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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사이언스-오픈-북

세실, 그리고 모든 생명을 위해

Editor! 2018.08.03 08:00

8월 10일은 세계 사자의 날(World Lion Day)입니다. “우리 자신을 구하기 위해 백수의 왕을 구하자!”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 아프리카와 인도의 사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날입니다. 지난 7월 (주)사이언스북스에서 펴낸 『세실의 전설: 인간과 사자의 공존을 꿈꾸는 사람들』에는 아프리카의 사자들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책을 보시면 왜 세계 사자의 날 같은 캠페인이 필요한지 실감하실 수 있습니다. 

“세실의 죽음은 처음부터 한 사자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처럼 함축되고 회로처럼 얽히고설킨 생태적 존재의 소멸이었다.”라고,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으로 계신 김산하 선생님이 『세실의 전설』을 읽고 함께 생각해 볼 이야깃거리를 담은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김산하 선생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 로, 인도네시아 정글에서 지낸 2년간의 기록을 담은 『비숲』의 저자이시기도 합니다.




세실, 그리고 모든 생명을 위해




흙에서 흙으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참으로 못마땅한 말이다. 무슨 소리를 하려고 하는지 이해는 간다. 사실 이 고사성어의 방점은 사람이 죽어서 남기는 게 이름이라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 말이 만들어진 시대상이라는 게 또 있다. 그때 동물에 관해 가졌던 지식이나 취했던 태도, 문화적 기능 모두 달랐을 것이다. 오해는 말라. 나는 옛말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다. 웬만한 것에 대해 툭하면 옛날이 좋았다고 하는 일종의 ‘옛날주의자’이다. 하지만 어떤 것은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잘못된 게 있으면 고쳐야 하고 현대에 와서 더 이상 격언으로서 효과적인 의미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만 써야 하는 것이 옳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꼽으라면 나에겐 저 위의 첫 문장이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잘못된 말이니까.
 
우선 어느 동물도 뭔가를 남기지 않는다. 모든 생물은 자연 내에서 순환되는 자원으로서 남김없이 흙으로 돌아간다. 가죽은 지극히 인간 본위적인, 신화와 같은 맹수의 존재를 한 꺼풀의 살가죽으로 전락시킨 무지하고 무심한 이종의 관점이다. 또한 동물은 남기는 것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도 유전자를 ‘남기고자’ 하는 본성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내 존재의 연장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들에게 중요한 것은 나의 본성답게, 나의 생태답게 사는 현재이다. ‘나’라고는 하지만 실은 오랜 시간 종의 역사가 축적되고 변형되고 적응한 나다. 그 종을 둘러싼 온갖 생물과 환경 간의 관계까지 모두 포함한 그런 나다. 테마는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그런 여럿의 ‘나’가 한 시대를 살고, 그 시대마다의 드라마가 모이고 모여 다음 시대의 작품이 열리는 초석이 된다. 남기는 게 있다면 이런 것이다. 삶이라는 유산 그 자체.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간단하다. 삶이 제대로 펼쳐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삶을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는 각 개체의 몫이다. 하지만 삶의 기회는 균등해야 한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생로병사의 한 시절을 보낼 수 있는 자유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전 세계가 분노한 어느 사자의 죽음 
사자 세실의 삶은 2015년 7월 갑작스럽게 마감되었다. 이례적으로 세계가 주목했다. 한 마리 야생 동물의 죽음이 세계인들에게 회자되는 일은 무척 드물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동물의 왕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위엄의 사자가, 그저 어느 치과의사의 개인적인 오락거리로 무참히 살해되었다는 이(異)조합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자가 실은 저명한 옥스퍼드 대학교의 연구진이 모니터링 중이던 사자라는 사실도 한몫 거들었을까? 뉴스가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요즘의 알 수 없는 원리에 따라 세실의 죽음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소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의 세상에서 이와 같은 사람들의 관심은 고무적이다. 평소에 동물이든 사냥이든 잘 모르던 이들에게도 뭔가 느껴지는 보편적인 부당함이 세실의 싸늘해진 육체로부터 피어오른 것이다. 이구동성으로 ‘이건 아니라는’ 목소리의 빗발침 속에서 세계는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방향을 모색했다. 그러고는 다시 발을 내딛었다. 어디를 향해서? 한 사자의 죽음에 분노하던 지구촌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 길을 찾았는가? 세실은 하나의 사건일 뿐인가? 아니면 시대를 초월한 교훈으로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남을’ 것인가?

