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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대 책 대담 (10) 『숨겨진 우주』 VS 『플랫랜드』 본문
다른 차원, 다른 세계
『숨겨진 우주』 VS 『플랫랜드』
책 대 책 6월 19일자 대담
과학의 역사에서 이정표가 되었거나 과학 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책을 중심으로 인물 대 인물, 이론 대 이론, 명강의 대 명강의 등 두 권의 책을 비교 분석하는 <책 대 책>. 그 여섯 번째 대담회가 APCTP(아태이론물리센터)와 사이언스북스, 채널예스 공동 기획․주관으로 지난 6월 19일(화) 저녁 7시 강남 출판 문화 센터 5층 민음사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려는 뜻에서 만들어진 다차원. 이 다차원 개념이 사실은 우리 우주를 설명하는 도구였다면 어떨까? 1884년 영국의 언어학자이자 교육자였던 에드윈 애벗은 가명으로 쓴 책 『플랫랜드』에서 4차원보다 훨씬 높은 세계를 상상했다. 1919년 독일의 수학자 테오도르 칼루자와 오스카 클라인은 5차원 이론으로 중력과 전자기력을 통합하려 시도했다. 현대 물리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4차원 세계가 일종의 막처럼 생긴 물체에 매달린 물방울이나 수챗구멍과 비슷하다는 ADD모형을 이용해 이제까지 해결하지 못했던 물리학의 난제를 다차원으로 풀어내려 한다.
6월 <책 대 책> 대담회에서는 5차원 ADD 모형을 과학교양서로는 최초로 다룬 리사 랜들의 『숨겨진 우주』와 기하학적 상상뿐만 아니라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 대한 절묘한 풍자까지 담았던 에드윈 애벗의 『플랫랜드』를 선정해, 시대 풍자에서 우주 설명까지 차원이 열어젖힌 새로운 세계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숨겨진 우주』를 번역한 김연중 역자가 직접 『숨겨진 우주』의 서평을, 김창규 SF 작가가 『플랫랜드』의 서평을 쓰고 대담자로 나섰으며 이명현 세티코리아 조직 위원회 사무국장이 사회를 맡았다. 대담자와 사회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 후, 본격적인 대담이 시작되었다.
이명현(사회자): 오늘 저희 주제는 차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서로 굉장히 차원이 다른 두 책을 차원이라고 하는 공통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겁니다. 한 권은 『플랫랜드』이고요. 무려 1884년에 출간되었으니 100년도 훨씬 넘은 소설입니다. 반면에 다른 한 권, 『숨겨진 우주』는 여분 차원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물리학 책입니다. 먼저 두 책의 저자에 대한 소개를 듣기로 하겠습니다. 김연중 선생님, 『숨겨진 우주』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연중(숨겨진 우주): 리사 랜들은 여성 물리학자입니다. 사실 과학사에서 여성은 인정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요. 이 분은 워낙 능력이 출중하셔서 그런지 미래에 노벨상을 받을 여성 과학자 1순위에 올라 계신 물리학자입니다. 이 책은 랜들이 쓴 세 편의 논문을 토대로 해서 쓰였는데요. 이 논문으로 랜들은 하버드에서 정년 교수직을 얻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영재로 유명했고 고등학교 동창이 브라이언 그린이라고 하는 재미있는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이명현(사회자): 저희도 이 행사를 진행하면서 여성 물리학자를 모시려 했는데 지지난달에 딱 한 분밖에 모시질 못했어요. 사실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상당히 드문 편이죠. 『플랫랜드』의 저자 에드윈 애벗도 굉장히 특이하신 분이라고 들었는데요.
김창규(플랫랜드): 학교 교장이자 셰익스피어 전문가셨다고 합니다. 집안도 신학자, 교육자 집안 출신이고요. 그런데 1884년에 출간한 이 책은 보시면 아시겠지만 자신이 목사 자격까지 땄음에도 성직자나 집권층을 풍자적으로 비난한 책입니다. 이 책 덕분에 지금까지도 과학 소설 작가나 대중 강연을 하는 과학자들한테 계속 언급되며 수많은 영화나 매체에서도 영감을 준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명현(사회자): 책을 낼 때 가명으로 하셨단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김창규(플랫랜드): 이 책 말고도 신학 쪽에서 다작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내용이 우리 인생하고 상충하는 면이 있다 보니까 처음 출간 시에는 소설 속에 나오는 2차원 세계에서 사는 사각형, 스퀘어라는 주인공 이름을 그대로 필명으로 쓰셨대요.
