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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다 (12) 빛과 투명 망토, '본다는 것'의 의미 본문

완결된 연재/(完) 과학 수다

과학수다 (12) 빛과 투명 망토, '본다는 것'의 의미

Editor! 2013. 12. 16. 09:00

과학의 세계로 이끄는 흥미롭고 친절한 안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주최/ 프레시안 공동기획 '과학 수다' 코너를 사이언스북스 블로그에서도 소개합니다. 과학 수다는 매월 첫 째주에 아태이론물리센터 웹진 크로스로드와 프레시안 books를 통해 소개됩니다. 


지금은 그 열기가 한 풀 꺾였지만 1997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전 세계를 열광시켰던 동화 속 주인공이 있습니다. 바로 해리 포터죠! 1997년 10대 초반에 해리 포터를 처음 접했던 친구들이 벌써 20대 중반이 되었으니 시간이 참으로 빠르죠? 그런데 혹시 <해리 포터> 속에 나오는 수많은 마법들 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건 뭔가요?

아마 세 가지 '죽음의 성물' 아닐까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마법 지팡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생명의 돌 그리고 심지어 죽음도 피해갈 수 있는 투명 망토. 이 중에서 해리 포터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품인 투명 망토는 참으로 매력적이었죠. 투명 망토만 쓰면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누구도 해리 포터와 친구들을 발견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투명 망토 이전에는 '투명 인간'도 있었죠. 허버트 조지 웰스의 <투명 인간>(1897년)부터 폴 버호벤의 <할로우 맨>(2000년)까지 투명 인간은 시대를 초월해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지요. 여러분도 (여러 가지 동기를 가지고) 투명 인간을 상상해본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투명 망토" "invisible cloak"을 입력해보면 수많은 문서가 검색이 됩니다. "해리 포터 '투명 망토' 현실화 한걸음 더"(<한겨레> 2012년 11월 27일자), "해리 포터 '투명 망토', 수년 내 현실화 전망" (<조선일보> 2012년 11월 27일자) 같은 기사도 널렸죠. 정말로 투명 망토가 수년 내 가능해지는 걸까요?

"과학과 미래 그리고 인류를 위한 비전"을 찾는 <크로스로드>와 함께하는 '과학 수다'는 이번에 투명 망토 또 덤으로 투명 인간, 스텔스 비행기 등의 모든 것을 샅샅이 훑어보기로 했습니다. 물리학자 박규환 고려대학교 교수가 친절한 가이드로, 천문학자 이명현 '프레시안 books' 기획위원, 물리학자 김상욱 부산대학교 교수가 질문자로 나섰습니다.

그런데 투명 망토 얘기를 하려면 꼭 거쳐야 할 관문이 있습니다. 바로 '본다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죠. 그리고 본다는 것의 과학적 의미를 알려면 빛과 좀 더 친해져야 합니다. 그러니 이번 수다의 앞부분에서 투명 망토 얘기는 안 하고 빛 얘기만 한다고 투덜거리지 마세요. 빛과 친해져야 투명 망토의 정체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답니다.

일단 그 고비를 넘어서면 여러분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거예요. 도대체 '투명하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지? 투명 인간 또 투명 망토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해리 포터> 속 투명 망토와 "수년 내 현실화" 된다는 투명 망토는 같을까, 다를까? 언론 보도처럼 투명 망토가 진짜로 가능할까? 아니, 투명 망토가 도대체 필요하기는 한 걸까? 등….

그리고 이런 질문에 답하다보면 투명 망토보다 훨씬 더 마법 같은 일이 현재 진행 중인 사실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아파트 층간 소음을 없애고, 지진이나 풍랑을 피하는 일이 투명 망토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번 과학 수다를 읽다 보면, 이 질문에도 답할 수 있답니다.

지난 10월 9일 서울 강남의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서울 분소 회의실에서 진행된 이번 과학 수다는 한때 음흉한(?) 의도로 투명 인간을 꿈꿨던 강양구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본다는 것


강양구 : 오늘은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투명 망토를 놓고서 얘기를 해볼 텐데요. 일단 투명 망토 과학 수다에 굉장히 집착하셨던 이명현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시작하시죠. (웃음)


이명현 : 투명 망토가 <해리 포터> 때문에 사람들에게 확실히 각인이 되었죠. 그 자체로도 얼마나 매혹적이에요. 또 심심찮게 투명 망토의 과학적 가능성을 언급하는 기사도 여러 차례 나왔죠. 투명 망토 연구를 주도하는 영국의 존 펜드리 박사는 공공연히 노벨상 0순위로 꼽힙니다. 그런데 정작 투명 망토의 실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짚어보는 자리는 없었어요.


강양구 : 사실 투명 인간도 SF 소설이나 영화의 단골 소재죠. 그런데 정작 '투명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개념을 정확히 따져본 적도 없었어요.


김상욱 : 그렇다면, 도대체 '본다(seeing)'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얘기를 시작하는 게 순서 같군요.


이명현 : 결국 오늘의 화두는 '빛'이겠군요. (웃음) 빛의 굴절, 반사와 같은 성질을 알지 못하면 앞의 질문에 답할 수 없으니까요.


