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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심리 극장 (10관) 나는 냄새난다. 고로 존재한다 본문

완결된 연재/(휴재) 한밤의 심리 극장

한밤의 심리 극장 (10관) 나는 냄새난다. 고로 존재한다

Editor! 2014. 3. 21. 09:00

진화심리학으로 드라마와 영화, 소설, 그림 등을 들여다봄으로써 인간 본성에 한 발짝 더 다가서려는 시도를 담은 <한밤의 심리 극장>, 많은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한밤의 심리극장

by 홍승효


한밤의 심리 극장 (0관) / 

한밤의 심리 극장 소년 (1관) 질투는 나이 들지 않는다 

한밤의 심리 극장 (2관) 구애의 정석 : 썸남, 썸녀를 만나다 

한밤의 심리 극장 (3관) 거울이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 

한밤의 심리 극장 (4관) 선하지만 '공감제로'인 그와 공존하는 법 

한밤의 심리 극장 (5관) 친절한(?) 악마, 사이코패스의 두얼굴 

한밤의 심리 극장 (6관)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가져다 준 것은?

한밤의 심리 극장 (7관) 죽음을 부르는 치명적인 입맛 

한밤의 심리 극장 (8관) 열 손가락 깨물어 덜 아픈 손가락 

한밤의 심리 극장 (9관) 끝나지 않은 잔혹 동화 편에 이어



10 나는 냄새난다. 고로 존재한다.

-- 지상 최고의 페로몬을 만든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향수

 

 

 

그때부터 그녀는 후각을 상실했고, 그와 더불어 따뜻함이나 냉정함 등 모든 인간적인 감정도 잃어버렸다. 그 한 번의 매질로 인해 그녀에게는 친절과 혐오가 동시에 낯선 일이 되어버렸다. 기쁨과 절망 역시 그녀는 느끼지 못했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중에서 -

 

 