이명현(사회자): 이제 본격적으로 책 내용 이야기로 들어갈 텐데. 보면 오늘은 키워드로 계속 반복될 것들이 있어요. 1차원 2차원 3차원 하는 차원은 당연히 나오고요. 그다음에 이제 초끈, 막 이런 것들이 무엇인지 하나씩 짚어 가면서 이야기를 할 거고요. 결론적으로는 여분차원이란 말이 또 나올 겁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주의 깊게 생각하시면서 이야기를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초끈 이론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많이들 들어 보셨을 테지만 그 초끈 이론이 뭔지를 가장 쉬운 언어로 이야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끈은 끈이다
김연중(숨겨진 우주): 초끈이라는 건……. 초끈 이론 전공했다고 하면 많이 듣는 질문이기는 한데요. 대답은 항상 똑같습니다.
이명현(사회자): 진짜 끈인가요?
김연중(숨겨진 우주): 끈은 끈일 뿐이라고 대답해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핵자를 구성하는 쿼크라는 게 있는데 그게 뭐냐고 물으시면 쿼크는 이러이러한 속성을 가진 입자입니다. 말씀드릴 수는 있지만 더 이상의 대답은 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끈도 10차원에 살고 끈의 형태를 갖고 있고 떨림이 있고 이런 식으로는 말씀드릴 수 있지만, 그럼 도대체 끈의 정체는 뭐냐고 물으시면 끈은 끈입니다. 라고 대답해 드릴 수밖에요. 끈은 정말 말 그대로 끈이고요. 초는 초대칭을 의미합니다. 초대칭은 많이 아시겠지만 이론적 완결성을 갖추기 위해서 전자로 대표되는 페르미온, 메존 같은 것으로 대변되는 보손.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이 둘 사이에 항상 대칭이 있어야 하거든요.
사실 끈 이론은 처음부터 만물 이론이 되려던 이론은 아니었고 끈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핵자를 설명하려고 한 이론이었습니다. 하지만 핵을 이루는 건 끈이 아니라 쿼크라는 게 밝혀졌지요. 폐기당할 위험에 처했다가 나중에 보니까 끈의 흔들림, 떨림 상태가 중력과 성질이 같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끈 이론으로 다른 것을 설명하려는 시도도 해 보고 열심히 하게 되었죠. 끈 이론을 상당히 복잡하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끈 이론은 26차원, 초끈 이론은 10차원이라는 차원 때문에 굉장히 거부감을 느끼시는데 끈은 그냥 우리가 상상하는 그 끈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되고요. 대신 물리학적으로 완결성을 갖추기 위해서 수학적으로 계산하다 보니 초대칭은 10차원이어만 하고 보손일 경우에는 26차원이어야만 한다. 그런 조건이 붙는 것뿐이죠.
이명현(사회자): 끈이니까 흔들리고 떨린다는 개념까지는 이해하겠는데 그런 것에 따라서 나타나는 현상 같은 것을 설명해 주시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아요.
김연중(숨겨진 우주): 끈의 떨림이 입자에 해당할 수가 있습니다. 닫힌 끈이 떨리는 경우에는 떨림 상태가 중력이 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쿼크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힘을 매개하는 입자가 될 수도 있고요. 끈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입자라고도 할 수가 있죠. 많이 떨리는 게 에너지가 높은 거죠. 힘이 많이 드니까.
이명현(사회자): 닫힌 끈하고 열린 끈이라. 그 둘은 왜 따로인가요? 성질이 다른가요. 떨리는 패턴이 다른가요?
닫힌 끈과 열린 끈
김연중(숨겨진 우주): 끝점이 시작점과 같으냐 다르냐. 그 차이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통 일상에 접하는 끈의 형태가 두 가지 있죠. 고무밴드와 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닫힌 고무밴드와 고무밴드를 잘라서 만든 열린 고무줄로 보셔도 되겠네요.