박규환 : 이거 주문이 많으시네요. (웃음) 일단 '굴절'부터 살펴보죠. 우리가 물속에 막대를 꽂아두면, 그 막대가 구부러져 보입니다. 바로 굴절 현상이죠. 그런데 왜 그런 굴절 현상이 나타날까요? 빛은 공기 중을 지나갈 때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아요. 하지만 물처럼 공기가 아닌 다른 물질을 지날 때는 어떤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굴절 현상이 나타나죠.


강양구 : 어떤 영향을 받나요?


박규환 : 여기서부터는 심호흡을 하고 들으세요. (웃음)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물질이 원자잖아요. 원자는 가운데에 플러스(+) 전기를 띠는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에 마이너스(-) 전기를 띠는 전자가 돕니다. 플러스 전기와 마이너스 전기가 상쇄되어서 원자 자체는 전기적으로 중성 상태죠.

그런데 빛의 본질은 전자기파입니다. 빛이 지나갈 때 주위에 전기장과 자기장을 만들면서 물결(파동)처럼 이동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전기장(또 자기장)을 만들면서 이동하는 빛이 원자 주변을 지나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빛의 전기장이 원자에 영향을 주겠죠. 정확하게는, 마이너스 전기를 띠는 가벼운 전자가 빛의 전기장에 따라서 움직일 거예요.

예를 들어, 마이너스 전기의 전자는 전기장 반대 방향으로 힘을 받아 움직이게 되면서 운동에너지를 갖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빛이 가지고 있었던 에너지의 일부가 전자를 통해 원자로 전달이 됩니다. 그리고 원자는 그렇게 빛으로부터 전달받은 에너지를 또 다시 외부로 방출하죠..

비유를 들어보면, 홈런을 친 야구 선수가 홈으로 들어와서 동료 선수와 손바닥을 마주치죠. 빛이 어떤 물질을 만나서 에너지를 주고받는 과정은 이렇게 홈런을 친 선수가 동료 선수와 손바닥을 한 번씩 마주치면서 달려가는 경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무하고도 손바닥을 마주치지 않는 상황은 빛이 진공 상태를 지나갈 때라고 생각하면 되고요.

그런데 이렇게 동료 선수와 손바닥을 마주치며 달리면 당연히 속도가 느려지죠. 빛도 마찬가지예요. 물질을 지나며 그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와 에너지를 주고받다 보면 빛의 전달 속도가 느려지죠. 이렇게 진공 상태에서의 빛의 속도 c(=2.99792458×10의8승m/s)에 비해서, 다른 물질을 지날 때 느려지는 비율을 바로 '굴절률(n)'이라고 합니다.

진공 상태가 아닌 다른 물질을 지날 때의 빛의 속도(v)는 c를 굴절률로 나눈 값(c/n)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진공 상태의 굴절률은 1(=n)이죠. 그리고 굴절률이 크면 클수록 (분모가 커지니까) 빛의 속도는 느려지게 됩니다. 굴절률은 물질마다 다를 수밖에 없죠. 왜냐하면, 물질에 따라서 빛에 반응해 주고받는 에너지가 다를 테니까요. 물의 굴절률은 한 1.3 정도입니다.


강양구 : 그러니까, 물속의 막대가 구부러지는 굴절 현상은 공기(굴절률=1) 중을 이동하던 빛이 굴절률이 다른 물(굴절률=1.3)을 만나서 이동 속도가 느려지면서 나타나는 것이군요. 그런데 굴절률이 다른 물질을 만나면 빛이 왜 휘는지도 짚고 넘어가죠. 고등학교 때 배운 것 같긴 합니다만. (웃음)


박규환 : 굴절 현상 때 빛이 왜 휘는지를 말로 설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요. (웃음) 여기서는 '페르마의 원리(Fermat's principle)'로 설명해보죠. 1658년 페르마는 빛이 공간의 두 지점 사이를 진행할 때 최소 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따른다고 제안했습니다. 이 페르마의 원리는 이론적, 실험적으로 증명이 되었죠.

일단 이 페르마의 정리에 따르면 공기 중에서 빛이 두 지점을 이동할 때 최소 시간이 걸리는 경로는 직선이겠죠. 그런데 공기와 물처럼 굴절률이 다른 두 지점을 이동할 때는 다르죠. 예를 들어, 공기 중의 A에서 물속의 B 지점까지 빛이 이동하는 경우를 봅시다. 거리상으로는 A와 B를 직선으로 잇는 게 가장 짧죠.

하지만 빛은 공기보다 굴절률이 큰 물속에서 천천히 움직입니다. 따라서 A에서 B까지 최단 시간이 걸리는 경로는 옆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물속에서 특정한 각도만큼 꺾이는 것이겠죠.