이별 후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버스 안이었다. 맑고 차분한 목소리의 라디오 DJ가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이루어진 설문 조사의 결과인지 알 수 없지만 정답은 놀랍게도 냄새였다. 연인의 냄새.. 아니 향기라고 해야 할까? 냄새라... 사람이면 누구나 냄새가 나지. 그런데 잊지 못할 정도의 냄새라면 정말로 강렬하고 드문 것일텐데. 상대방의 음성이나 모습, 감촉이 아니라 냄새라니 참으로 이상한 결과가 다있다며 웃었다. 그런데 몇 년 뒤 다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던 중 나는 이 말에 통렬히 공감하게 되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만원 버스 안, 어디선가 풍기는 헤어진 그 사람의 스킨 냄새에 나는 진한 그리움을 느끼고 조금은 울기도 했던 것 같다. 그제서야 오래 전 그 말을 수긍했다. 냄새는 쉬이 잊히지 않을뿐더러 봉인한 감정과 오래된 기억까지 끄집어내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를 느꼈다.’ 한 때 엄청난 히트를 쳤던 오래된 광고의 카피문구처럼 향수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냄새와 감정, 그리고 기억. 얼핏 보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은 두뇌 구조상으로는 상당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감정에 깊이 연루된다고 알려진 두뇌의 둘레 계통(변연계, limbic system)은 예전에는 냄새 맡는 뇌라는 의미의 후뇌(rhinencephalon)로 불렸다. 후각 중추는 이 둘레 계통에 위치하며 바로 뒤에 감정을 담당하는 부위인 편도체가 자리한다. 이들 신경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뇌 영상 연구는 우리가 냄새를 지각할 때 편도체가 활성화되며, 냄새에 대한 반응이 감정적일수록 그만큼 편도체도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고로 후각을 상실하게 된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많으며, 반대로 우울증에 걸리면 냄새를 못 맡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신경 구조상의 연관성 때문인지 냄새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감정을 자극하며 때로는 감정 자체가 되기도 한다. 미국 브라운 대학 심리학 교수인 레이첼 헤르츠 박사는 동물의 후각 체계가 유도한 기본 행동 양식이 고도의 추상적인 방향으로 진화된 인지체계가 인간의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냄새는 동물에게 직접적이고 명백한 생존 방식을 알려주며 이러한 일차적인 생존 코드가 인간에서 감정의 경험으로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를 후각-감정 전이라고 부르며 후각과 감정이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서로 연결된 경험이며, 기능면에서 동일한 것이 양방향으로 작용한다고 얘기한다. 잠시, 글 도입부에서 인용한 소설의 한 구절을 살펴보자. 이 문구는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그르누이를 양육했던 유모, 가이아르 부인을 묘사한 내용이다. 그녀는 아버지가 휘두른 부지깽이에 맞아 후각을 상실한다. 동시에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에서도 놓여나게 된다. 뇌구조 상으로 후각과 감정이 신경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나는 가이아르 부인에 대한 이같은 묘사가 단순한 소설적인 설정,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성격의 창조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후각을 공부하다 보니 그녀는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다만 일반적인 사례들과는 달리 여기서는 후각의 결핍이 그녀에게 우울증을 불러오는 대신 오히려 단단하고 건조한 갑옷이 되어 강인한 생존력을 부여해준 것 같다. 그렇다면 후각이 남달리 뛰어난 인간은 어떨까? 후각-감정 전이가 덜 일어나서 감정이 덜 발달할까? 아니면 감정은 제대로 발달하지만 다른 감각 기관이 덜 발달하게 될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에 나오는 그르누이는 남다른 후각을 지닌 인물이다. 개의 후각은 필라델피아 크기 만 한 도시에 초콜릿 하나를 떨어뜨려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하는데 그 역시 개에 견줘도 전혀 뒤지지 않을 수준의 후각을 갖고 있다. 사람들이 시각에 의존해야만 파악할 수 있는 정보를 그는 후각만으로도 알 수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단지 후각에만 의존하여 나아갈 수 있고 멀리서 풍겨오는 체취만으로도 사람의 존재를 감지해낸다. 그 뿐이 아니다. 그는 체취만으로 상대의 성격과 얼굴, 신체적인 특성들을 마치 눈 앞에 대상이 존재하는 듯, 오랜 시간 상대를 알고 지내왔다는 듯이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냄새는 존재 그 자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악취도 향기도 없다. 냄새가 없기에 존재감도 없다. 