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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협력의 공식 시즌3

1. 집단 선택론의 몰락, 그 후

Editor! 2019.02.15 18:18


우리나라의 대표적 진화 심리학자인 전중환 경희 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의 「협력의 공식」이 시즌 3로 여러분을 다시 찾아갑니다. 4회에 걸쳐 매달 2주차 금요일에 게시될 이번 연재에서는 집단 선택론을 두고 벌어진 진화 과학자들의 공방이 펼쳐집니다.

‘이타적인 집단은 이기적인 집단을 이긴다.’ 정말 그럴까요? 사람만 해도, 언뜻 보면 집단의 이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많은 집단은 그런 사람이 적은 집단보다 생존에 유리할 것도 같지요. 하지만 진화 과학자들은 이 문제에 간단히 답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21세기 현재 전 세계 진화 생물학자들을 둘로 쪼갠 대논쟁의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연재를 따라오시면, 관점이 서로 다른 과학자들이 경합을 벌이며 우리 마음을 과학의 영역으로 들여놓는 과정을 목격하실 수 있습니다.




집단 선택론이 저물고 유전자 선택론이 떠오르다
1960년대 중반과 1970년대 중반 사이, 진화 생물학계에는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이 일어났다. 개체가 종이나 생태계 같은 집단의 이득을 위해 행동하도록 진화했다는 집단 선택론이 복잡한 적응은 오직 유전자의 이득을 위함이라는 유전자 선택론에게 권좌를 내주고 사라진 것이다. 저명한 행동 생태학자 제프리 파커(Geoffrey Parker)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1965년 즈음에는 집단 선택론자만이 논문을 학술지에 실을 수 있었습니다. 10년이 지난 다음, 유전자 선택론자가 아닌 사람은 논문을 학술지에 싣기 어려울 정도였죠.” 영국의 몇몇 대학에서는 아직도 집단 선택론을 신봉하는 노학자의 인기척이 복도에서 들리면 연구실마다 황급히 목소리를 낮추고 방문을 닫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ⅰ)

지난 연재에서 살펴보았듯이, 혁명을 이끈 사인방은 조지 윌리엄스, 윌리엄 해밀턴, 존 메이너드 스미스, 그리고 로버트 트리버스였다. 물론 유전자의 눈 관점에서 진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완성한 리처드 도킨스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이 초창기의 조야한 집단 선택론을 어떻게 붕괴시켰는지 간략히 정리하고, 새로운 집단 선택론을 주창한 반항아를 만나 보자.

유전자 선택론이라는 혁명을 이끈 사인방.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조지 윌리엄스, 윌리엄 해밀턴, 존 메이너드 스미스, 로버트 트리버스.



집단 선택론을 붕괴시킨 혁명가들
집단 선택론을 쫓아낸 선봉장은 물론 조지 윌리엄스였다. 윌리엄스는 명저 『적응과 자연 선택』(1966년, 전중환의 번역으로 2013년 한국어판이 출간되었다.)에서 선택은 여러 수준에서 일어날 수 있지만, 높은 수준보다 낮은 수준에서의 선택이 더 강하게 작동한다고 주장했다. 즉 집단 간의 선택은 개체 간의 선택에 비하면 거의 언제나 약하다. 따라서 개체 선택이 어떤 형질을 이미 잘 설명하고 있다면, 뚜렷한 이유 없이 집단 선택을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예를 들어 보자. 늑대를 만나면 재빨리 달아났던 사슴이 천천히 물러섰던 사슴보다 자식을 더 많이 남겼을 것이다. 이러한 개체 선택이 오늘날의 재빠른 사슴을 만들었다. 개체 선택의 순전히 부수적인 결과로, “재빠른 사슴들의 한 집단”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재빠른 사슴들이 그냥 모인 집단은 기능적으로 잘 조직화한 가상의 집단, 즉 “사슴들의 한 재빠른 집단”에는 미치지 못함을 주의하기 바란다. 구성원 가운데 한 사슴은 눈이 밝아서 망을 보고, 한 사슴은 튼튼해서 어린 개체들을 안고 뛰고, 한 사슴은 똑똑해서 총지휘를 담당하는 등 기능적으로 잘 조직화한 가상의 사슴 무리는 늑대를 기가 막히게 피할 수 있겠지만, 현실 세계에는 없다. 잘 조직화한 집단이 덜 조직화한 집단보다 더 많은 자식 집단을 남기는 집단 선택이 이러한 집단 수준의 적응을 만들 만큼 강력하지는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ⅱ)