김상욱 : 군대 제식 훈련할 때 줄지어 방향을 바꾸는 것을 생각해봐도 좋습니다. 나란히 늘어선 사람들이 줄을 맞추어 걷고 있습니다. 이 때 왼쪽에 있는 사람이 보폭을 짧게 하고 바깥쪽의 사람은 보폭을 크게 하면 왼쪽으로 방향 전환이 됩니다. 즉, 왼쪽과 오른쪽의 속도차가 방향 전환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물속에서는 빛이 공기 중보다 느리게 진행합니다. 빛이 비스듬히 물에 들어가는 경우, 먼저 물에 닿은 부분의 속도가 느려지며 그 방향으로 꺾이는 겁니다.



강양구 : 그럼, 반사는 뭔가요?


박규환 : 반사도 굴절률로 설명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공기 중에서 빛이 이동하는 걸 위아래로 움직이는 가는 고무줄이라고 해보죠. 그런데 이 가는 고무줄이 어떤 지점부터 굵은 고무줄로 바뀝니다. 그렇게 되면 위아래로 잘 움직이던 고무줄이 굵은 고무줄이 시작하는 지점부터 움직임이 둔해지죠.

그런데 한쪽에서 가는 고무줄을 위아래로 세게 흔드는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위아래로 움직이던 고무줄이 굵은 고무줄이 시작하는 지점에서 거꾸로 튕겨져 오기도 하잖아요. 공기 중을 물결처럼 진동하면서 이동하던 빛도 굴절률이 다른 물질을 만나면 n분의 c(c/n)로 속도가 줄어들죠. 그러면 진동하기 어려워져 튕겨져 나옵니다. 바로 이런 현상이 '반사'입니다.

그렇게 굴절률이 다른 물질을 만난 빛의 일부가 반사가 되어서 인간의 시각 세포를 자극하죠. 그렇게 망막에 맺힌 상이 전기 신호로 바뀌어서 뇌로 전달되는 과정이 바로 '보는' 행동의 본질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빛이 없으면 우리가 보는 행동 자체가 가능하지 않죠. 이것이 투명 망토 얘기를 할 때, 빛부터 시작한 이유입니다.



투명 인간? 투명 망토? 투명의 조건!


강양구 : 그렇다면, 투명하다는 것의 의미는 뭔가요?


박규환 : 서로 다른 물질인데 굴절률이 같은 경우죠. 굴절률이 같으면 반사가 일어나지 않고서 빛이 그냥 지나가니까요.

그런데 공기와 굴절률이 같은 물질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아요. 아까 물의 굴절률을 1.3이라고 했죠? 이렇게 대부분의 물질은 공기의 굴절률 1보다 큽니다. 유리창을 통해서 밖을 보면서 흔히 투명하다고 말하죠. 하지만 유리도 굴절률이 1.4 정도로 약간의 반사 현상은 불가피하죠.

여기서 투명 인간의 첫 번째 조건이 나오죠. 투명 인간은 자기 몸 전체의 굴절률을 1로 만들어야 합니다. 약을 먹든, 마법을 부리는 말이죠. (웃음) 그래서 자기 몸의 굴절률을 1로 만들어서 공기 중을 지나는 빛이 반사 없이 그대로 투과할 수 있게 만든다면 일단 투명 인간의 조건을 만족하는 셈이죠.


이명현 : 모든 빛이 투과하는 거지요?


박규환 : 그렇죠. 그러니 투명 인간은 맹인이 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빛이 망막에 맺히지 않고 그대로 투과해 버릴 테니까요. 그러니 맹인이 아닌 투명 인간이 되려면 눈만 까맣게 남아 있어야겠죠. 그런데 그렇게 눈만 까맣게 남아 있는 경우에도 투명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웃음)

재미있는 것은 생물체 중에서 투명 물고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투명 물고기도 눈은 투명하지 않아요. (웃음)


이명현 : 투명 물고기 몸의 굴절률은 물과 비슷한데, 눈만 다른 물질로 구성된 건가요?


박규환 : 그렇죠. 물의 굴절률과 비슷하니까 투명해 보이는 건데요. 눈의 굴절률까지 물과 비슷하면 앞을 볼 수 없겠죠.


이명현 : 투명 망토는 어떤가요?


박규환 : 해리 포터 스타일의 투명 망토는 실제로는 멀리 있는 오아시스가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막의 신기루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똑같은 공기라고 하더라도 온도가 달라서 밀도가 변하면 장소에 따라서 굴절률이 달라집니다. 사막에서는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라서, 특히 지면 근처의 공기가 팽창해서 굴절률이 낮아집니다. 빛의 속도가 상층보다 빨라지죠.

이렇게 같은 공기라도 온도에 따른 밀도 차이에 따라서 굴절률이 달라지면 오아시스에서 반사되어 나온 빛이 굴절하게 됩니다. 그렇게 굴절된 빛이 사막 여행자의 눈에 도달하게 되면, 실제로 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위치에 오아시스가 있는 것처럼 보이죠. 우리가 빛은 항상 똑바로 직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죠.

그런데 바로 이런 신기루 현상이 나타나는 원리를 마술사들이 활용하죠. 아래 그림을 한 번 보세요. 분명히 예쁜 여성이 무대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거울 넉 장을 활용하면 무대 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관객을 속일 수 있어요. 그러다 ④번 거울을 치우면 무대 위에 그 여성이 나타납니다.


