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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의 전차전(下) : 탱크의 적은 탱크? 본문

완결된 연재/(完) 한국 전쟁 70주년 기념 특별 앵콜 연재

한국 전쟁의 전차전(下) : 탱크의 적은 탱크?

Editor! 2020. 6. 26. 09:00


한국 전쟁의 전차전(下)

탱크의 적은 탱크?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은 여러 종류의 전차를 운용했지만 주력은 어디까지나 구경 85밀리미터포를 탑재한 T-34/85였다. 이에 비해 미국은 M24 경전차, M4, M26, M46 전차 등 여러 종류의 전차를 운용했는데, 부대에 따라 주력으로 보유한 전차가 달랐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이 보병 사단 전차 대대와 연대 전차 중대 등에서 운용했던 M4A3 전차. 김병륜 촬영.


사단 수색대에는 주로 M24 경전차를 보유했으며, 연대 전차 중대에는 M4 전차를 주력으로 보유하는 부대도 있고, M26 전차를 주력으로 보유한 부대도 있었다. 사단 전차 대대에도 M46 전차를 보유한 경우도 있었지만, M4전차를 보유한 부대도 있었다.  


1950년 전쟁 첫 해에 미군 전차 중 가장 많은 북한군 전차를 격파한 전차는 구경 76밀리미터포를 탑재한 M4A3E8로 총 45대의 T-34/85를 격파했다. 그보다 구경이 큰 90밀리미터 포를 탑재한 M26전차는 32대, M46 전차는 19대의 T-34/85를 파괴했다. 상대적으로 장갑이 얇고 화력이 약했던 미군의 M24 경전차는 북한군 T-34/85 전차에 비해 성능이 열세였지만, 1950년 11월 T-34/85 1대를 격파한 사례가 있다.  


전체적인 성능을 비교해 보면 미군 전차들이 북한군 T-34/85에 비해 우세했다. 특히 조준장치의 성능은 미군 전차가 북한군 전차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표1>에서 보듯이 거의 모든 사거리에서 미군 전차들은 북한군 전차보다 초탄 명중률이 높았다. 


<표1> 한국전 당시 미군과 북한군 전차의 초탄 명중률.


우리가 흔히 무기의 성능을 비교할 때 전차는 전차끼리, 전투기는 전투기와 비교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양측 전차 성능의 직접 비교만으로 한국 전쟁 당시 전차의 위상을 가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실제 전쟁에서 전투 양상은 복잡하기 마련이다. 꼭 전차가 아니더라도 전폭기, 지뢰, 바주카포 같은 하늘과 땅의 다양한 무기들이 적 전차들을 격파할 수 있다. 심지어 보병이 혼자서 화염병을 들고 달려들어 대전차 특공으로 적 전차를 격파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특정 전쟁에서 전차가 어떤 무기에 의해 파괴되었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는 것은 전쟁사 애호가나 호사가들의 궁금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군인들에게도 매우 진지한 관심거리였다. 그 같은 분석 결과는 전술과 무기의 개발에 필수적인 정보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군은 한국 전쟁이 진행되는 시기에 이미 북한군 전차가 어떤 무기에 의해 파괴되었는지 운영 분석(Operations Research, OR) 기법을 이용하여 연구를 시작했다. OR은 군대, 정부, 회사 등에서 상황을 보다 계량적이고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결정을 보다 합리적으로 내리기 위하여 통계적 기법을 활용하여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 육군은 한국 전쟁에서의 전차전과 대기갑전(anti tank warfare)을 주제로 총 3권의 OR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중 1951년에 나온 미군 OR 보고서는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 T-34 전차 파괴 원인을 다음 <표2>와 같이 분석하고 있다.


<표2> 북한 T-34 파괴 원인.

 

이 분석 결과는 가장 먼저 대외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일본 자위대 관계자가 집필한 ‘조선전쟁’을 비롯한 여러 한국 전쟁 연구서에서 공군의 위력을 보여 주는 사례로 국내외에 널리 소개되었다. 이 분석의 가장 큰 특징은 네이팜탄, 항공 폭탄, 항공 로켓, 기총소사 등 항공공격에 의한 북한 전차 격파 사례가 총 102건으로 자료상 42.5퍼센트(정확하게는 42.67퍼센트)의 비율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흔히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 전차가 공중 공격으로 43퍼센트 파괴되었다고 일본 측 자료를 근거로 나오는 이야기는 바로 이 미군 보고서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보고서만으로 보자면 전차의 가장 무서운 적은 항공기가 되는 셈이다. 항공 공격 중에서도 네이팜탄을 이용한 전차 파괴 비율이 가장 높다. 네이팜탄은 알루미늄, 휘발유에 비누 같은 점성 물질을 혼합하여 만든 연소성 폭탄으로 목표물에 부딪히면 섭씨 3,000도의 고열로 타는 것이 특징이다. 그 다음으로 로켓이고 이때만 해도 정밀 유도 미사일이나 유도 폭탄이 개발되기 이전이므로 미사일은 통계에 나타나지 않고, 폭탄의 비중도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한국 전쟁 초반 미군은 2.36인치 바주카포로 북한군 T-34 전차를 격파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실전에서 북한군 T-34 전차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바주카’란 미국의 코미디언 밥 본즈가 쇼에서 쓰던 피리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2.36인치 대전차 로켓의 겉모습이 피리와 비슷한 것에서 나온 애칭이다. 미국은 2.36인치 바주카포로 T-34 전차를 격파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자, 미국에서 막 개발이 끝난 3.5인치 바주카포를 항공 수송으로 한국전선에 급히 투입하는 소동을 벌였는데, 전체 T-34 파괴 비율에서는 5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데 그치고 있다. 


