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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협력의 공식 시즌3

3. 새로운 집단 선택론이란 무엇인가?

Editor! 2019.04.19 10:10

집단 선택론이라는 쟁점을 두고 진화 과학자들의 공방이 펼쳐지는 「협력의 공식 시즌 3」, 오늘은 데이비드 슬론 윌슨의 새로운 집단 선택론을 본격적으로 이해하는 시간입니다. 지난 연재에서 우리는 데이비드 슬론 윌슨을 비롯해서 새로운 집단 선택론 진영에 합류한 일군의 과학자들을 확인했습니다. 그중에는 에드워드 윌슨이라는 예상 밖의 막강한 지원군도 있었지요. 이들은 과거의 집단 선택론과는 단호히 선을 긋고 자신들의 이론을 견고하게 쌓아 올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서 이타성이라는 진화론의 난제를 풀 공식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전중환 경희 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와 함께 놀라운 이론과 논쟁, 뒷이야기와 반전으로 가득한 진화 과학자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나 봅니다.


 

트리버스와 데이비드 슬론 윌슨의 악연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1975년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토머스 슈너(Thomas Schoener) 교수의 실험실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1년여를 보냈다. 야심 넘치는 26세 청년 데이비드 슬론 윌슨이 하버드에서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유전자 관점의 진화 패러다임을 일군 사인방 가운데 하나인 로버트 트리버스였다. 당시 트리버스는 하버드 대학교 생물학과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트리버스의 연구실을 방문해서 말했다. “탄탄한 집단 선택론을 확립하는 데 제 일생을 바치려 합니다.” 트리버스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안 그러는 게 나을 거요. 혈연 선택 이론을 적용해야 비로소 풀리는, 흥미롭고 중요한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소. 집단 선택을 자연계에서 찾을 수야 있겠지만, 그건 집단 사이에 이주가 극히 드물다는 등 아주 특별한 조건에서만 제한적으로 일어납니다.” 트리버스는 저주에 가까운 막말(?)까지 퍼부었다. “당신은 똑똑하니, 그 수학 실력으로 앞으로 얼마든지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집단 선택론에 일생을 바친다면, 틀림없이 고생만 실컷 하고 성과는 없을 거요.”

 

트리버스는 1998년에 엘리엇 소버와 데이비드 슬론 윌슨이 인간의 이타성을 집단 선택론으로 설명한 책 『타인에게로(Unto Others)』를 비평하면서 이 만남을 털어놓았다. 참고로 트리버스는 서평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이 책은 철두철미하게 실망스럽다. 처음부터 끝까지.”[i]

 

왜 새로운 집단 선택론은 유전자의 관점을 내세우는 혈연 선택론과 이토록 싸웠을까? 먼저 오래된 집단 선택론과 데이비드 슬론 윌슨, 소버, 웨이드 등의 새로운 집단 선택론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자. 그리고 새로운 집단 선택론과 혈연 선택론이 실은 하나의 과정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임을 살펴보자.

 

데이비드 슬론 윌슨과 함께 신집단 선택론을 주장한 엘리엇 소버(왼쪽)와 마이클 웨이드(오른쪽).

 

구(舊)집단 선택론에 크게 X자 긋기

집단 선택론 논쟁은 반세기 이상 진화학계를 들쑤시고 있다. 이 뜨거운 논쟁을 쉽게 이해하기 위한 요령은 이렇다. 먼저 구집단 선택론에 크게 X자를 그어 머릿속에서 싹 지우시라.

 

윈에드워즈로 대표되는 구집단 선택론은 집단도 자연 선택의 단위가 된다고 주장했다. 곧 자연 선택이 작용하는 데 필요한 선결 조건인 변이, 유전, 차별적 번식이라는 세 가지 특성이 집단에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더 많이 ‘번식’하는―즉 집단의 특성을 충실히 물려받은 자식 집단을 후대에 더 많이 남기는―과정을 통해 특정한 유형의 집단이 자연계에 널리 퍼진다. 이렇게 선택된 집단은 순전히 집단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게끔 자연 선택이 빚어낸 ‘집단 적응(group adaptation)’을 지닌다.[ii]

 

윈에드워즈는 자연계에서 집단 적응을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동물들이 자식을 무한정 낳기보다는 가족 계획에 따라 일정한 수만 낳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은 개체군 크기를 조절하기 위한 집단 적응이라고 해석했다. 알다시피, 윌리엄스는 이 논증을 산산이 무너뜨렸다. 적응은 특별하고도 번거로운 개념이므로, 우리는 ‘우연히 집단에도 이로운 형질’과 ‘집단 적응’을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전자는 그냥 개체 선택에 의해 설계된 적응이 뜻하지 않게 집단에도 이득을 주는 경우이다. 후자는 진화 역사를 통해 집단의 적합도를 높였기 때문에 집단 선택에 의해 설계된 적응이다.[iii]

 

구집단 선택론에 따르면 동물의 ‘산아 제한’은 각 개체가 집단의 번영을 위해 자발적으로 개체군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이라 보았다. © Stefan-Xp, 위키피디아에서.

