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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대 책 대담 (15) 「리제 마이트너」 vs. 「마리 퀴리」 본문
책 대 책 11월 20일자 대담(제15회)
과학자로서, 동시에 여성으로서
「리제 마이트너」 vs. 「마리 퀴리」
과학의 역사에서 이정표가 되었거나 과학 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책을 중심으로 인물 대 인물, 이론 대 이론, 명강의 대 명강의 등 두 권의 책을 비교 분석하는 <책 대 책>. 그 열두 번째 대담회가 APCTP(아태이론물리센터)와 사이언스북스 공동 기획·주관으로 지난 11월 20일(화) 오후 7시 민음사 5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두 책의 서평 보기(클릭)
"여기는 대학교이지, 대중목욕탕이 아니오." 이 말은 20세기 초 여성 수학자 에미 뇌터를 사강사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독일 괴팅겐 대학교 교수진에 던진 수학자 다비드 힐베르트의 일갈이다. 이는 수학뿐만이 아니라 당시 과학계 전반에 해당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렇게 과학이 아직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시절을 살아가며 핵분열 이론 완성과 방사선의 발견이라는 업적을 남긴 두 여성 과학자가 있으니, 바로 리제 마이트너와 마리 퀴리이다. 11월 책 대 책 대담회에서는 그 빛나는 업적에도 상반되는 궤적을 걸어간 두 여성 과학자의 삶을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두 여성 과학자를 통해 들어 보고, 후대에 시사하는 의미와 영향을 알아보았다.국제천문올림피아드 소속 정경숙 박사가 『리제 마이트너』, 송기원 연세 대학교 생화학과 교수가 『마리 퀴리』의 서평을 쓰고 대담자로 나섰으며 조아라 고려 대학교 과학기술연구소 연구원이 사회를 맡았다. 대담자와 사회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 후, 본격적인 대담이 시작되었다.
조아라(사회자): 오늘은 마리 퀴리와 리제 마이트너에 관련된 책 두 권을 가지고서 대담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양쪽에는 각각 마리 퀴리와 리제 마이트너 책의 서평을 맡으신, 송기원 교수님과 정경숙 박사님이 계십니다. 먼저 두 분께서 이 책들의 만들어진 의도라던가 목적,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시고 더 구체적으로 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송기원 교수님부터 부탁드립니다.
송기원(마리 퀴리): 안녕하세요. 저는 맨 처음 왔을 때 여기엔 어떤 분들이 오실까 생각했는데, 실제 뵙게 되니 반갑습니다. 주최 측이신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요(웃음). 사실은 서평 요청이 들어왔을 때 미국에 있어서 어떤 의도로 서평을 쓰고 대담회를 하는 건지도 잘 몰랐어요. 제가 사실 생화학을 전공한 사람이라 물리학 전공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서평을 쓰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떠나기 전에 몸이 아프고 굉장히 힘들었던 시절이 있어요. 그때 이 책은 아니고 마리 퀴리의 딸이 쓴 평전을 아버지께서 생일 선물로 주셨거든요. 내용이 저에게 굉장히 와 닿아서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내가 서평을 써야 이 빚을 갚겠구나 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실은 물리학에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입니다. 물리학을 참 못했어요. 양자 역학 공부하다가 운 적도 있어요. 도서관에 앉아서 울었어요. 양자 역학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방사선을 발견해서 원자에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인 마리 퀴리의 책을 설명하는 일에 맞는 사람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자의 의도는 마리 퀴리의 조금 어두운 면들을 다 부각하면서 실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이해시키려고 했던 것 같아요. 너무 훌륭한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 삶에 도움이 안 되잖아요. 이 책은 그런 것들을 떠나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주면서 그러면서도 굉장히 집요한 과학자로서 마리 퀴리를 만날 수 있게 하는 책인 것 같습니다.
