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cienceBooks

[지진학자 이기화 편] ② 지구 과학 혁명의 현장에서 보낸 유학 시절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지진학자 이기화 편] ② 지구 과학 혁명의 현장에서 보낸 유학 시절

Editor! 2015. 11. 27. 09:44

과학+책+수다 네 번째 이야기

『모든 사람을 위한 지진 이야기』 이기화 편

[과학+책+수다 지진학자 이기화 편]의 2편은 이기화 서울대 명예 교수의 유학 시절 이야기를 다룹니다. 20세기에는 여러 과학 분야에서 과학 혁명이라 부를 만한 급진적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20세기의 과학 혁명 하면 많은 사람들이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이 주역이 된 물리학 혁명이나 DNA 이중 나선 구조 발견으로 비롯된 분자 생물학 혁명을 떠올리겠지만, 지질 현상처럼 천천히 진화하는 지구 과학 분야에서도 급변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륙 이동설에서 촉발된 판구조론입니다. 

100킬로미터 두께의 단단하고 두꺼운 강체인 지각과 맨틀이 움직이며 지구 표면의 모습을 바꿔 왔다는 판구조론의 주장은 “얼음이 흐른다.” 같은 표현처럼 모순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1950년 후반부터 본격화된 국제 연구와 위성 연구 등을 통해 우리 지구가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꿈틀거리는 살아 있는 존재임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지구 과학의 패러다임이 온전히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진학은 이 과정에서 판구조론을 제창한 투조 윌슨의 대륙 이동 모형의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해 패러다임 이동을 비가역적인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기화 교수는 1950년대 후반 대학 진학을 했고, 판구조론을 둘러싼 학계의 논쟁이 끝나지 않은 1970년대 초반 미국 유학을 갔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 과학 혁명이 일어나던 순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는 이기화 교수의 귀중한 증언을 들어 보세요.


이기화 서울대 명예 교수.




한 고등학생의 인생을 지구학으로 인도한 『국제 지구 관측년 보고서』

SB 편집부: 지진학, 지구 물리학, 우리의 일상과 정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군요. 이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면 제주 생수 산업 탄생 이면에 지진학자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리고 만약 백두산 화산이 폭발하면 당장 북한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정세 전체가 급변하게 될 텐데 지구 물리학자가 없다면 그 문제에 어찌 대처하겠습니까. 

그러면 이제 질문 주제를 바꿔 보려고 합니다. 선생님의 개인적 역사에 대해 여쭤 보고 싶습니다. 책에서는 유학에서 돌아오셔서 서울 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신 지 얼마 뒤인 1978년 10월 7일에 홍성 지진이 일어나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인 지진 연구를 하실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계신데요, 그 전, 유학 시절 왜 지진학을 공부하시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하시지 않고 계십니다. 지진학 공부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에 대해서 여쭤 보고 싶습니다.  

이기화: 예. 1950년 대 말에 광주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미국 공보원(현재의 광주 미국 문화원)에서 『국제 지구 관측년(International Geophysical Year) 보고서』를 보고 지구 물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본격적인 연구는 1970년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에 유학 가서 지도 교수인 월터 파일런트(Walter Pilant) 교수의 실험실에서 지진학으로 박사 학위를 준비하면서 시작되었죠.

SB 편집부: 고등학교 때 『국제 지구 관측년 보고서』를 보셨단 말씀인가요, 굉장하십니다. 그중에서 어떤 내용이 그렇게 매력적이셨던가요? 

(국제 지구 관측년(International Geophysical Year, IGY)이란 1957년 7월 1일부터 1958년 12월 31일까지 이어진 국제 과학 연구 프로젝트의 명칭이다. 당초에는 태양의 자기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공동 연구하기 위해 제안되었다. 국제 지구 관측년에 이루어진 공동 연구 항목은 모두 12가지였다. 오로라, 대기광, 우주선, 지자기, 빙하, 중력, 전리층, 경도 및 위도 확정, 기상학, 해양학, 지진학, 태양 활동 연구. 미국과 소련이 이 국제 지구 관측년 공동 연구를 위해 쏘아올린 인공 위성이 스푸트니크 1호와 익스플로러 1호였다. 이 공동 연구의 주요 성과가 바로 밴 앨런 대의 발견, 중앙 해령의 발견, 판구조론의 검증 등이었다.)


 

국제 지구 관측년 공식 엠블렘.