3-1화 「집단 선택론의 몰락, 그 후」에서 든 예를 상기해 보자. ‘재빠른 사슴들이 모인 집단’은 포식자를 피하게끔 재빠른 사슴을 택하는 개체 선택의 부수적인 결과에 불과하다. 반면에 ‘사슴들의 재빠른 집단’은, 즉 총지휘관 사슴, 경계병 사슴, 정찰병 사슴, 의무병 사슴 등이 기능적으로 잘 조직화된 집단은―만약 실제로 발견된다면―집단 적응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슴 집단이 현실에 있을 리는 만무하다!

 

구집단 선택론은 윌리엄스, 메이너드 스미스, 도킨스 등에 의해 무너졌다.[iv] 첫째, 집단 적응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즉 어떤 형질이 집단의 이득을 높이게끔 기능적으로 조직화되었다는 증거가 있을 때에만 추정되어야 한다. 개체 선택된 형질이 우연히 집단에도 이득을 준다고 설명하면 그만인데도, 느닷없이 집단 선택을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둘째, 집단 선택은 본래 개체 선택에 비해 느리고 미약할 수밖에 없다. 집단 선택은 개체군이 증식하고 절멸하는 긴 시간대에서 이루어지는 반면, 개체 선택은 유기체가 태어나고 죽는 짧은 시간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셋째, 유전적 모형들은 복잡하고 정교한 집단 적응이 집단 선택에 의해 진화할 수 있는 조건이 지극히 제한적임을 입증했다. 진화 유전학자 수얼 라이트(Sewall Wright)에 따르면 모집단의 유전적 특성이 자식 집단에 충실히 전해져야 하고, 집단이 빠르게 증식하거나 절멸해야 하고, 각 집단의 크기가 매우 작고, 집단 간 이주가 극히 드물고, 집단의 총수는 많아야 한다.[v] 이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조건이라고 지적받았다.[vi]

 

요컨대 “집단에 관련된 적응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조지 윌리엄스, 『적응과 자연 선택』 한국어판, 112쪽) 이렇게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진화학계는 유전자 선택론이 승리했음을 선언했다. 구집단 선택론에는 사망 선고를 내렸다. 그렇다면 데이비드 슬론 윌슨 등의 신집단 선택론자들은 구집단 선택론을 이루는 요소들 중에 무엇을 되살렸을까?

 

없다. 아무것도 부활하지 않았다. 신집단 선택론은 구집단 선택론과 확연히 다르다. 둘은 혈연 선택론과 구집단 선택론 간의 거리만큼이나 다르다. 구집단 선택론을 모신 관 뚜껑에 못을 단단히 박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제 신집단 선택론을 들여다볼 차례이다.

 

데이비드 슬론 윌슨의 신집단 선택 모형

1975년에 데이비드 슬론 윌슨이 만든 신집단 선택 모형의 가장 큰 특징은 집단을 새롭게 정의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집단은 한곳에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 행동을 주고받는 동종 개체들의 모임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공간적 위치에 구애받지 않고 개체들끼리 특정한 행동을 주고받기만 하면 이를 집단이라고 보았다. (초창기에는 “형질 집단(trait group)”이라 불렀다.) 그는 이 정의가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고 주장했다. 일상 언어에서 사람들이 “우리 가족”, “우리 학과”, “우리 교회”, “우리 독서 모임”이라고 이야기할 때, 이는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특정한 형질에 따라서 뭉친 집단을 가리킨다는 것이다.[vii]

 

데이비드 슬론 윌슨의 모형은 전체 구성원이 무작위적으로 짝짓기 하는 어느 한 개체군을 가정한다. (‘여러 개체군들’이 아니다!) 생활환 가운데 어느 시기에는 개체가 삼삼오오 모여서 “형질 집단”들을 이룬다. 이 형질 집단 내에서 이기적인 개체들과 이타적인 개체들이 상호 작용한다. 예를 들어 한 나무에 애벌레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이기적인 애벌레는 나뭇잎을 너무 많이 먹는다. 이타적인 애벌레는 나뭇잎을 조금씩 아껴 먹는다.

