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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여행] 5화 대륙 횡단의 끝, 새로운 삶의 시작 본문

완결된 연재/(完) 인류학 여행

[인류학 여행] 5화 대륙 횡단의 끝, 새로운 삶의 시작

Editor! 2016. 7. 28. 14:24

ⓒ이희중.

『인류의 기원』으로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인류학 교과서를 선보였던 이상희 교수(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님께서 고인류학의 경이로운 세계를 속속들이 살펴보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인류의 기원』은 최근 인류학계의 최신 성과들을 통해 고인류학의 생생한 면모를 알린 자연 과학 베스트셀러입니다. 이번 「인류학 여행」에서는 『인류의 기원』이 소개한 고인류학의 세계들을 보다 자세히 돌아볼 예정인데요. 급속히 발전 중인 유전학과 오랜 역사와 정보가 축적된 고고학이 만나는, 자연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 학문인 현대 고인류학의 놀라운 면모를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상희 교수님이 미국에서 고인류학자로 자리 잡는 여정을 따라가며, 현대 고인류학계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과학자의 일상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현생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21세기 고인류학의 구석구석을 누비게 될 「인류학 여행」, 지금 출발합니다.


유타 주의 솔트레이크시티는 목숨을 내걸고 대륙 횡단에 성공한 모르몬 교도들이 세운 도시입니다. 그곳에는 같은 지도 교수 밑에서 수학한 동문이 있습니다. 실은 저와 그는 코드가 별로 맞지 않아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두 제자가 친하게 지내기를 바랐던 지도 교수가, 이번에 그를 꼭 방문하라고 강권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조금은 어색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의 아내가 말했습니다.


“어휴, 상희 씨는 좋겠어요. 이 사람은 소수 민족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라서 너무 힘들어요.”

“자기, 걱정마. 난 보란 듯이 훨씬 더 좋은 대학으로 갈테니까.”


제가 실력이 아닌 소수 민족 여자라는 위치 덕에 교수 자리를 차지했다는 생각은 아마 사람들이 입 밖에 내지 않고 속으로만 품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렇게 직접 들은 것은 차라리 잘된 일이었어요. 얼마 뒤에 그는 장담한 대로 유명한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친하지 않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서둘러서 유타 주를 떠났습니다. 험한 산길은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숨 막히게 아름다운 브라이스캐니언에 들러 정신을 가다듬었죠.


브라이스캐니언


네바다 주에 들어서니 차도 많아지고 도로도 커졌습니다. 계속 쌓이는 피로를 핑계삼아 이제는 지방 도로를 벗어나 고속 도로를 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라스베이거스도 휙 지나쳐 캘리포니아 주와의 경계선까지 계속 달립니다. 2주 동안 꼬박 달리는 동안, 많이 지쳤어요. 


캘리포니아 주로 들어가기 전에 주유소부터 들렀습니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 마치 트럭 운전사처럼 왼쪽 팔뚝만 새까맣게 탔더군요. 흔치 않은 모습을 기념 사진으로 찍어야 겠다는 생각에,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대륙 횡단을 하면서 찍은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유일하게 내가 나오는 사진이 주유소가 배경이라는 사실은 지금도 무척 아쉽습니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들어서기 직전에 들른 주유소에서 찍은 사진. 왼쪽 팔이 너무 새까매서 가리려고 애썼다.


캘리포니아 주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들른 곳은 캘리코 폐광입니다. 이곳은 한국 여행사들이 남캘리포니아 여행 코스에서 빠뜨리지 않는, 이를테면 깍두기 같은 곳입니다. 이 광산은 은 파동이 났던 1880년대에 500여 개의 은광을 중심으로 엄청난 양의 은을 파내면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1890년대 중반 은값이 떨어지자 사람들이 모두 떠나 버리고 유령 도시가 되었다가 지금은 기념품 가게들이 자리를 지키는 관광지로 바뀌었죠.