정경숙(리제 마이트너): 마리 퀴리는 여러 사람에게 알려졌잖아요? 여성 과학자이고 특히 두 번이나 노벨상을 받은 전대미문의 화학자이자 물리학자인 것에 반해 이 책의 주인공인 리제 마이트너는 연구 업적 면에서 봤을 때에는 마리 퀴리와 버금가지만 그럼에도 상반되는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저도 그녀를 잘 알지 못하다가 이 책에서 많은 부분을 배웠습니다. 『마리 퀴리』처럼 이 책 역시 리제 마이트너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궤적을 따라가면서 과학적인 업적보다는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살아간 순간과 관계들에 주목한 책입니다.
조아라(사회자): 위인전 하면 우리가 연상하는, 업적을 중심으로 서술한 책이 아니라 인간적인 과학자가 겪게 되는 어려움과 얻어낸 성과들을 잘 보여 주는 책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대담회를 하는 이유에 어느 정도 두 사람의 업적이 기여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이 얻어낸 업적을 이야기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두 분 선생님께 두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송기원(마리 퀴리): 원자라는 단어 자체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렇게 안정하다고 생각했던 원자에서 방사능이라는 에너지가 방출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람이 마리 퀴리입니다. 방사능이라는 게 화학 반응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원자의 고유한 성질이라는 것을 밝혔죠. 어떻게 보면 원자 물리학이20세기 초에 태동하는 문을 열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코페르니쿠스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할 수 있고요.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분리하는 기술을 처음으로 개발해서 라듐을 분리한 업적이 있습니다. 또 우리가 방사능의 단위를 퀴리라고 쓰잖아요. 방사능을 표준화하고 인류를 위해 이용하는 데 공헌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정경숙(리제 마이트너): 마리 퀴리 이전 서구의 물질상이란 원자라고 하는 게 자체가 쪼개지지 않는 기본적인 입자라고 하는 것인데 1890년대에 뢴트겐이라는 사람이 뢴트겐선, 엑스선을 발견하면서 이렇게 강력한 에너지의 방출 이면에는 물질이 뭔가 엄청난 비밀을 품고 있는 게 아닌지 사람들이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입자 자체에 의문이 대두하게 된 거죠. 마리 퀴리의 작업도 그런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이었거든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는 업적을 이룬 사람이 리제 마이트너입니다.쪼개지지 않는 최소의 단위라고 믿었던 원자의 중심에 핵이 있고 그 핵 주변에 전자가 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겁니다. 나누어질 수 없었던 것이 나누어질 수 있다는 세계관의 변화를 구체적, 이론적으로 입증했다고 볼 수 있죠.
조아라(사회자): 리제 마이트너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한다면 또한 핵분열의 메커니즘 규명을 들 수 있겠죠.핵분열이 일어날 때 질량에 손실이 생기거든요. 원자가 분열할 때 손실된 질량이라고 하는 것이 광속의 제곱이 곱해져서 엄청난 에너지를 갖게 된다. 원자탄이 핵분열을 기본으로 하는 거잖아요? 이 사실을 이론적으로 계산해 낸 사람이 그녀입니다. 독일의 오토 한이라는 연구자가 이것을 규명했지만 실질적으로 계산한 사람이죠.
