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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된 연재/(完) 비행기, 역사를 뒤집다

12. J79, 한 시대를 장악하다

Editor! 2017. 8. 21. 10:48


12J79, 한 시대를 장악하다


여객기 B747로 유명한 보잉 사는 군용기 F-15를 생산하고 A380으로 유명한 에어버스 사는 군용기인 유로파이터 타이푼을 생산한다. 민항기 시장을 보잉과 에어버스가 양분한다면, 군용기 부분은 진영 논리(서구권-동구권)와 정치적 환경에 따라 몇 개로 쪼개진다.

T-50을 사용하는 우리나라 공군의 블랙이글스. 국산 항공기라고 해도 엔진은 국산이 아니다.


서구권에서도 미국과 유럽이 나눠지고, 유럽은 다시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논리에 따라 메이커가 몇 개로 나눠진다. 미국의 경우에는 대표적으로 보잉과 록히드 마틴 사가 있고, 프랑스에는 다소(Dassault Aviation)와 에어버스가 있다. 독자 방위를 외치는 스웨덴은 사브(SAAB)가 그리펜을 생산한다. 한국의 경우에도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T-50을 베이스로 한 각종 항공기들을 생산해 낸다. 복잡하게만 보이는 항공기들의 족보도 하나만 살펴보면 의외로 쉽게 정리할 수 있다. 바로 ‘엔진’이다. 


전 세계 민간, 군용 항공기 엔진 시장을 삼분하는 거대 메이커는 제너럴 일렉트릭(GE), 롤스로이스, 프랫 앤 휘트니(Pratt & Whitney)다. 제너럴 일렉트릭은 우리나라와도 꽤 친숙한데, T-50에 장착한 엔진이 GE의 F-404엔진의 개량형이다. F-404는 F/A-18이나 F-117, 스웨덴의 그리펜에도 장착된 엔진이다. 롤스로이스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엔진들을 많이 만들었는데, 해리어에 달린 페가수스 엔진, 콩코드에 달린 Olympus 593, 글로벌 호크용 AE3007, 제2차 세계 대전 영국을 구한 스핏파이어와 호커 허리케인, 모스키토 등등에 실렸던 멀린(Merlin) 엔진이 있다(롤스로이스는 전통적으로 좋은 엔진을 만들지만, 비싸고 무겁기로도 유명하다). 이밖에도 민항기, 선박 엔진들도 생산하는 회사다. 프랫 앤 휘트니의 경우에는 제2차 세계 대전 최고의 전투기로 손꼽히는 F4U커세어에 장착한 R-2800, 그리고 세계 최강의 전투기로 손꼽히는 F-22에 장착된 F119-PW-100이 있다. 특히나 F119-PW-100의 경우는 세계최초의 양산형 추력편향 엔진이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획득한다. 여기에 더해 애프터 버너(afterburner, 연료를 분사해 순간적으로 최대 출력을 높이는 장치) 없이 초음속으로 순항할 수 있는 수퍼크루징(supercruising) 능력도 갖추고 있다.


F-4K. 영국군도 한 때 미국의 F-4팬텀을 운영했다. 전투기는 미국제지만, 영국의 자존심 덕분에 엔진은 롤스로이스 엔진을 장착했다.


각 메이커의 유명한 엔진 몇 개를 설명했는데, 이름만 들어봐도 각 메이커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서방세계 민간기, 군용기 메이커 숫자가 몇 개이든 탑재된 엔진은 이 3개의 메이커 중 하나의 엔진 둘 또는 그 이상을 사용한다. 각 메이커는 기종에 따라 엔진이 상호 호환된다. 그만큼 항공기 엔진, 특히 제트 엔진 생산에는 엄청난 기술력이 투입된다. 당장 신뢰할 수 있는 제트 전투기의 엔진을 만들 수 있는 국가를 손꼽으라면, 4~5개국이 안 된다. 미국과 영국이 서방세계는 꽉 잡고 있다. 프랑스의 스네크마가 있지만, 이들은 자국산 라팔, 미라지 엔진을 만드는 정도에서 멈춰있다. 러시아 엔진은 전통적으로 나쁜 연비와 불완전연소, 짧은 수명주기에 의해 그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고, 그 엔진을 데드카피한 중국제 엔진은 그 성능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애리조나 주 투손 소재 군용기의 무덤에 쌓여 있는 J79엔진들.


제트 전투기 시대로 넘어오면서 전투기의 개발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고, 특히나 전투기의 심장이 되는 ‘제트 엔진’은 비싸고, 개발하기 어려운 물건으로 분류됐다. 기술과 노력, 거기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제트 전투기 엔진은 어지간한 공업 기술력이 있는 나라들에게도 금단의 영역으로 분류됐다. 우리나라가 자체 개발했다고 자랑하는 T-50 기종과 그 파생형들의 경우에도 엔진은 제너럴 일렉트릭의 F-404엔진이다. 2017년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제트 전투기 엔진을 만들 수 없으니 제너럴 일렉트릭의 J79엔진은 미국과 한국의 기술 격차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할 수 있다.


