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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강양구의 과학 블랙박스

캘리포니아 ‘살인의 추억’, DNA가 해결했다

Editor! 2019.01.07 07:00

과학이라는 블랙박스를 통해 사회를 읽어 내는 강양구 기자의 「지식 블랙박스」가 《주간동아》에서 사이언스북스 블로그로 연재처를 옮겨 「과학 블랙박스」라는 이름으로 연재를 이어갑니다. 전염병, 환경 문제, 인공 지능 등 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제들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오늘날, 우리는 어떤 정보와 지식을 손에 쥐고 세상을 바라봐야 할까요? 매달 2주차, 4주차 월요일에 찾아올 「과학 블랙박스」를 기대해 주세요. 

첫 연재로는 2019년 새해를 맞아 2018년을 장식한 가장 놀라운 과학 뉴스를 소개합니다. 1970~1980년대에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한 잔혹한 연쇄 살인범이자 강간범을 40년을 훌쩍 넘긴 2018년 미국 경찰이 검거해 냈는데요, DNA 분석과 유전 정보 데이터베이스가 어떻게 이를 가능하게 했는지 알아봅니다!




강양구의 과학 블랙박스

캘리포니아 ‘살인의 추억’, DNA가 해결했다



《사이언스》, 《네이처》와 같은 과학 학술지들은 매년 연말이면 올해의 과학 뉴스를 선정해서 발표한다. 2018년을 마무리할 때도 《사이언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한 해 동안 화제가 되었던 과학 뉴스를 꼽았다. 그 가운데 뜻밖의 뉴스도 있었다. “42년 만에 연쇄 살인범 체포.” 뜬금없이 40년 전의 연쇄 살인 사건 해결 소식이 과학 뉴스로 꼽힌 이유는 무엇일까?


2018년 4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 경찰은 이른바 ‘골든 스테이트 살인범’을 검거한 사실을 밝혔다. 골든 스테이트 살인범은 1976년부터 1986년까지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12명을 살해하고 최소 50명을 강간한 연쇄 살인범이다. 어찌나 캘리포니아 일대를 공포에 몰아넣었는지 이 연쇄 살인범에게 캘리포니아의 별칭 ‘골든 스테이트(Golden State)’가 붙었다.


골든 스테이트 살인범은 처음에는 주로 혼자 사는 여성을 노려서 강간하고 죽였다. 나중에는 더욱더 대담해져서 가족이 있는 여성의 집에 들어가서,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강간하고 둘 다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도 서슴지 않았다. 경찰이 총력으로 그를 추적했지만, 꼬리가 잡히지 않았다.


1986년에서 1991년 사이에 경기도 화성군(현재 화성시)에서 일어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연상시키는 이 캘리포니아 연쇄 살인 사건은 자칫하면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을 뻔했다. 그런데 연쇄 살인범이 첫 살인을 저지른 지 42년 만에 경찰이 검거에 성공했다. 연쇄 살인범은 이제 72세의 노인이 된 전직 경찰관 조지프 제임스 드앤젤로(Joseph James DeAngelo)였다.


이제 경찰이 어떻게 연쇄 살인범을 추적해서 검거에 성공했는지 궁금할 테다. 바로 이 대목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과학과 만난다. 첫 사건이 일어난 지 42년 만에 연쇄 살인범의 목덜미를 잡는 데 바로 DNA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부터 경찰이 연쇄 살인범을 어떻게 추적했는지 살펴보자.


12건의 살해, 50건 이상의 강간, 120건 이상의 절도를 저지른 골든 스테이트 살인범은 동쪽 지역의 강간범(East area rapist), 오리지널 나이트 스토커(original night stalker) 등으로도 불리며 당시 악명을 떨쳤다. 



캘리포니아의 살인범, 42년 만에 잡히다

이 연쇄 살인범이 사람을 죽이고 다니던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DNA를 다루는 과학 기술은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생명 과학에 별다른 지식이 없는 사람도 용어는 들어 본 적이 있을 법한 ‘DNA 지문(DNA fingerprinting)’ 분석이 가능하려면 아주 적은 양의 DNA를 복제, 증폭시켜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기술은 미국의 캐리 멀리스(Kary Mullis)가 1984년 PCR(Polymerase Chain Reaction, 중합 효소 연쇄 반응)을 고안하고 나서야 가능해졌다. 그러니 당시의 살인 사건 현장에서 피해자가 아닌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DNA를 검출하더라도, 그것을 수사에 이용할 방법은 없었다. 골든 스테이트 살인범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1980년대 초반의 한 사건 현장에서 골든 스테이트 살인범의 것으로 추정되는 DNA를 확보했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DNA는 무용지물이었다. 미국 연방 수사국(FBI)이 1997년부터 ‘코디스(CODIS, Combined DNA Index System)’라고 부르는 범죄자 유전자 정보 은행을 운영하기 시작했으나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미국을 무대로 한 스릴러 소설이나 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사정을 금세 알아챘으리라. 코디스에는 유죄가 확정된 범죄자의 DNA 정보가 올라 있다. 만약 연쇄 살인범이 크든 작든 다른 범죄를 저질러서 검거되지 않는 한 해당 데이터베이스에 그의 DNA가 오르는 일은 없다. 전직 경찰관이었던 골든 스테이트 살인범 역시 신중했다.


뜻밖의 돌파구는 민간 유전자 분석 서비스가 만들었다. 2006년 창업한 23앤미(23andMe)가 시장을 열고 나서부터 미국에는 다양한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생겨났다. 이 가운데 뜻밖에 인기가 있는 서비스가 바로 DNA 정보에 기반을 두고 조상을 찾아 주는 서비스다. 온갖 국적과 인종이 섞인 미국인의 ‘뿌리 찾기’ 욕망을 자극한 것이다.