같은 보고서에서 북한과 미군 전차를 동시에 분석 사례를 <표3>처럼 제시한 경우도 있는데, 양국의 수치가 두드러지게 차이난다. 우선 북한군 전차의 경우 <표2>와 거의 유사하며 43퍼센트가 미군의 항공 공격으로 파괴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 다음은 포기가 25.0퍼센트, 그 다음 세 번째가 전차포가 된다. 


<표3> 한국 전쟁 북한군과 미군 전차 파괴 원인 비교.


반대로 미군의 경우 41.8퍼센트가 기계적 고장으로 손실된 것으로 나타나 북한군의 기계고장 손실률 2.0퍼센트보다 월등히 높다. 1951년의 미군 보고서에서는 M26, M46 중형 전차(medium tank)가 한국에서 심각한 군수와 정비 문제를 발생시켰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모든 종류의 전차들이 한국에서 극단적으로 고장률이 높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산악 지형에서의 운용에 염두를 두지 않은 당시 미군 전차들이 한반도 지형에서 이례적으로 고장률이 증가했음을 엿볼 수 있다. 

 

북한군 보병의 직접 공격에 의한 미군 전차 손실 비율도 8.6퍼센트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포병에 의해 격파된 미군 전차의 비율은 2.4퍼센트인데, 이중 박격포(mortars)에 의한 손실 사례도 포함된 점은 이채롭다. 


북한군 전차 중 지뢰로 인해 파괴된 비율은 1.0퍼센트에 불과하지만 미군 전차 중 7.0퍼센트가 북한군 지뢰에 파괴당했다. <표4>처럼 1950년 10월까지 미군 전차 승무원 사상자 통계도 있는데, 이 자료에는 가장 사상자를 많이 난 무기가 북한군 지뢰로 되어 있어, 북한군 T-34 전차에 공격 받아 발생한 미군 사상자 수의 거의 5배에 달한다. 한국처럼 전차가 다닐 수 있는 통로가 제한되는 지형에서는 대전차 지뢰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음을 잘 보여 주는 통계이다. 이 때문에 미군은 <그림2>와 같은 북한군의 대전차 지뢰 설치 패턴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는 등 지뢰 손실을 줄이기 위해 고심했다.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의 대전차 지뢰 설치 패턴.


흥미롭게도 미군은 1952년 보다 정밀한 재분석을 거쳐 북한군 전차 파괴 원인 비율을 조정한다. 그에 따르면 항공기에 의한 파괴는 29대(11.3퍼센트)로 대폭 줄어든다. 대신 미군 전차포에 의해 파괴된 북한 전차는 97대(37.9퍼센트)인 것으로 해석했다. 기타 바주카포 같은 로켓포나 무반동총에 의한 파괴가 35대(13.7퍼센트), 포병이 28대(10.9퍼센트), 수류탄이 3대(1.2퍼센트), 미군 지뢰가 1대(0.4퍼센트), 북한군이 스스로 전차를 포기한 유기(遺棄)가 63대(24.6퍼센트)였다고 해석했다. 


<표4> 한국 전쟁 미군 전차 사상자 비율.


1951년의 조사에 비해 1952년의 조사는 항공기에 의한 파괴가 43퍼센트에서 11.3퍼센트로 대폭 줄어들고, 아군 전차에 의한 적 전차 파괴 비율은 16퍼센트에서 37.9퍼센트로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평가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동시에 바주카포 같은 육군의 대전차무기들이 적 전차를 격파한 비율이 13.7퍼센트로 아군 항공 공격의 전과보다 더 높게 나타는 점도 두드러진 특징이다. 

 

1951년 보고서에서도 이미 아군이 격파해서 멈추게 만든 적 전차를 아군 항공기들이 재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제시되어 있는데, 이 같은 가능성을 1년 만에 확정한 셈이다. 정확한 수치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어떻든 아군 지상군이 이미 파괴한 적 전차를 아군 항공기가 중복 공격, 혹은 과잉 공격(overkill)한 사례가 실제로 존재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조사의 배경에는 육군과 공군의 자존심 문제, 육군의 존재 가치 증명, 아군 전차의 필요성 강조 등 여러 가지 의도와 배경이 깔려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1952년 미 육군 운영분석 보고서를 통해 미 육군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두 가지 핵심 논리는 ‘전차의 맞수는 전차’이며, 동시에 ‘적 전차를 상대하는 주인공은 육군’이라는 메시지였다. 


『탱크 북』 84~85쪽에서 Copyright © Dorling Kindersley




글쓴이 김병륜

 《국방일보》 취재 기자를 지내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국사를 전공했다(석사). 한국 군사사를 중심으로 군사 분야 역사를 연구하면서 저술, 다큐멘터리 출연, 강연, 군사 관련 콘텐츠 자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은 책에 『조선시대 군사혁신-성공과 실패』, 옮긴 책에 『그림으로 보는 5000년 제복의 역사』 등이 있다.


DK 『탱크 북』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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