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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협력의 공식 시즌3

2. 집단 선택론의 반격

Editor! 2019.03.15 18:08


우리나라의 대표적 진화 심리학자인 전중환 경희 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의 「협력의 공식」이 시즌 3로 여러분을 다시 찾아갑니다. 4회에 걸쳐 매달 2주차 금요일에 게시될 이번 연재에서는 집단 선택론을 두고 벌어진 진화 과학자들의 공방이 펼쳐집니다.

‘이타적인 집단은 이기적인 집단을 이긴다.’ 정말 그럴까요? 사람만 해도, 언뜻 보면 집단의 이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많은 집단은 그런 사람이 적은 집단보다 생존에 유리할 것도 같지요. 하지만 진화 과학자들은 이 문제에 간단히 답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21세기 현재 전 세계 진화 생물학자들을 둘로 쪼갠 대논쟁의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연재를 따라오시면, 관점이 서로 다른 과학자들이 경합을 벌이며 우리 마음을 과학의 영역으로 들여놓는 과정을 목격하실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슬론 윌슨, 새로운 집단 선택론의 횃불을 들어 올리다


에드워드 윌슨(왼쪽)과 데이비드 슬론 윌슨(오른쪽), 두 윌슨이 손을 잡고 집단 선택론이라는 파란을 일으키다.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1971년에 미국 로체스터 대학교를 졸업했다. 집단 선택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붕괴하고 있던 시기였다. 조건 없는 진정한 선행은 진화할 수 없고, 개체는 뼛속까지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공공연히 떠돌았다. (우리가 ‘이기적’이라고 은유하는 유전자가 반드시 개체를 이기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오해가 생물학자들 사이에 흔했다.)


하루 빨리 위대한 업적을 내고자 열망하던 젊은이 D. S. 윌슨은 윈에드워즈의 대작 『사회적 행동에 관한 동물 분포(Animal Dispersion in Relation to Social Behavior)』를 탐독하며 집단 선택론 논쟁에 빠져들었다. 다들 집단 선택론이 완패했다고 생각하는 판국에, 그가 홀연히 나서서 집단 선택론이 결국 옳았음을 입증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D. S. 윌슨은 학부 졸업 논문에서 동물성 플랑크톤의 수직 이동 행동이 집단 전체를 위한 공동 보육일지 모른다는 윈에드워즈의 가설을 짧게 언급했다. 정작 대학원에서는 동물성 플랑크톤이 먹이를 잡는 행동을 비롯해 다른 주제를 연구하느라 바빴다.


1974년은 미시건 주립 대학교 대학원에서 밟은 박사 과정의 마지막 해였다. D. S. 윌슨은 학술지를 들척이다 동물성 플랑크톤의 수직 이동에 대한 최신 논문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집단 선택론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불타올랐다. 그는 여러 집단으로 구성된 개체군에서 자연 선택이 집단 사이에, 그리고 내부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수식 모형을 만들었다. 동물성 플랑크톤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에 폭넓게 적용되는 모형이었다. 종이를 까맣게 물들인 수식들은 집단 간 선택이 집단 내 선택을 언제나 제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참패하지도 않음을 보여 주었다. 둘 중에 누가 더 강한지는 사안별로 일일이 따져 보아야 할 문제였다. 브라보! 이야말로 다 쓰러져 가던 집단 선택론이 날린 회심의 반격이 아닌가?)


뛸 듯이 흥분한 D. S. 윌슨은 일사천리로 논문을 완성했다. 그러고는 하버드 대학교의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에게 대뜸 전화를 해서 잠시 뵙고 싶다고 요청했다. 미국 국립 과학원이 발행하는 일급 학술지인 《미국 국립 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는 회원의 추천을 받은 논문을 형식적인 심사를 거쳐 바로 게재해 주는 독특한 규정이 있다. D. S. 윌슨은 과학원 회원인 에드워드 윌슨을 만나서 자신이 쓴 집단 선택론 논문을 회보에 추천해 달라고 부탁할 심산이었다.


미시건 주에서 매사추세츠 주 하버드 대학교로 운전해서 가는 길에 D. S. 윌슨은 뉴욕 주의 스토니브룩(Stony Brook)에 들렀다. 그곳의 뉴욕 주립 대학교에 재직 중이던 조지 윌리엄스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집단 선택론을 처참하게 무너뜨린 바로 그 주인공 말이다. D. S. 윌슨은 윌리엄스의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대뜸 소리쳤다. “교수님께 집단 선택론이 맞는다는 걸 설득하러 왔습니다!” 윌리엄스는 물론 넘어오지 않았지만, 이 패기만만한 젊은이에게 졸업 후 자신의 연구실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함께 일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이후 D. S. 윌슨은 윌리엄스와 학문적으로는 적수이지만 사적으로는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다.)