강양구 :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한 것도 비슷한 원리를 응용한 것이죠?


박규환 : 정확한 사정은 모릅니다만, 그럴 겁니다. 이렇게 거울을 이용하면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도 사라지게 만들 수 있죠. 같은 식으로 거울을 배치하면 텔레비전 카메라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안 보이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시청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정말로 사라졌다고 감쪽같이 속겠죠.


김상욱 : 그럼, 투명 망토의 원리도 비슷한 건가요?


박규환 : 솔직히 말하면,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 그 얘기를 자세히 하기 전에 여기서 구별을 합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빛, 가시광선은 사실은 온갖 파동의 빛이 중첩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잔잔한 호수에다 돌멩이를 던지면 동심원을 그리면서 깨끗한 수면파가 퍼지잖아요?

그런데 돌멩이, 아니 모래더미를 호수에다 퍼부으면 물이 막 흔들리면서 특정한 모양의 수면파를 확인할 수 없어요. 바로 이렇게 여러 개의 수면파가 겹쳐져 물이 막 흔들리는 상태가 바로 가시광선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결 맞은(coherent)' 빛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어요. 그런 빛은 돌멩이 하나 때문에 생긴 동심원처럼 정리된 파장을 가졌죠.

대표적인 게 바로 레이저입니다. 우리가 레이저 포인터를 벽에다 비춰보면 파동의 결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가시광선은 밝다, 어둡다 정도만 확인할 수 있지요. 2010년 이전 투명 망토 연구의 대부분은 레이저처럼 특정한 파장을 가진 결 맞은 빛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가시광선이 아니라요.


강양구 : 그럼, 언론에 많이 보도된 투명 망토 연구는 일상생활의 가시광선 영역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군요?


박규환 : 그렇죠.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부터 존 펜드리 박사가 전면에 나서면서 투명 망토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펜드리 박사가 과학계에서 주목을 받았던 건 투명 망토가 아니라 마이너스 굴절률을 가진 '메타 물질(meta material)' 연구였어요. 그런데 여기서 메타 물질 얘기를 하면 너무 복잡하니까 그건 일단 뒤로 밀어 놓죠. 용어만 기억해 둡시다.


김상욱 : 사실 물리학자로서는 투명 망토보다는 굴절률이 마이너스인 물질이 있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훨씬 더 흥미로웠습니다. (웃음)


박규환 : 네,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요. (웃음) 그런데 <해리 포터>가 뜨니까 펜드리 박사가 잽싸게 투명 망토를 내세운 겁니다. 일단 효과 만점이었죠. 엄청난 주목을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앞에서 지적했듯이 펜드리 박사가 말하는 투명 망토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가시광선을 이용한 것이 아니에요. 그건 레이저 같은 특정한 파장을 가진 빛을 이용한 것이었죠.


이명현 : 일단 그럼 레이저와 같은 결 맞은 빛을 이용한 투명 망토의 원리부터 살펴보죠.


박규환 : 이런 결 맞은 빛을 이용한 투명 망토의 근간이 되는 학문이 바로 '변환 광학(transformation optics)'입니다. 사실 변환 광학의 역사는 1960년대 폴란드의 예르지 플레반스키(Jerzy Plebanski) 박사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플레반스키 박사는 휘어진 공간에서 빛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기술하는 식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펜드리 박사가 이 식을 잘 활용하였지요.

발상은 이렇습니다. 빛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려주는 방정식이 바로 '맥스웰 방정식'이에요. 이 자리에서 맥스웰 방정식을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고요.


강양구 : 과학자 사이에서는 이런 유머가 있다면서요. 태초에 신이 '빛이 있으라!' 하고 외칠 때, 이 맥스웰 방정식을 주문으로 외웠다고요. (웃음)


박규환 : 맞아요. 그런 유머가 있을 정도로 맥스웰 방정식은 빛의 정체를 정확하게 기술하죠. 그런데 플레반스키 또 펜드리 박사는 이 맥스웰 방정식을 변환함으로써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죠. 플레반스키 박사는 공간이 휘어질 때 맥스웰 방정식은 어떻게 변하는지 직각좌표계를 써서 보인 적이 있습니다.

비유해 보면 이렇습니다. 고무로 된 바둑판이 있다고 합시다. 그 위에서 바둑알을 빛이 직진하는 것처럼 바둑판의 선을 따라 움직여보죠. 그런데 만약에 고무 바둑판의 한쪽을 잡아서 비틀어지게 늘리면 바둑알은 직선이 아니라 휘어진 선을 따라 이동하게 됩니다. 이것이 일반 상대론에서 말하는 휘어진 공간에서의 빛의 모습이죠.