닫힌 끈은 벌크라고 불리는 10차원 전체를 떠돌아다닐 수가 있습니다. 열린 끈은 초끈 이론 속에서는 항상 어디에 매여 있게 됩니다. 기둥이나 그런 곳에 고무줄을 묶어 놓는 것처럼 브레인이라고 하는 곳에 속박될 수밖에 없습니다. 막이라고도 합니다. 제 박사 학위 논문 주제 중 하나가 열린 끈과 닫힌 끈 사이의 대칭성과 관계성을 보는 건데요. 막이 두 개가 있는데 여기 원기둥이 있다고 보게 되면 닫힌 끈이 보면 그냥 직선으로 가는 걸로 볼 수 있지만 열린 끈 쪽에서 보자면 이쪽 끝과 이쪽 끝이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바퀴 빙 도는 형태로 이동한 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닫힌 끈도 움직일 수 있다고 하죠.
이명현(사회자): 막이라는 것은 2차원 평면으로 생각해도 되나요?
김연중(숨겨진 우주): 직관적으로는 그게 도움이 되겠죠. 실제로는 차원이 더 높지만 2차원적으로 보이는. 실제로 보이진 않습니다. 끈은 저희가 단순히 1차원으로 생겼고 그게 10차원을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막은 그것과 조금 달라서요. 10차원을 움직이다가 뭔가 끈이 붙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3차원 공간에서 보면 막이 2차원 평면이 되고 1차원 직선 같은 경우에서 보면 끝점에 해당하게 되죠. 공간을 구분시켜 주는 요소이기 때문에 꼭 2차원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명현(사회자): 열린 면의 끝점들이 막이 될 수 있다 이런 말씀인가요?
김연중(숨겨진 우주): 예.
여분 차원
이명현(사회자): 그러면 이렇게 초끈, 열린 끈과 닫힌 끈 이야기를 하면서 막 이야기도 나오고 그러는데 그것들이 다 우리가 늘 이야기하는 4차원 시공간 속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왜 10차원이라는 차원을 도입해야만 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김연중(숨겨진 우주): 초끈 이론이 왜 10차원과 26차원에서 존재하느냐? 그 이유는 물리적으로 이론을 완벽하게 기술하기 위해서 계산하다 보니 10과 26이란 숫자가 나왔던 것이고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아니면 이론이 성립하지 못하거나 끈 자체가 존재하지 못합니다.
이명현(사회자): 그러면 초끈을 이용해서 완벽하게 기술된 이론으로 이제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건가요?
김연중(숨겨진 우주): 사실, 밝혀진 바로는 설명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웃음) 초끈 이론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인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하나로 묶어서 기술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기 때문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초끈 이론만 가지고 기술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초끈 이론이 10차원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4차원이라는 점이죠. 여분의 6차원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가장 어려운 문제인데요. 차원을 줄이는 방법이 너무나 많다 보니까. 애초에 모든 것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설명이라고 시작한 초끈 이론에 너무 많은 결과가 나와서 현실 세계를 설명하는 데 무리가 있다고 보이게 되었습니다.
끈 이론에 위기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이게 두 번째 위기입니다. 저도 그 위기를 못 넘기고 그만두게 되었는데……. 초끈 이론을 공부하면 보통은 다들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합니다. 내가 만들어낸 단 하나의 방정식으로 이 모든 것을 설명하리라. 그런데 여분 차원을 없애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방법이 존재하는 거죠. 누가 맞는다고 확신을 할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끈 이론을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야기가 많았고요.
이명현(사회자): 코에다 붙이면 코걸이, 귀에다 붙이면 귀걸이란 말씀이신 거죠.
어쨌든 우리가 4차원으로 인식하게끔 차원을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로 보이는데. 그중에 가장 전형적인 방식을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연중(숨겨진 우주): 가장 쉬운 건 마는 겁니다. 동그랗게. 펼쳐진 종이를 점으로 이렇게 말아 버리면 차원이 하나 없어지잖아요? 마찬가지로 여섯 개의 차원을 동글동글 정말 작게 말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잘 말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인데요. 중요한 점은 그냥 말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만들어진 4차원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기술하는 이론이 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얄밉게도 오른손잡이를 차별하는 세상입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왼손잡이가 차별을 받는데.
