용어와 자동차 공업 혹은 기계 공업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에도 차이가 있다. 특히 자동차나 기계 공업 분야에서는 어설픈 한국어 번역이 혼돈을 초래한다고 보고, 국제화된 영어식 용어를 발음 그대로 한글화시킨 용어를 흔하게 쓴다. 이런 용어들은 폭넓은 대중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같은 대상을 놓고 사용 집단 간 용어가 다를 경우 어떤 용어가 최선일까?


일부 국가 전차 탑재 포의 구경을 밀리미터 단위가 아닌 센티미터 단위로 표기한 원서의 표기 방식을 살릴 것인지, 한국의 관행에 따라 밀리미터 단위로 일괄 전환할 것인지도 사소하지만, 나름의 선택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최종적인 선택은 원서의 표기 방식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었지만, 센티미터 단위의 구경 표기에 놀라움을 느낄 일부 독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물론 이런 여러 고민들을 번역에 온전히 완벽하게 담아내지는 못했다. 원서의 판형을 바꾸기 힘든 영국 DK 출판사 특유의 시각적 편집 때문에 문장을 축약하거나, 직역에 가까운 초벌번역을 가독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혹 실수가 있었는지도 염려스럽다. 전적으로 번역자의 실력 부족으로 나온 실수도 없지 않을 것이다. 모든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두렵고 죄송스러운 마음도 든다. 그럼에도 독자들에게 익숙한 용어와 표기법 규정 준수, 용어의 역사성과 언어의 교환성 사이에 적정선을 찾기 위해 끝없이 고민했다는 점은 이야기하고 싶다.




김병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사 전공(석사), 국방부 국방홍보원 소속 공무원으로 《국방일보》 취재 기자와 군사편찬연구소 객원 연구원(비상근)을 지냈다. 한국 군사사를 중심으로 군사 분야 역사를 연구하면서 저술, 다큐멘터리 출연, 강연, 군사 관련 콘텐츠 자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은 책에 『조선시대 군사혁신-성공과 실패』, 『군사전문인을 위한 인터넷』, 『이성호 제독 평전』, 『6.25 전쟁 그 때 그날』, 옮긴 책에 『그림으로 보는 5000년 제복의 역사』 등이 있으며 군사 역사 분야 논문 20여 편을 발표했다.


『탱크 북』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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