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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도전과 응전의 역사 F-117 본문

완결된 연재/(完) 비행기, 역사를 뒤집다

8. 도전과 응전의 역사 F-117

Editor! 2017. 7. 24. 17:45


8. 도전과 응전의 역사 F-117


제2차 대전 당시 영국은 레이더로 구원받았고 레이더는 공중전의 역사를 바꿔 놓았다. 


레이더의 등장으로 공중전의 역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공중전을 보면, 적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일이었는데 이제는 원거리에서 적의 위치, 속도, 방향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서 레이더로 유도되는 미사일의 등장으로 항공기는 커다란 위협에 직면한다.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항공 개발자들은 머리를 쥐어짰는데, 이때 나온 것이 레이더의 사각으로 파고들든가, 미사일의 사거리 밖으로 나간다는 방법 두 가지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직선으로 나아가는 레이더 파는 필연적으로 사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나온 게 조기 경보기지만, 초저공으로 날아가면 빈 구멍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개발된 게 B-1 랜서였고, 미사일의 사거리 밖으로 항공기를 띄우고자 만들어진 것이 유명한 U-2 정찰기였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어디까지나 대증요법일 뿐이다. 탐지하기가 어려울 뿐이지, 탐지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윰 키푸르의 재앙

욤 키푸르의 재앙이라 불리는 이스라엘과 아랍연합군 간 제4차 중동전, 혹은 욤 키푸르 전쟁(Yom Kippur War)이 발발했다. 그때까지 치렀던 세 차례 중동전으로 이스라엘은 중동 최강의 군사 국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4차 중동전은 이야기가 달랐다. 개전 24시간 만에 이스라엘 공군은 보유 전투기의 10퍼센트를 잃어야 했고, 개전 48시간 만에 이스라엘 육군 17개 여단이 사라졌다. 당시 이스라엘 총리였던 메이어는 닉슨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당시 서독에 배치된 탱크를 비롯해 각종 항공기, 스마트 폭탄 등으로 미국이 후방 지원에 나선 결과 이스라엘이 승리한다. 그러나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SAM-6의 장엄한 모습. 제3차 중동전 당시 이집트 공군은 비행장에 앉은 채 이스라엘 공군의 공습을 맞이해야 했다. 완벽한 기습으로 이집트 공군은 궤멸했고, 전쟁은 6일 만에 끝이 났다. 그러나 제4차 중동전의 이집트군은 달랐다. 공군전으로 이스라엘군을 제압할 수 없다면 지대공 미사일로 끝장을 내면 된다는 발상의 전환은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전투 결과를 확인한 군사 관계자는 앞으로의 전쟁을 걱정해야 했다. 지상전의 왕자라 불리던 탱크는 보병이 들고 나온 대전차 미사일에 불이 붙었고, 세계 최고의 전투기라 불리던 F-4 팬텀은 소련군의 대공 미사일과 쉴카(ZSU-23-4) 자주대공포에 속절없이 추락했다. 가히 미사일 혁명이었다.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 구축한 전차 부대와 전투기 부대가 미사일 한두 방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군사 관계자들을 공황에 빠졌다. 얼마 뒤 대전차 미사일에 대항하기 위해 3세대 전차가 나왔고, 기존 전차엔 반응 장갑을 붙였다.  


스컹크 웍스의 등장

음모론에 열광한 적이 있다면 록히드 사의 ADP(Advanced Development Programs, 고등 개발 프로그램) 이야기를 들어 봤을 것이다. 속칭 스컹크 웍스(Skunk Work)는 어떤 일을 하는 집단일까? 그들이 만든 항공기들을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마하 3의 속도를 자랑했던 검은 괴조 SR-71, 지금도 한반도 상공을 달아 다니는 고고도 정찰기 U-2, 최초의 스텔스 전폭기란 타이틀을 거머쥔 F-117, 현존 세계 최강의 전투기라 불리는 F-22 등등 수많은 괴작과 명작들을 찍어 낸 곳이 스컹크 웍스다. 이밖에도 무수한 전투기, 정찰기, 항공기들을 개발해 냈으니 시대를 앞서간 천재들임에 틀림이 없다.


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기괴한 모습의 F-117. 최첨단의 디자인처럼 보이지만, 정작 뜯어보면 기존 항공기의 부품을 최대한 활용해서 의외로 ‘수수하게’ 만들었다. F-117뿐만 아니라 U-2 정찰기도 과부 제조기라는 오명으로 유명한 F-104 스타파이터의 설계를 발전시켰다.  


