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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경 같은 과학자의 눈으로 본 우리 문화, 우리 살림 본문
미생물학의 권위자, 경북대 명예 교수의 타이틀을 단 과학자 이재열 교수님의 새 책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표지에 갓이 딱 그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제목은 “살림의 과학”, 부제는 “과학자가 풀어 주는 전통 문화의 멋과 지혜”라니! 『보이지 않는 권력자』로 미생물학 교양화의 테이프를 끊은 이재열 교수님이 전통 문화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시는지, 그 사연과 그 뒷이야기를 살짝 엿볼 수 있는 추천의 글을 ㈜사이언스북스 독자에게 살짝 공개합니다. 고대 백제 연구의 대가인 김기섭 전 한성 백제 박물관 관장님의 글입니다. 함께 읽어 주십시오!

과학은 자연 현상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다. “과학은 체계적으로 사고하겠다는 약속이며 가설을 검증하고 사실을 관찰함으로써 우주를 설명하고 지식을 쌓아 가겠다는 맹세”(아툴 가완디(Atul Gawande))라는 멋진 말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 이재열 선생님은 영락없는 과학자이자 과학의 보편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학 스토리텔러, 과학 이야기꾼이다.
나는 진작 그의 책 『보이지 않는 권력자: 미생물과 인간에 관하여』(사이언스북스, 2020년)를 읽으며 그의 뛰어난 이야기 솜씨를 알아봤지만, 그 범위가 이토록 넓고 깊은 줄은 미처 몰랐다. 하기야 반백년 가까이 현미경 속 우주를 관찰하며 과학 연구와 교육, 보급에 애써 온 저자에게는 맨눈으로 보고 몸으로 직접 겪은 옛날 집이며 옷이며 각종 살림살이에 담긴 과학 원리를 보따리째 풀어놓는 일이란 품 적게 드는 재미, 취미(道樂)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십수 년 전 내가 서울의 공립 박물관에서 학예 직원으로 근무할 때 이재열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대학 교수 정년을 코앞에 두고 삼국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통일신라)의 토기와 도기 160여 점을 기증하셨는데, 유물의 종류, 제작 시기, 지역, 형태, 기능 등에 공통점이 분명해서 그냥 사 모은 골동품이 아니었다. 참 안목이 높고 세심한 분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뒤 몇 해가 지나 내가 박물관장이던 시절에도 토기 150여 점을 기증하셨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고심하며 수집한 흔적이 역력했다.
이미 『토기: 내 마음의 그릇』(주류성, 2018년)이라는 책을 저술한 전문 수집가임을 나는 그때에야 알아챘다. 차분하고 겸손한 말투와 신중한 처신에 가려진 압도적 저술 실행력은 그가 평생 연구한 바이러스의 그것을 닮은 듯했다.
이 책 『살림의 과학』은 전통 한옥의 외형과 구조를 묘사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왜 오늘날 많은 이들이 한옥을 자연과 어우러진 여유로운 공간이라고 하는지, 한옥의 담장 모습과 ‘삐걱’ 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설 때 펼쳐지는 풍경을 통해 설명하는데, 생활 속에서 경험하지 않고서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시각이 흘러넘친다.

집안 살림살이 중 가장 흔한 각종 그릇을 관찰하고 묘사한 솜씨는 고미술 전문가에 가깝지만, “음식을 익히기 위한 조리 방법과 미생물의 침입을 막기 위한 저장 방법은 따지고 보면 한 뿌리”라면서 그릇의 기능에 주목하는 것은 아무래도 저자가 유기 물질 분석에 익숙한 과학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천일염을 섭씨 700도 이상에서 구워내면 수소 이온 농도(pH)가 8.75에서 10.53으로 바뀐다며 소금 제작 과정을 설명하는 방식이라든지 식초의 초산 발효 과정을 화학식으로 나타내며 알코올이 같은 분량의 식초로 변하는 과정을 설명한 방식도 세밀한 근거에 입각해서 사물을 체계적으로 고찰해 온 과학자의 글쓰기 버릇일 것이다. 장르는 분명 에세이인데, 글마다 근거를 자연스레 밝힌 점과 맨 뒤에 참고 문헌을 쭉 늘어놓은 점도 과학자의 습관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근거에 집착하면 이야기가 건조해지기 쉽다. 그런데 저자의 설명을 읽노라면 글에서 감칠맛이 느껴진다. 여러 종류의 전통 그릇을 꾸준히 모으고 관찰한 경험 때문인지 어떤 그릇의 생김새와 상태를 묘사한 글을 읽노라면 그 그릇이 마치 눈앞에 있는 듯 모양이 그려진다. 묘사 방식이 일품이어서 첨부한 사진과 대조하며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참 현미경 같은 과학자이다.
개인적으로는 「3부 안방으로」에서 애기 병풍 이야기, 그리고 「4부 대청으로」에서 소반 이야기와 반닫이 이야기를 읽으며 더욱 글의 감칠맛을 느꼈다. 골판지에 컬러 인쇄 화조도를 붙인 애기 병풍이라니! 읽는데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그걸 만들고 사용한 이가 몹시 궁금해졌다.
소반 이야기는 나주반, 통영반을 비롯해서 조선 팔도의 소반들이 닮은 듯 다르고, 다른 듯 닮은 점을 나무 재질과 함께 세밀히 살핀 점이 흥미를 북돋웠다. 반닫이 이야기도 지역별 특징과 그 배경 이야기를 읽노라니 문득 하나 장만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졌다. 모두 저자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에 홀린 탓이리라.
1부 「집으로」의 처음 몇 페이지를 펼쳤을 때는 마치 지식이 퐁퐁퐁 샘솟아 졸졸졸 흐르는 지혜의 샘 앞에 선 기분이었다. 그런데 6부 「마당으로」에 들어설 즈음에는 어느덧 물결이 잔잔한 지혜의 호숫가를 한가로이 산책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문득 최근 우리 한반도의 한쪽 지역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다른 한쪽은 극심한 폭우에 시달리면서 생기는 각종 사고와 환경 변화를 걱정하는 마음이 일었다. 아무래도 “체온이 올라가면 병에 걸리듯, 기온이 올라가면 생태계도 병든다.”라는 저자의 일갈이 어느새 내 가슴 한쪽에 자리 잡은 모양이다.


김기섭
전 한성 백제 박물관장, 전 경기도 박물관장. 저서로 『21세기 한국 고대사』, 『박물관이란 무엇인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백제와 근초고왕』 등이 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미생물학자의 전통 문화 읽기 스테디셀러 『담장 속의 과학』 후속편!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바꾼 세균, 바이러스의 흥미진진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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