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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의 의식주를 찾아서 본문

완결된 연재/(完) 보이지 않는 권력자

미생물의 의식주를 찾아서

Editor! 2020. 6. 2. 16:30

1997년 (주)사이언스북스에서 이재열 경북 대학교 명예 교수의 『보이지 않는 권력자』가 출간되었습니다. 아마 국내 저자가 쓴 책으로는 거의 처음 출간된 미생물 소개 교양 과학서였을 것입니다. 출간 당시 언론과 독자로부터 ‘보이지 않는 권력자’인 미생물의 세계를 흥미롭게 소개한 책으로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재열 교수가 같은 제목으로 연재를 진행합니다. 미생물도 생물이기에, 살아가는 데 필수적으로 갖추어져야 할 여러 조건이 있겠지요. 오늘은 미생물의 세 가지 생존 조건을 살펴보고, 더불어 미생물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생존의 조건까지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재열의 「보이지 않는 권력자」 네 번째 이야기 

미생물의 의식주를 찾아서



미생물의 식(食), 양분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조건을 꼽아 보자면 무엇보다도 의식주(衣食住)가 있다. 인간은 가장 먼저 밥을 먹어야 힘을 내고, 옷을 입어야 추위와 더위를 이겨 내며, 마지막으로 집을 마련해야 일하고 나서 편히 쉴 수 있다. 밥과 옷, 집이 갖추어질 때 비로소 사람다운 생활을 한다고 하겠다.


미생물도 생물이기에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존에 필요한 조건이 있을 것이다. 인간이 식량을 구하는 것처럼 미생물도 가장 먼저 먹이를 확보해야 한다. 미생물은 먹이를 먹고 소화시켜 에너지를 얻고, 이 에너지를 바탕으로 다시 부지런히 움직여서 먹이를 얻고 살아남는다. 또한 몸집을 키우고 자신을 닮은 후손도 만들어 숫자를 늘려 나간다. 미생물은 그저 그렇게 평생 먹이만 찾아 헤매는 것처럼 보이기에, 우리 눈에는 지극히 단순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생물의 움직임은 당연히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는 하지만, 이들이 그저 아무런 뜻도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의미 없는 움직임을 반복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생명체의 움직임은 자그마한 것이라도 하나같이 그 속에 특별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 미생물이 꿈틀거리는 것도 아무런 의미 없는 반복 운동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먹이를 찾으려는 몸부림이라고 보아도 좋다. 이러한 운동을 화학 주성(chemotaxis)이라고 한다. 먹이에서 우러나오는 화학 물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미생물의 운동을 양성(positive)이라고 한다면, 이와 상반되는 운동은 음성(negative)이라고 할 수 있다. 미생물이 먹이를 찾는 것은 양성의 화학 주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가 하면 많은 미생물이 독성 물질을 피해 가려는 음성의 화학 주성을 보이면서 자연스럽게 양분을 얻을 기회를 잡는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학자들이 밝혀내기도 했다.



미생물의 의(衣), 수소 이온 농도

먹이 다음으로 미생물에 중요한 것은 당연히 옷과 집에 해당하는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다. 미생물의 입장에서는 옷이나 집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미생물은 동물처럼 털가죽이 있지도 않고 식물처럼 껍질에 싸여 있지도 않다. 미생물은 특별한 껍질이 없으므로 외부 환경에 그대로 맞닿아 있어 주위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생물의 주위 환경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딱딱한 고체 속에서는 자유롭게 살 수 없다. 그렇다면 미생물이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이며 살 수 있는 곳으로 액체나 기체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미생물의 먹이가 있는 곳이어야 한다면 아무래도 기체보다는 액체 속에 사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는 점이다. 액체 속에는 여러 물질이 녹아 있기 때문에 먹이를 비교적 많이 포함할 것이다. 더 나아가 액체 속에서는 미생물이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더욱 활발히 움직일 수 있다. 실제로도 액체 속에서는 훨씬 많은 종류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이때 미생물의 세포막은 외부와 직접 맞닿아 있으면서 액체와 직접 접촉한다. 그러므로 미생물에게는 세포막이 사람들의 옷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아서 힐 해솔(Arthur Hill Hassall)의 책에 실린 일러스트레이션. 영국 템스 강을 현미경 관찰하여 나타난 결과를 그렸다. 위키피디아에서.


