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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협력의 공식] 12화 해밀턴의 이론은 진사회성 곤충에만 적용되는가? 본문

완결된 연재/(完) 협력의 공식

[전중환의 협력의 공식] 12화 해밀턴의 이론은 진사회성 곤충에만 적용되는가?

Editor! 2016.12.30 09:34

『오래된 연장통』의 저자이자 국내 손꼽히는 진화 심리학자인 전중환 교수(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님께서 《과학동아》 2016년 신년호부터 새로운 연재물로 독자 여러분을 만나뵙습니다. 「협력의 공식」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는 이번 글은 찰스 다윈 이래 수많은 진화 생물학자들이 달라붙어 비밀을 밝히고자 애썼던 ‘인간의 사회성’과 ‘협력’의 문제를 다룹니다. 《과학동아》에 글이 게재가 된 후 《과학동아》 글에 조금 더 살을 붙여 사이언스북스의 블로그에도 연재되고 있으니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만일 여러분이 해밀턴의 논문을 직접 읽지 않고서 술집에서 주워 들은 한담으로 해밀턴 이론을배웠다면.” 도킨스는 목소리를 높인다. “단수이배성 말고 아무것도 못 들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1989년에 출간한 『이기적 유전자』 개정판 10장의 보주에서 도킨스가 한 말이다.[각주:1] 개미, 벌, 말벌같이 벌목에 속하는 사회성 곤충에는 단수이배성(haplodiploidy)이라는 독특한 성 결정 체계가 있다. 덕분에 암컷 일개미는 친자식보다 여왕 어머니가 낳은 친자매와 유전적으로 더 가깝다. 그래서 번식을 포기한 채 평생 어린 여동생들을 위해 일만 하다 죽는 불임성 일꾼 계급이 진화했다고 해밀턴은 제안했다. 바로 ‘단수이배성 가설’이다.


해밀턴의 1964년 논문 「사회적 행동의 유전적 진화」  52쪽 가운데 단수이배성 가설은 겨우 4쪽에 불과하다. 하지만 “누구나 조금만 애를 쓰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일단 이해하고 나면 스스로 대견해져 남들에게 알려주고 싶을 만큼 어렵기”(도킨스, 1989년) 때문인지 그 가설은 엄청나게 널리 전파되었다. 오늘날 혈연에 대한 이타성을 다루는 그 어떤 과학 대중서나 생물학 교과서도 단수이배성 가설을 언급하지 않고서 넘어가는 일은 없다. 부작용으로, 해밀턴의 포괄 적합도 이론은 벌목에서 극단적인 이타성이 왜 자주 진화했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일 뿐이라는 오해도 많이 생겼다. 단수이배성 가설은 포괄 적합도 이론이 아니다. 포괄 적합도 이론의 한 응용일 뿐이다. 단수이배성 가설이 틀리더라도 포괄 적합도 이론은 무너지지 않음을 살펴보자.


리처드 도킨스 ⓒ David Shankbone




단수이배성에서 암컷 어른은 친자식보다 여동생과 유전적으로 더 가깝다

벌목에 속하는 사회성 곤충의 군락은 하나의 대가족이다. 대개 한 엄마가 낳은 수많은 자식으로구성된다. 여왕은 번식을 담당한다. 암컷인 일꾼 계급은 번식하는 대신 먹이를 물어오거나 어린 개체들을 돌보는 일에 특화되어 있다. (수컷은 번식만 할 뿐 절대 일하지 않는다. 개미를 그린 소설에서 수컷 일꾼이 나오면 책을 집어 던지시라.) 


군락 내에 전문적인 일꾼 계급이 따로 있는 진사회성은 1960년대 당시에는 벌목에 속하는 개미, 벌, 말벌 등과 흰개미목의 흰개미에만 존재한다고 여겨졌다. 왜 흰개미를 제외하면 벌목에서만 진사회성이 여러 번 독립적으로 출현했을까? 왜 벌목의 일꾼은 언제나 암컷인데, 이배체인 흰개미의 일꾼은 암컷도 있고 수컷도 있을까? 이 두 가지 의문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해밀턴의 1964년 논문은 벌목에 속하는 모든 곤충이 단수이배성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수컷은단수체 미수정란에서 태어나지만, 암컷은 이배체 수정란에서 태어난다. 달리 말하면, 아들은 그냥 엄마의 염색체 두 벌 가운데 한 벌만으로 뚝딱 만들어지지만, 딸은 엄마의 염색체 한 벌과 아빠의 염색체 한 벌이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이러한 단수이배성이 친자매 사이의 근연도를 유별나게 높여 준다고 해밀턴은 강조했다. 


