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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협력의 공식] 8화 해밀턴의 규칙 본문

완결된 연재/(完) 협력의 공식

[전중환의 협력의 공식] 8화 해밀턴의 규칙

Editor! 2016.08.24 09:50

『오래된 연장통』의 저자이자 국내 손꼽히는 진화 심리학자인 전중환 교수(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님께서 《과학동아》 2016년 신년호부터 새로운 연재물로 독자 여러분을 만나뵙습니다. 「협력의 공식」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는 이번 글은 찰스 다윈 이래 수많은 진화 생물학자들이 달라붙어 비밀을 밝히고자 애썼던 ‘인간의 사회성’과 ‘협력’의 문제를 다룹니다. 《과학동아》에 글이 게재가 된 후 《과학동아》 글에 조금 더 살을 붙여 사이언스북스의 블로그에도 연재되고 있으니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1963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동물학과 건물이다. 존 메이나드 스미스(John Maynard Smith) 교수가 연구실에 앉아서 《이론 생물학 저널(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에 투고된 한 원고가 게재할 만한지 심사하고 있었다. 수식도 많고 워낙 내용이 생소해서 이 원고를 먼저 의뢰 받은 다른 두 심사자는 도저히 못 읽겠다고 이미 항복을 선언한 상태였다. “이제 메이나드 스미스 교수님밖에 심사할 만한 사람이 없어요.”라고 하소연하던 편집장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존 메이나드 스미스 (이미지 출처: wikimedia)


실제로 원고를 읽어 보니, 내용이 어렵기도 했지만 수학 기호 표기법이 독특해서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잘 와 닿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저자가 쓴 타자기가 낡아서 하얀 동그라미(?) 기호와 검은 동그라미(?) 기호가 쉽게 구별되지 않았다. “게재불가로 판정해야겠군.” 메이나드 스미스는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메이나드 스미스의 시선이 ‘포괄 적합도’라는 단어를 담은 한 문장으로 향했다. 논문의 핵심 아이디어가 섬광처럼 뇌리에 들어왔다. “그래, 왜 나는 이 걸 생각하지 못했담!” 그는 길게 탄식했다.[각주:1]


이 원고는 물론 해밀턴이 투고한 ‘사회적 행동의 유전적 진화’였다. 1964년에 게재된 논문은 심사위원인 메이나드 스미스의 ‘조언’─조언이라 쓰고 명령이라 읽음─에 따라 둘로 나뉘어 실렸다. 1부에서는 포괄 적합도를 수학적으로 유도했다. 2부에서는 동물들의 예를 들어가며 논의했다. 이 논문의 핵심인 ‘해밀턴의 규칙’을 자세히 알아보자.




포괄 적합도는 개체의 관점에서 바라본 개념이다


지난 번에 살펴보았듯이, 사회적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 남기는 복제본의 개수를 정확히 세는 방법으로 해밀턴은 ‘포괄 적합도’와 ‘이웃-조정 적합도’라는 두 가지 동등한 방법을 제시했다.[각주:2] 이 중 ‘포괄 적합도’는 남들이 나에게 준 적합도 효과를 무시한 채 행위자의 관점에서 내가 (나를 포함한) 다른 개체들에게 준 적합도 효과들을 따진다. 이 때 유전적 근연도를 일일이 가중하여 더한다.


번식상의 손실(c)을 감수하면서 상대방에게 이득(b)을 주는 이타적 행동을 생각해 보자(b>c>0). 기본으로 얻는 적합도는 1이다. 이타적 행위자와 상대방이 이타적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이 r이라면, 이타주의자의 포괄 적합도는 1+ 1·(-c) + r·(b)이다. 자연선택은 개체의 포괄 적합도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포괄 적합도가 1보다 크면, 즉 -c +rb > 0이면 이 이타적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다음 세대에 복제본을 현 세대보다 더 많이 남기게 된다(그림 1 참조).


그림 1. 포괄 적합도는 직접 적합도와 간접 적합도의 합임을 보여주는 그림. 노란 자식들은 행위자가 낳은 자식들이고 파란 자식들은 상대방이 낳은 자식들이다. 노란 손은 행위자의 이타적 행동에 의한 적합도 효과를 나타낸다. 행위자의 이타적 행동이 상대방의 적합도에 끼친 영향에 유전적 근연도를 곱한 값이 행위자의 간접 적합도이다. 포괄 적합도는 이웃의 행동이 내 적합도에 끼친 영향은 모두 제외하므로 세 번째 노란 자식, 즉 상대방의 호의 덕분에 낳은 자식은 포괄 적합도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처럼 포괄 적합도는 어디까지나 유전자가 자신과 상대방의 자식수에 끼친 “효과”만 고려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포괄 적합도가 어디까지나 개체의 관점에서 바라본 개념임은 다음의 인용문에서도 드러난다. 

