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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 혁명' 시대와 포스트 게놈 시대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본문

(연재) 사이언스-오픈-북

'4차 산업 혁명' 시대와 포스트 게놈 시대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Editor! 2018.10.26 09:36

한동안 떠들썩하던 인간 게놈 프로젝트(인간 유전체 계획)가 완료된 이후 생명 과학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고 생명 과학자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요? 별세계처럼만 느껴지는 생명 과학 기술 최전선의 지식들을, 국내 최고의 생명 과학자의 목소리로 만나 볼 수 있는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가 출간되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기신다면, 서울 시립 과학관의 이정모 관장님이 보내 주신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리뷰로 먼저 책을 만나 보세요.




'4차 산업 혁명' 시대와

포스트 게놈 시대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이거 과학자들이 사기 친 것 아냐!”

인간 유전체 계획(Human Genome Project, HGP)만 완료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유전병 따위는 가볍게 치유하고 우리는 더 강하고 더 오래 사는 존재가 될 줄 알았다. HGP가 완료된 게 2003년의 일이니 벌써 강산이 한 번은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 삶에 특별한 변화가 생겼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설마 과학자들이 사기야 쳤겠는가. 하지만 실망한 것은 사실이다.


1990년 시작해 2003년 99.9퍼센트의 정확도로 종료되며 인간 유전체에 담긴 정보를 읽어 낸 인간 유전체 계획(Human Genome Project)의 로고. 


로버트 쿡 디간의『인간 게놈 프로젝트』(황현숙 옮김, 사이언스북스, 1997년)를 필독서로 삼았던 시민들이 HGP에 실망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인간의 유전자 수가 너무 적다는 것. 단세포 생물인 효모의 유전자도 6000개이고 심지어 지렁이도 2만 개가 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적어도 유전자가 10만 개쯤은 있어야 했다. 그런데 불과 2만 5000개 정도에 불과하다니. 인간은 자존심이 상했다. 덩달아 이 사실을 밝힌 HGP에 대한 호감도 역시 떨어졌다.


다른 하나는 인간 유전체의 염기 서열을 알았다고 해서 이것을 이용하는 기술이 당장 생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론과 과학자 모두 책임이 있다. 언론은 HGP가 마치 요술 램프나 되는 것처럼 선전했으며, 과학자들은 연구 예산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부풀린 선전에 눈감았다.


과학은 한 술에 배부르지 않는다. HGP 자체로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HGP는 인간과 다른 생명의 본질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해 주었고 생명 현상을 이해하는 과학과 이를 이용하는 기술 사이의 거리를 거의 없애 주었다. 인간이 생명을 디자인하고 만들어 내는 세상이 눈앞에 왔다. ‘합성 생물학’과 ‘유전자 가위 기술’이란 말이 회자된다. 앗! 그런데 그게 뭐지? 이 질문에 답해 줄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가 나왔다. 



“아! 그게 이거였구나!”

송기원은 내 대학 동기다. 고백컨대 그가 없었으면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우리 동기 대부분은 그의 노트로 공부했다. 나와 (특히 남자) 동기들이 수업 시간에 딴청 피운 게 아니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전달되는 내용은 너무 많았고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의 노트를 보면 이해가 되었다. 그의 노트는 교수님 강의보다 더 좋았다. 다행히 그는 동기 가운데 가장 먼저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시민을 위해 책을 썼다.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는 합성 생물학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에 대한 해설서다. 그런데 그는 당장 기술로 들어가지 않고 ‘히스토리’부터 말한다. 송기원에게는 기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듣도 보도 못한 바슬라프 시발스키로 책은 시작한다. 1978년에 시발스키가 합성 생물학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썼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대학을 졸업한 1987년까지 제한 효소란 말밖에 들어 보지 못했다.) 그리고 1990년에는 HGP가 시작되었고, 2003년 99.9퍼센트 정확도로 종료되었다. 이때부터를 포스트 게놈 시대라고 한다. 나를 비롯한 시민들이 HGP에 실망하고 있는 동안, 포스트 게놈 시대를 맞은 과학자들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합성 생물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크레이그 벤터.

(cc)Science History Institute/wiki.


『크레이그 벤터 게놈의 기적』(노승영 옮김, 추수밭, 2009년)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크레이그 벤터는 HGP를 주도한 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HGP로 생명체의 유전자를 읽어 낼 능력을 갖추었으니 이제는 역으로 유전 정보를 조립해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내자고 한다. 그로 인해 ‘합성 생물학’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실제로 그는 2010년 유전체를 인공적으로 합성해서 정상적으로 자기 복제를 통한 재생산과 물질대사를 수행하는 세균(Syn 1.0)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지금 보면 세포를 만든 것은 아니고 유전체를 바꿔치기한 정도일 뿐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인간이 만든 유전체가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2016년에 그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유전자를 알아 낸 Syn 3.0을 제작해 냈다.


도대체 이런 일을 왜 하는 걸까? 송기원은 이 질문에 대해 “과학자들은 합성 생물학을 이용해 지구에 어떻게 생명이 등장해서 유지되었는지, 물질에서 생명이 탄생한 과정을 이해해서 생명의 본질을 밝히려 한다.”라고 대답한다. 


크레이그 벤터 연구 그룹이 2016년 3월에 만들어 낸 합성 생명체 Syn3.0.

ⓒSciencephoto.