그렇다면 미생물의 세포막과 맞닿은 액체가 어떤 성질을 띠는지에 따라 미생물이 편히 살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결정될 것이다. 생물이 살고 있는 주위 환경의 액체는 대부분 물이다. 그런데 물이 알칼리성인가, 산성인가, 아니면 중성인가에 따라 물의 성질이 다르다. 미생물은 대부분 산성과 알칼리성에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중성에서는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생물은 바깥 환경인 액체의 수소 이온 농도(pH)에 세포막이 민감하게 영향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다.



미생물의 주(住), 온도

옛날부터 인간은 시원한 바람이 막히는 곳 없이 불어와 공기가 깨끗하고 하루 종일 햇빛이 따사롭게 비치는 곳을 살기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쪽을 향해 집을 짓고, 동쪽으로 대문을 세우며, 방문과 창문은 되도록 크게 만들어 햇빛이 더 많이 들어오도록 꾸몄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햇빛이 많이 비치는 양지바른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산다.


이처럼 우리에게 음식과 옷 이외에도 비바람을 피할 집이 필요하듯이, 미생물에게도 에너지를 얻을 먹이 이외에도 자신을 포근히 감싸 주고 또한 편안히 쉴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사람에게 필요한 조건인 집에 대응하는 미생물 생존의 조건을 꼽아 보자면 그것은 아마도 ‘온도’일 것이다. 미생물의 주변을 감싸는 조건인 온도는 사람 몸에 꼭 들어맞는 옷보다도 넉넉한 공간을 마련해 주는 집에 더 가깝다. 미생물이 편안히 살기 위해서는 분명히 적당한 온도가 필요하다. 뜨겁다고 할 만큼 높은 온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차갑다고 할 만한 낮은 온도도 아닌 적당한 온도에서 잘 자라는 미생물 종류는 대단히 많다. 


미생물은 양지바른 곳보다 조금은 어둡고 습기가 많은 곳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종류의 미생물이 지하실이나 하수구를 비롯한 어둡고 축축한 곳에 자리를 잡고, 더 나아가 지하 주차장이나 지하 상가에도 많이 모여 산다. 건물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지하실은 일반적으로 어둡고 무섭기 마련이다. 금방이라도 쥐나 벌레가 튀어나올 것만 같고,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것만 같다. 공기 흐름이 좋고 기온이 그리 높지 않은 봄이나 가을에는 지하실 벽이 건조하여 곰팡이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 습기가 높은 장마철이나 기온이 높은 한여름에는 지하실 벽에 스멀스멀 곰팡이가 피어오른다. 지하 공간에 햇빛도 안 들고 습기도 많아서, 지하실에는 도배를 하느라 붓으로 풀칠한 삶의 흔적을 따라 핀 곰팡이를 볼 수 있다. 여름 장마철에 벽에 많이 피어오른 곰팡이 중에는 독소를 분비하는 종류도 있기에, 지하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피해를 주기도 한다.



미생물 생존의 조건, 인간 생존의 조건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미생물에게 필요한 의식주는 각각 수소 이온 농도, 양분, 온도이다. 이들 세 가지 조건이야말로 미생물이 살아가는 데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이 조건들은 독립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며 모든 조건이 한데 어울려 종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류의 고대 문명 발상지를 살펴보더라도 식량과 의복, 주거 조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부족하지 않았다. 물고기를 잡기 쉽고 들판에서 농사를 짓기 쉬울 뿐만 아니라 집을 지을 터와 재료가 부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옷을 지어 입을 재료를 확보하기 쉬운 지역이었던 강가나 강 유역에 인류가 함께 모여 살고 문명이 발달할 수 있었다.