   

각각의 개별적인 행동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개체는 자신의 적합도에 대비해 그 상황에 해당하는 근연도 계수만큼 이웃의 적합도도 일정부분 중시하는 방향으로 종의 사회적 행동이 진화할 것이다 (해밀턴, 1964년).[각주:3]

   

요컨대, 해밀턴이 철저하게 ‘이기적인 유전자’의 관점에서 사고한 선구자라는 믿음은 오해다. 해밀턴이 유전자가 마치 사람처럼 다음 세대에 자신의 복제본을 더 많이 남기려 골몰하고 분투한다는 은유를 종종 쓰긴 했다. 그러나 이는 그저 설명의 편의를 위한 도구였다. 다행히 우리는 도킨스 덕분에 명료한 ‘유전자의 눈’ 관점을 얻게 되었다. 이 관점을 마음껏 적용해서 해밀턴의 규칙을 파헤쳐보자.




어떤 조건에서 이타성이 선택되는가


해밀턴의 규칙(Hamilton’s rule)은 이타적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어떤 조건하에서 선택되는지 밝혀준다. 행위자의 몸 속에 들어 앉은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누구를 통해서건 간에 다음 세대에 복제본만 더 많이 남기면 된다. 즉, 행위자나 상대방이나 유전자에게는 그저 전달수단에 불과하다. 행위자로 하여금 손실(c)을 감수하면서 상대방에게 이득(b)을 주게 만든 이타적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선택될 조건은 다음과 같다(b>c>0라고 가정함).  


b: 이타적 행동의 수용자가 얻는 적합도상의 이득.

c: 이타적 행동을 하는 행위자가 감수하는 적합도상의 손실.

r: 유전적 근연도. 행위자와 수용자가 이타적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


이타적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보기에, 선행으로부터 상대방이 얻는 이득(b)이 충분히 커서 1보다 작은 유전적 근연도(r)을 곱하고도 그 값(rb)이 여전히 행위자가 감소하는 손실(c)보다 크다면, 이 유전자는 다음 세대에 복제본을 더 많이 남길 수 있다. 이것이 해밀턴의 규칙이다. 이타적 행동은 상대방이 얻는 이득을 근연도를 곱해서 삭감한 값이 행위자가 입는 손실보다 클 때만 선택된다. 즉, 상대방을 도와줘서 남기게 되는 유전자의 복제본 개수(rb)가 행위자에게 해를 끼쳐서 줄어드는 복제본 개수(c)보다 많아야 이타적 행동은 선택된다. 두 개체 사이의 근연도(r)가 높을수록, 그리고 이타적 행동이 효율적이어서 손실 대비 이득(b/c)이 클수록 이 유전자는 선택되기 쉽다.


예를 들어, 갑돌이가 먹다 남은 찐빵을 마침 온종일 굶은 친동생 을돌이에게 양보한다고 하자. 갑돌이는 찐빵을 포기하는 바람에 1명의 자식을 잃고, 을돌이는 찐빵 덕분에 4명의 자식을 더 얻는다. 참고로 친형제 사이의 유전적 근연도는 1/2다. 찐빵을 양보하는 유전자의 복제본이 을돌이 몸속에도 있을 확률은 50%라는 말이다. 이 거룩한 선행은 진화할 수 있을까? 그렇다. 4(1/2 = 2>1이므로 이 행동은 진화할 수 있다. 을돌이가 사촌이라고 하자. 사촌 사이의 근연도는 1/8이다. 이 경우 4(1/8 = 0.5<1이므로 이 착한 행동은 진화할 수 없다.       


