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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이 자란다, 김치가 익는다 본문

완결된 연재/(完) 보이지 않는 권력자

미생물이 자란다, 김치가 익는다

Editor! 2018.11.09 09:30

어느덧 입동, 겨울의 문턱입니다. 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찬 공기를 쐬면 “김장할 때구나.” 하고 떠올리게 되지요. 어디서든 꼬박꼬박 식탁에 오르며 우리 생활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김치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세계 여러 음식 가운데 하나로서 인류 생활에 다양성을 더하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고요. 이제는 김치가 세계인의 음식이라는 사실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이재열의 「보이지 않는 권력자」 아홉 번째 이야기는 바로 이 김치 이야기를 다룹니다. 김치를 만드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정성을 돌아보며, 우리 밥상에서 어우러지는 전통과 과학의 맛을 음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재열의 「보이지 않는 권력자」 아홉 번째 이야기 

미생물이 자란다, 김치가 익는다



집안의 큰 행사, 김장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추운 겨울을 대비하여 여러 먹을거리를 마련해야 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들판에서 자란 벼를 거두어들여 겨우내 가족이 먹을 식량을 마련했다고 하지만, 주식으로 먹는 밥과 함께 식구들이 먹을 반찬을 마련해야 하는 이들의 마음과 손길은 더욱 바빠질 수밖에 없다.


날씨가 춥고 밤이 긴 겨우내 온 식구가 식사 때마다 반찬으로 먹는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김치이다. 물론 김치는 오직 한 종류만 있지 않고 배추김치나 동치미, 깍두기, 보쌈김치, 갓김치, 파김치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게다가 온 식구가 먹을 반찬이므로 집집마다 담가야 하는 김치의 양도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김치. ⓒ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Language


그래서인지 몰라도 김치를 담그는 날은 집안에서 잔치를 벌이는 것처럼 시끌벅적할 수밖에 없다. 식구가 많은 집안에서는 담그는 김치 종류와 양도 많으므로 온 식구가 참여해도 부족한 일손을 채우기 힘들 정도이다. 그리하여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이 함께 모여 품앗이를 하듯이 김치를 담그고, 또 이렇게 담근 김치를 서로 나누어 갖기도 한다. 이처럼 입동(立冬) 전후에 사람들이 함께 모여 겨울 동안에 먹을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것을 ‘김장’이라고 한다. 김장이라는 말은 더 나아가 그렇게 담근 김치까지 가리켰다. 지금도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그는 것을 “김장한다.”라고 하며, 그렇게 담가서 겨우내 보관하는 김치를 ‘김장 김치’라 부른다.


김장하는 날은 손이 덜 타고 살(煞)이 끼지 않는 날로 잡았다. 이는 종교적인 믿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의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 알맞다. 김장하는 날에는 집안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마저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만큼 김장은 몸과 마음으로 정성을 기울여 준비하는 집안의 큰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김치는 당연히 배추김치가 중심을 이루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김치 종류가 있다. 또한 같은 김치라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 이처럼 김치 맛이 다른 것은 지역적인 차이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어떤 재료를 준비하는지, 또 재료를 어떻게 쓰는지 등 집집마다 맛을 내는 비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세대를 거듭하며 이어져 내려오는 집안의 고유한 문화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고유한 맛의 비결은 이웃과 품앗이 형태로 한데 어울리는 김장 문화를 통해서 서로 나누기도 했다.



맛있는 김장 김치란 무엇인가

김장 김치를 담그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속이 꽉 들어찬 노란 배추를 두 등분도 모자라 네 등분으로 나누어 소금에 절인다. 단맛이 풍기는 무를 채 썰고 파를 듬성듬성 잘라내며,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 갖은 양념과 함께 맛깔스러운 젓갈이며 생굴까지 버무려 속을 만든다. 이 속을 절인 배추 잎사귀 사이에 끼워 넣어 항아리에 켜켜이 담아, 겨우내 땅에 묻어 익힌다. 이것이 김장 김치이다.