윌리엄스가 집단 선택을 논할 때, 그가 말하는 ’집단’은 피붙이가 아닌 개체들로 이루어진 집단을 뜻했다. 사실 한 군락을 이루는 개미 대가족을 보면 여왕, 일꾼, 병정, 수컷 사이에 역할 분담이 확실히 되어 있듯이, 혈연 집단은 종종 기능적으로 잘 조직화한 적응을 지닌다. 엄마 여왕이 낳은 동생들을 위해 평생 일만 하는 일개미처럼, 피붙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 행동은 상대방의 몸속에 있는 내 유전자의 복제본이 얻을 이득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하는 혈연 선택으로 잘 설명되었다. 바로 해밀턴이 1964년에 발표한 포괄 적합도 이론이다.ⅲ)

한편, 동물들이 혈연이 아닌 상대에게 종종 온정을 베푸는 까닭은 나중에 상대방으로부터 은혜를 돌려받기 위해서라고 1971년 트리버스의 상호성 이론은 설명했다.ⅳ) 싸움이 벌어지면 동물들이 다짜고짜 상대를 죽이려 돌격하기보다는 빙빙 돌면서 요란하게 겁만 주는 과시 행위를 열심히 하는 까닭은 종 전체의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이득을 최대화하기 위함이라고 1973년 메이너드 스미스와 조지 프라이스의 진화 게임 이론은 설명했다.ⅴ)

『적응과 자연 선택』이 나온 지 정확히 10년이 되던 해에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1976년)를 출간했다. 개체, 집단, 종, 생태계 등은 덧없는 운반자(vehicle)에 불과하며, 자연 선택의 단위는 불멸하는 복제자(replicator)인 유전자임이 최종적으로 확립되었다.ⅵ)

© Stiller Beobachter


집단 선택론이 이단으로 낙인찍히다
변혁은 문자 그대로 갑작스러웠다. 집단 선택론의 퇴각은 용불용설을 주장한 라마르크주의(Lamarckism)의 몰락에 비견될 정도로 과학이 결국에는 뚜벅뚜벅 진보함을 잘 보여 주는 사례로 받아들여졌다. 생물학과 대학원생들은 집단 선택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할 뿐, 성립 요건이 너무 까다로워서 실제로는 무시해도 좋다고 반복 학습했다.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는 생물학자들은 본문 중에 행여나 집단 선택론을 연상케 하는 구절이 들어 있지나 않은지 여러 번 확인하고 투고했다.ⅶ)

유전자의 눈 관점으로 진화를 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유보적이었던 몇몇 반대자들은 집단 선택론이 어느새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이단이 되어 버렸다고 불평했다. 윌리엄스, 해밀턴, 트리버스 같은 선각자들의 연구는 분명히 높이 평가받아야 하지만, 이들의 권위를 앞세워 집단 선택이란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켰던 당대의 무비판적 추종자들이 큰 문제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1973년에 계통 및 진화 생물학 국제 학회에 참석한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30대의 젊은 연구자 굴드가 어느 발표자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홍적세 포유동물들의 몸집이 갑자기 작아진 까닭은 작은 몸집이 멸종을 피하기에 유리해서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놀랍게도, 발표자는 굴드의 제안에 대해서 가타부타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그는 딱 한마디만 했다. “그런 식의 집단 선택론을 정말로 받아들이시나요?” 그러고 나서 다음 질문자를 천천히 지목했다. 마치 집단 선택론은 이미 사악한 이단으로 낙인찍힌 듯했다. 나중에 굴드는 혁명이 일단 수립되고 나면 반대 방향으로 비지성적인 작태가 벌어지는 좋은 사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ⅷ)


새로운 집단 선택론을 주창한 반항아
유전자 선택론이 막 전성기를 맞이하던 1970년대 후반부터, 몇몇 반항아들이 집단 선택론을 송두리째 버리는 것은 잘못이라며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신(新)집단 선택론(new group selection theory)을 주창한 학자들이 ‘종의 이득’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든 과거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유전자 선택론 쪽으로 균형추가 지나치게 기울어진 당시의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역설했다. 진화 생물학자 데이비드 슬론 윌슨(David Sloan Wilson), 마이클 웨이드(Micahel Wade), 그리고 생물 철학자 엘리엇 소버(Elliott Sober)가 대표적이었다.