한때 창공을 주름잡던 ‘F-4 팬텀의 엔진’ J79.


1950년대부터 개발이 시작돼 1955년에 최초로 시험 비행에 들어간 J79는 서방 세계 군용 전투기 엔진의 베스트셀러이다. F-4팬텀이 5,200여 대 이상 생산됐는데, J79 엔진이 2개 달려 있다. 2,500여 대 생산된 F-104 스타파이터에도 J79가 달렸다. 이스라엘이 미라지 전투기를 데드 카피한 크피르(Kfir) 전투기에도 J79가 장착됐다. 즉 프랑스제 미라지5 전투기에 미국제 J79엔진을 장착한 전투기였다. 

대충 꼽아 봐도 1만 기 가까운 엔진이 생산됐다. 대한민국 공군의 작전기 숫자가 400여 기 남짓인 걸 생각한다면, 엄청난 수량이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이 J79 엔진을 장착한 팬텀 전투기들이 날아다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J79 엔진의 성능을 확인할 수 있다. 매일같이 새로운 전투기가 등장하던 시기에 태어나 6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현역으로 살아남았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역사다. 

J79는 어떤 엔진일까? 분류상으로는 터보제트 엔진이다. 전투기 앞에 달려 있는 공기 흡입구로 유입된 공기를 여러 겹의 프로펠러(압축기라 불리는)에 통과시켜 고온 고압의 압축 공기로 바꾸고, 여기에 연료를 분사시킨 다음 불을 붙이면 고온 고압의 배기가스가 배출된다. 전투기는 뉴턴의 세 번째 운동 법칙인 작용-반작용 원리에 의해 날아간다. 터보제트 엔진 외에도 램제트, 터보팬, 터보프롭, 터보샤프트, 펄스제트 등등의 제트 엔진이 있다. 

안타깝게도 터보제트 엔진은 제트 엔진 시대의 여명기를 밝혔던 ‘초창기’ 제트 엔진이다. 상대적으로 간단한 구조, 고고도에서의 고속 비행 능력, 우수한 신뢰성 등의 장점을 가졌지만, 단점도 컸다. 우선 저속 비행 시 연료 효율이 문제가 됐다. 압축되는 공기의 양에 따라 연료 효율이 달라지는데, 저속으로 비행할 때는 압축되는 공기의 양이 적어 효율이 떨어진다. 압축비가 큰 배기가스를 분출해 추진력을 얻는 방식이기에 소음도 엄청났다. J79 엔진도 터보제트 엔진의 이런 단점이 고스란히 이식됐다. F-4팬텀이 배치됐던 대구 주민들은 크고 우렁찬 엔진 소리를 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1950년대 기술력의 한계로 유체 흐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설계된 J79는 불완전연소가 일어났다. 다시 말해 매연이 엄청났다. F-4팬텀을 아직까지도 운용하는 대한민국 공군 덕분에 J79의 소음과 매연을 앞으로 얼마간은 더 봐야 한다. 이제 그만 안식의 시간을 줘도 좋지 않을까?


트럭을 연상시키는 매연을 많이 뿜어내는 크고 우렁찬 엔진. 베트남전에서 F-4팬텀을 몰고 미그 전투기와 상대한 미군 조종사들은 F-4의 매연과 엄청난 크기 덕분에 쉽게 발견된다며 투덜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4의 ‘힘’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었다. 애초 개발 목적이 마하 2를 돌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덕분에 힘 하나만은 타고났다. 최대 추력이 1만 7000파운드라면, 요즘 현역으로 활동 중인 같은 회사의 F404 엔진에 비해서도 떨어지지 않는다(동급). F404가 J79보다 길이 1미터, 지름 20센티미터, 무게는 700킬로그램이나 줄어들었다는 걸 고려한다면 비교가 무의미하다 할 수 있지만, 기술력의 차이를 생각한다면 그 정도의 추력을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타고난 우수성을 증명한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163-164쪽.



펜더 이성주

《딴지일보》 기자를 지내고 드라마 스토리텔러, 잡지 취재 기자,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SERI CEO 강사로 활약했다. 민간 군사 전문가로 활동하며 『펜더의 전쟁견문록(상·하)』와 『영화로 보는 20세기 전쟁』을 썼다. 지은 책에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1』, 『글이 돈이 되는 기적: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 : 인물과 사료로 풀어낸 조선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 『아이러니 세계사』,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  등이 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있는 지방으로 이사해 글 쓰는 작업에만 매진하는 삶을 살고 있다.


『비행기 대백과사전』 [도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