그래서 그는 대개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으며, 또 때로는 두려움이나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 아무것도 없어야 마땅할 자리에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사실 후각은 다른 감각들, 특히 시각에 비해 덜 중시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소설을 읽다보면 뛰어난 후각 능력이 가진 엄청난 이점에 탄복하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소설이니까 어느 정도 과장된 부분은 있겠지만, 그가 보여주는 능력들이 기본적으로 사실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2011년 폴란드 보로츠와프 대학에서는 남녀 각 30명에게 사흘 내내 흰 티셔츠를 입게 한 뒤 성격테스트를 실시했다. 연구 기간 동안에는 체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향수나 탈취제, 비누 등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으며 냄새나는 음식이나 음료, 흡연도 금지시켰다. 3일 후 연구진들은 회수된 셔츠를 남녀 각 100명에게 나눠주고 냄새를 맡게 한 후 셔츠 주인의 성격을 추측하게 했다. 놀랍게도 외향성, 신경증성(불안하고 우울해하는 경향), 지배성(지도자가 되려는 욕구)에 있어 참여자들의 평가가 셔츠를 입은 사람들의 성격테스트 결과와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격에 따라 냄새가 달라지며,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술 더 떠 땀 냄새를 통해 상대의 마음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09년 미국 텍사스의 라이스 대학 심리학자들은 피험자들에게 공포 영화와 코미디 영화를 보여주고 영화를 보는 동안 흘린 땀을 채취해 다른 사람들에게 냄새 맡게 했다. 20명의 남성들에게서 일상생활 중에 흘린 땀과, 성인 비디오를 관람하는 동안 흘린 땀을 각각 채취해 여성들에게 냄새 맡게 했다. 그 결과, 영화를 보는 동안 실험자가 느낀 감정 - 공포, 즐거움, 성욕 등을 다른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인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인간이 시각, 청각 뿐 아니라 땀냄새를 통해서도 타인과 정보와 감정을 교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체취가 방금 먹은 점심식사의 메뉴나 애용하는 향수의 이름, 목욕을 즐기는 정도 같은 단순한 정보뿐만 아니라 성격적 특성과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 상대에게 품은 사심까지도 드러내는 적나라한 자기 소개서로 기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체취가 상대에 대한 정보를 - 상당히 내밀한 수준까지 -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르누이는 인간관계에서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세상에 대한 무지막지한 양의 정보들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반면, 본인에 대한 정보는 어느 것 하나 노출시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꿔말하면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잃어버렸다는 얘기도 된다. 안 좋은 냄새는 안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좋은 냄새는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체취가 없는 그는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체취가 없다는 것은, 사실 어찌보면 편리하고 조금은 부러운 일이기도 하다. 구취나 땀냄새로 인해 신경쓰거나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냄새로 세상을 파악해온 그에게 정작 자신에게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세상이 무너질 듯 절망스럽고 충격적이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온갖 냄새를 느끼지만 정작 자신은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어디까지나 이방인으로서 서성인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자. 섞여 있으나 녹아들 수 없는 자. 그래서 그는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에게 최고의 체취를 선물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저 그런 인간의 냄새가 아니라 <특별한> 사람들의 냄새, '아주 드물지만 사람들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사람들의 냄새'. 그는 향수에 사용할 사람들의 체취를 얻기 위해 살인이라는 그릇된 방법을 사용한다. 마침내 원하던 향을 손에 넣은 후, 그는 무려 25명을 죽인 살인범으로 붙잡혀 십자가에 매달린 채 사지가 으깨어져 죽는 극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사형 당일, 그는 사람들에게서 이전에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열정적인 환대와 축복, 다정한 태도와 애정어린 친절을 경험한다. 모든 것은 25명의 체취로 만든 마법의 향수가 일으킨 기적이다. 사람들은 향에 취해 원인도 모른 채 서로 뒤엉켜 집단 향락에 빠지고 잔인한 살인마는 동정과 연민 속에서 무죄로 석방된다. 