 

생활환의 다음 시기가 되면, 각 형질 집단은 어른으로 자란 개체들을 전체 개체군 차원에서 짝짓기가 이루어지는 무도회장으로 일제히 내보낸다. 물론, 이타적인 개체가 많은 형질 집단은 이기적인 개체가 많은 형질 집단보다 더 많은 어른을 생산해 내보낼 것이다. 짝짓기가 끝난 다음, 개체들은 다시 여러 형질 집단들로 뿔뿔이 갈라진다. 앞의 예를 계속 들면, 애벌레 껍질을 벗고 날아간 나방들끼리 전체 개체군 차원에서 무작위적으로 짝짓기를 하는 것이다.

 

신집단 선택 모형을 표현한 데이비드 슬론 윌슨의 논문 속 도식. 도식 속에서 개체들을 표현한 기호인 A와 B 중에서 A는 이타주의자를, B는 이기주의자를 나타낸다. 사진 출처: Wilson, D. S. (1975). A theory of group selec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 72(1), p.145.

이러한 가정하에서, 이타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대립 유전자가 이기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대립 유전자를 제치고 선택될 조건은 무엇일까?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형질 집단마다 개체들이 ‘끼리끼리’ 어울리고 있다면 이타적인 행동이 선택된다고 결론 내렸다. 즉 전체 개체군에서 이타주의자가 이타주의자를 그냥 우연히 만날 확률보다 한 형질 집단 내에서 이타주의자가 이타주의자를 만날 확률이 더 높다면, 달리 말해서 형질 집단에 걸쳐서 이타주의자는 이타주의자끼리 이기주의자는 이기주의자끼리 뭉쳐 있는 경향이 있다면, 개인에게는 손해이지만 집단에는 이득을 주는 이타적 형질이 후대에 더 많은 복제본을 남길 수 있다.[viii]

 

잠깐, 개체군의 평균 빈도보다 더 자주 이타주의자 ‘끼리끼리’ 어울려야 이타성이 진화할 수 있다는 말은 왠지 이전에 들어 본 것 같은데? 맞다. 혈연 선택에 의해 이타성이 진화할 조건이다. 유전적 근연도는 개체군 평균에 비해 행위자와 상대방이 유전적으로 얼마나 더 유사한지 알려 주는 척도다. 근연도가 0보다 크다면, 해밀턴의 규칙에 따라 이타성이 진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협력의 공식」 1-9화 「협력자 끼리끼리」 참조)[ix] 데이비드 슬론 윌슨과 트리버스가 얼굴을 붉히며 입씨름까지 한 마당에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생각할 법하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다음 시간으로 미룬다는 법칙에 따라, 오늘은 여기서 마친다.

 

 

[i] Trivers, R. L. (1998). As they would do to you. Skeptic, 6(4), 81-83.

[ii] 조지 윌리엄스는 『적응과 자연 선택』(1966)에서 집단의 번식 성공도를 높이게끔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적응을 ‘생물상 적응(biotic adaptation)’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에는 이를 ‘집단 적응’이라고 부른다.

[iii] Williams, G. C. (1966).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 A Critique of Some Current Evolutionary Thought.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전중환 옮김, 『적응과 자연 선택』, 나남, 2013).

Okasha, S. (2006). Evolution and the Levels of Selec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iv] Maynard Smith, J. (1964). Group selection and kin selection. Nature, 201(4924), 1145-1147.

Maynard Smith, J. (1976). Group Selection. Quarterly Review of Biology, 51(2), 277-283.

Williams, G. C. (1966). 앞의 책.

Dawkins, R. (1976/2006). The Selfish Gene. (30th anniversary edi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홍영남, 이상임 옮김,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 2018).       

[v] Maynard Smith, J. (1976). 앞의 글.

Wright, S. (1945). Tempo and mode in evolution: a critical review. Ecology, 26(4), 415-419.

Bourke, A. F., Franks, N. R., & Franks, N. R. (1995). Social Evolution in Ants. Princeton University Press.

[vi] Williams, G. C. (1966). 앞의 책(한국어판 129~130).

[vii] TheBestSchools.org. David Sloan Wilson interview. Retrieved from https://thebestschools.org/dialogues/evolution-david-sloan-wilson-interview/

[viii] Wilson, D. S. (1975). A theory of group selec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72(1), 143-146.

[ix] West, S. A., Griffin, A. S., & Gardner, A. (2007). Social semantics: altruism, cooperation, mutualism, strong reciprocity and group selection. Journal of evolutionary biology, 20(2), 415-432.

 


※ 관련 도서 ※

 

『지구의 정복자』 [도서정보]

 

『네이버후드 프로젝트』 [도서정보]

 

『본성이 답이다』 [도서정보]

 

『오래된 연장통』 [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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