이 두 사람 다 핵물리학을 전공했고 물론 마리 퀴리가 시대적으로 조금 앞선 인물이기는 하지만 비슷한 시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제 이야기하려는 것은 이렇게 위대한 업적에도 이 두 여성 과학자가 많은 차별과 배제를 받았다고 하는 거죠. 많은 좌절과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에 인간적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두 분 선생님들께 마리 퀴리와 리제 마이트너가 겪은 차별과 어려움이 무엇인지 먼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이 과학 내부에서 원유했는지 아니면 어디서 온 것인지에 대해서도 같이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송기원(마리 퀴리): 어쨌건 이 사람들이 자신의 업적에 걸맞은 세속적인 영광을 누렸건 못 누렸건 간에 한 사람의 학자로서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나는 순간을 볼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굉장한 희열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평가라는 것은 결국 항상 외부인이 하게 되어 있는 거잖아요. 저는 마리 퀴리가 차별을 많이 받았던 과학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첫 노벨상을 자기 남편이랑 베크렐이랑 같이 셋이서 받는데 그때 이미 라듐이나 폴로늄을 발견한 상태였어요. 사람들이 그런 것을 금방 수용을 하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그것은 퀴리가 여성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주류가 갖고 있던 과학에 대한 생각 탓일 수도 있어요. 지금도 과학은 주류가 아닌 연구에 대해서 굉장히 냉담하거든요. 패러다임에 대해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면 받아들여지지 않아요.또 한 가지는 과학자가 소수자일 때 또 달라요. 저도 한국에 있을 때와 미국에 있을 때 리뷰 수가 다르거든요.외국인이냐 아니냐 이런 것에 대해서도 영향을 받습니다. 과학은 사실을 다루는 학문으로 굉장히 객관적이지만 데이터가 신빙성을 갖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냐의 단계에서는 항상 어느 시대나 그런 문제가 공존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과학 외적이다 내적이다 딱 잘라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마리 퀴리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경숙(리제 마이트너): 저는 그 부분에서 약간 생각이 다른데요. 결과론적으로는 마리 퀴리나 리제 마이트너나 인생 궤적이나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아주 극명하게 구분이 되는데 그럼에도 내용 면에서는 마리 퀴리나 리제 마이트너나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었어요. 책을 읽으면서 공통점이 많은 두 사람이었구나 생각했는데 박사 학위를 받게 되는 과정이나 자기 연구를 꾸려 나가기 시작하는 과정이 너무나 판박이처럼 똑같아서 너무나 놀랐어요. 그것도 거의 동시대에.
마리 퀴리가 폴란드에서 프랑스로 가면서 외국인이 되었잖아요. 마찬가지로 리제 마이트너도 오스트리아에서 독일로 가면서 외국인이 되었죠. 과학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지만 사회 외적인 영향이 있게 되고 거기다가 여성의 사회 활동이라고 하는 것이 전면적으로 차단되거나 굉장히 제한적이었던 상황을 똑같이 경험했다는 것이죠.
마리 퀴리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 노벨상 받을 때 나온 이야기가 이 사람이 한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석 달 열흘 동안 다 쓰러져 가는 실험실 옆에서 불을 때고 정련한 것뿐이다. 피에르 퀴리의 조수일 뿐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리제 마이트너도 들었습니다. 오토 한의 조수일 뿐이다. 결과적으로는 노벨상을 받음으로써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고 삶의 궤적이 달라지면서 평가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용적으로는 똑같았다는 거죠.그들이 살았던 사회와 시대를 둘러싼 제약이 굉장히 엄청났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저는 보았습니다.
송기원(마리 퀴리): 선생님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과학 분야에서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이 과학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과학을 했지만 예외가 아니었다는 것으로 저는 이해를 했어요.
조아라(사회자): 두 분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들의 삶에는 여성, 그에 앞서서 외국인이라고 하는 소수자로 겪은 어려움이 존재하는 동시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면서 주류 과학계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부분도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지적할 부분은 마리 퀴리는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고 하는 거예요. 한번 고민을 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이 차이는 어디에서 기원한 것일까 하는 이야기를.