“먹을까, 말까?” 아니면 “만들까, 말까?”

생명의 설계는 신 또는 자연의 영역이다, 라고 말하기는 쉽다. 윤리적으로도 완벽해 보인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먹는 거의 모든 것은 자연이 만든 게 아니다. 사람이 만들어 낸 것들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까지 갈 것도 없이 호모속이 등장한 이후만 쳐도 인류 역사의 99.5퍼센트는 구석기 시대였다. 수렵과 채집으로만 살았다. 다른 생명들과 마찬가지로.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인류의 기원』(이상희, 윤신영 지음, 사이언스북스, 2015년)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다. 하지만 기원전 1만 년경 세상이 바뀌었다. 지구 생명의 역사 38억 년 만에 처음으로 환경에 적응하기를 거부하고 환경을 변화시키는 존재가 등장했다. 신석기인들이 등장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인류는 야생 늑대로부터 개라는 품종을 만들었고, 옥수수, 벼, 밀 등을 재배에 적합하게 변형시켰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밭에서 유전자를 변형시키던 인류는 1970년대 중반부터는 실험실에서 특정 유전자를 분리하여 다른 생명체에 집어넣어 GMO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우리나라에는 GMO 콩과 옥수수도 수입된다.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질문을 하려면 대장균에서 생산하는 인슐린, 성장 촉진 호르몬, 면역 인터페론 주사를 맞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라는 문제도 같이 제기해야 한다.


기술의 발전은 기술의 대중화를 낳는다. 합성 생물학의 발전은 바이오해커를 등장시켰다. 2018년 캐나다 대학생 연구팀은 메일로 주문한 DNA 조각을 연결해 천연두 바이러스를 6개월 만에 만들어 냈다. 합성 생물학은 이만큼이나 진입 장벽이 낮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뭐예요?”

최근 기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나라고 알 턱이 없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내가 대학을 졸업한 1987년에야 일본 과학자가 처음 보고했다. 그때는 듣지도 못했다. 2013년 《사이언스》가 그해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적 성과로 선정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근 크리스퍼에 관한 좋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김홍표의 크리스퍼 혁명』(김홍표 지음, 동아시아, 2017년), 『DNA 혁명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전방욱 지음, 이상북스, 2017년), 『크리스퍼가 온다』(제니퍼 다우드나 등 지음, 김보은 옮김, 프시케의숲, 2018년)가 그런 책들이다. 생명 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원한다면 나한테 묻기보다 이 책들을 읽어 보기를 적극 권한다.


DNA는 뭘까? 이 질문에 대해 “DNA는 유전 정보를 장기간 보관하는 핵산의 일종으로, 네 종류의 염기로 구분되는 뉴클레오타이드가 연결되어 이중 나선 구조를 이룬다.” 정도로 대답한다면 21세기의 모범적인 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종류에 A-, B-, Z-DNA 세 가지가 있고, 이들의 구조적 차이가 어떤지, 염기 사이의 간격이 몇 나노미터인지까지는 모두가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뭐예요?”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송기원은 2018년을 살아가는 민주 시민이 알아야 하는 적절한 수준의 내용을 약 250쪽에 걸쳐서 친절하게 알려준다. 당연히 시작은 히스토리다. 그리고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둘러싼 특허 전쟁도 흥미진진하게 다룬다. 하지만 최고의 미덕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정체와 작동 방식을 쉽게 설명했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고백하자면,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를 읽고서야 생화학 전공자인 내가 크리스퍼 가위를 비로소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마치 학부 시절 그의 노트를 복사해서 공부하는 것 같았다.



“인간이 인간의 유전자에 손을 대도 될까?”


배아 유전체 교정의 쟁점.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156~157쪽에서.


흔히 생명 과학에 대한 기술을 소개하는 책은 둘 중 하나의 노선을 정한다. 기술을 적극 옹호하든지 아니면 기술을 반대하는 것이다. 아주 편한 방식이다. 하지만 둘 다 옳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두 입장 사이에 적절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줄타기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과학계와 정부의 입장은 어느 편에 서 있는 지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송기원은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소속 국가 생명 윤리 심의 위원회 위원이므로 그의 입장을 살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인간은 이미 인간의 유전자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착상되면 인간으로 발생할 수 있는 정상 배아에 유전자 가위를 적용해 특정 유전자 교정에 성공했다는 논문이 2017년 8월 3일 《네이처》에 실렸다. 이 연구를 접한 송기원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표현했다. 이미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는데 더 이상 인간 배아를 놓고 실험해야 할지 말지를 논의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그는 말한다. 전 세계가 함께 금지하지 않는 이상 개별 국가의 제재는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송기원은 묻는다. 인간 배아 연구 허용에 대해 우리 사회는 왜 논의를 하고 있지 않는가? 심지어 종교계조차 아무런 말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사회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의 의미는커녕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는지 또는 판도라의 상자가 있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포스트 게놈 시대에 살고 있다. 생명 과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시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결정은 시민이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시민이 먼저 그 기술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민주 시민이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정모(서울 시립 과학관 관장)





◆ 관련 도서 ◆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도서정보]


1 Comments
  • 프로필사진 생각하는병규 2018.10.31 04:56 신고 근래 읽은 북 리뷰 중 최고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루빨리 서점에 들러 읽고 싶게 느껴지는걸로 보아 훌륭한 책에 이은 훌륭한 리뷰임이 틀림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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