하지만 굉장히 작은 세상으로 가게 되면 오른손잡이가 차별을 받게 됩니다. 약력이란 것은 오른손잡이 입자는 느끼질 못해요. 왼손잡이 입자만 약력을 느낍니다. 우리가 사는 작은 4차원의 세상은 왼쪽과 오른쪽을 구별하는 세상입니다. 동그랗게 말듯이 말아 버리면 그런 세상을 만들 수가 없어요. 그래서 4차원에서 왼쪽과 오른쪽을 기술할 수 있고 여러 가지 힘을 기술할 수 있는 대칭성을 가진 이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굉장히 특별한 방법으로 여섯 개의 차원을 소거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칼라비-야우 다양체라는 방법입니다. 그 방법을 도입하면 6개의 차원을 줄일 수가 있죠.
문학 속 여분 차원
이명현(사회자): 그러면 이쯤에서 김창규 작가님의 상상력에 한번 여쭈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차원이 그렇게 말려 있다고 하면 작가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김창규(플랫랜드): 일반 과학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면 차원이 숨어 있다는 건 보통 ‘다른 세계가 숨어 있다.’로 연결하기가 쉽죠. 저희하고 똑같은 모습은 아니겠지만 안 보이는 숨겨진 세계에 나름의 지적 활동이나 정보교환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 산다. 이렇게 가정하고 그 사람들 이야기를 그리려고 할 테고 그것보다 더 하드 SF로 나간다면 그게 우리 차원으로 내려왔을 때 저희는 일상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던 것 중 몇몇이 사실은 저쪽에서는 전혀 의미가 다른 활동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가져갈 수 있겠죠.
이명현(사회자): 실제로 그렇게 소설화된 적이 있나요?
김창규(플랫랜드): 『왕의 카펫』이라는 과학 소설이 있는데요. 지금 저희가 사는 세상에서 원생동물을 하나 발견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저희가 사는 세상에 비친 단면으로 볼 때는 원생동물이지만 실제로는 저급한 원생동물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 사는 엄청나게 고등한 생물을 우리 차원에서 본 단면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보다 훨씬 더 넓은 곳을 볼 수 있고 아마도 우리와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그런 생물이 존재했는데 단면이 원생동물이었다.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명현(사회자): 다른 차원의 존재와 단면 이야기가 나오니까 이제 플랫랜드로 이야기가 넘어가도 될 것 같네요. 청중분들께 플랫랜드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좀 부탁드립니다.
2차원 평면 세계 이야기
김창규(플랫랜드): 이 책의 성격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스퀘어 자신이 경험한 여러 차원의 세계에 대해 회상하는 『걸리버 여행기』 류 우화, 풍자 소설입니다. 풍자를 드러내 놓고 전면에 내세운 게 아니라 2차원 세계라는 조형 안에 상당히 잘 녹여내서 숨겨 놨다는 점이 미덕으로, 집중해서 읽어야만 진가를 알아보도록 한 상당히 잘 쓴 소설입니다.
평면에 존재하는 2차원 세계 속 사람들을 다각형으로 표현해요. 다각형의 변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정 8각형 보다는 정 10각형이 더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입니다. 변이 무한히 많은 원은 최상위 성직자와 집권층을 담당하고 있고요. 정다각형에서 벗어난 형태들은 일종의 돌연변이나 혹은 장애인 취급을 받아요. 그래서 결혼했을 때 정다각형이 아닌 자손이 나오는 게 문제가 되고 태어날 때부터 어떤 계급에 속할지 정해지는 세상이고요. 최상위에 속한 원들은 아예 직접적으로 “형태로 사람을 규정해야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의지라던가 정신으로 규정하면 안 된다.”라며 세상을 아예 못 박아버리려는 대사까지 합니다.