정경숙(리제 마이트너): 일단 두 사람이 노벨상 수상 후보에 오른 횟수는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리 퀴리는 수상을 했는데 리제 마이트너는 받지 못한 이유는 조력자의 유무이죠. 리제 마이트너 같은 경우에는 히틀러 정권이 들어서는 1933년부터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교수 자격을 박탈당해도 떠날 생각을 안 하면서 내놓은 논문의 수라고 하는 것이 엄청나요. 교수 자격이 박탈되어도 연구 활동을 이어 나가면서 베를린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그녀의 연구의 장이 베를린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인데 문제는 노벨상에 천거되면 평가를 듣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독일이라고 하는 국가적 차원에서 유대인이기 때문에 제외를 시켰죠. 물론 마리 퀴리도 당연스럽게 된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프랑스 아카데미까지 나서서 남편의 업적이라며 반대를 하기도 했는데 상대적으로 비교해 보면 리제 마이트너는 그녀의 업적을 사회가 인정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조력자가 없었다. 즉 그녀가 속해 있었던 환경적인 정치적인 배경이 최악의 조건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송기원(마리 퀴리): 우리가 노벨상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듭니다. 마리 퀴리는 한 15년 정도 먼저 경력을 시작한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그 15년이 지나면서 리제 마이트너 시대에는 원자 물리학의 패러다임이 정립되어 가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첫 번째 노벨상은 뢴트겐이 받았다고 아는데 퀴리는 세 번째거든요. 그때 노벨상이 권위 있는 상이었다고는 생각이 안 들어요. 사실은 이 사람들이 시상식장에도 가지 않아요. 상금은 많으니까 물론 좋아했겠지만 큰 의미를 두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생긴 지 3년밖에 안 된 상이고. 또 한 가지 마이트너와의 차이점은 퀴리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남편도 굉장한 조력자였고 시아버지는 애들을 다 봐 주거든요. 아이 둘을 키우는데 거의 방치 수준이에요. 엄마로서는 빵점이었던 것 같은데.운이 좋은 사람이었고 노벨상을 받은 것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거꾸로.
조아라(사회자): 그런데 지금은 과학계 여성 과학자 수가 증가했는데 아직도 물리학계 내에서 여성과학자의 숫자는 굉장히 적다고 하는 거죠. 전 세계적인 상황을 봐도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 여성 과학자는 두 명밖에 되지 않거든요. 100년의 역사가 지났음에도 왜 여성 과학자 숫자가 적은 것인지 한번은 그것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송기원(마리 퀴리): 제가 몸담은 생물학계는 여자가 많아 보이는 대표적인 학과이지만 사실 많지 않거든요.자기 고유의 연구실을 가지고 있는 과학자를 학자라고 본다면, 대학원생이 연구자가 되는 비율을 볼 때 물리학이 더 적다고는 생각이 안 드는 거예요. 분야를 불문하고 여성이 과학자로서 뿌리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보여요. 문제는 물리학에는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다른 분야보다는 적거든요. 그런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보통 수학을 싫어한다 과학을 싷어한다 말을 하는데 그게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아서 그런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토양을 제공하지 못하는 환경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요.
정경숙(리제 마이트너): 일반적으로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경향이 학계에도 투영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리학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그래서 처음부터 흥미를 갖지 않는 것이죠. 여성이건 남성이건 수련 기간이라고 하는 것이 길게 되는 것이고 그 긴 기간 동안 사회적으로 어떻게 서포트를 받고 있는지 보면 평가가 냉혹하게 내려지고 있거든요.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고 전 세계적인 문제이고 여성에게는 거기에 플러스 출산과 양육이라고 하는 부분이 더 들어가기 때문에 본인이 아무리 열정을 가지고 있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되는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사회 제도적인 환경에 더해 학계에서 일어나는 독특함에 의해서 그런 일이 더 심화되는 것 같습니다.