이처럼 김장은 속이 잘 든 배추를 골라 반으로 쪼개고, 더 큰 것은 반의반으로 쪼개 절이는 일부터 시작한다. 솜씨 좋은 이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맛있는 배추를 고르는 눈썰미가 있다. 무조건 큰 것이 아니라, 작아도 고소한 배추를 골라야 맛있는 김장을 할 수 있다.


ⓒ Sous Chef


배추를 절이는 소금도 막소금이 아니다. 한여름에 수확한 소금을 미리 구해 보관하면서 간수를 빼고 갈무리해 둔 양질의 소금을 물에 푼다. 이렇게 만든 소금물에 쪼갠 배추를 담갔다가, 큰 그릇으로 옮겨 담으면서 위에 다시 소금을 뿌려 가며 절인다. 보통 배추는 12시간 정도 절이므로 대개는 오후에 절이기 시작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밤중이나 새벽에 잠을 설치면서도 일어나 한두 번씩은 배추를 뒤집으며 절인다. 배추를 절일 때에도 소금 농도가 너무 높으면 배추가 그야말로 파김치처럼 축 늘어져 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소금을 적게 넣으면 뉘여 놓은 배추 속잎이 바짝 고개를 쳐들기도 한다. 배추를 절일 때 쓰는 소금물의 농도는 대체로 5~6퍼센트 정도이다. 어쨌거나 김장은 좋은 소금을 마련해 배추를 절이는 일부터 온갖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


김치에는 배추와 무를 비롯한 채소 외에도 많은 것이 들어간다. 양념으로는 고추, 마늘, 생강, 파, 갓, 미나리 등이 들어가고, 젓갈류로는 새우, 멸치, 조기, 오징어, 굴 등이 첨가되며, 과일류로는 잣, 밤, 사과, 배 등을 넣기도 하고, 그 외에 들깨, 호박, 죽순, 참깨 등이 곁들여진다. 이러한 재료가 한꺼번에 다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지방이나 가정, 또는 김치를 담그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적당히 더해지거나 빠지기 마련이다.


우리 음식에서 ‘갖은 양념’이란 적당한 양의 양념이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실제로 우리 음식에 들어가는 양념의 종류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김치에만 들어가는 것이 따로 있지 않고 종류도 그리 많지 않으며 대부분 다른 음식에도 들어간다.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은 1년 내내 부엌에 놓아두고 조리할 때마다 필요한 만큼 덜어 내어 이용한다. 이때 ‘적당히’라는 표현은 가장 맛있는 정도에 이르게 하는 경험적인 양이라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 예전에 우리나라 부엌에서 쓰던 옹기그릇 중에는 양념 단지도 있는데, 작은 단지 모양의 그릇 두세 개를 허리끼리 붙이고 위쪽으로 손잡이를 무지개처럼 이어 붙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단지 서너 개를 붙인 가운데에 작은 단지를 하나 더 얹기도 했으며, 많게는 단지 다섯 개를 붙인 양념 단지도 있기는 하다. 이를 보아도 우리 음식에서 사용하는 양념의 종류가 그리 많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치 안에 스며드는 미생물의 힘

김치는 자연 발효를 따르기 때문에 재료의 종류나 계절의 변화에 따라 여러 미생물이 관여한다. 김치가 발효하기 위해서는 효모나 유산균(乳酸菌, 젖산균) 등의 미생물이 번식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김치나 고추장을 담글 때에는 찹쌀가루나 멥쌀가루, 또는 밀가루로 풀을 쑤어서 넣어 준다. 풀에 들어 있는 전분을 비롯하여 양념과 젓갈류의 영양 성분은 미생물이 쉽게 자라게 하는 일종의 배지 역할을 담당한다.


물론 절인 채소는 소금 때문에 일반적인 미생물이 잘 살 수 없는 환경이다. 하지만 이 풀은 김치를 익히는 젖산균의 활동을 촉진하는 조건을 마련해 준다. 이처럼 우리가 원하는 미생물이 처음부터 자리 잡아서 자라기 힘들 때, 잘 자라게끔 돕는 것을 학술 용어로 ‘시동 배양(start culture)’이라고 한다. 배추나 무뿐만 아니라 김치 속에도 포함되어 있는 여러 효소에 의해서 김치는 익을 수 있지만, 김치 안에 들어 있는 미생물에 의해 더욱 효과적으로 발효된다.