D. S. 윌슨은 미국 뉴욕 주립 빙엄턴(Binghamton) 대학교의 인류학과 및 생물학과 교수다.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길고 갸름하고, 알이 큰 뿔테 안경을 쓰고, 매우 수다스럽다. 그의 아버지는 저명한 소설가 슬론 윌슨(Sloan Wilson)이다. D. S. 윌슨이 일곱 살이었던 1956년에 그의 아버지가 출간한 소설 『회색 플란넬 양복을 입은 남자(The Man in the Gray Flannel Suit)』는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소년 D. S. 윌슨은 아버지를 하늘같이 존경했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만큼 크게 성공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결국 윌슨은 아버지가 할 수 없는,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직업인 과학자의 길을 택했다. 훗날 윌슨은 문학 작품을 진화적으로 분석한 『문학적 동물(The Literary Animal)』(2005년)이라는 책을 엮음으로써 가슴에 맺힌 한(?)을 풀었다.

어려서부터 자연에서 뛰놀기를 즐겼던 윌슨은 미시건 주립 대학교(Michigan State University)에서 해양 생태학으로 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는 동물성 플랑크톤이 밤이 되면 수면 가까이 올라오고, 낮이 되면 아래로 내려가는 수직 이동 행동을 연구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성체만 수직 이동을 한다. 어린 개체들은 항상 수면 가까이에 머무른다. 왜 성체들은 매일 바닷속을 오르락내리락할까? 가장 흔한 설명은 성체를 주로 먹는 포식자들이 낮에 수면 가까이 몰려 있기 때문에, 이들을 피하고자 성체들이 낮에는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초창기의 조야한 집단 선택론을 주장한 베로 코프너 윈에드워즈(Vero Copner Wynne-Edwards)의 생각은 달랐다. 윈에드워즈는 동물성 플랑크톤의 수직 이동이 집단 선택에 의해 진화했다고 보았다. 낮에 자식들을 남겨 두고 어른들만 일제히 아래로 내려가면, 어린 개체들은 입이 확 줄어든 덕분에 각자 더 많은 음식물을 얻을 수 있다. 이때, 성체 하나가 부재 중이라 생기는 이득은 그 친자식뿐만 아니라, 다른 어린 개체들에게도 공평히 돌아감을 유념하기 바란다. 동물성 플랑크톤의 수직 이동 행동은 이스라엘의 집단 농장 키부츠처럼 어른들이 내 자식, 네 자식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는 거대한 공동 보육 체계일까? D. S. 윌슨은 꽤 그럴듯한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러한 집단 선택이 가능함을 보여 주는 수리 모형을 만들기로 결심했다.ⅸ)

집단 선택론의 현대적 주창자 데이비드 슬론 윌슨. 사진 출처: evolution-institute.org.


ⅰ) Segerstråle, U. (2000). Defenders of the Truth: The Battle for Science in the Sociobiology Debate and Beyond. Oxford University Press, New York. p. 54.
ⅱ) Williams, G. C. (1966).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 A Critique of Some Current Evolutionary Thought. Princeton University Press, Princeton, NJ (전중환 옮김, 『적응과 자연 선택』, 나남, 2013년).
ⅲ) Hamilton, W. D. (1964). The Genetical evolution of social behaviour. I & II. 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 7(1), 1-52.
ⅳ) Trivers, R. L. (1971). The evolution of reciprocal altruism. Quarterly Review of Biology, 46, 35-57.
ⅴ) Maynard Smith, J. & Price, G. R. (1973). The logic of animal conflict. Nature, 246(5427), 15-18.
ⅵ) Dawkins, R. (1976/2006). The Selfish Gene. (30th anniversary edi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홍영남, 이상임 옮김,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 2018년).
ⅶ) Sober, E., & Wilson, D. S. (1999). Unto Others: The Evolution and Psychology of Unselfish Behavior. Harvard University Press. p. 40. (설선혜, 김민우 옮김, 『타인에게로』,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3년).
ⅷ) Gould, S. J. (2002). The Structure of Evolutionary Theory.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p. 554.
ⅸ) Wilson, D. S. (2007). Evolution for Everyone: How Darwin's Theory Can Change the Way We Think about Our Lives. New York, NY: Delacorte Press (김영희, 정지영, 이미정 옮김, 『진화론의 유혹』, 북스토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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