타고난 형태가 존재를 규정하다 보니 어떻게 해서든 정다각형에 가깝게, 요즘 식으로 하면 성형 수술을 받아서 지위를 올리려고 하는 부류가 있고요. 또 하나는 2차원 평면 위라면 사람의 시야도 평면에만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팔각형이라는 것을 옆에서 보면 잘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변에 모서리가 만나는 수에 따라 달라지는 원근을 정밀하게 판단해서 신분을 가리는 방법을 귀족일수록 잘 교육받아서 잘 가리는 식으로 되어 있고요. 그렇게 딱딱한 세계입니다. 당시의 빅토리아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한 것이죠.
이명현(사회자): 자식을 낳아서 각이 늘어날수록 집안의 신분이 상승하는데 한쪽이 튀어나온 도형이 나오면 그걸 비관해서 죽기도 하고. 성형 이야기 말고도 사기 결혼도 나왔죠? 원근을 잘 판단해야 정다각형을 만날 수 있는데 자세나 거리를 바꿔서 사기를 치는.
김창규(플랫랜드): 중간에는 잠깐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각 변에 색깔을 칠해 놓으면 굳이 귀족들만 교육을 받는 원근 관찰법을 배우지 않아도 색깔만 가지고 쉽게 알 수 있지 않나. 그렇다면 계급 자체를 가르는 유일한 차이라고 할 수 있는 원근 관찰법을 없애 버리고 이 기회에 더불어 계급도 없애 버리자는 혁명이 일어날 뻔했으나, 아마 국내 현대사에서도 비근한 예를 찾을 수 있겠지만 색칠을 속여 버리면 어쩔 거냐는 의문을 상류층에서 던져서 혁명이 와해됩니다
우리 세계도 다차원의 단면이 아닐까?
이 소설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3차원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당시 사람들에게 다각형들이 사는 세계의 모습은 어떻겠느냐는 형식을 통해서 2차원 세계가 3차원 세계의 단면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추론을 우리 세계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더 쉽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쉽게 설명했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인 스퀘어는 그래도 자신이 플랫랜드에서 꽤 폭넓게 사물을 보고 나름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어느 날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환각 상태에서 3차원 세계의 사람, 입체인 사람과 접촉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2차원이 평면이고 3차원이 입체라고 하면 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잘린 단면밖에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열린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스퀘어도 결국은 이 사람이 입체라는 사실을 이성적으로는 끝끝내 못 받아들여요. 하지만 여기선 환각이라는 편리한 장치를 가져와 실제로 스퀘어를 들어올려서 3차원 세계가 어떤지 보여 주지요.
그다음에 이제 연이어서 라인랜드라고 하는 자기보다 낮은 단계, 직선밖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도 주인공이 겪어보게 됩니다. 자기보다 넓은 세계와 자기보다 좁은 세계를 보아 현실적으로 접할 수 있는 모든 세계를 다 보고 두루두루 여행을 마쳤다고 생각하는 순간 스퀘어가 깨닫는 것은, 3차원으로 자기를 들어내서 깨달음을 주었던 멘토 역시 3차원밖에 상상을 못하고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소설 거의 끝 부분에 3차원보다 더 상위 차원이 나오는데 아마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5, 6, 7차원 세계가 어떤지 설명을 못 해요 작가가. 비유로도 못 만들어내고. 하지만 독자는 읽으면서 5, 6, 7 상위 차원의 존재를 느끼고 일종의 득도랄까요? 깨달음을 얻게 되죠.