그런데 관점을 바꿔서 보면, 이것은 공간은 휘지 않았고 단지 굴절률이 다른 물질 속을 빛이 지나가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휘어진 공간과 굴절률을 대응시키는 것을 변환 광학이라고 하는데 보통 이런 일은 굴절률만이 아니라 맥스웰 방정식에 등장하는 물질 상수들 사이에 어떤 특별한 관계가 성립될 때 일어납니다. 이 특별하고 은밀한 관계는 우리가 비밀을 지켜주기로 합시다. 알아봤자 생각보다 재미없으니까요. (웃음)

대신에 고무 바둑판에 바늘로 구멍을 뚫은 후에 구멍을 크게 키워 보도록 하죠. 그럼 바둑돌은 구멍을 향해 오다가 구멍 근처에 오면 구멍을 피해 돌아가게 됩니다. 다시 말해 직진하던 빛이 특정한 굴절률의 어떤 물질을 만나면 마치 흐르는 물이 바위를 만나서 우회하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거예요.


김상욱 : 그러면 바로 그 바위가 있는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은 보이지 않겠군요. 빛이 우회해서 가니까요.


박규환 : 네, 바로 그 자리에 해리 포터가 있다면 마치 투명 망토를 쓴 것처럼 보이지 않겠죠. 이게 바로 2006년에 펜드리 박사가 제기한 투명 망토의 원리입니다. 그리고 펜드리 박사와 공동 연구를 진행한 미국의 데이비드 스미스 박사가 실험을 통해서 이것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죠.


강양구 : 그런데 그렇게 빛을 우회하도록 하는 물질은 원래 자연계에 존재하는 건가요?


박규환 : 앞서 말한 물질 상수들 간의 은밀한 관계로 인해 애석하게도 자연계엔 없습니다. 그런 성질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이 바로 메타 물질입니다. 하지만 그런 메타 물질은 자연계에 없기 때문에 만들어야 되는데요. 그 얘기는 참았다 나중에 합시다. (웃음) 아무튼 특정한 메타 물질을 만들어 놓고서 거기다 (가시광선과는 다른) 결 맞은 빛의 일종인 마이크로파를 쏘았더니 투명 망토 효과가 나타난 겁니다..


이명현 : 여기까지가 1단계군요. 마침 <해리 포터> 때문에 엄청나게 투명 망토가 매체의 주목을 받았고요.



투명 망토, 미션 임파서블?


박규환 : 얘기를 계속해 봅시다. 아무튼 그러고 나서 펜드리, 스미스 박사는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서 경쟁적으로 투명 망토와 관련된 연구를 했어요. 또 성과가 날 때마다 언론에 대서특필되었고요. 그런데 이런 투명 망토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투명 망토는 레이저와 같은 특정 파장의 빛에 대해서만 이런 효과를 나타내거든요.


강양구 : 그러니까, 일상생활의 가시광선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 준비된 빛에만 투명 망토의 효과를 나타내는 거군요.


박규환 : 맞아요. 그런데 그렇게 투명 망토의 효과를 나타내는 빛의 조건이 엄청나게 까다로워요. 가시광선 정도가 되면 투명 망토의 효과를 구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더구나 투명 망토 안에 집어넣는 해리 포터의 크기는 굉장히 작아서 실용적으로는 거의 의미가 없는 수준이에요.

몇 년간 한쪽에서는 가시광선 영역에 가까운 빛 그러니까 적외선 영역에서도 투명 망토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연구를 진행했고, 다른 쪽에서는 투명 망토의 크기를 키워보려고 노력했죠.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 성과가 보잘 것이 없어요. 그래서 결국 지금은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죠.


강양구 : 혹시 투명 망토는 불가능하다는 걸로요?


박규환 : 그렇죠. 최소한 메타 물질을 이용한 투명 망토는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2010년 이후의 투명 망토 연구는 그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연구를 뜯어보면, 앞의 그림에서 살펴본 마술사의 트릭과 그 기본 원리 면에서는 그다지 다를 게 없어요. 예를 몇 개 들어볼까요.


김상욱 : 일본 도쿄 대학의 다치 스스무 박사의 투명 망토도 한 예죠?


박규환 : 맞습니다. 다치 박사의 방법은 '증강 현실 기법(augmented reality method)'이라고 부르는 것인데요, 말 그대로 망토 반대쪽의 영상을 이쪽 망토에서 보여줌으로써 망토 안의 해리 포터가 안 보이는 것처럼 위장하는 방법입니다. 이건 뭐, 투명 망토라기보다는 일종의 스크린을 이용한 트릭인데요. (웃음)


강양구 :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에서 나왔던 방법 같은데요. 경비원에게 아무도 없는 복도를 스크린으로 틀어주고, 그 스크린 안쪽에서 영화 속 이단 헌트(톰 크루즈)가 공작을 진행했죠. (웃음)


박규환 : 맞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상당히 실용적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고층 빌딩이 시야를 가려서 굉장히 답답한 경우가 있잖아요. 그럼, 고층 빌딩 뒤쪽의 풍광을 창문에다 투사해주면 어떨까요? 답답한 고층 빌딩이 눈앞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어요? 실제로 그런 건물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강양구 : 어이쿠, 이번에 서울 삼성동 고층 아파트에 헬리콥터가 부딪쳐서 난리가 났었는데, 그런 일이 걱정되는데요.