조아라(사회자):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것은, 이 어려움이 100년 전과 동일한 건가요? 교육, 양육, 출산의 측면에서 정말 리제 마이트너나 마리 퀴리도 그런 식의 어려움을 겪었는지, 현재 여성 과학자들은 또 다른 종류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선생님들이 보시기엔 21세기 여성 과학자의 삶은 여전히 같다고 보는지, 조금의 뭔가가 있었는지, 왜 그런지에 대해서 의견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정경숙(리제 마이트너): 개인적으로는 리제 마이트너나 마리 퀴리의 시대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을 했다고 생각해요. 심지어는 제가 여러분 앞에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증거이죠. 하지만 그렇게100년의 세월이라는 것을 지나면서 많은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에도 여전히 어려움이라고 하는 것은 남아 있는데 이것은 사회적으로 여성이 가진 어려움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결혼을 하건 가정이 있건 있지 않건 간에. 예를 들어 마리 퀴리는 가정을 서포트를 해 주었던 사람이 있었잖아요. 해 줄 수 있었기 때문에 퀴리가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그런 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보면 사회 전반에 걸쳐서 굉장히 가시적으로 많이 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먼저 한 가지고. 두 번째는 여성에게 굉장히 많은 진화, 혹은 변화라고 하는 부분이 주어지기도 하고 쟁취된 이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기대감이라고 하는 것이 같이 부여된 거죠. 이 정도의 환경이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당신에게 이만큼 기대한다는 사회적 압박감 부담감이라고 하는 것이 마리 퀴리의 시대에 비해서 사회적인 활동 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 것 같아요. 동전의 양면처럼 한 가지는 획득했지만 그것에 의해서 다른 문제를 마찬가지로 가져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돼요.
송기원(마리 퀴리): 제가 생각하기에는 지금으로부터 한 30년이나 40년 후에는 과학은 전부 여자 아니면 외국인이 하는 학문이 될 거예요(웃음). 사실은 20세기 초나 중반에 일어난 지식의 폭주는 다른 세기와 비교해 봐도 굉장히 큰 변화라고 생각돼요. 그런데 과학을 하는 그룹이 항상 보면 초기에는 지식이 태동하고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나고 굉장히 학문이 번성하는 시기에서 주류 세력이 들어간다는 거예요. 누구입니까. 백인 남자잖아요. 그러던 것이 이제는 길 가는 사람 잡고 자녀가 어떤 직업을 갖기를 원하십니까 물었을 때 과학자라는 사람을 10명 중 1명 만난다면 굉장히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미국에서도 유수 대학교의 학과들이 문을 닫고 있어요. 학부 졸업생이 4명 5명이고 그렇습니다. 미국의 명문 대학들이 그래요. 사회 주류가 더 이상 과학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주류가 떠난 틈을 메우는 것은 항상 비주류고 비주류는 여성이나 외국인이기 때문에, 저희 학과의 대학원생이 70퍼센트 이상 여자에요. 아니면 외국인이에요.
그런 면에서 저는 꼭 과학에 여성이 늘어나야 하는 가란 질문 자체에 의문이 있어요. 더 이상 과학이 주류가 아닌 학문으로 쇠퇴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저희가 어찌 이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보다 나쁘다고 불평을 하겠습니까. 마이트너 같은 경우는 책상 밑에 숨어서 강의를 들었다니까. 사회가 변했기 때문에 과학계도 변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저는 여성이라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가 힘듭니다. 마리 퀴리나 리제 마이트너가 가졌던 고통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시대가 다르니까. 어려움의 강도나 이유가 달라지는 거죠.
제가 굉장히 심각하게 느끼는 것은 21세기 과학이 거대 과학으로 가고 있거든요. 돈과 인력이 투입되는 방법으로 상대적으로 과학이 발전해 가고 있는 거예요. 과학이 거대해지면 정치적인 입김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물량이 투입되기 위해서는 결국은 그것이 세금이나 돈이 들거든요.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과학자가 아니라 정치가 되는 것이고 정치가랑 친한 사람들은 여자들이 아니에요. 일반적으로. 요즘은 연구를 커다란 그룹을 만들어서 하는 쪽으로 과학을 가지고 가고 있어요.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가고 있는데 그런 그룹에 들어가기가 여자들이 상당히 어렵다는 거죠.