이기화: 북극의 빙하라든가 오로라, 지진 같은 새로운 것들에 관심이 갔지요. 게다가 영어책으로 나왔기 때문에 영어도 공부할 겸 해 가지고 읽어 봤지요. 그때가 아마 고등학교 3학년 때였을 것입니다. 지금이야 다큐멘터리들이 좋아져 지구 구석구석 오지의 모습들을 화려하게 보여 주지만 그때는 그런 게 별로 없었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지구의 새로운 면모들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하지만 그때는 우리나라에 지구 물리학을 공부하는 학과가 개설되어 있지 않았지요. 그래서 물리학을 공부한 후 공군에 입대해서 기상 장교를 했지요. (1950년대 말 당시 서울대 문리과 대학에 지질학과는 개설되어 있었다. 천문 기상학과가 서울대에 설치된 것은 1958년이었다.)

SB 편집부: 그렇군요. 

이기화: 기상을 좀 공부했는데 기상이라든가 지진도 넓게 보면 지구 물리학의 영역 안에 들어가거든요. 다 지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않습니까? (웃음) 기상 현상을 공부하다 보니 지구 물리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지구 물리학에 눈을 떠 가지고 지진 쪽을 보니까 기상보다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아요. 지구 내부도 들여다볼 수 있고 말이죠. 그래서 지진학을 공부하려고 미국 대학에 입학을 타진해 봤는데 마침 피츠버그 대학교에 계시던 파일런트 교수가 장학금을 줬어요. 그분 밑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지진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죠. 


이기화 교수와 월터 파일런트 교수. (이기화 교수의 논문집에서)




판구조론 혁명의 한복판에서

SB 편집부: 월터 파일런트 교수 하면, 선생님께서 헌사에서 이번 책을 헌정하신 분이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월터 파일런트 교수님과 그 전부터 알고 계시는 사이였던 건가요? 

이기화: 몰랐습니다. 단지 미국에서 공부하려고 장학금을 주는 학교를 찾고 있었죠. 그런데 그분이 장학금을 주셨고 조건도 좋았어요. 그래서 가서 보니까 아주 훌륭한 분이었어요.

SB 편집부: 그렇군요. 파일런트 교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좀 구체적 일화나 이런 것들을 좀 얘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기화: 그분은 칼텍(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시고 그다음에 UCLA(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로스앤젤리스 캠퍼스)에서 이제 지진학으로 박사를 한 분인데 물리학을 굉장히 많이 알고, 수학도 많이 아는 지구 물리학의 대가였습니다. 덕분에 저는 지구 물리학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분은 『지구 내부의 탄성파(Elastic Waves in the Earth)』(아마존 링크: http://www.amazon.com/Elastic-Waves-Earth-Walter-Pilant/dp/0444569847)라는 책의 저자이십니다. 아주 훌륭한 책으로 지진학계에서도 굉장히 평가를 받고 있는 책이지요. 처음에는 장학금을 많이 준다고 해서 갔는데 가 보니 정말로 훌륭한 분이셨어요. 이런 분을 지도 교수로 모시게 되어 아주 행운이었지요. 

SB 편집부: 국제 지구 관측년이 있던 1950년대 말이면 선생님도 책에서 언급하셨던 지구 물리학 패러다임의 대이동이 시작되던 때 아닙니까? 그저 낭설로 취급되던 대륙 이동설이 투조 윌슨 등의 연구를 통해 판구조론으로 진화하며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꾸던 대전환의 시대였지 않습니까.  

이기화: 그렇지요. 

SB 편집부: 판구조론이 받아들여지고 지각 구조에 대한 새로운 이론들이 막 등장해서 학계를 대규모로 뒤흔들 때였는데, 어떻게 보면 선생님은 그 변화의 현장 한복판에 계셨던 것 아닌가요? 그런 패러다임 이동과 관련해서 직접 보고 느끼신 것들은 없나요?

이기화: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했던 1950년대 말에는 판구조론의 기본 개념들이 태동하는 단계였습니다. 판구조론은 1960년대 말에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죠. 때문에 대학에 진학했을 때에는 지구 물리학의 변방이라 할 우리나라에서는 이 획기적인 이론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막상 1970년에 미국 가서 공부하려고 보니 그때에도 판구조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맞지 않다는 것이었지요.  

SB 편집부: 파일런트 교수님은 어떤 입장이셨나요? 

이기화: 그분도 약간 반대하시는 입장이었죠. 하하하. (웃음) 하루는 그분이 조그마한 잔에다 술을 따라 가지고 오셔서 마시는 거예요. 세미나가 곧 있을 텐데 말이죠. 말씀하시는 게 이제 판구조론을 가지고 세미나를 할 텐데 나를 공격할 사람들이 많을지 모르니까 이걸 먹고 용기를 내야겠다 하시는 거예요. 판구조론 지지자들과의 논쟁이 그만큼 부담스러운 거였지요. 사실 당시 지구 물리학자들 중 많은 이들이 판구조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어요. 판이라는 게 뭡니까? 대략 100킬로미터 두께의 딱딱한 지각과 상부 맨틀이 움직인다는 것 아닙니까. 그 딱딱하고 무거운 판들을 맨틀이 움직인다고요?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게 아니죠. 