박규환 : 맞아요. 비행기, 헬리콥터 사고 또 일상적으로는 새도 위험해지겠죠. 아무튼 이게 투명 망토의 가장 썰렁한 버전입니다. (웃음) 또 다른 투명 망토는 버클리 대학에서 개발한 것인데요. 이건 투명 망토라기보다는 일본 닌자의 위장술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한쪽 벽에 숨기고 싶은 물체를 놓고서 그 위를 카펫으로 덮는 거죠. 그래서 이런 투명 망토를 '카펫 망토(carpet cloak)'라고 부르죠.


김상욱 : 물론 그 카펫은 빛을 굴절 또는 반사하겠죠?


박규환 : 맞습니다. 마치 카펫 망토에 도달한 빛이 거울에서 반사되어 나오는 것처럼 만드는 거죠.


김상욱 : 그런 카펫 망토는 한 방향이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오는 빛을 다 감당할 수 있나요?


박규환 : 그렇죠. 사방에서 오는 빛을 반사시켜서 마치 어느 방향에서 봐도 거울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이런 카펫 망토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크기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죠. 2011년에 버클리 대학에서 처음 시도했을 때는 적혈구 크기, 그러니까 머리카락의 100분의 1만한 크기였어요. 최근에는 10센티미터 정도까지 성공했어요.


이명현 : 듣고 보니 약간 싱겁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웃음)


박규환 : 솔직히 저도 그래요. 그냥 카펫 망토를 놓을 자리에 거울을 하나 가져다 놓으면 똑같은 효과가 생기지 않을까요? (웃음) 솔직히 이것보다 더 그럴듯한 건 투명 구슬입니다. 이 쪽 투명 망토를 연구하는 과학자 중에서 울프 레온하르트 박사가 있는데, 자기 학생한테 투명 망토 아이디어를 받았어요. 그런데 2011년에 학부 학생(Janos Perczel)이 투명 구슬 아이디어를 내놓았죠.

이건 유리구슬을 만들 때, 각 부분마다 굴절률을 조절하면 밖에서 들어온 빛이 중심에 도달하지 않고서 한 바퀴 돌아서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어요. 즉, 유리구슬의 어디서 보든 간에 중심은 보이지 않게 되죠. 그렇다면, 그 유리구슬의 중심에 해리 포터가 들어있다면, 투명 망토가 아닌 투명 구슬이 되는 거죠. 어때요? (웃음)


강양구 : 실용성은 별로일 것 같은데요. (웃음)


박규환 : 맞아요. 일단 유리구슬 안에 들어가면 자기는 절대로 빛을 내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빛을 흡수하는 검은 옷을 입고서 유리구슬 안에 들어가야죠.


김상욱 : 아니요. 의외로 쓸모가 있겠는데요. 다이아몬드 같은 귀중품이나 혹은 보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건을 유리구슬 안에 숨길 수 있잖아요.


이명현 : 마약 같은 것도 가능하겠죠. (웃음) 할리우드 영화의 소재로 쓰면 딱 좋겠는데요.


박규환 : 맞습니다. 이건 실제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제작도 가능하죠. 그러니 어찌 보면 투명 망토에 가까운 가장 현실적인 아이디어는 학부 학생이 내놓은 거죠.


강양구 : 그런데 아까 언급하셨지만, 이건 다시 거울을 이용한 마술사의 트릭으로 돌아간 느낌이에요.


박규환 : 네, 그렇죠. 아무튼 여기까지가 간략히 살펴본 투명 망토 연구의 역사입니다. 자료를 찾다 보니까, 캐나다의 한 방위 산업체가 투명 망토를 개발했지만 국방 기밀이라서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더군요. 믿거나 말거나인데요. 사기 같아요. 현재로서는 <해리 포터>에 나오는 그런 투명 망토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과학계의 합의입니다.



진짜 마법 같은 메타 물질


이명현 : 그런데 이 투명 망토 연구에 불을 댕긴 게 메타 물질이잖아요? 그 메타 물질의 가능성은 어떤가요?


박규환 : 메타 물질은 투명 망토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입니다. 이제 메타 물질 얘기를 해보죠. 예전에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을 가져다 썼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물질을 혼합하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분자 크기인 나노미터(10의-9승 미터) 수준에서 새로운 물질을 합성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자연계에 없던 성질을 가진 물질을 통칭하는 것이 바로 메타 물질입니다.

그리고 메타 물질은 투명 망토처럼 기존의 물질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죠. 아까 언급했듯이 메타 물질은 마이너스 굴절률처럼 자연계에 없는 성질을 가지도록 인위적으로 개발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메타 물질은 투명 망토와 같은 상상도 못했던 가능성을 열어줬죠.


강양구 : 그런데 투명 망토는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면서요?


박규환 : 생각해 보세요. 빛뿐만 아니라 소리도 파동이죠? 음파요. 지금 아파트 층간 소음 때문에 난리잖아요. 만약에 소리가 완벽하게 반사가 된다면 아래층 사람은 불만이 없겠죠.


강양구 : 바닥재나 내장재에 그렇게 소리를 반사하는 메타 물질을 사용할 수 있겠군요.