만약 찐빵의 질이 그리 좋지 못해서 갑돌이가 감수하는 손실이 1인데 친동생 을돌이가 얻는 이득은 1.5에 불과하다고 하자. 이 경우, 찐빵을 양보하는 선행은 진화할 수 있을까? 1.5(1/2 = 0.75<1이므로 이 행동은 진화할 수 없다. 해밀턴의 규칙은 유전적 근연도(r)만 따진다고 오해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방금 살펴본 예는 해밀턴의 규칙이 유전적 요인뿐만 아니라, 이타적 행동의 손실(b)과 이득(c)을 결정하는 생태적 요인도 대단히 중시함을 보여준다. 아무리 근연도가 높더라도 손실 대비 이득(b/c)이 적으면 해밀턴의 부등식은 성립할 수 없다.




야생 칠면조의 협력 구애


해밀턴의 부등식이 성립하여 혈연 사이에 이타적 행동이 선택된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야생 칠면조에서는 나이가 같은 두 수컷이 함께 팀을 이루어 협력해서 암컷을 유혹한다. 짝짓기가 끝난 후에도 두 수컷이 서로 힘을 모아서 교미한 암컷을 다른 경쟁 수컷들로부터 지켜낸다. 그런데 아주 이상한 사실이 있다. 두 수컷 중 하나는 우위자라서 암컷과의 짝짓기를 독점한다. 나머지 수컷은 열위자다. 죽어라 일만 할 뿐, 암컷과는 한 번도 교미하지 않는다. 열위 수컷은 도대체 왜 바보처럼 우위자를 돕기만 하는가? 차라리 독립해서 혼자 암컷을 유혹하는게 낫지 않겠는가?



행동생태학자 앨런 크라카우어(Alan Krakauer)는 두 칠면조 수컷들의 협력 구애는 친형제간의 이타적 행동으로 설명된다고 제안했다.[각주:4] 이를 뒷받침하고자 해밀턴의 규칙에 나오는 세 변수인 r, b, c를 야외에서 측정했다. 분자유전학적 기법을 동원한 결과, 한 팀 내에서 수컷들간의 평균 근연도는 0.42였다. 열위 수컷이 이타적 행동으로 감수하는 손실을 측정하고자, 팀에 참여하는 열위 수컷의 자식 수(0)와 혼자서 암컷을 유혹하는 외톨이 수컷의 자식수(0.9)를 비교했다. 즉, 열위 수컷이 감소하는 손실은 0.9 - 0 = 0.9였다. 열위 수컷의 이타적 행동으로 우위 수컷이 얻는 이득을 측정하고자, 팀에 참여하는 우위 수컷의 자식수(7)와 외톨이 수컷의 자식수(0.9)를 비교했다. 즉, 우위 수컷이 열위 수컷의 이타적 행동으로 얻는 이득은 7 - 0.9 = 6.1이었다.


이제 해밀턴의 규칙에 세 변수의 값을 넣으면 된다. rb - c= (0.42×6.1) - 0.9 = 1.7이다. 이는 0보다 크므로 해밀턴의 규칙은 성립한다. 즉, 열위 수컷이 우위 수컷의 짝짓기를 도와주면서 감수하는 비용은 자신의 친형인 우위 수컷이 더 많은 짝짓기 기회를 얻음에 따르는 간접적인 이득으로 상쇄되고 남는다.


선행은 진화할 수 있다. 선행이 주는 이득(b)을 두 사람 사이의 근연도(r)로 곱해 삭감한 값이 선행에 의한 손실(c)보다 크다면 말이다. 해밀턴의 규칙은 세 가지 변수가 들어가는 일종의 비용-편익 분석으로 깔끔하게 이타성이 진화하는 조건을 알려준다. 워털루 기차역의 대기실 의자에 앉아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복잡한 수식을 노트에 채우던 나날은 마침내 보상을 받았다. 물론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 관련 도서 (도서명을 누르면 도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래된 연장통』

『욕망의 진화 











  1. Segerstråle, U. (2000). Defenders of the truth: the battle for science in the sociobiology debate and beyond. Oxford University Press, New York (pp. 64). [본문으로]
  2. ‘이웃-조정 적합도’는 해밀턴의 1964년 논문에서는 개념만 잠깐 소개되었고, 1970년 논문에서 처음으로 상세히 논의되었다. Hamilton, W. D. (1964). The genetical evolution of social behaviour. I & II. 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 7(1), 1-52. Hamilton, W. D. (1970). Selfish and spiteful behaviour in an evolutionary model. Nature, 228, 1218-1220. [본문으로]
  3. Hamilton, W. D. (1964), (pp.19). [본문으로]
  4. Krakauer, A. H. (2005). Kin selection and cooperative courtship in wild turkeys. Nature, 434(7029), 69-7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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