일꾼 계급의 몸속에 있는 유전자의 관점에서 여동생의 몸속에도 복제본이 들어 있을 확률을 따져보자. 이 유전자는 엄마 아니면 아빠로부터 전해졌다. 유전자가 단수체 아빠로부터 전해졌다면 (50%) 그와 동일한 복제본이 무조건 아빠로부터 여동생에게도 전해졌을 것이다. 유전자가 이배체 엄마로부터 왔다면(50%), 같은 복제본이 여동생에게 또 전해졌을 몸속에도 복제본이 있을 확률은 반반이다(50%). 따라서 암컷 어른은 여동생과 0.5+ (0.5*0.5)=0.75로 이어져 있다. 반면에 암컷 어른이 만약 자식을 낳는다면 아들이건 딸이건 0.5로 이어진다. 즉 암컷 어른은 친자식보다 여동생과 유전적으로 더 가까우므로 “독립하기보다는 엄마의 군락에 남아서 일하는 성향이 쉽게 진화한다.”(해밀턴, 1972년, 205쪽)[각주:2] 수컷은 자신의 친동생(근연도=0.5)보다는 친딸(근연도=1)과 더 가까우므로 엄마가 낳은 여동생을 위해 희생하는 일꾼이 되지 않는다(아래 그림 참조). 요약하면, 단수이배성이 만드는 근연도의불균형은 유독 벌목에서 불임성 일꾼 계급이 자주 나타났으며 이들이 언제나 암컷인 까닭을 잘 설명해 준다고 해밀턴은 제안했다.





단수이배성가설, 비상하다

유전적 근연도가 사회성 곤충에서 나타나는 영웅적인 희생을 이토록 깔끔하게 설명할 줄이야! 단수이배성 가설은 일거에 사람들을 매료시키며 해밀턴의 이론이 널리 수용되는 데 큰몫을 했다. 하버드 대학교의 개미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1965년 봄, 윌슨은 보스턴에서 마이애미로 가는 장거리 기차에 올랐다. 딸이 어른이 될 때까지 비행기를 타지 않겠노라고 부인과 약속한 터였다. 꼼짝없이 객실에 18시간을 갇히게 된 그는 서류 가방에서 무명의 영국 대학원생이 쓴 논문을 펼쳐 들었다. 수학 모형이 나오는 부분은 어려워서 그냥 넘겼다. 단수이배성이 나오는 부분에 눈길이 갔다.


“이게 맞을 리가 없어. 너무 단순하다고!” 윌슨의 첫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사회성 곤충의 세계적인 권위자로서, 윌슨은 단수이배성 가설에 숨은 치명적인 결점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눈을 감고 생각을 거듭했다. 기차가 여정의 절반쯤 되는 버지니아를 통과할 즈음, 윌슨은 마침내 울화를 터뜨렸다. “해밀턴 이 친구가 누구건 간에, 그 엄청난 난제를 단번에 풀 수는 없어!” 마이애미에 다다를 무렵, 윌슨은 마침내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종착역을 나올 때 윌슨은 해밀턴의 열렬한 옹호자로 변신해 있었다.[각주:3]


에드워드 윌슨 ⓒ Jim Harrison




단수이배성 가설, 추락하다

그러나 단수이배성 가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회 생물학자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빠르게 퍼졌다. 오늘날 단수이배성 가설은 사실상 폐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럴까? 벌목 곤충에서 암컷 어른이 남동생과 어느 정도의 근연도로 이어져 있는지 따져보자. 이타적 행동을 만드는 유전자를 단수체 아빠로부터 물려받아(50%) 남동생과 공유할 가능성은 0이다. 단수이배성 체계에서 모든 수컷은 아빠가 없으니 말이다. 이 유전자를 이배체 엄마로부터 물려받아(50%) 남동생과 공유할 가능성은 50%이다. 따라서 근연도는 (0.5*0)+(0.5*0.5) = 0.25다.


즉 여동생에 대한 높은 근연도 0.75는 남동생에 대한 낮은 근연도 0.25와 정확히 상쇄된다. 단수이배성 체계에서나 이배성 체계에서나, 암컷 어른은 친동생과도 0.5, 친자식과도 0.5로 이어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암컷이 자식을 낳지 않고 엄마가 낳은 친동생을 위해 희생하는 습성이 단수이배성에서 유독 더 잘 진화하리라고 추정할 근거는 없다.