박규환 : 그렇죠. 투명 망토가 아니라 바로 그런 지점에서 메타 물질이 이용될 수 있어요. 또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열은 어떨까요? 컴퓨터든 스마트폰이든 정보 기술의 난제 중 하나가 열을 식히는 것(cooling)이죠. 그런데 열을 효과적으로 밖으로 배출시켜주는 메타 물질이 있다면 어떨까요?


강양구 : 반대도 있겠죠. 아까 음파를 차단한 것처럼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메타 물질을 이용하면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박규환 : 심지어 요즘에는 지진파를 연구하는 이들도 메타 물질에 관심을 가집니다.


이명현 : 극단적으로, 메타 물질이 지진파를 막을 수도 있겠군요.


박규환 : 그렇죠. 건물을 설계할 때, 메타 물질로 지진파를 우회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 건물은 완벽한 내진이 가능하겠죠.


김상욱 : 지하 핵실험을 비밀리에 할 때도 메타 물질이 쓸모가 많겠군요. (웃음) 핵실험 사실은 보통 지진파로 확인하는데, 그 지진파를 완벽히 차단할 수 있는 메타 물질이 가능하다면요.


강양구 : 조선 산업에서는 메타 물질을 파도를 우회하는 데 활용할 수도 있겠군요. 파도가 배를 우회하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안전한 배가 될 테니까요. 정말로 마법 같은 일이군요. (웃음)



스텔스 비행기의 비밀

김상욱 : 아까도 군사 기술 얘기가 잠시 나왔는데, 메타 물질에 가장 관심을 보일 이들은 군대일 것 같아요. 스텔스 기술이요.


박규환 : 맞습니다. 지금 스텔스 기술의 핵심은 레이더와 같은 특정한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 것인데요. 실제로 메타 물질이 가장 확실하게 응용될 부분이 스텔스 기술이죠.


강양구 : 여기서 잠시 스텔스 기술도 짚고 가죠. 최근에 스텔스 비행기 도입을 놓고 소란도 있었으니까요. (웃음)


박규환 : 스텔스 기술은 애초 목적이 레이더에 안 잡히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레이더의 원리가 비행기 같은 물체에 반사되어 오는 특정한 파장의 빛을 감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단 물체로 들어오는 빛을 흡수하거나, 혹은 다른 방향으로 보내버리면 레이더로부터 감지되는 걸 막을 수 있죠.

일단 시작은 레이더로부터 온 빛을 다른 방향으로 튕겨내는 것부터였죠. 스텔스 비행기의 날개 모양이 이상하게 생겼잖아요? 특히 비행기는 날개 끝단 부분이 레이더에 감지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날개 끝단에서는 빛이 한 방향으로 반사되는 게 아니라 사방으로 반사되니까요. 그래서 스텔스 비행기는 빛의 반사를 최소로 하도록 날개 끝단을 설계하죠.

여기다 빛을 흡수하는 물질의 입자를 비행기의 겉면에 칠하면 스텔스 기술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된 거죠. 그런데 이 스텔스 기술은 결코 완벽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대개는 스텔스 비행기가 반사를 줄인다고 할 때, 그 대상이 되는 것은 특정한 파장의 빛이거든요. 그러니까 스텔스 기술은 특정 파장의 빛(적국의 레이더가 쏘는 빛)을 막는데 최적화되어 있죠.

그런데 스텔스 비행기가 개발되면 당연히 상대국에서도 그런 스텔스 기술을 뚫을 새로운 레이더를 개발하지 않겠어요? 레이더에서 주로 썼던 단파(짧은 파장)가 아니라 장파(긴 파장)를 활용한다든가 하는 식이죠. 최근에는 아예 열을 감지해서 스텔스 비행기를 찾죠. 반대쪽에서는 스텔스 비행기 엔진 모양을 틀어서 열을 다른 곳으로 빠지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고요.


강양구 : 창과 방패군요. 앞으로 메타 물질이 도입되면 스텔스 기술에 획기적인 진전이 생기겠군요.



새로운 혁신, 메타 물질


이명현 : 다시 메타 물질로 돌아오죠. 실제로 메타 물질의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맛보기로 보여주면 어떨까요?


박규환 : 저희 연구실에서는 나노미터 크기로 된 금속의 성질을 연구합니다. 예를 들어, 금을 거의 나노 입자 크기의 분말 상태로 만들기도 하고 또 수십 나노미터 간격으로 배치해서 석쇠 그물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석쇠 그물 구조를 가진 물질은 애초의 금속과는 전혀 다른 성질, 예를 들어 굴절률이 마이너스를 띠게 되죠. 바로 메타 물질이죠.


강양구 : 그런데 방금 여러 가지 예를 든 용도로 메타 물질이 사용하려면 그 양이 상당한 수준이어야 하잖아요. 예를 들어, 그렇게 나노 수준에서 물질의 구조를 재배치해서 만든 석쇠 그물 구조의 메타 물질을 과연 건물 자재로 쓰일 정도로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을까요?


