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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강 핵 폭탄과 투발 수단 본문

완결된 연재/(完) 하늘의 과학

제11강 핵 폭탄과 투발 수단

Editor! 2019.04.23 16:38

11강에서는 핵 폭탄과 투발 수단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핵 폭탄하면 흔히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년)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핵 폭탄은 어떤 한 개인이 만들 수 있는 폭탄이 아닙니다. 굳이 한사람을 지목해야 한다면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 1942~1946년)를 기획하고 과학자들을 진두 지휘한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 1904~1967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비행기처럼 핵 폭탄 역시 복잡한 과학과 수학이 필요한 분야인 만큼 개인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핵 폭탄 개발을 위한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확률이라는 수학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몬테카를로 방법(Monte Carlo method, 임의의 수를 발생시켜 함수의 값을 확률적으로 계산하는 알고리즘)이 핵 폭탄의 확률을 계산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핵 폭탄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해 제2차 세계 대전을 종료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원폭 실험은 세계에 큰 위협으로 남아 있습니다.

핵 폭탄을 투발하는 수단으로는 비행기나 미사일이 있습니다. 북한은 핵 폭탄 투발 이 가능한 비행기로 구형 폭격기인 일류신(Ilyushin) IL-28과 안토노프(Antonov) An-2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로켓 엔진의 추진력으로 탄도를 그리면서 날아가는 탄도 미사일(ballistic missile)로는 노동(Nodong) 미사일을 비롯하여 중거리 탄도 미사일인 무수단,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인 북극성,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인 대포동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핵 탄두는 장착할 수 없지만 장거리 사격이 가능한 장사정포(Long Range Artillery)로 170밀리미터 자주포와 240밀리미터 방사포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로켓 엔진이 없는 자주포로 쏜 포탄은 초기 속도와 중력만으로 간단하게 수학을 이용하여 그 궤적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켓 엔진을 장착한 탄도 미사일의 궤적은 추력이 없어질 때의 속도, 공기력 및 중력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포탄의 포물체 운동을 함수와 벡터, 미분 등 비교적 쉬운 수학으로 어떻게 계산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늘의 과학」 연재 순서

 

제1강 여객기의 크기와 반응

제2강 항공기 소음과 로그 함수

제3강 항공기의 무게 중심과 안정성

제4강 비행기의 순항 비행

제5강 비행기의 이륙과 상승 비행

제6강 비행기의 선회 비행과 하중 계수

제7강 비행기의 강하 비행과 착륙

제8강 비행기의 측풍 착륙과 벡터

제9강 비행기의 자동 조종 장치와 선형대수

제10강 비행기의 IRS와 미적분

제11강 핵 폭탄과 투발 수단

제12강 인공위성과 우주 비행 궤도

 

※ 상황에 따라 연재 순서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하늘의 과학: 장조원의 항공 우주 과학의 정석

제11강 핵 폭탄과 투발 수단

 

 

확률과 핵 폭탄

북한은 2016년 9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시험장에서 제5차 핵 실험을 실시하고 히로시마 원폭 수준(약 10킬로톤)에 근접한 규모라고 발표했다. 2017년 9월 3일 강행한 제6차 핵 실험은 제5차 때보다 5배 이상(약 50킬로톤)으로 역대 핵 실험 중 가장 큰 폭발 위력을 보였다. 이때 북한은 수소 폭탄 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이미 제5차 핵 실험을 수행할 당시 성명에서 “각종 핵 탄두들을 마음먹은 대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미 핵 탄두의 크기와 무게를 줄여 미사일 탑재가 가능하다고 한 것이다.

 

(좌)레오 질라드, (우)앨버트 아인슈타인

원자 폭탄 개발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미국이 수행한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독일의 원자 폭탄 개발을 우려한 미국 물리학자 레오 질라드(Leo Szilard, 1898~1964년)가 1939년 8월 아인슈타인의 서명을 받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전달한 아인슈타인-질라드 편지를 계기로 시작되었다. 1939년 초기 예산 6,000달러로 출발했지만 1942년에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으며, 1945년에는 13만 명을 고용하고 예산은 2억 달러로 크게 확장되었다. 비용의 대부분은 핵 분열 연료 구입과 공장 건설에 사용되었다.

 

오펜하이머는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로 첫 번째 핵 무기를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원자 폭탄의 아버지”로 인정받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독일 괴팅겐 대학교에 유학을 다녀온 뒤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교 물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미국의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년) 대통령은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기 2개월 전인 1941년 10월에 원자 폭탄을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승인했다. 임무를 맡은 미국 육군 소장인 레슬리 그로브스(Leslie Richard Groves Jr., 1896~1970년)는 오펜하이머를 로스 앨러모스 국립 연구소(Los Alamos Laboratory)의 책임자로 강력하게 추천했으며, 두 사람은 뉴멕시코 주의 로스앨러모스 고등학교가 있던 자리를 맨해튼 계획을 수행할 연구소 위치로 선정했다. 오펜하이머는 원자 폭탄을 개발한 로스 앨러모스 국립 연구소 소장으로 1943년 3월부터 1945년 10월까지 있으면서 여러 학자들과 합동으로 원자 폭탄을 만들었다. 이때 로스앨러모스 연구소는 1943년에 수백 명에 불과했지만 1945년에는 6,000명 이상으로 대폭 증가했다. 1945년 포신형 핵 폭탄(코드명 리틀 보이, Little Boy)과 내폭형 핵 폭탄(코드명 팻 맨, Fat Man)이라는 두 종류의 핵 폭탄이 개발되었다.