SB 편집부: 그랬을 것 같습니다. 

이기화: 나중에 연약대가 발견되고 나서야 겨우 이해되기 시작했죠. 암석이 부분적으로 녹은 연약대가 판과 맨틀 사이에 형성되어 있어 아주 서서히 판의 운동이 가능하다 하는 걸 사람들이 수용하게 되는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렸어요. 지금도 판구조론이 모든 걸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판 내부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설명을 잘 못하죠. 지구조판이라는 게 아주 단단한 강체이기 때문에 판 내부에서는 일체의 변형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직 판의 경계에서만, 이렇게 판이 움직이면서 지진도 나고 화산 활동도 일어나는 것이지요. 판 내부에서 일어나는 지진이나 화산은 판구조론만 가지고는 설명할 수가 없어요. 일체의 변형이 일어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지금도 판 내부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판구조론으로 잘 설명을 못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지진을 연구하기 어려운 겁니다. 판 내부에서 발생하는 지진을 설명하는 마땅한 이론이 없기 때문이죠.  


전 세계의 주요 판들. 판의 경계에서 화살표의 방향은 판 사이의 상대 운동을 나타낸다. 화살표가 서로 맞서는 곳은 발산 경계, 서로 등돌리고 있는 곳은 수렴 경계, 서로 스쳐 지나가고 있는 곳은 발산 경계다.


SB 편집부: 지금 말씀 들으니까 대륙 이동설이나 판구조론이 수용되기 어려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아무리 뛰어난 지구 물리학자들이라도 받아들이기 힘들었겠죠.  

이기화: 힘들었어요. 제 지도 교수님인 파일런트 교수님도 좀 반대하셨기 때문에 저 역시 좀 긴가민가했죠. 지구 물리학자들은 이 판구조론이 역학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회의를 가졌죠. 그러나 지금은 반대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SB 편집부: ‘거의’라고 하시면 조금은 있는 건가요? 

이기화: 이젠 거의 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이기화: 1960년대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반발하는 사람도 좀 있고 그랬지만 1970년대 후반에 와서는 거의 없어졌지요.

SB 편집부: 파일런트 교수님도 이제는 판구조론을 인정하시나요?

이기화: 상당히 회의적이었는데 인정하시게 됐지요. 아니, 세미나 장에 오셔 가지고 내가 판구조론을 반대하면 공격할 사람이 많다고 용기 내야겠다고 술 가져다 놓고 마시던 어른이 이제는 수용하고 계시죠. 하하하.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인터뷰 중인 이기화 교수.


SB 편집부: 학계 밖에 있는 저희 편집부 입장에서는 과학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그런 논쟁이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역사가 바뀌는 걸, 시대가 바뀌는 걸 그 자리에서 직접 목격하고, 직접 만들어 가시는 거잖아요. 부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기화: 처음에 대륙 이동설이 나올 적에 말이지요, 학계에선 대륙 이동설을 지지하는 젊은 학자들은 장래가 없다고 그랬어요. 

SB 편집부: 그게 무슨 말이지요?

이기화: 대학이든 연구소든 어디서든 받아 주지 않았다는 얘기지요. 베게너가 대륙 이동설을 처음 얘기했을 때만 해도, 뭐라고 그럴까, 상상적인 것이 너무 많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웃음거리로 알았죠. 호기심 많은 젊은 사람들이 그쪽 공부를 조금만 하려고 해도 선배들이 “너 이것 해 봤자 장래가 없어.” 하고 핀잔 줬죠.




지구 과학의 수많은 분야들을 통섭한 판구조론

SB 편집부: 그러면 지진학에서 지진의 발생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탄성 반발설 같은 이론은  대륙 이동설이나 판구조론하고 별도로 발전해 온 것이군요? 

이기화: 그렇죠. 탄성 반발설은 주로 지각 내부에서 지진이 왜 일어나느냐 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한 거였죠. 그리고 역학적으로 기존의 물리학 이론과 부합하는 것이기도 했죠. 그러나 지구 스케일에서 보면 왜 지진이 전 세계적으로 고르게 일어나지 않고 환태평양 지진대(불의 고리)나 아나톨리아 지진대라고 해서 특정한 지역에서만 일어나느냐, 아니면 해구 깊은 곳에서만 일어나느냐 하는 것은 탄성 반발설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었죠. 판구조론은 그렇게 큰 스케일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었죠. 그러니까 전 지구적인 지질 현상을 하나의 통일된 이론으로 설명한 게 판구조론인 거지요.