조아라(사회자) : 또 하나 질문을 드리고 싶었던 것은 사실 왜 여성 과학자 수가 적을까에 대한 연구는 60년대부터 진행되어 왔거든요. 그 중의 한 설명인데 과학 자체가 굉장히 남성적이라는 설명을 해요. 연구를 할 때에도 연구 대상과 나를 철저히 분리하는, 연구 방식에서 객관성을 담보했다고 하는 그런 것들이 다 남성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성은 관계를 굉장히 중요시하잖아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무언가를 이해하지만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 과학의 연구 스타일이 남성들의 ‘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 대상과 나를 분리시켜 이해하는 방식’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하는 거죠. 리제 마이트너와 마리 퀴리를 보았을 때 과연 이것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송기원(마리 퀴리): 학문이라는 건 문학 작품의 어떤 창작이 아닌 다음에는 객관적인 사실과 그것에 대한 객관적인 질문과 비판을 통해서 학문이라는 게 성립이 되는 거잖아요. 저는 남성적이다 여성적이다를 붙이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져요. 과학 연구도 다른 연구와 마찬가지로 진리라고 믿었던 것이 변하잖아요. 시간이 가면. 거기서 객관적인 방법의 실험이나 숫자나 이런 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증명하면서 연구하는 건데 거기에 특별히 여성성이나 남성성이 관여하지 않는다고 보거든요. 사람이다 보니까 학문하는 방법 속에서 남성성이나 여성성이 다르게 나타날 수는 있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정경숙(리제 마이트너): 남성적이라는 말이 표현하는 것이 헤게모니하고 연결이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 원동력이 되는 세력이 대부분 역사 이후로 굉장히 불평등한 부분이 많고 많은 부분이 남성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기 때문에 남성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헤게모니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생각하고요. 그리스 이후로 여전히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던 사람들은 남성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방식과 내용이 계속 전수되면서 그것이 기본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제시되어 왔기 때문에 남성적 스타일이라고 하는 것이 헤게모니 주도 세력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생각이 들고요. 현재도 마찬가지고요. 거대 과학 구성에 정치적 경험이나 사회적 경험이 여성 과학자로서는 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 안에서 그것을 획득하는 과적이 아직 낯설다는 생각이 들고요. 이런 부분은 여성 참여라든지 활동을 통해서 극복되어 간다라고 봐요. 어떤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전 사실 굉장히 궁금하거든요. 여성들이 가진 독특함이 있어요. 그런 부분이 보완된다고 하면 그야말로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스타일을 나름대로 만들어 나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아라(사회자):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지점이 있는데 송기원 교수님께서는 학문하는 사람의 자세를 남성적이라든가 여성적이라 말할 수 없다고 하신 것 같고요. 정경숙 박사님께서는 일종의 헤게모니를 남성이 장악하고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이 연구 방법이든 네트워크 형성이든 그 어떤 방식이든 남성들이 해 왔던 스타일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했을 때 그것이 남성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보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변화한다고 했을 때에는 과학 연구 자체의 방식 또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를 해 주셨고요.
벌써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이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과학과 여성, 아니면 그 외의 것과 관련해서 하실 말씀 있으시면 듣기로 하겠습니다.
송기원(마리 퀴리): 저는 처음에는 이 두 분이 핵물리학을 하신 분이라서 화석연료를 핵연료로 바꾸는 문제를 대담하려 두 분을 고른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사실은 과학이 항상 양날의 칼이잖아요. 이런 과학의 발견에 대해서 두 사람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기를 원했을까 어떤 생각의 차이를 갖고 있었을까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부분은 그 부분이거든요.