김치 발효균은 주로 젖산균이지만, 초기에 번식하는 호기성 세균도 김치가 익는 과정에 관여하면서 나름대로 독특한 맛을 내는 데 도움을 준다. 김치에 들어 있는 효모는 그 수가 세균에 비해 훨씬 적지만 여러 효소를 갖고 있어서 김치의 여러 탄수화물을 분해한다. 또한 김치의 유산균은 당을 분해하여 시큼한 맛을 낸다. 잘 익은 김치 국물에서 시큼한 맛이 나는 것은 바로 이들 유산균이 내놓은 젖산 때문이다. 이 안에는 유산균이 무더기로 들어 있다.


이 젖산이 축적되면 김치는 산성(pH 3.5~4.5)으로 바뀌는데, 젖산균이나 효모는 산성에서도 거뜬히 살아남을 수 있다. 반면 굴이나 생선을 썩히는 부패 원인균들은 주로 중성(pH 7) 근방에서 살기 때문에, 잘 익은 김치 안에서는 힘을 펴고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김치를 담글 때 함께 넣는 생선이나 굴 따위의 해산물이 잘 익은 김치에서도 삭아 없어지지 않고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내용물이 다 빠지더라도 겉모습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미라처럼 남아 있다.


김치가 익는다는 것은 유산균에 의한 발효가 일어나는 것이며, 발효되는 정도는 재료나 온도 등의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미생물이 만들어 내는 성분들이 여러 맛을 더하면서 특색 있는 김치 맛을 보여 준다. 김치가 익어 가는 시간에 따라 맛이 다른 것도 모두 미생물의 발효 정도가 다른 데에서 비롯된다.


김치의 발효 과정에 도움을 주는 미생물로는 약 200종류의 세균과 여러 종류의 효모를 꼽을 수 있다. 발효가 시작되면서는 호기성 세균과 혐기성 세균의 증가가 두드러져 보인다. 하지만 김치가 익으면서 호기성 세균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어서, 완만한 증가를 보이는 효모의 숫자와 비슷한 수준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나 혐기성 세균의 숫자는 김치가 익어 가면서 증가하여, 잘 익은 김치에서는 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들 혐기성 세균은 김치를 숙성시키는 데 관여하는 류코노스톡 메센테로이데스(Leuconostoc mesenteroides)와, 강한 산성에서도 잘 살 수 있는 락토바실루스 플란타룸(Lactobacillus plantarum) 등을 비롯한 유산균이다.


김치가 다른 음식과 달리 오랫동안 보관하더라도 썩지 않고 맛있게 익는 것은 소금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채소를 소금에 절이면 삼투압 때문에 물기가 빠져나간다. 한편 소금은 채소에 침투해 채소의 풋내 등을 제거하고 씹기 알맞은 정도로 물러지게 한다. 소금에 들어 있는 마그네슘을 비롯한 염류는 채소 조직의 펙틴(pectin) 성분을 경화(硬化)시켜 아삭아삭 씹히는 김치의 독특한 질감을 만들기도 한다. 이와 함께 소금은 채소의 부패 미생물과, 조직을 무르게 하는 연화 효소 등의 활동을 정지시키는 작용을 한다.


