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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여행] 8화 바로 옆의 사람을 향한 여행 본문

완결된 연재/(完) 인류학 여행

[인류학 여행] 8화 바로 옆의 사람을 향한 여행

Editor! 2016. 11. 17. 13:34

ⓒ이희중.

『인류의 기원』으로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인류학 교과서를 선보였던 이상희 교수(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님께서 고인류학의 경이로운 세계를 속속들이 살펴보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인류의 기원』은 최근 인류학계의 최신 성과들을 통해 고인류학의 생생한 면모를 알린 자연 과학 베스트셀러입니다. 이번 「인류학 여행」에서는 『인류의 기원』이 소개한 고인류학의 세계들을 보다 자세히 돌아볼 예정인데요. 급속히 발전 중인 유전학과 오랜 역사와 정보가 축적된 고고학이 만나는, 자연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 학문인 현대 고인류학의 놀라운 면모를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상희 교수님이 미국에서 고인류학자로 자리 잡는 여정을 따라가며, 현대 고인류학계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과학자의 일상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현생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21세기 고인류학의 구석구석을 누비게 될 「인류학 여행」, 지금 출발합니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예상외의 투표 결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이른바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투표 상황을 보면서 저 역시 경악했습니다. 인디애나,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모두 역사적으로 민주당의 든든한 표밭이었습니다. 인디애나는 링컨의 고향이고 (노예 해방과 남북 전쟁을 이끈 링컨이 속했던 공화당은 당시에 더 진보적인 정당이었습니다), 미시간은 디트로이트를 필두로 한 오대호 자동차 산업, 노동 노조 운동, 그리고 20세기 미국에서 최고로 막강한 조직인 전미 자동차 노동조합 UAW(United Auto Workers)의 본부로 대표되는 지역입니다. 펜실베이니아는 필라델피아를 필두로 자유의 종을 자랑스럽게 보존하고 있는 역사적인 진보 지역입니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충격적으로 세 주 모두가 트럼프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동안 트럼프가 그 지역에서 얼마나 공을 들이고 집중 공략을 했는지 저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이런 공략이 먹힐 정도로 불만감이 가득했다는 뜻이겠지요?


미국 제45대 대통령 선거 결과. 우측 상단에 16명의 선거인단이 표시된 곳이 미시간, 그 하단에 18명의 선거인단이 표시된 곳이 오하이오, 바로 우측에 20명의 선거인단이 표시된 곳은 펜실베이니아다.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세 곳 모두 저와 인연이 있거든요. 저는 대학원 시절을 미시간에서 보냈고, 오하이오에서 박사 논문 관련 연구를 했으며, 펜실베이니아에서는 첫 교수 생활을 했습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1년 동안 교수 생활을 했던 도시는 피츠버그 근처에 있는 인디애나라는 곳이었습니다. 이 연재 원고 중에도 잠깐 이야기를 했었죠. ([인류학 여행] 2화 대륙 횡단을 떠나며-첫 번째 이야기) 그때는 “피츠버그의 제철 산업이 몰락하면서 같이 스러져 가는 도시”라고 간단하게 적었습니다. 학생들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눈빛”, “팔짱 끼고 앉아서 고개를 외로 꼬는” 모습을 기억하기도 했죠. 초보 교수였던 저는 그들의 모습을 제 강의 능력이 부족한 탓으로만  진단했습니다. 나중에는 반지성주의, 여성과 인종에 대한 편견일 수도 있다고 재해석했죠. 그리고 그것은 교육과 계몽의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매일매일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몇 줄짜리 인상으로 끝낼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삶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중히 여기던 삶의 터전을 왠지 모르게 계속 빼앗기고, 익숙하던 사람들 대신 이상하게 생긴 사람들이 와서 교수랍시고 한 수 가르치려 드는 현실에 반발심, 적개심만 커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혼란스럽고 불만스러운 상황에 누군가가 와서 “이 모든 것이 ooo의 잘못이다.”라고 콕 집어 얘기해 주자, 그동안 꾹꾹 눌러두었던 증오가 줄줄 새어 나오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박사 논문을 위한 연구를 한 곳은, 오하이오 주의 클리블랜드에 있는 클리블랜드 자연사 박물관입니다. 이 박물관에 소장된 표본들은 어마어마합니다. 동식물을 두루 망라해서 전시, 소장되어 있습니다. 동물들 역시 척추동물, 무척추동물, 고생물까지 대단히 방대하죠. 박물관을 들어서면 많은 박물관들이 그러하듯, 커다란 공룡 골격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박물관에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하만-토드 인골관(Hamann-Todd Human Osteological Collection)이었죠.


박물관에서의 매일매일은 복제한 듯이 똑같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점심 샌드위치를 싸 들고 9시까지 박물관으로 가서 오전 3시간 동안 뼈를 잽니다.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오후 4시간 동안 뼈를 쟀죠. 5시에는 박물관을 떠나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박물관 직원이 근무하는 동안에만 연구실에 있을 수 있었기 때문에 9시보다 일찍 시작할 수도, 5시보다 늦도록 작업할 수도 없었습니다.