미생물이 살기 위한 조건을 찾아 자리를 잡은 곳은 인간이 자리 잡은 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생물의 생존에 가장 필요한 먹이는 사람들이 먹고 사는 음식을 먹으면 될 것이고, 사람들이 사는 환경 조건이라면 온도는 물론이고 수소 이온 농도라는 조건도 크게 제한되지 않을 것이다. 즉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 조건이라면 어디든지 미생물이 살 수 있는 조건도 갖추어졌다고 보아도 괜찮다. 사람들이 먹고자 마련해 놓은 음식이 알맞은 정도로 식으면 미생물에게는 훌륭한 삶의 터전이 되며, 더 나아가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미생물에게는 더욱 안락한 삶의 장소가 될 것이다. 생물들이 살 수 있는 조건은 어느 한 가지에 치우치지 않고 모두 한데 어울려 모여 있다. 따라서 인간과 미생물이 모두 같은 곳에 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 Calimo


미생물만이 아니라 인간이 살기에 좋은 환경은 비교적 넓고 온화한 기운이 감도는 쾌적한 곳이다. 그런데 쾌적한 상태가 잘 갖추어진 곳이라 하더라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면 주위 환경은 점점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바뀌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 복작대는 곳에서는 누구나 쉽게 답답함을 느낀다. 우리가 사는 공간도 이런저런 조건을 따지고 보면 미생물의 삶과도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시원한 공기가 넉넉히 공급되지 않으므로 먼지뿐만 아니라 미생물까지도 더 많아져서 공기 중에 돌아다니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다 보면 병원 미생물도 우리 몸에 알게 모르게 흘러들어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들에게 위험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감기나 독감처럼 호흡기를 감염시키는 질병은 이처럼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는 가운데 전염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위험한 전염병이 돌 때에는 되도록 바깥나들이를 삼가는 것이 좋다. 집에 돌아오면 먼저 손을 깨끗이 씻고, 양치하는 것 모두가 병원 미생물을 제거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건강을 지키려는 자, 미생물의 의식주를 잡아라

미생물에게도 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미생물이 잘 살도록 도와줄 수도 있고 반대로 못 살게 막아 버릴 수도 있다. 미생물의 생리를 연구함으로써 미생물에게 필요한 조건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발효 미생물이나 분해 미생물에게 더욱 쾌적한 조건을 제공해 줌으로써 얻은 미생물 대사 산물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이와 반대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병원 미생물이 더는 살지 못하도록 이들의 증식을 막는 방법을 찾아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주변을 깨끗이 유지하고 관리함으로써 양분이나 수소 이온 농도 또는 온도를 바꾸어서, 미생물의 삶에 필요한 조건을 제거하고 병원 미생물이 더 증식하지 못하도록 한다.



한편 하루의 대부분을 지하 상가나 지하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 또한 알게 모르게 미생물에 심각한 피해를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오래도록 지하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든 지상과 비슷한 근무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맑고 신선한 공기를 충분히 불어넣어 주는 것은 물론이고, 밝은 조명을 비추어 주어야 하며, 지하 공간의 미생물 서식 상태를 정기적으로 조사하여 필요할 때마다 제거해주어야 한다. 지하 공간에서는 공기 순환이 충분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먼지가 쌓이게 되고 먼지와 함께 미생물, 진드기를 비롯하여 바퀴벌레, 모기 따위의 곤충까지도 많아진다. 그러므로 지하 공간에서 오래도록 머무는 사람들은 주위 환경을 깨끗이 하면서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데에 부족함이 없도록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처럼 미생물이 원하는 삶의 조건을 바꾸는 방법에는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모습으로 살고자 하는 뜻이 있다.




이재열

서울 대학교 농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기센 대학교에서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막스 플랑크 생화학 연구소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치고 경북 대학교 생명 과학부 교수로 근무했다. 현재 명예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모두들 어렵다고 말하는 과학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권력자』, 『바이러스는 과연 적인가?』, 『보이지 않는 보물』, 『바이러스, 삶과 죽음 사이』, 『미생물의 세계』, 『우리 몸 미생물 이야기』, 『자연의 지배자들』, 『자연을 닮은 생명 이야기』, 『담장 속의 과학』, 『불상에서 걸어나온 사자』, 『토기: 내 마음의 그릇』 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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