음식물에 조금씩 넣어서 짠맛을 내는 데 쓰이는 소금은 옛날부터 우리 음식 문화에서 귀중한 양념으로 대접받았다. 해안가에서는 소금이 그리 귀한 줄 몰랐겠지만, 내륙 지방에서는 아주 귀한 재료로 대접받았다. 김장을 할 때에도 한여름에 수확한 소금을 구해다 2~3년 동안 보관하면서 소금에서 우러나오는 간수가 충분히 빠진 후에 쓴다. 간수는 쓴맛이 강해서, 바로 수확한 햇소금을 음식물에 넣으면 쓴맛이 난다는 것을 옛사람들은 이미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음식물에 소금을 첨가해 부패를 막고 보존 기간을 늘리는 것을 염장법이라 한다. 채소를 절일 때에도 소금물의 농도가 8~10퍼센트 정도가 되면 토양에 있던 여러 세균이 살균되며, 부패 원인균과 기타 잡균은 대부분 활동력이 억제된다. 그러나 젖산균은 비교적 높은 소금 농도에서도 번식력을 유지하며 소금의 삼투압 작용에 의해 외부로 빠져나온 채소의 당 성분을 먹이로 발효를 왕성하게 계속한다. 잘 익은 김치가 겨울을 지나도록 무르지 않고 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소금과 함께 젖산균이 발효 과정에서 만들어 낸 젖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김치는 소금 농도가 2~3퍼센트 정도일 때 간이 알맞고 맛이 좋다. 김치의 소금 성분과 발효 과정에서 생긴 젖산 때문에 부패균의 번식은 점점 더 억제되지만, 효모나 젖산균은 내염 및 내산성이 강해 이 정도의 소금 농도와 산도에서도 번식이 가능하다.


김치를 오래 보관하다 보면 공기와 접촉한 표면에 부패균이 종종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김치가 공기와 접촉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중요하다. 오이지나 동치미를 담글 때에 납작한 돌로 누르는 것도 오이나 무를 김치 국물에 잠기게 해서 공기 접촉을 막아 부패를 방지하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김치를 비닐봉지에 담아 보관하는 것도 공기 접촉을 피하는 방법이 된다. 김장 김치를 항아리에서 꺼내 먹을 때에도 남은 김치가 국물에 잠겨 있도록 꾹꾹 누르거나 넓은 배춧잎으로 덮는 것이 모두 같은 이치이다.


ⓒ Korea.net



우리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김치

김칫독 맨 위에 김치를 덮는 넓은 배추 이파리를 우거지라 한다. 김치를 꺼내어 먹다 보면 마지막에 남는 것도 이 우거지인데, 나중에 이것만을 모아 국으로 끓인 것이 우거짓국이다. 물론 그냥 말린 배추 이파리도 우거지라 하는데, 말린 무 이파리를 가리키는 시래기와 혼동하여 부를 때도 있다. 어쨌거나 오래전부터 김치를 먹어 온 옛사람들이 찾아낸 삶의 지혜가 여기에 있다.


김장 김치는 대부분 항아리에 담아 보관하면서 겨우내 조금씩 꺼내어 먹는다. 이 항아리는 땅속에 묻혀서 겨울을 나는데, 따라서 김장하는 날에는 햇볕이 덜 드는 마당 한구석에 깊은 구덩이를 파서 김치의 종류대로 담은 항아리를 여럿 묻었다. 이렇게 땅에 묻은 김장 항아리는 온도의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섭씨 영하 2도와 영상 7도 사이를 유지하여, 낮은 온도에서도 자라는 유산균의 활동을 계속하게 만든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김치 냉장고도 이러한 원리를 응용해 만든 냉장고의 새로운 모형이다. 그런가 하면 볏짚으로 엮은 치마를 김장 항아리에 입혀서, 김치를 꺼낼 때 흙이 항아리에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도 생활의 자그마한 지혜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발효 음식으로 꼽히는 김치는 여러 재료가 한데 어우러진 음식이다. 그 맛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북쪽 지방은 비교적 싱거운 편이고 남쪽 지방은 짠맛이 더하다. 또한 같은 지역이라도 덥고 서늘한 시기에 따라 간이 다르다. 봄가을보다는 한여름에 담그는 김치가 다소 짭짤하다. 여름철에는 음식이 쉽게 변질되거나 부패할 수 있으므로 조금 짭짤하게 담가 보존 기간을 늘리는 것이다.


이렇게 같은 음식이라도 기후와 지방에 따라 맛에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은, 그만큼 음식 하나라도 자연과 환경에 따라서 우리 몸에 가장 알맞게끔 만들어 낸 우리 문화의 한 단면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반도 지형과 계절적인 환경 조건에 가장 알맞게 발전해 온, 또한 어쩌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해마다 반복되면서 가장 적합한 방법을 개발해 낸 우리의 음식 문화인 것이다.