박규환 : 그게 지금 도전해야 할 과제입니다. 사실 앞에서 예를 든 스텔스 비행기에 칠하는 금속 입자의 경우에는 어렵지 않아요. 페인트에 입자를 섞어서 칠하면 그만이죠. 하지만 석쇠 그물 구조의 메타 물질을 크게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이건 저 같은 물리학자뿐만 아니라 공학자에게도 엄청난 난제입니다.

그런데 지금 3D 프린팅 기술이나 나노 프린팅 기술이 등장하면서 그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요. 그 때문인지 요새는 낙관하는 분위기가 대세입니다. 앞으로 이 분야에서 커다란 혁신이 있을 거예요.


강양구 : 그럼, 선생님 연구실에서 만든 석쇠 구조의 메타 물질은 어디에 이용되는 건가요?


박규환 : 일단 기존의 얇은 금속 막을 대체할 가능성이 있죠. 예를 들어, 투명 전극을 만들 수 있어요.

전극은 전류가 흐르는 부품이죠. 그런데 기존의 전극은 불투명합니다. 태양 전지는 태양광을 전기로 변환시키는 장치죠. 만들어진 전기가 흘러야 하니까 전극이 필수적이죠. 그런데 전극이 불투명하니까 그 부분은 빛이 차단되잖아요? 만약 투명 전극을 만들 수 있다면 태양 전지에서 빛을 차단하는 부분이 없으니 효율이 높아지겠죠.

LED(light emitting diode)도 비슷하죠. LED는 전기로 빛을 내는 장치잖아요? 당연히 전기가 흐르는 전극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존의 전극은 불투명하니까, 어느 정도는 빛을 차단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만약 투명 전극이 있다면 전기가 만든 빛이 전혀 차단이 안 되겠죠. 이렇게 되면, 당연히 LED의 효율이 높아집니다.


김상욱 : 보충하면, 금속은 전기가 잘 통하는 대신에 언제나 빛을 반사합니다. 만약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으면서도 전기가 잘 통하는 투명 전극이 있다면 그건 금속의 단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물질이 되겠죠.


박규환 : 맞습니다. 앞에서도 살폈지만, 투명하다는 것은 빛이 잘 통과한다는 것이잖아요? 사실 투명 망토가 영화나 SF 때문에 유명해지긴 했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반사를 최소화하는 장치에서 활용될 수 있을 거예요. 스텔스 기술을 연구하는 이들로서도 눈독을 들일 법한 메타 물질이죠.



투명 망토를 넘어서

강양구 : 이제 얘기를 정리할 시간입니다. 아까도 잠시 나왔습니다만, 궁극의 투명 망토는 유리구슬 안에 집어넣는 건가요? (웃음)


박규환 : 그런데 한 가지 난점이 또 있네요. 유리구슬 역시 프리즘 효과 때문에 특정 파장의 빛에만 효과가 있어요. 빨주노초파남보 가시광선 영역 중에서도 노란색 영역의 파장이 특히 잘된다고 들었어요. 그러니까 현재로서는 일상생활의 가시광선에 다 적용되는 궁극의 투명 망토는 어떤 식으로든 힘들 것 같네요. 실망스럽죠? (웃음)


이명현 : 그런데 투명 망토가 도대체 왜 필요하죠?


박규환 : 그러게요. 왜 필요할까요? 저도 궁금한데…. (웃음)


김상욱 : 보통 여자 혹은 남자 목욕탕에 가려고요? (웃음)


이명현 : 익명성에 대한 갈구 아닐까요? 자기를 숨기고 금기를 깨고 싶은 욕망의 투영이요.


박규환 : 그런데 투명 망토를 썼다고 하더라도 박쥐는 금방 알아채겠죠. 초음파를 써서요.


강양구 : 체온도 감출 수 없겠죠. 실제로 투명 인간을 소재로 다룬 폴 버호벤 감독의 <할로우 맨>을 보면 신체에서 발산되는 열을 감지하는 적외선 안경으로 투명 인간이 간파당하잖아요.


박규환 : 더구나 투명 망토가 있더라도 그건 은신용이에요. 왜냐하면, 투명 망토 안에서는 밖을 볼 수가 없어요. 물론 투명 인간도 마찬가지죠. 눈만 까맣지 않은 한은 맹인이니까요. 그러니 투명 망토든 투명 인간이든 사실 쓸모가 없는 겁니다. (웃음) 그래서 펜드리 박사가 과연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를 한 거냐, 이런 회의가 과학계에서 실제로 있어요.


이명현 : 오늘 얘기를 듣고 보니, 진짜 과학의 혁신은 메타 물질이 앞으로 어떤 가능성을 보여 줄지에 달려 있는 것 같군요.


강양구 : 언론에서 투명 망토 얘기를 하도 많이 해서, 당장 <해리 포터>의 투명 망토가 가능하리라고 믿었던 독자들은 오늘 실망 좀 하겠는데요. (웃음) 하지만 오늘은 투명 망토 얘기를 하면서 빛의 이모저모를 살피면서 '본다는 것'의 의미를 성찰할 수 있었으니 그것도 굉장히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투명 망토 뺨치는 메타 물질의 세계도 살짝 들여다봤고요.

특히 박규환 선생님,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박규환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