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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방랑] 기억 속의 별 풍경 : 첫 번째 별 풍경 본문

완결된 연재/(完) 기억 속의 별 풍경

[별빛방랑] 기억 속의 별 풍경 : 첫 번째 별 풍경

Editor! 2014. 12. 30. 15:21


※ 해당 연재에 올라가는 글과 사진은 출간 예정인 천체전문사진가 황인준 작가의 『별빛방랑』 '기억 속의 별 풍경'에서 가지고 왔음을 밝힙니다.



[별빛방랑] 기억 속의 별 풍경

첫 번째 별 풍경


/사진 : 황인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된 막연하며 이유 없는 우주에 대한 동경과 그에 따른 아마추어 천문가 생활이 어느덧 35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만한 세월의 별지기 생활은 셀 수 없이 많은 별에 대한 기억과 추억으로 꾸며지게 마련입니다. 별 보는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강렬한 별 풍경이 지금의 나를 지탱해 주고 또 별을 끊임없이 동경하게 해 주는 에너지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당연히 기억 속에는 수많은 밤하늘과 그 아름다움, 관측이나 천체 사진 촬영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아마추어 천문가라면 누구라도 갖고 있을 아름다운 추억들에 대한 회상과 스치듯 머릿속에 박혀 떠날 줄 모르는 수채 풍경화에 대해 써 보고자 합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 온천이 나의 고향입니다. 당시 온양은 1975년 읍내 인구가 2만 명이 안 되는 도시로 역전에는 마차가 짐을 실어 나르기 위해 대기해 있고 장날이면 우마차로 붐비는 흙먼지 날리는 신작로가 난 작은 소도시였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께서는 조금 큰 자전거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유달리 키가 작았던 나는 제대로 올라타서는 페달에 발이 닿지 않아 옆으로 타는 법을 터득해야만 했습니다. 행동 반경이 넓어진 나는 주말에 자랑삼아 시내에서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큰아버지 댁이 있는 성안 마을을 자전거로 도전을 했습니다.


  차량 소통이 많지는 않았지만 소달구지나 우마차를 추월하며 달리는 시골길은 익어가기 시작한 황금빛 벼이삭과 초록 기운이 연해지는 잎들, 투명한 햇볕이 어우러져 어린 꼬마인 나의 감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그러고는 혼자 왔냐며 놀라시는 큰아버지와 사촌형들에게 으쓱하고는 했습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본 사촌형은 재래식 수동 펌프에 물 한바가지 넣고 서너 번의 삐걱거리는 펌프질 만에 아주 차가운 지하수를 한바가지 퍼 올려 내 건넵니다.


  형제가 많아 북적이며 하는 저녁식사는 늘 꿀맛입니다. 어쩌면 늘 그 계절까지 남아 있던 땅속에 묻어 둔 묵은지의 푸른 겉대 줄기의 맛을 알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해가 어둑해지고는 사촌형이 마당에 불을 놓습니다. 어둠과 함께 내려앉는 이슬과 함께 동쪽 하늘에는 모닥불의 밝기에도 굴하지 않는 밝은 별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2006년 12월 오스트레일리아 아이반호의 은하수


시선을 약간 틀어 하늘을 올려보면 은하수가 선명히 흐릅니다. 멍석을 깔고 누워 하늘의 별들을 보고 있노라면 언젠가 온양 시내 우리집의 옥상에서 모기장 너머 별을 볼 때 어머님께서 설명해 주신 밤하늘의 이름들이 정겹게 떠올려봅니다. 짚신할배, 좀생이별, 삼태성, 견우 직녀성 ……. 아니면 정말 배가 노를 저어갈 것 같은 그 우윳빛의 아련한 은하수들이 보입니다.



2012년 5월 피나클 사막의 은하수


  모닥불이 꺼지면 그 여린 별빛은 점점 더 선명해지면서 여러 가지 이름 모를 대상들을 보여 줍니다. 가난하고 어렵고 고단했던 시절이었지만 밤하늘의 별빛만큼은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이슬 맞는다고 걱정하시며 들어와 자라는 할머니의 가는 목소리와 건전지가 다된 큰집 큰형의 단파 라디오의 유행가가 묘하게 어우러져 차라리 멀리서 메아리치는 자장가와 같습니다. 내 기억에 이때까지 성안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