물론 해밀턴은 벌목에 속하는 곤충에서 암컷 어른과 친동생의 유전적 근연도는 평균적으로 0.5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해밀턴은 “성비를 통하거나 친동생의 성을 구별하는 능력을 통해서 일꾼이 주로 여동생을 키울 것”(해밀턴, 1972년, 213쪽)이라고 제안했다. 남동생과 여동생을 동수로 키우는 게 아니라, 암컷 어른이 자신과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여동생을 덜 가까운 남동생보다 더 많이 키운다면 자식보다 동생을 돌보는 이타적 행동이 진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감스럽지만, 이마저도 단수이배성 가설을 구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암컷 일꾼의 처지에서 보았을 때,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여동생들을 더 많이 키움으로써 얻는 이득은 나중에 성장한 흔한 암컷들끼리 귀한 수컷을 쟁취하느라 서로 더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손실로 고스란히 다 날리게 된다. 개체군의 전체성 비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암컷 어른이 친자식보다 친동생을 돌봄으로써 얻는 순수한 이득은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단수이배성이 만드는 근연도의 불균형은 유독 벌목에서 불임성 일꾼이 자주 등장한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오늘날 학계에서 폭넓게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단수이배성 가설은 포괄 적합도 이론이 아니다

해밀턴의 규칙인 rb>c를 상기해 보자. 상대방이 얻은 이득(b)에 유전적 근연도를 곱한 값(r)이 이타적 행위자가 입는 손실(c)보다 커야 이타적 행동이 선택된다. 단수이배성 가설은 b/c가 일정하다는 전제하에 암컷 어른의 입장에서 여동생과의 근연도가 친자식과의 근연도와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두 경우에서 b/c가 굳이 같을 이유는 없다. 남동생까지 고려하면 친동생과의 근연도는친자식과의 근연도와 0.5로 같다. 만약 암컷 어른이 친동생을 키울 때의 b/c가 친자식을 키울 때의 b/c보다 충분히 더 크다면, 친자식보다 친동생을 돌보는 불임성 일꾼의 이타적 행동이 해밀턴의 규칙에 따라서 진화할 수 있다. 단수이배성 가설은 포괄 적합도 이론의 한 응용일 뿐이다. 방금 살펴보았듯이, 유전적 근연도가 아니라 행위자와 상대방이 입는 이득과 손실의 비율에 초점을 맞추어 포괄 적합도 이론을 응용해도 벌목 곤충에서 진사회성이 자주 진화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각주:4]


이상하게도, 단수이배성 가설이 기각되었으니 포괄 적합도 이론도 틀렸다고 부르짖는 학자도 있다. 오랫동안 포괄 적합도 이론을 열렬히 지지했던 에드워드 윌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각주:5] 윌슨의 극적인 태도 변화는 나중에 다룰 기회가 있겠지만, 윌슨이 범하는 논리적 오류를 이렇게 끄집어내 보자. 찰스 다윈은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을 제안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부속 가설들도 함께 제안했다. 고래가 곰으로부터 진화했으리라는 가설도 그중 하나였다. 이 가설은 물론 기각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진화 이론도 함께 기각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고래의 조상이 곰이라는 가설은 다윈 진화 이론의 한 응용일 따름이며, 진화론에 입각한 다른 대안 가설로도 얼마든지 고래의 조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밀턴의 포괄 적합도 이론이라면 무조건 벌목, 단수이배성, 또는 0.75의 근연도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단수이배성 가설이 맞건 틀리건 간에, 포괄 적합도 이론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실증적 증거들은 수없이 많음을 기억해 두자.






※ 관련 도서 ※


『본성이 답이다』



『오래된 연장통』



『욕망의 진화 

  1. Dawkins, R. (1989). The selfish gene (revised edi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pp.316). [본문으로]
  2. Hamilton, W. D. (1972). Altruism and related phenomena, mainly in social insects. Annual Review of Ecology and systematics, 3, 193-232. [본문으로]
  3. Wilson, E. O. (1994). Naturalist. Island Press, Washington DC. [본문으로]
  4. Bourke, A. F., & Franks, N. R. (1995). Social evolution in ants. Princeton University Press. [본문으로]
  5. Wilson, E. O. (2012). The social conquest of earth. WW Norton &Company.[에드워드윌슨,이한음역, 2013. 지구의정복자,사이언스북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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