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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여행] 6화 몽골 초원의 드넓은 이야기 본문

완결된 연재/(完) 인류학 여행

[인류학 여행] 6화 몽골 초원의 드넓은 이야기

Editor! 2016. 8. 31. 11:07

ⓒ이희중.

『인류의 기원』으로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인류학 교과서를 선보였던 이상희 교수(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님께서 고인류학의 경이로운 세계를 속속들이 살펴보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인류의 기원』은 최근 인류학계의 최신 성과들을 통해 고인류학의 생생한 면모를 알린 자연 과학 베스트셀러입니다. 이번 「인류학 여행」에서는 『인류의 기원』이 소개한 고인류학의 세계들을 보다 자세히 돌아볼 예정인데요. 급속히 발전 중인 유전학과 오랜 역사와 정보가 축적된 고고학이 만나는, 자연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 학문인 현대 고인류학의 놀라운 면모를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상희 교수님이 미국에서 고인류학자로 자리 잡는 여정을 따라가며, 현대 고인류학계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과학자의 일상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현생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21세기 고인류학의 구석구석을 누비게 될 「인류학 여행」, 지금 출발합니다.


몇 년 전에 두 해의 여름을 몽골에서 보냈습니다. 두 번째 여름은 초원 한복판에서 발굴을 하고 있던 팀에 잠깐 합류하기 위해서 몽골을 찾았죠. 사륜 구동 차량에 몸을 맡기고 하루 종일 비포장도로를 달려서 도착한 곳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동쪽으로 400킬로미터나 떨어진 초원 한복판이었습니다. 멀미를 대비해서 약을 먹었지만 오장 육부가 덜덜덜거리며 뒤흔들리는 느낌은 차에서 내린 다음에도 계속됐습니다.


‘비포장도로’라기 보다는 차라리 ‘타이어 자국’이라는 표현이 더 알맞아 보인다.


‘게르’라고 불리는 몽골 전통의 원형 천막에서 묵기도 했고, 통나무집에서 묵은 적도 있습니다. 천막에서 묵었을 때만 해도, 물이 정말 귀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해에 머문 통나무집은 이미 태양열을 이용한 발전 시설, 위성을 통한 인터넷, 그리고 길어온 물로 만든 샤워실까지 갖춰져 있었죠. 변화의 속도는 무섭습니다. 



원형 천막과 통나무집.


천막에서 머물 때의 몽골에서는 하루의 시작과 끝부터 달랐습니다. 제 일상적인 하루는 알람이 울리면서 시작해 대중없이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끝나죠. 반면에 몽골 초원에서의 하루는 해가 뜰 무렵 개들이 짖는 소리로 시작해,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듭니다. 시계가 몇 시를 가리키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몇 시가 됐건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전기와 인터넷을 떠나서 지내다 보니 틈이 나더라도 이메일을 체크할 수도, 브라우저를 켜서 검색을 할 수도 없었죠. 그 대신 저 멀리 움직이는  듯 혹은 멈춘 듯한 양 떼를 보거나, 발끝의 벌레들이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시간의 공백을 메꿉니다. 비가 오면 바위 틈새를 찾아서 피합니다. 그러다 이내 그치면 어김없이 무지개가 뜨죠. 몽골에 머무는 동안 본 무지개가, 제 평생에 본 무지개를 모두 합친 수보다도 많습니다. 그중에는 말로만 듣던 쌍무지개도 적지 않았어요.


음식은 하루 세끼 모두 삶거나 찐 고기 요리입니다. 주변에 양과 염소를 치는 사람에게서 양 한 마리를 사 옵니다. 그리고 동물을 잘 잡는 아저씨를 모셔 와서 몇몇의 남자들이 양을 잡습니다. 잠시 기도를 드린 후에 동물의 숨을 끊죠. 가죽을 벗겨 내고, 대소장을 들어내어 물로 속을 대충 씻어냅니다. 배 속에 고여 있던 피를 모아 선지를 만들어서 씻어낸 대소장에 채워, 순대를 만듭니다. 순대, 간, 염통, 허파 등은 삶아서 그 다음날 아침상에 올리고요. 갈비, 어깨, 허벅지 등의 덩어리 살은 쪄서 먹습니다. 눈과 뇌가 들어 있는 머리는 일미입니다. 나머지 고기도 여러 요리에 넣어 먹습니다. 짐승 하나를 잡아서 버리는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냉장고가 없는 그곳에서 그렇게 잡은 고기는 사흘 정도 먹을 수 있죠. 그리고 나면 또 한 마리를 잡을 차례가 됩니다.


발굴지 근처에서 풀을 뜯던 양과 염소 떼. 이 중 몇 마리는 식탁에 올려졌다.


염소는 양보다 맛이 깔끔하여 한국인의 입맛에 더 맞습니다. 가지고 온 김치에 염소 고기를 넣으니 꽤 먹을 만합니다. 소고기는 왜 안 먹냐고 물어보니까 맛이 없어서 안 먹는다고 하더군요. 믿기 힘들었죠. 우리는 소고기가 그리웠답니다. 하루는 약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작업 중이던 발굴단을 방문했습니다. 우리가 온다고 해서 소를 잡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소고기를 먹어 보니, 과연 맛이 없는데다 질겨서 턱이 아플 정도였습니다. 소들이 초원에서 마음껏 돌아다니다 보니 모두 근육질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그러면 우리가 먹는 투플러스 소고기는 평생 꼼짝하지 않고 사료만 받아먹어서, 그렇게 윤기가 흐르고 입에서 녹는 것일까요. 