영화, '향수'의 한 장면

자신의 처형 광경을 보고자 모여든 시민들을 마법의 향수로 매혹시키는 그르누이.

 

그르누이가 만들었던 것 같은 모든 사람을 매료시키는 마법의 향을 현실에서도 재현할 수 있을까? 레이첼 헤르츠 박사는 냄새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감정은 학습의 결과라고 주장하며, 모두가 사랑하거나 모두가 혐오하는 냄새를 만들 수 있다는데 회의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 증거로 미군이 집회 군중을 해산시키려는 용도로 최루탄 대신 냄새 폭탄을 개발하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한 사례를 꼽는다. 그녀는 인간은 다양한 환경에 적응해야하는 제너럴 리스트로 진화했기 때문에 주어진 생태적·문화적 맥락에 따라 냄새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도록 적응했다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이성을 유혹하는 관능의 냄새쯤으로 여겨지는 페르몬은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그녀의 주장대로라면 절대적인 페르몬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페로몬은 동물에서 커뮤니케이션 역할을 수행하는 화학전달물질을 의미한다. 여러 향수 회사에서 이성을 유혹하는 효과를 내는 페르몬 향수나 데오도란트를 출시했으며, 실제로 효과를 보았다는 후기들도 더러 있지만 인간에서 페로몬의 실재 여부는 아직 과학적으로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럴지라도 냄새가 상대를 유혹하고 사랑을 표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유럽에서는 사랑의 사과라고 해서 여자들이 껍질을 깍은 사과를 겨드랑이 사이에 넣어두고 땀을 충분히 배게 한 뒤 연인에게 사랑의 증표로 건네주었다고 한다. 연인의 겨드랑이 땀이 배인 사과는 어떻게 처분됐을까? 겨드랑이 땀이 물씬 배인 무언가가 사랑의 증표가 되다니, 지금으로써는 사실 상상하기 어려운 상당히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러 연구 결과들은 사람들이 파트너를 선택할 때 상대방의 땀냄새를 중요한 요소로 참조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체취에는 그 주인이 가진 여러 가지 특성들이 드러나 있으며, 그 중에는 인간의 면역체계에서 프로그래머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인간백혈구항원의 유전적 구성에 대한 정보도 포함된다. 인간백혈구항원의 유전자 그룹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이 인간백혈구항원이 암호화하고 있는 단백질들이 피부 표면에 있는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된 산물이 바로 체취가 되는데 따라서 체취는 마치 지문처럼 사람마다 서로 다른, 고유한 형태를 띠게 된다. 체취가 그 사람이 가진 면역적인 우수성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특성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면, 그르누이가 만들었던 것 같은 모든 사람을 홀리는 마력의 향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당대의 대세남, 대세녀들의 특성을 풍기는 매력적인 향기정도는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어떤 향기가 어떤 특성을 드러내느냐에 대해 밝혀낼 수 있다면 말이다.

 

뿌리면 이성을 유혹하는 효과가 있음을 강조하는 데오도란트 광고

 

아름다워지기 위해 화장을 하듯 사람들은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 체취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르누이 역시 새로운 자신을 꿈꾸며 체취를 바꾸기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 그가 사랑을 부르는 향을 탐냈다는 사실은 어떤 면에서는 조금 뜻밖이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하루하루를 살아내기도 버거웠던 그르누이. 소설에서도 여러 번 사람보다는 벌레, 진드기로 묘사되며, 살인을 저지르고도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따뜻한 인간의 영혼이 없는 괴물로 그려지는 그가 목숨을 걸고 천착한 향이 사랑이라니. 그가 그 향을 최고의 사람냄새라고 여겼다는 사실은 사람이라는 존재의 본질에 관계와 사랑이 놓여있다고 생각했음을 반증한다. 그는 최고의 향수를 사용하여 위대한 인간의 가면을 쓰고 사람들 앞에 인정받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사람들에게서 역겨움을 느끼고 자신의 작은 성공에 허무해진다. 그가 정말 원했던 승리, 사람으로서의 존재감은 도둑질한 향기로는 얻을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듯이 그가 정말 바랬던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하고 그 모습 자체를 인정받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을 매혹시킨 마법의 향기는 정작 그르누이 자신은 매혹시키지 못했고 결국 그르누이는 자살을 택한다.

소설의 결론만 놓고 보면, 이 소설은 모든 사람을 매혹시키는 최상의 향기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레이첼 헤르츠 박사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 같다. 헤르츠 박사는 말한다. ‘브래드 피트 급 냄새란 없다. 체취는 면역 체계가 외부로 드러난 것이고, 유전적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의 냄새를 맡으면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그녀는 최상의 향기란 존재하지 않지만 유전자의 다양성은 매우 크기 때문에 누구든 자신의 독특한 체취를 좋아할 사람은 항상 있다고 말한다. 또 반대로 상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의 체취도 좋게 생각된다고도 얘기한다. 냄새는 감정을 자극하지만 감정은 다시 냄새에 의미를 부여한다. 어쩌면 그르누이는 첨부터 목표를 잘못 설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 최상의 향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향이 없는 그에게 체취를 부여해줄 수 있었던 것은 외부에서 빌려온 향이 아니라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