에드워드 윌슨은 몹시 바쁜 사람이었다. D. S. 윌슨을 칠판 앞에 세운 뒤, 자신은 맞은편 의자에 걸터앉아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자네에게 20분을 주겠네.” D. S. 윌슨은 열심히 자기 상품을 홍보했다. 마침내 거래가 이루어졌다. 에드워드 윌슨이 D. S. 윌슨의 집단 선택론 논문을 《미국 국립 과학원 회보》에 추천해 주기로 약속한 것이다. 1975년에 「집단 선택의 이론(A theory of group selection)」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이론 논문은 1,000번 이상 인용되며 새로운 집단 선택론을 무대 전면에 올리는 견인차가 되었다.)


[캡션] 수학 모형을 바탕으로 집단 간 선택이 집단 내 선택을 언제나 제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참패하지도 않음을 보여 준 D. S. 윌슨의 논문. 사진 출처: Wilson, D. S. (1975). A theory of group selec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72(1), p.144.


이제 박사 학위 논문을 빨리 완성하고 졸업하면 그만이었다. 한 가지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대학원 시절 내내 D. S. 윌슨이 줄곧 연구해 온 동물성 플랑크톤의 생태와 행동은 더는 D. S. 윌슨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다행히 지도 교수인 해양 생태학자 도널드 홀(Donald Hall)은 까다롭지 않았다. “자네의 집단 선택론 논문이 에드워드 윌슨의 추천을 받아 《미국 국립 과학원 회보》에 실린다니, 그 논문만으로도 박사 학위를 받기 충분하지.” 결국 D. S. 윌슨은 아마도 진화 생물학 역사상 가장 짧을 11쪽짜리 박사 학위 논문을 쓴 학자가 되었다.) 



소수의 돌격대가 일으킨 파장

D. S. 윌슨이 1975년에 낸 집단 선택론 논문에 대한 학계의 첫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뭐, 맞는 말이긴 하지만…….” 모형 자체는 틀리지 않지만, 이를 집단 선택이라 부르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D. S. 윌슨은 사람들이 집단 선택에 조금이라도 힘을 실어 주는 주장은 무조건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고 불평했다.)


이후 40년 이상을 그는 집단 선택론을 되살리는 사명에 매달렸다. 그의 험난한 여정에 진화 생물학자 마이클 웨이드(Michael Wade)와 생물 철학자 엘리엇 소버(Elliott Sober)가 동참했다. 웨이드는 혈연 선택이 집단 선택의 일종임을 보이는 수식 모형을 발표했다.) D. S. 윌슨은 1980년에 『개체군과 군집의 자연 선택(The Natural Selection of Population and Communities)』이라는 전문 서적을 써서 동료 학자들에게 집단 선택론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널리 설파했다.) 의외의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한 사람은 물론 윈에드워즈였다. 윈에드워즈는 야외에서 동물을 관찰하는 현장 생물학자였기에 D. S. 윌슨의 복잡한 수식 모형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어쨌든 기쁜 소식임에는 틀림없었다. 윈에드워즈는 1986년에 『집단 선택을 통한 진화(Evolution through Group Selection)』라는 책을 내서 자신의 비판자들을 응징하고자 했다.) 


베로 코프너 윈에드워즈의 사진. (출처: 영국 애버딘 대학교 홈페이지)


이처럼 1980년대에 들어서 새로운 집단 선택론을 부르짖는 소수의 돌격대는 진화 과학계에 점점 더 큰 파장을 일으켰다. 1989년에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개정판을 내면서 덧붙인 보주(補註)에서 이 기가 막힌(?)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특히 미국에서 ‘집단 선택’이라는 이름을 여기저기 흩뿌리고 다니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예전에는 쉽고 명쾌하게 별도의 다른 과정으로, 이를테면 혈연 선택으로 간주되어 온(그리고 그들을 제외한 우리 모두는 여전히 다르다고 보는) 모든 종류의 선택에 갑자기 집단 선택이라는 명찰이 덕지덕지 붙는다. …… 집단 선택에 대한 논쟁은 이미 10여 년 전에 존 메이너드 스미스 등이 아주 깨끗하게 종지부를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언어를 쓰는 영국과 미국 두 나라가 이렇게 의견이 갈라진다는 것은 짜증스러운 일이다. ─『이기적 유전자』 한국어판, 545쪽ⅹ)


도킨스가 분노하거나 말거나, 1998년에 소버와 D. S. 윌슨은 『타인에게로(Unto Others)』라는 책을 함께 저술했다. 크게 화제가 된 이 책에서 소버와 윌슨은 새로운 집단 선택을 뒷받침하는 수식 모형과 실제 사례들을 제시하며 집단 선택이 인간의 진정한 이타적 성향을 빚어냈으리라고 주장했다.ⅺ)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자신이 거주하는 빙엄턴 시에서 진화론에 근거한 도시 개선 사업을 전개했다. ‘네이버후드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운동의 이론적 기반이 집단 선택론이었다. 이 운동의 경과를 기록한 『네이버후드 프로젝트』에서 집단 선택론에 대한 대중적 설명을 볼 수 있다.