지진의 탄성 반발설을 설명하는 사건의 순서. 국지적 응력이 화살표 방향으로 작용하면 지각의 변형이 없는 상태 (a)가 점차 변형되어 변형 한계점 (c)에 이르게 된다. 바로 이 상태에서 단층을 따라 지층이 깨어지면서 지진이 일어나 응력이 방출되고 단층에 오프셋이 발생하는 (d) 상태가 된다. 이 그림은 단층을 위에서 본 모습이다.


SB 편집부: 그렇군요.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해 성로 다른 경로를 따라 발전해 온 지진학 이론과 판구조론이 지구 규모라는 커다란 스케일에서 하나로 ‘통섭’된 거군요.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그러한 일종의 과학 혁명이 일어나던 순간에 지진학과 지구 물리학을 공부하시면서 박사 학위를 하신 거군요. 월터 파일런트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실 때 또 다른 일화나 인연 같은 건 없었는지요?

이기화: 월터 파일런트 교수님은 그 명성이나 학문적 성취에 비하면 참 소탈하신 분이셨어요. 제가 교수님을 처음 만나 뵌 게 말이지요, 피츠버그 공항에 저를 마중 나오셨어요. 미국 대학 부교수고, 또 연구 업적도 훌륭한 분이셨기 때문에 아주 단정한 신사, 넥타이 맨 단정한 신사가 나오리라 기대했어요. 그런데 보니까  복장이 아주 허술한 분이 나오셨던 겁니다.

이기화: 8월 말이었는데 아주 간단한 남방 입고 나오셨죠. 아주 소탈하신 분이었죠. 이렇게 주머니에 만년필을 꽂지 않습니까? 근데 여기 한쪽이 떨어져 나간 걸 고무줄로 동여맸어요. 저는 그분에게서 미국인의 실용적인 면, 예상 못 한 아주 소탈한 측면을 봤죠. 제가 하숙집을 구하기 전까지 그분 댁에서 한 일주일간 머물렀는데 교회를 가실 때만 정장을 하시더군요. 그러면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신사였죠. 그러나 학교에 계실 적에는 아주 소탈하게 계셨죠. 정말 좋으신 분이었고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죠. 정말로 지진학과 지구 물리학을 많이 공부하신 분이었어요. 

하지만 세속적으로는 인생이, 출세가 그렇게 잘 풀린 분은 아니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분이 그렇게 잘 풀리지 못한 이유는 어릴 때 부모님들이 조금 빨리 돌아가신 데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집에 양자로 들어가셨던가 그래요. 그래서 조금 불우한 청소년 시기를 보내셨던 거지요. 그래서 성격이 그렇게 사교적인 분이 아니셨어요. 만약 사교적인 분이었다면 굉장히 많은 일을 하셨을 겁니다. 

SB 편집부: 미국 학계 안에서도 학자가 크기 위해서는 사교성 같은 게 필요한가 보군요.

이기화: 예. 거기에서도 사교를 많이 해야 하죠. 성격이 조금 내성적이었고 마음도 여린 분이었죠. 그래도 아주 훌륭한 선생님이셨어요. 

SB 편집부: 책도 파일런트 교수님께 헌정하셨죠. 그리고 이름 옆에 꼭 로마자 병기를 해 달라고 부탁하시기도 하셨죠.

이기화: 예. 이제 책을 보내려고 해요. 국내에 있는 선생님들께 몇 권 보내 드리고 있고, 내주에도 친한 동료, 후배 교수들에게 책을 보내려 하고 있어요. 파일런트 교수님도 이 책을 받으시면 아마 좋아하실 겁니다. 우리글을 모르시니까 여기다가 영어로 쓰려고 해요.   

SB 편집부: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기대가 됩니다.


(다음 편에 계속)




이기화

1963년에 서울 대학교 문리과 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캐나다 빅토리아 지구 물리학 연구소(Canada Victoria Geophysical Observatory) 연구원으로 재직했고, 1978 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 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울 대학교 명예 교수이다.

1978년에 일어난 홍성 지진 이후 관심이 커진 첨단 지진학 연구 성과를 활용해 한반도의 지각 구조를 규명하고, 원자력 발전소 등 한국의 기반 산업 시설이 몰려 있는 양산 단층이 활 성 단층임을 발견하는 등 한국 지진학과 지구 물리학의 역사를 이끌어 온 선구자이자 산증인이다. 대한지구물리학회 1, 2 대 회장, 명예 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지구물리・물리탐사학회 명예 회장이다. 과학기술부 장관상, 3・1 문화상 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지질학(Geology of Korea)』(공저), 『한국의 제4기 환경』(공저) 등이 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지진 이야기 [바로가기]


‘[과학+책+수다 지진학자 이기화 편]  다음과 같은 목차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1. 과연, 한반도는 지진 안전 지대인가? [바로가기]

2. 지구 과학 혁명의 현장에서 보낸 유학 시절

3. 대한민국의 1호 지진학 박사, 이기화

4. 지진 예보, 과연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