인류의 대표적인 문화가 되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우리가 즐겨 먹던 김치가 요즈음에는 다시 건강식품으로 새로운 관심을 끌고 있다. 물론 채소를 절인 음식은 다른 나라에도 있다. 일본의 기무치(キムチ)나 중국의 파오차이(泡菜), 서양의 오이 피클과 독일의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김치는 이들과 어떤 점이 다를까? 음식의 국제적인 표준을 정하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서는 2001년 7월 우리나라의 제안을 받아들여 김치를 “배추를 절여 고춧가루, 마늘, 생강, 파, 무 등을 혼합해 젖산 발효가 이루어지게 한 음식으로, 산도는 1.0퍼센트 이하여야 한다.”라고 정의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젖산균에 의한 발효가 충분히 일어나지 않은 겉절이 등의 풋김치, 샐러드처럼 식초에 버무려 만든 기무치, 그리고 아주 신 김치는 김치 대접을 제대로 받기 어려운 셈이다. 


배추 등의 채소를 발효시켜서 만든 중국 쓰촨(四川)의 전통 음식 파오차이. ⓒ Adonis Chen


양배추를 소금이나 식초 등에 담가 절인 음식인 자우어크라우트. ⓒ Annakareninerussie


물론 이러한 차이도 있으나, 우리처럼 모든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이 김장을 하는 모습 또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처럼 김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겨우내 먹기 위한 김치를 담그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김장은 단순히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것만이 아니라 나눔까지도 함께 하는 공동체 의식이 담긴 문화로 자라났다. 이렇듯 특별한 의미를 지닌 김장 문화는 지난 2013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전 세계 사람이 함께 보호하고 전승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김장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단순히 김치가 우수한 영양 성분이 들어 있는 건강 음식이라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김치를 준비하는 과정에는 봄부터 여름과 가을, 겨울에 이르기까지 1년 내내 그치지 않는 노고가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이와 함께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김장을 해 왔기에 김장 문화로 발전했다는 사실까지도 인정한 셈이다. 따라서 문화유산의 이름도 그냥 ‘김장’에 그치지 않고 뒤이어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라는 부제까지 포함된 것이다.


김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전해 내려온 음식 문화이자 생활 풍습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대다수 김치를 좋아하기 마련이고 김치를 담글 줄도 안다. 외국에 나가 사는 많은 한국인들도 어떻게 해서든지 재료를 구해다 김치를 담가 먹는다. 채소를 오래도록 저장하면서 먹기 위해 소금이나 식초에 채소를 절이는 방법은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이용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김치는 맛과 영양이 풍부한 발효 식품일 뿐만 아니라 김치를 함께 담가 서로 나누어 먹는 김장이라는 문화가 더해진다. 따라서 한국인이 정착한 지역의 음식 문화와도 한데 어울려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생물을 이용해서 맛 좋고 영양이 풍부한 발효 음식을 만들고 먹으면서 건강한 생활을 즐겼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우리나라의 자연 환경에 잘 어울리는 오래된 음식 문화의 전통을 이어받아 매일 우리 건강을 지키는 여러 발효 음식을 먹으며 건강한 생활을 지켜 나가고 있다. 이제까지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우리 발효 음식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밝혀내어 새로운 산업으로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새로운 기능과 성분을 갖춘 제품을 만들어 건강한 생활을 즐기고 뛰어난 문화유산의 진가를 제대로 발전시키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이재열

서울 대학교 농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기센 대학교에서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막스 플랑크 생화학 연구소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치고 경북 대학교 생명 과학부 교수로 근무했다. 현재 명예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모두들 어렵다고 말하는 과학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권력자』, 『바이러스는 과연 적인가?』, 『보이지 않는 보물』, 『바이러스, 삶과 죽음 사이』, 『미생물의 세계』, 『우리 몸 미생물 이야기』, 『자연의 지배자들』, 『자연을 닮은 생명 이야기』, 『담장 속의 과학』, 『불상에서 걸어나온 사자』, 『토기: 내 마음의 그릇』 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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