캘리코 폐광 


사실 캘리코는 고인류학사에 등장하는 유적이기도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고인류 화석을 발견, 발굴하여 큰 명성을 얻은 루이스 리키는 1960년경에 미 대륙에 살기 시작한 최초의 원주민 유적으로 캘리코를 지목하고 발굴 조사를 이끌었습니다. 리키는 아프리카에서 얻은 성공을 재현하고 싶었던 것이죠. 그러나 세간의 큰 주목을 받으며 시작한 발굴 조사는 별 성과 없이 끝났고, 실망한 리키는 캘리코에서 손을 뗐습니다. 캘리코에서 간간히 발견된 ‘석기’들이 과연 인공 석기인지 자연적으로 부서진 돌멩이인지는 아직도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예요. 


캘리코를 떠나니 점점 목적지에 다가간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이제부터는 고속도로를 타고 속도를 높여서 마냥 달립니다. 리버사이드가 표지판에 나타나기 시작하자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아,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3,500마일(약 5,700킬로미터)을 16일에 걸쳐 이동했으니 매일 평균 220마일(350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움직인 셈입니다. 캘리포니아에 도착하고서 며칠 후에 9. 11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더 이상 낯선 외국인이 허름한 밴을 몰고 시골 동네를 천천히 지나가도록 두고 보지 않을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번에 들른 지점들을 지도에 표시했다. (A) 펜실배니아 주 인디애나 (B) 미시간 주 앤 아버 (C) 켄터기 주 루이빌 (D) 일리노이 주 카호키아 (E) 미주리 주 세인트 루이스 (F) 미주리 주 허먼 (G) 캔사스 주 로렌스 (H) 캔자스 주 닷지시티 (I) 콜로라도 주 베일 (J) 콜로라도 주 다이노소어 (K) 유타 주 마닐라(플라밍고 공원) (L)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 (M) 유타 주 브라이스캐니언 (N)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O) 캘리포니아 주 캘리코 (P) 캘리포니아 주 리버사이드  


에필로그

대륙 횡단을 끝내고 언젠가 이 여행기를 써야지 생각만 하는 사이에, 새로운 삶에 휩쓸려서 세월이 급하게 지나갔습니다. 소수 민족 출신의 여성이기 때문에 거저 교수가 되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는 한국에서 부모님이 6개월 간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황망한 가운데 선친의 서류함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그냥 박스채 미국으로 가져 왔습니다. 드디어 용기를 내어 박스 안의 서류들을 대충 정리하다가 제가 대륙을 횡단하면서 틈틈히 부모님께 보내드렸던 엽서들을 발견했습니다. 소중하게 자꾸자꾸 들여다 보셨음직한 엽서들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의연히 대륙 횡단을 응원해 주셨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걱정하셨을지, 부모님의 마음을 뒤늦게야 가늠하고 펑펑 울었습니다. 저도 이제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제 마음을 뒤늦게까지 몰라줄 딸에게 응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이 없으므로.


에필로그 2

얼마 전에 1박 2일로 라스베이거스에 다녀왔습니다. 2001년 대륙 횡단에 비하면 너무도 호화스러운 여행이었죠. 잘 돌아가는 에어컨 덕분에 긴 팔을 입고 갈 수 있었고, 팔을 태우지 않아도 되었으며, 뛰어난 음향 기기 덕분에 듣고 싶은 음악만을 골라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심심하면 휴게소에서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들여다 보고, 이메일까지 챙겼으며, 친구와 수다도 적당히 떨고, 틈틈히 페이스북에 사진과 글을 올리면서, 문자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휑했습니다. 거의 10시간을 들여서 도로 위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집에서 보내는 평범한 일상과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무엇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제가 떠났던 대륙 횡단이라는 불편한 시간들은 억지로 안겨진 놀라운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저는 에어컨과 스마트폰을 거부하고 문명의 이기 없이 조용한 시간을 선택할 정도로, 배짱이 좋지 않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죠.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여독이 풀리지 않아 며칠 고생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대륙 횡단과 같은 도로 여행이 무리가 아니라 무모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대륙 횡단은 과연 일생 일대의 경험이었습니다.




※ 관련 도서 (도서명을 누르면 도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