두 책의 관점을 비교해 보면 『숨겨진 우주』와 초끈 이론에서 말하는 여분 차원은 실제로 존재하는 차원이 수학적으로 돌돌 말려서 우리가 살고 있는 4차원에서는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다는 것인데. 『플랫 랜드』의 2차원 평면 세계에서 사는 주인공 스퀘어에게는 여분의 1차원이란 ‘없는’ 차원입니다. 중간에 3차원을 경험하긴 하지만 그는 입체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성적으로는 끝끝내 못 받아들여요. 하지만 3차원에 사는 독자는 이해할 수 있지요. 『플랫 랜드』는 문학적으로 작중의 2차원 세계를 통해서 독자가 ‘우리 세상에도 인지할 수는 없지만 더 상위 차원이 존재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보게끔 쓴 책이고 차원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 차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명현(사회자):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 된 것 같은데요. 김연중 박사님께서 『숨겨진 우주』가 가지는 의미를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차원이 열쇠다
김연중(숨겨진 우주): 사실, 이 책은 초끈 이론에 대한 책이 아닙니다. 차원을 축소하는 방법도 별로 안 나옵니다.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여분 차원이라고 하면 초끈 이론에서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10의 -33승 센티미터라는 플랑크 스케일, 굉장히 작은 것만 생각하고 있는데 그 길이가 무한할 수도 있음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여분 차원이 반드시 작을 필요는 없고 무한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랜들은 초끈 이론이 맞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랜들이 이 책을 쓰면서 4차원 이상의 5차원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되고 또 거기에 살고 있는 막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데 그 막이라는 여분의 차원과 막이라는 개념이 초끈에서 이미 존재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갖다 쓴 겁니다. 우리는 보통 차원을 굉장히 고정된 것으로 여기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3차원에서 살고 있으면 무조건 3차원에서 살고 있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요. 물리학을 보면 차원이란 게 항상 고정된 것이 아니고 차원이란 것도 우리가 움직일 수 없는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랜들이 최종적으로 이야기하려던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차원의 개념을 확장하는 작업을 물리학자들이 지금 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분 차원이라서 반드시 작을 필요도 없고, 차원이라고 해서 반드시 뭔가가 움직이는 그런 공간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고, 차원이 뭔가 움직이는 배경을 벗어나 물리적인 현상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중요한 키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왜 중력은 약한가? 우리가 알고 있는 나머지 세 가지 힘보다 왜 약한가? 계층성 문제라고 불리는 이것을 차원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 뜻에서 랜들이 아마 이 책을 쓰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명현(사회자): 오늘 김연중 박사님이 말로 설명하시려다가 “아. 방정식으로 쓰면 바로 해결되는데.” 라며 괴로워하시는 현장을 잘 보셨지요?(웃음)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를 했고요.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저도 기자 분들이 “1분 안에.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과학 주제에 관한 글을 써 달라.” 이런 이야기 들으면 막 화가 납니다. 지난 4월에는 한국물리학회에서 물리학자 4분에게 “나는 힉스다”라고 힉스를 설명하는 경연을 중학생 대상으로 하는 등 이래저래 물리학자에게 괴로운 세상이 온 것 같습니다. 실체를 잡기 굉장히 힘든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좀 깊이 내려가서 정리는 잘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요.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방정식을 풀어 보는 단계까지 고지를 점령해야겠지만 어쨌든 일상의 용어로 노력을 많이 해서 설명해 주셨고요. 또한 이것이 작가에게 어떻게 상상력을 발휘할 소재가 되는가를 살짝 엿봤으니까 아마 이번 계기를 통해서 김창규 작가님이 여분 차원에 대한 소설을 쓰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긴 시간 동안 어려운 이야기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 선생님들께 박수를 보내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우주
이 세상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일까?
6월 책 대 책 대담회는 얼핏 듣기엔 철학의 소관일 것 같은 이 질문을 문학과 물리학이 던졌을 때 얼마나 놀라운 결과들이 나오는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과 속물 근성을 풍자하려 했던 한 교육자가 차원 개념을 사용한 순간 『플랫랜드』는 영화, 애니메이션, 컴퓨터게임 같은 수많은 문화 콘텐츠로 다시 태어나는 생명력을 얻었다. 원자보다도 작거나 또는 엄청나게 크지만 괴상망측하게 비틀려 있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고차원 세계는 물리학에 우주를 통제하는 중력의 원천을 알려 주었다. 청중들은 물리학자의 탐구 대상이 이제 우주를 넘어 다른 차원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 다른 차원과 다른 세계가 과학 이외의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할 수 있었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이 그러했던 것처럼 앞으로 인류의 세계관을 뒤엎어 놓을 ‘차원’이 다른 사유에 흠뻑 빠졌던 6월 책 대 책 대담회는 청중들의 박수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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