에드워드 윌슨, 새로운 집단 선택론에 합류하다

외로운 싸움을 전개하던 집단 선택론 돌격대에 2000년대 후반 들어 뜻밖의 지원군이 합류했다. 에드워드 윌슨이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에드워드 윌슨은 ‘이기적 유전자’로 대표되는 사회 생물학을 창시한 인물이 아닌가? 에드워드 윌슨은 도킨스와 더불어 1970년대에 사회 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이끈 쌍두마차로 꼽힌다. 에드워드 윌슨이 1975년에 낸 『사회 생물학: 새로운 종합(Sociobiology: The New Synthesis)』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사회적 행동에 관한 실험과 이론 연구 들을 진화론과 개체군 생태학의 틀에서 종합한 백과 사전적 총서였다. 이 책이 한 해 늦게 나온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더불어 서구 사회 전반에 엄청난 사회 생물학 논쟁을 일으켰음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사회 생물학』이나 『이기적 유전자』나 내용은 비슷하리라고 짐작한다.


그렇지 않다.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의 관점에서 진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쓰였다. 반면에 『사회 생물학』은 자연 상태에서 벌어지는 동물의 행동을 진화의 관점에서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새로운 과학이 탄생했음을 동료 생물학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쓰였다. 즉 유전자 선택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전파하는 일은 애초부터 에드워드 윌슨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에드워드 윌슨은 『사회 생물학』에서 윌리엄 해밀턴, 조지 윌리엄스, 존 메이너드 스미스, 로버트 트리버스를 인용하기는 했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으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이들은 책에서 인용되는 수백 명의 학자들 가운데 일부일 뿐이었다. 해밀턴의 업적은 『사회 생물학』 5장, 원서 기준으로 118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나왔다. 메이너드 스미스와 조지 프라이스의 진화 게임 이론은 아예 언급도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사회 생물학』에서 에드워드 윌슨은 개체가 종의 이득을 위해 희생한다는 집단 선택론을 몰아내고 유전자 선택론을 새로 정립하려 애쓰지 않았다. 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윌리엄스의 업적이 무분별하게 집단 선택을 가정하는 태도를 바로잡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인정한 다음, 에드워드 윌슨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윌리엄스는 집단 선택론을 덮어놓고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개체 선택론을 너무 지나치게 옹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 집단 선택이 아무리 직관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여도,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광범위한 조건하에서 가능하다.”(『사회 생물학』, 30쪽) 윌슨은 해밀턴의 업적에 대해서도 뜨뜻미지근했다. 해밀턴의 규칙을 상세히 설명하면서도, 이 규칙으로부터 새롭게 도출되는 예측들이 너무 적다고 꼬집었다.ⅻ) 


에드워드 윌슨이 집단 선택론으로 전향한 후 펴낸 『지구의 정복자』. 진화 생물학계를 비롯, 세계 지식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에드워드 윌슨은 2005년에 「이타성의 열쇠로서의 혈연 선택: 그 발흥과 몰락(Kin selection as the key to altruism: its rise and fall)」이라는 논문을 써서 학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제목 그대로 혈연 선택의 수명이 다했음을 선언하는 내용의 논문이었다. 2007년에는 D. S. 윌슨과 손잡고 「사회 생물학의 이론적 토대를 재고함(Rethinking the theoretical foundation of sociobiology)」이라는 논문을 함께 썼다. 두 윌슨은 새로운 집단 선택론이 사회 생물학의 이론적 토대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다음 회에서는 새로운 집단 선택론이 과거의 집단 선택론과 어떻게 다른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 Brown, A. (2003, July 4). ‘I wanted to show how niceness evolves.’ The Guardian, Retrieved from https://www.theguardian.com/science/2003/jul/24/scienceinterviews.research.

) TheBestSchools.org. David Sloan Wilson interview. Retrieved from https://thebestschools.org/dialogues/evolution-david-sloan-wilson-interview/

) Brown, A. (2003). 앞의 글.

) Wilson, D. S. (1975). A theory of group selec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72(1), 143-146.

) Wilson, D. S. (2007). Evolution for Everyone: How Darwin's Theory Can Change the Way We Think about Our Lives. New York, NY: Delacorte Press (김영희, 정지영, 이미정 옮김, 『진화론의 유혹』, 북스토리, 2009년).

Sridhar, H. (2018, July 19). Revisiting Wilson 1975. [blog post]. Retrieved from https://reflectionsonpaperspast.wordpress.com/2018/07/19/revisiting-wilson-1975/.

) Wade, M. J. (1978). A critical review of the models of group selection. The Quarterly Review of Biology, 53(2), 101-114.

) Wilson, D. S. (1980). The Natural Selection of Populations and Communities. Benjamin/Cummings Pub. Co.

) Wynne-Edwards, V. C. (1986). Evolution through Group Selection. Blackwell Science Inc.

) Dawkins, R. (1989). The Selfish Gene. 2nd ed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p. 297 (홍영남, 이상임 옮김,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 2018년, 545쪽).

ⅺ) Sober, E., & Wilson, D. S. (1999). Unto Others: The Evolution and Psychology of Unselfish Behavior (No. 218). Harvard University Press (설선혜, 김민우 옮김, 『타인에게로』,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3년, 545쪽).

ⅻ) Wilson, E. O. (1975). Sociobiology: The New Synthesi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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