마리 퀴리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 시대에는 방사능이 굉장히 해로울 수 있다는 점을 몰랐죠. 퀴리만 해도 라듐을 모아 놓은 용기의 빛을 아름답다고 계속 보면서 잠들었다고 하고. 라듐 목걸이를 차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대요. 무지한 채로 이것이 양날의 칼인 줄 모르고 마리 퀴리는 어떻게 이것을 표준화해서 인간에게 유용하게 쓸까. 그것에 굉장히 골몰했거든요. 심지어 연구비를 받기 위해서 자신을 신격화하는 작업에도 가담했고. 과학이 유용하다는 개념을 굉장히 믿었던 사람인 것 같아요. 과학이 인간의 삶에 이바지하고 과학의 선한 면을 믿고 평생을 보낼 수 있었던 아주 행복한 과학자였죠.
그에 비해서 리제 마이트너는 정말 순진했던 분이었어요. 그분은 항상 ‘과학의 유용성이라는 개념이 너무 강조하는 것이 근본적인 과학 법칙 이해에 대한 즐거움을 점점 오염시키고 있다.’고 주장하셨는데 이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거든요. 우리나라에는 사실 과학이 없어요. 자연에 대한 순수한 지식의 축적이 과학이라고 보면 이제 더 이상 과학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너무나 짧은 시간에 과학이 변화하는 시대를 살면서, 아무도 이제는 과학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성장 동력이 아닌 과학을 말하지 않는 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리제 마이트너가 가졌던 순수한 개념을 복원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경숙(리제 마이트너): 특히나 리제 마이트너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마리 퀴리는 순간의 주어진 선택에서 굉장히 현명한 선택들을, 자기가 과학 활동을 하기 위해서 이루어 나가는 적극성 같은 것들을 표현한 데 반해서 리제 마이트너는 순진하기까지 하다는 표현으로 오로지 자연 과학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한 목적 하나에 모든 일생을 쏟아 부음으로써 어떤 면에서는 사회에서 스스로 고립되는 그런 면을 보였기 때문에 불운한 궤적을 따라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독일을 떠나는 그 순간에도 죽음의 공포를 목전에 둔 1938년이 돼서야 아무런 대책이 없이 쫓겨나가는 것을 보면서 대비되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순수하지만 한편으로는 현명하지 못한, 시기적절하지 못한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어요. 그러면서도 자신이 가진 과학에 대한 열정을 구체화해 나간 그 집요함이라고 하는 것. 굉장히 조신한 여자로서 가지고 있었던 내부의 열정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과학적 활동을 이어 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요. 그런 면에서 존경심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60세에 자신의 모든 자료를 챙기지 못하고, 연구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스톡홀름의 호텔 방에서 침대 하나 놓고 사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연구 활동을 이어 나가는 마이트너의 놀라운 집요함과 적극성에 존경을 표합니다.
조아라(사회자): 그러면 이것으로 대담회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2012년 11월 책 대 책 대담회는 사상 최초로 대담자 두 명과 사회자까지 모두 여성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두 사람의 업적과 그 과학적 의미에만 집중하기보다는 그들이 겪은 역경과 극복의 과정, 후대에 미치는 시사점을 여성이라는 시점에서 조명한 이색적인 대담회이기도 했다.
과학에서 여성성이란 무엇인지, 여성성이란 잣대를 과학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지까지를 대담자 본인의 인생 경험을 곁들여 서로 묻고 답하는 과정은 대담회에 참석한 여성 청중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고, 예정된 시간을 한참 넘겨서까지 질의응답이 이루어졌다.
대담 내용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과학은 더 이상 주류 세력이 선호하는 분야가 아니라 점점 여성과 외국인 같은 소수자의 영역이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점점 집단 과학, 거대 과학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과학의 현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과학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11월 책 대 책 대담회는 두 여성이 살아 온 인생의 비교로 시작되었지만, 각자의 삶의 명암보다는 그들이 과학에 대해 품었던 자세가 더 중요함을 새삼 깨닫고, 급변하는 미래 과학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물음을 참석자뿐만 아니라 대담자에게까지 새로이 각인시키는 자리였다. 순수하게 진리를 찾는 과학 탐구의 열정이 생물학적 성이라는 구분을 넘어 더 많은 이에게 퍼지기를 기원하면서 대담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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