해답은 사건의 의미를 진지하게 되새기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세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세실의 삶과 생태적 존재감을 직접 목격한 사람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 『세실의 전설』이 바로 그 역사와 이야기에 대한 증언이다.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 야생 동물의 생애에 가장 근접하게 해 주는 주옥같은 기록과 상념의 집합체이다. 어쩌면 이것이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가장 중요하고도 아름다운 역할이 아닐까? 스스로에 관해 관찰하지도, 기록하지도 못하는 존재들을 대신해 그들의 사관(史官)을 자처하는 것 말이다. 그들의 가죽이나 뿔, 고기를 취하는 수준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고매하고 값진 철학적 관점이다. 우리에게 보물과 같은 능력이 있다면 그건 뭔가를 알아보는 힘이다. 그리고 알리는 힘이다.
 
우두머리 수컷 사자의 죽음은 집단 전체에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연쇄적인 후폭풍을 가져온다. 공석을 차지하기 위한 목숨을 건 전투, 무자비하게 몰살당하는 새끼들, 화를 피하려 보호 지역을 벗어나 민가에 기웃거리는 암컷들과 젊은 수사자들, 그리고 가축을 잡아먹다가 주민들과의 첨예한 충돌, 또 추가되는 죽음들. 악순환의 반복. 이 모든 것의 시발점이 된 무책임한 총알 하나, 화살 하나. 벌어지는 아비규환의 심각함과 이를 촉발시킨 행위의 무신경함을 병렬배치하고서 보면 그 부당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누군가의 취미 활동이 다른 누군가의 생사를 뒤흔든다는 것처럼 사람을 분노케 하는 일은 없다. 즐거움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악행일수록 그 강력한 모순으로 인하여 더 강력한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희생은 한 번으로 족하다. 이를 통해 배워야 한다. 생명은 모두 생태적 존재라는 진실에 관하여.


얽히고설킨 생명의 고리를 기억하며
생명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과 규모와 복잡성으로 다른 생명과 얽혀 있다. 그 관계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떤 거미줄도, 어떤 그물망도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때로는 단순하고 직접적이고 때로는 이상하리만치 우회적이고 간접적이다. 심지어는 관계끼리 관계를 맺는다. 약간의 변화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기도 하는가 하면 상당한 피해를 입고도 의외로 굳건하기도 하다. 그것이 생명의 시스템이자 생태계이다. 생태계에 속한 모든 구성원은 줄줄이 사탕과도 같다. 하나만 핀셋으로 뽑아내려고 해도 연결된 뭔가는 건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무식하게 힘으로 뽑다가는 왕창 망가지게 된다. 세실의 경우처럼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아니, 사자들은 그냥 저들끼리 알아서 좀 평화롭게 살면 안 되나? 우두머리 수컷이 없어져도 서로 적당히 양보하면서 안전한 국립 공원 안에 머물면서 야생 임팔라 잡아먹으며 지내면 되는 것 아닌가? 사자들이 기존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지 않고 변화와 개혁을 통해 덜 폭력적으로 그들의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어쩌면 세실의 죽음은 단 한 마리의 죽음으로만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의 적응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진화가 힘을 발휘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시간이 있어도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모든 종은 자신의 계통학적 역사와 관성에 따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생물은 생태적 존재 못지않게 진화적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한다.
 
지금 당장 혁명적인 개혁과 변화를 감행할 동물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우리 인간이다. 말과 글과 이야기를 통해 예전처럼 사는 것을 멈추고, 생태적 존재론에 입각한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할 수 있는 주체. 세실의 죽음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의 죽음을 기억하자. 그리고 반영하자. 우리가, 모든 생명을 위해.

김산하(야생 영장류학자,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 관련 행사 ◆

『세실의 전설』 출간 기념 북토크

비숲에서 세실을 만나다:
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북토크

일시 : 2018년 8월 22일(수) 19시 30분
장소 : 민음사 본사 지하 2층 이벤트홀(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1길 62)
강연자 : 남종영(한겨레 애니멀피플팀 팀장), 김산하(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강연 주제 
1) 세실은 전설인가 : 트로피 사냥과 야생 보호 구역의 딜레마
2) 동물축제반대축제 보고서 :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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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사자의 날 [자세히 보기]


◆ 관련 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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