초원의 소. 이렇게 한가로이 쉬기보다는 계속 움직인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대접 받았던 타르바가 요리가 생각납니다. 타르바가는 몽골 초원에 서식하는 설치류입니다. 몽골 사람들은 이것을 별미로 치는데 특히 귀한 손님이 오면 내 놓는다고 해요. 일단 잠복하고 있다가 한 마리를 잡습니다. 목을 자른 다음 자갈들을 목에 집어넣어서 배를 채웁니다. 그다음 불로 그을려서 털을 태우고 충분히 익힙니다. 이때 배에 들어 있는 자갈들도 불에 달궈지기 때문에 겉만 마르지 않고 속까지 골고루 익습니다. 

다 익은 타르바가의 배를 갈라서 피를 따라 한 잔씩 돌립니다. 그리고 고기를 발라서 나눠 먹습니다. 저는 사양하고 지켜보기만 합니다. 이제 가족이 딸린 몸이어서 옛날에 비해 몸을 많이 사리는 자신을 돌아보며, 세월의 힘을 느낍니다. 다행히 제가 발굴단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양을 하는 것이 그리 큰 문제는 아닙니다.


살아있는 타르바가 (출처: http://www.goodnews.mn/advice/health/4152.htm)


다 익은 타르바가의 배를 갈라 피를 따르고 있다. 옆 접시에는 배에서 꺼낸 자갈들이 담겨 있다.


상수도 시설이 없어서 생활용수는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우물물을 기름통에 길어 와서 씁니다. 물이 귀하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양치를 하면 한 모금의 물로 입을 헹구고, 얼굴에 물을 찍어 바르는 고양이 세수를 합니다. 하루 종일 발굴 작업으로 땀에 전 몸은 며칠을 기다려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강에 가서 멱을 감습니다. 멱을 감는 도중에 한 떼의 말들이 몰려와 물을 마시는 바람에 멱을 감던 여자 대원들은 혼비백산할 때도 있죠. 통나무집에 우물물로 샤워를 할 수 있도록 설치했지만 아까워서 마음껏 씻을 수 없습니다.

하수도 시설이 없으므로 화장실은 재래식입니다. 무수한 파리와 벌레들이 뜨거운 날씨에 신이 나서 떠들어 대니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긴 일생일대의 짝짓기 기회가 찾아왔는데 우물쭈물하다가는 몽골의 된서리를 맞기 십상일 테죠. 화장실보다는 차라리 널푸른 초원에 가서 몸을 맡기는(!) 편이 더 조용하고 깨끗합니다. 물론 작은 모종삽을 가지고 가서 뒤처리를 해야 하지만요. 

2008년에 몽골에서 고인류 두개골 화석이 하나 발견됐습니다. 우락부락한 모습은 호모 에렉투스 혹은 비슷한 시기의 새로운 인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몽골 학자들은 “몽골란트로푸스”라는 새로운 화석종을 발표했습니다. 저는 이 두개골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분석에 중요한 얼굴 부분이 남아있지 않아서 한계는 있었지만, 남은 머리뼈를 분석해 보니 호모 에렉투스와 같은 오래전 고인류 화석이라기보다는 현생 인류에 가까웠습니다. 이 내용은 나중에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


그렇지만 제가 몽골에 갔던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막연히 몽골란트로푸스라는 호모 에렉투스급의 고인류 화석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 갔습니다. 그리고 몽골의 초원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습니다. 호모 에렉투스 같은 인류 집단이 이 망망한 초원에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렇게 광활한 초원에서 무엇을 먹고살았을까요? 


그러나 이것은 틀린 접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몽골의 광활한 초원, 목축업, 식수난은 최근에 이루어진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플라이스토세(기원전 250만 년 전~기원전 1만 2천 년 전) 동안 몽골 지역에서는 빙하와 울창한 숲과 호수들이 역동적으로 환경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만약 고인류가 몽골 지역까지 진출했다면, 그들은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초원 생활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만, 현재의 모습이 영원히 이어져 오던 것이라고 간주해서는 안됩니다. 인류학의 기본 원칙 중의 하나입니다. 


몽골 초원은 깜짝 놀랄 만큼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전기와 수도와 인터넷 없이도 세상이 굴러 간다는 사실은 놀라웠습니다. 생각해 보면 너무도 당연한데도 말이죠. 전깃불이 없는 밤하늘은 완전히 깜깜하지 않았습니다. 달이 밝으면 밝은 대로, 달이 안 보이면 수많은 별들이 정신없이 반짝였습니다. 그리고 별들 사이에 흐르던 희뿌연 그 무엇은 바로 은하수였습니다. 지금의 일상에서는 전깃불과 인터넷이 없는 생활은 상상만 해도 무척 불편합니다. 게다가 매일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자외선을 비롯한 온갖 험한 자연물로부터 보호받는 저는, 보통의 몽골 사람보다 아마 보다 젊은 모습으로 훨씬 더 오래 살 것입니다. 그 대신 은하수와 무지개와 들풀과 말 떼를 보려면 모니터를 들여다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온몸으로 전자파를 받으며 말입니다.


*Lee S-H. 2015. Homo erectus in Salkhit, Mongolia? HOMO - Journal of Comparative Human Biology 66(4):287-298.

**Tseveendorj D, Gunchinsuren B, Gelegdorj E, Yi S, and Lee S-H. 2016. Patterns of human evolution in northeast Asia with a particular focus on Salkhit. Quaternary International 400(2):175-179.




※ 관련 도서 (도서명을 누르면 도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