제4차 중동전 이전부터 미국은 고민에 휩싸였다. 베트남전쟁 당시 소련의 지대공 미사일과 방공 체계에 전투기와 폭격기 들이 무너졌다. 여기에 제4차 중동전이 기름을 끼얹었다. 이스라엘 공군은 미국도 인정하는 최강의 공군력이다. 비록 인구는 적지만, 미국과의 특수 관계 덕분에 미국의 우수한 군용 장비를 수입할 수 있었고, 파일럿의 기량은 미국과 동등 혹은 그 이상으로 바라봤다. 여러 번의 실전 경험이 가져온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스라엘 공군이 소련의 SA-6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는 것을 보면서 미국은 자신들의 공군력으로는 소련의 방공망을 뚫을 수 없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미군이 이런 고민을 할 때 록히드 사는 자체적으로 신개념 폭격기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이 기술의 단초는 소련이 제공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 모스크바 무선공과 대학 수석 과학자였던 표트르 우핌쳄프라는 학자가 주인공이다. 1960년대 내 놓은 논문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물리적 반사 이론에 의한 전자파 예각 파동 방법(Method of edge waves in the physical theory of diffraction)」. 레이더의 작동 원리는 전파가 날아가서 물체에 맞고 되돌아오는 것을 확인해 탐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되돌아오는 것을 막는다면 어떻게 될까? 레이더 전자파를 맞은 물체가 이 전자파가 되돌아가지 않도록 난반사를 한다면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컹크 웍스는 항공기의 몸체와 날개의 반사 단면 값을 계산해 비행기 형태를 잡았고 F-117의 각진 모양이 탄생한다.    


격추된 F-117.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라지만, 군용기는 언제든 격추될 위험을 떠안고 있다.


미공군은 열광했다. 즉시 F-117을 최고 기밀로 분류하고, 보안 유지를 위해 모든 조치를 취했다. 비행 훈련과 작전 비행은 기본적으로 야간에만 진행됐고, 정보 교란을 위해 가상의 전투기를 개발한다는 정보를 흘리며 기밀을 보호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는 헛되지 않았다. 1989년 파나마 침공 작전으로 데뷔전을 치른 F-117은 1991년 걸프전에서 스텔스기의 존재를 온 세계에 알렸다. 스텔스는 이제 최첨단 항공 병기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됐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으로 이루어진다. 보이지 않는 전폭기가 나오자 보이지 않는 전폭기를 탐지하는 기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텔스 기술은 비행기를 감추는 게 아니라, 레이더 상에서 ‘작게’ 보이게 하는 기술이다. 즉 항공기의 레이더 반사 단면적(RCS)을 줄여 탐지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지 아예 안보이게 할 수는 없다. 또한 레이더 반사 단면적을 줄인다고 적의 탐지를 100퍼센트 막아 낼 수 있지도 않다. 이미 체코에서는 스텔스 탐지 레이더(정확히 말하자면, 스텔스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탐지하는) 타마라 패시브 레이더(Tamara Passive Radar)를 만들었고, 이를 개량한 베라(VERA) 레이더를 생산했다. 이에 놀란 록히드마틴 사는 베라 레이더의 판매권을 사 버렸다.  

스텔스가 무적의 기술처럼 보이지만, F-117도 코소보에서 작전 중 1대가 격추됐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말들이 많지만, 스텔스가 무적이 아니라는 사실은 증명되었다. 물론 수많은 전쟁에 참여한 스텔스가 단 1대만 격추됐다는 것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F-117은 코소보 전쟁 이후에도 현역 생활을 유지하다가 2008년 전투 기동을 중지했고, 2010년 스텔스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박물관에 전시될 몇 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파기되었다. 이미 B-2폭격기와 F-22 전투기와 같은 다른 스텔스 항공기가 있는데, 단일 목적에 무장 장착도 제한된 구형 스텔스기를 유지하기에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F-14 톰캣 전량 분쇄 때도 그랬지만 미국의 담대함과 풍요로움에 감탄하게 되는 대목이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236~237쪽.



펜더 이성주

《딴지일보》 기자를 지내고 드라마 스토리텔러, 잡지 취재 기자,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SERI CEO 강사로 활약했다. 민간 군사 전문가로 활동하며 『펜더의 전쟁견문록(상·하)』와 『영화로 보는 20세기 전쟁』을 썼다. 지은 책에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1』, 『글이 돈이 되는 기적: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 : 인물과 사료로 풀어낸 조선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 『아이러니 세계사』,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  등이 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있는 지방으로 이사해 글 쓰는 작업에만 매진하는 삶을 살고 있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도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