GED매치(GEDmatch) 같은 서비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회원이 자신의 유전자 분석 정보를 자유롭게 올릴 수 있도록 했다. GED매치는 이렇게 회원이 올린 유전자 분석 정보를 비교해서 혈연관계가 있는 친척을 찾아준다. 2018년 4월 현재, GED매치에는 약 130만 개의 DNA 정보가 올라가 있었다.


경찰은 골든 스테이트 살인범의 DNA 정보를 GED매치에 올리고서 말 그대로 ‘매칭(matching)’되는 회원을 훑었다. 그랬더니, 살인범과 현조부모(great-great-great grandparents, 아버지의 고조부모)가 같은 100명의 혈연관계를 찾을 수 있었다. 경찰은 나이, 범행 장소 등 다른 정보를 염두에 두고서 이들의 가족이나 친척을 훑으며 용의자를 좁혀 가기 시작했다.


결국 유력한 용의자로 드앤젤로가 지목되었다. 실제로 그의 DNA 정보는 범죄 현장의 그것과 일치했다. 드앤젤로의 (어쩌면 얼굴 한번 본 적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먼 친척이 호기심에 올린 DNA 정보가 그의 끔찍한 연쇄 살인을 단죄할 단서가 된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수십 년 전의 살인 사건을 단죄받는 그의 심정은 어떨까?


캘리포니아 주에서 연쇄 살인과 강간 등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골든 스테이트 살인범의 주범행 지역과 종류를 표시한 지도. FBI에서. 



유전 정보 데이터베이스의 두 얼굴

골든 스테이트 살인범의 추적 과정은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 인구 집단에서 어느 정도 규모의 유전 정보 데이터베이스만 구축된다면 살인 사건 현장에 남겨진 임의의 DNA 정보를 활용해서 범인을 검거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운만 좋다면 화성 연쇄 살인 사건과 같은 영구 미제 사건의 범인을 검거하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연결되는 시대에 더욱더 그 가치가 또렷해지는 개인 정보를 염두에 두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굳이 나의 유전 정보를 노출하지 않더라도 5대조 조부모(현조부모)가 같은 먼 친척이 데이터베이스에 올린 유전 정보가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


유전학자 야니프 에를리히(Yaniv Erlich)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혈연 추적을 통해 신원을 밝히려면 어느 정도 규모의 유전 정보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한지 따져 보았다. 마침 그는 유전자 분석에 기반을 둔 혈연 찾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마이헤리티지(MyHeritage)’에 소속된 터라서 이런 연구의 적임자였다. 연구 결과는 2018년 11월 ≪사이언스≫에 「장기 가계 검색을 이용한 유전 정보의 신원 추론(Identity inference of genomic data using long-range familial searches)」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분석 결과는 놀라웠다. 에를리히의 분석에 따르면, 만약 당신이 미국에 사는 유럽계(백인) 혈통이라면 8촌(third cousin) 이내 친척의 유전 정보가 공개 혈연 찾기 데이터베이스에 포함되어 있을 확률이 60퍼센트다. 만약 GED매치의 이용률이 미국 성인 2퍼센트 수준(현재는 약 0.5퍼센트 수준이다.)으로 증가한다면, 유럽계 혈통의 90퍼센트 이상이 8촌 이내 친척을 혈연 찾기 데이터베이스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은 어떨까? 아직은 미국과 비교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범죄자 유전 정보 데이터베이스가 수집하는 DNA 정보도 11개 주요 범죄로 구속된 피의자나 수형인만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 규모도 현재 약 20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의료 기관을 제외한 민간 유전자 분석 업체의 서비스도 제한적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현재로서는 미국처럼 민간이 주도하는 유전 정보 데이터베이스가 존재할 가능성이 없다. 다만, 여러 기업이 규제 완화를 염두에 둔 다양한 형태의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현재 의료계와 산업계, 또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규제 당국 사이에 민간 유전자 분석 업체의 검사 항목 확대도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규제 완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보다 인구 규모가 작은 한국에서는 훨씬 더 작은 규모의 데이터베이스만으로도 특정인을 식별하는 일이 가능할 테다. 지문 날인이 포함된 주민등록번호에다 어느 정도 규모의 유전 정보 데이터베이스가 결합한다면 사실상 개인이 빠져나가기 어려운 감시 국가의 틀이 마련될 수 있다.


그래도 여러 이점을 염두에 두고서 유전 정보 데이터베이스의 문턱을 낮추고 규모를 키워야 할까? 만약 유전 정보 데이터베이스의 규모를 키운다면 개인 정보를 보호할 어떤 장치를 마련해야 할까? 유전 정보를 포함한 개인 정보 활용과 보호 사이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 생명 과학이 우리에게 또 다른 골치 아픈 문제를 던졌다.




저자 강양구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프레시안》에서 과학·환경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부안 사태, 경부 고속 철도 천성산 터널 갈등, 대한 적십자사 혈액 비리, 황우석 사태 등에 대한 기사를 썼다. 특히 황우석 사태 보도로 앰네스티언론상, 녹색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프레시안》 편집부국장, 코리아메디케어의 콘텐츠 본부장(부사장)으로 재직했다.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1, 2』,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과학 수다』(공저), 『밥상 혁명』(공저), 『침묵과 열광』(공저), 『정치의 몰락』(공저), 『과학은 그 책을 고전이라 한다』(공저),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공저) 등을 저술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도서정보]


『과학은 그 책을 고전이라 한다』 [도서정보]


『과학 수다 1』 [도서정보]


『과학 수다 2』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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