클리블랜드의 자연사 박물관에는 수천 구의 인골들이 연구자들을 위해 소장되어 있습니다. 인골들은 원래 박물관 인근의 케이스 웨스턴 대학교 의과 대학 해부학 교실에 소장되어 있었습니다. 20세기 초 당시 케이스 웨스턴 대학교 의과대학의 하만 교수는 중서부 각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사체들을 모았습니다. 당시에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사체들은 모두 케이스 웨스턴 대학교 의과 대학 해부학 교실로 보내졌고, 해부학 실습이 끝난 후에는 장기와 살은 녹이고 뼈만 추려서 해부학 교실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이 작업은 칼 하만 교수의 뒤를 이어서 토머스 토드 교수가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1950년 이후에 클리블랜드 자연사 박물관으로 옮겨져서 하만-토드 인골관이 만들어졌죠. 수천 구의 인골이라면 적어도 20세기 초반 당시에는 그 지역 인구를 대표할 정도로 방대한 표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료를 수집해 보니, 특이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백인”으로 기록된 인골들의 건강 상태는 엉망이었는데, 반면 “흑인”으로 기록된 인골들의 건강 상태는 우수했습니다. 20세기 초반에는 흑인들이 백인들 보다 더 건강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매우 창피한 고백이지만 당시에는 박사 논문을 써서 졸업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 탓에, 이 문제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 되었죠. 졸업을 하고 후속 연구를 위해, 저는 다시 한 번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하나하나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인골관에 소장된 인골들은 관련된 개인 정보가 알려져 있습니다. 사망 당시의 나이, 성별, 인종, 사망 원인 등이 적혀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대략의 흐름이 파악되었습니다. 백인들은 행려 병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이도 많은 편이었습니다. 반면 흑인들은 나이가 젊었으며 병보다는 폭력이 사망 원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뼈는 멀쩡하고 건강해 보였던 것이죠.


20세기 초 미국에 급격히 늘어난 의과대학들은 앞다투어서  해부학 교실을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해부학 교실들에서 수없이 해부된 사체들 중, 흑인들과 빈민들이 높은 비율을 차지했습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과학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사체를 기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사체는 본인이나 가족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묘지에서 강탈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구조적인 폭력의 역사는 오래 되었고 지금까지 계속됩니다. 클리블랜드 자연사 박물관으로 가다가, 실수로 길을 잘못 든 적이 있습니다. 그때 헤매면서 보았던 황량한 길거리의 모습은, 피츠버그 근교를 지나면서 보았던 황량함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황량함은 미시간 주의 중심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보았던 황량함이기도 했습니다.


미시간에서 대학원을 다녔을 때 살았던 앤아버는 운치 있고 고급스러운 도시였습니다. 미시간 주 동남 지역의 문화 중심지였죠. 콘서트, 축제, 레스토랑은 모두 앤아버에 몰려 있었습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그것이 의아했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저는 당연히 미시간에서 가장 큰 도시인 디트로이트에 모든 것이 몰려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죠. 드물게 디트로이트를 지나갈 일이 있으면 유령 도시와도 같은 삭막함에 소름이 끼치고는 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오대호 연안을 중심으로 발달한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다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디트로이트의 몰락을 상징하는 미시간 중앙역.  1988년에 열차 운행이 중단된 후, 철거되지 못한 채로 방치된 상태이다.


캘리포니아로 온 후에 「8마일(8 Mile)」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 제목은 디트로이트의 큰 길 8마일로(8 Mile Road)에서 따왔습니다. 도시와 근교, 인종, 계급, 소득을 나누는 경계입니다. 디트로이트는 제가 다닌 미시간 대학교가 있던 앤아버와는 대척점에 있었습니다. 앤아버에 살 때에 몇 번 8마일로를 지나쳤지만 이렇게 큰 의미가 있는 길인 줄은 몰랐었습니다.


여행을 다니거나 여러 곳에서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체험은, 바로 직접 피부로 느끼는 다양한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성인으로서의 대부분의 삶을 박물관이나 대학교 캠퍼스에서 보낸 저는 매우 국한된 경험만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저는 여러 나라와 여러 지역을 여행했고, 꽤 살았습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경우에, 그것은 보호막이 쳐 있는 삶이었습니다. 박물관이든 대학교 캠퍼스이든, 그 안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나 비슷비슷하거든요. 


미국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대학교는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보장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불문율이 있습니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억압 받는 의견일수록 표현의 자유가 보장됩니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옵니다. 지성적이지 않다고 판단되는 의견은 무시합니다. 저 역시 무식하다고, 극우 보수라고, 반동이라고 판단될 때 입 다물고 등을 돌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나 생각합니다. 교육자로서 학생들의 생각을 키워 주는 사람으로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양한 생각을 대화의 마당에 초대해야겠습니다. 그 ‘다양한 생각’이 아무리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입 다물고 대화의 장을 떠나는 순간들이 모여서 이번에 트럼프가 대통령까지 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런데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한다면, 다양한 목소리를 귀중히 여긴다면, 주류의 목소리, 보수적인 목소리도 대화의 장에 초대해야 합니다. 서로 다른 관점에 공감해야 하니까요. 


물론 소수자의 인간성을 비하하는 관점이라면 다른 관점이라기보다는, 틀린 관점입니다. 소수자를 혐오하고 자신의 불행을 초래했다고 비난하는 목소리는 사라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목소리가 사라진다고 해서 편견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저 입 다물고 등 돌리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말을 섞는다면 상황은 더욱더 악화됩니다. 캘리포니아에서도 내륙 쪽에서는 트럼프에게 투표를 한 사람들이 상당히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익숙한 환경에서만 지내다 오는 것보다는, 지금 머무는 곳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연습하기가 바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 관련 도서


『인류의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