 

로스 앨러모스 과학자들이 개발한 원자 폭탄은 코드명으로 트리니티(Trinity)가 부여됐다. 세계 최초의 핵 실험은 1945년 7월 뉴멕시코의 알라모 고르도(Alamogordo) 사막 근처에서 팻 맨을 사용한 트리니티(Trinity) 실험으로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좌)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우)엔리코 페르미

원자 폭탄 개발의 시뮬레이션 수행에는 확률이라는 수학적 지식이 반영되었다. 실제로 맨해튼 프로젝트에 몬테카를로 방법이 원자 폭탄의 확률을 계산하는 데 사용되었다. 임의의 수를 발생시켜 함수 값을 확률 계산하는 알고리즘을 의미하는 용어로, 중성자들이 무작위로 충돌하고 분열하는 현상이 도박과 유사했기 때문에 도박의 대명사인 모나코 북부 도시 몬테카를로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핵을 이용해 큰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연쇄 핵 분열 반응을 일으키고, 많은 물질을 확보해 연쇄 반응이 계속될 수 있어야 한다. 초기에는 중성자로 어떤 원소의 원자핵을 쉽게 분열시킬 수 있는지 몰랐다. 미국과 독일 등에서 베릴륨, 인듐 등 다양한 원소로 연쇄 핵 분열을 일으키는 원소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드디어 1941년 독일에서 중성자에 의해 우라늄 원자핵 이 분열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자연 상태에서 스스로 질량을 잃으며 에너지를 방출하는 우라늄은 중성자에 의해 원자핵 이 2개 이상으로 쪼개지면서 중성자와 에너지를 방출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 말 독일은 외국에 우라늄 수출을 금지시켜 독일 과학자들이 핵 분열 연구를 통해 원자 폭탄을 개발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미국은 독일의 원자 폭탄 개발을 막는 한편 독일보다 먼저 핵 무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자 폭탄은 중성자들이 서로 충돌하고 분열함으로써 많은 중성자들을 방출하고, 이러한 현상을 반복해 확산함으로써 거대한 폭발을 유도하는 것이다. 우라늄인 경우는 2개로 분리해 하나를 다른 하나에 대고 총처럼 쏘아 서로 합쳐 임계 질량(핵 연쇄 반응 과정에서 스스로 폭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질량)을 초과하도록 해 거대한 폭발이 가능하다. 우라늄(지름 17센티미터인 경우 임계 질량 52킬로그램)을 이용한 핵 무기로 포신형(gun type) 핵 폭탄인 리틀보이가 개발되었다.

 

플루토늄(지름 10센티미터인 경우 임계 질량 10킬로그램)인 경우 자체 핵 분열 확률이 높고 더 많은 중성자가 나오기 때문에  스스로 분열해 연쇄 반응을 유지할 수 없어 불발될 수도 있었다. 1944년 로스 앨러모스 과학자들은 공 모양의 플루토늄 주위를 폭약으로 둘러싼 후 강력하게 안쪽으로 폭발시켜 순간적으로 압력을 가해 임계 질량에 도달하게 만들어 핵 폭탄이 터지는 내폭형(implosion type) 방식을 고안했다. 중성자들이 충돌했을 때 분열이 발생하는 것은 일정한 확률에 따라서만 생기는 현상이다. 따라서 원폭이 가능한 충분한 분열과 확산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확률 계산을 통해 증빙할 수 있었다.

 

헝가리 태생의 수학자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 1903~1957년)과 193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 1901~1954년) 등은 시뮬레이션을 통한 통계적인 방법만이 우라늄 분열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40년대 초반 당시 컴퓨터가 제대로 개발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확률 계산 시뮬레이션을 위해 전기·기계적인 컴퓨터를 개발해 사용했다. 미국 뉴저지 주 프린스턴 대학교에 있는 고등연구소 기계로, 당시 고등연구소와 프린스턴 대학교에 근무한 설계자의 이름을 붙여 폰 노이만 기계(von Neumann machine)로 불리기도 한다. 이 기계는 원자 폭탄의 핵 폭발 연쇄 반응에 연관된 확률 계산과 양자역학 계산을 수행했다. 그 결과 강력한 폭발물을 폭발시켜 핵 폭탄을 터트리는 방법이 가능하다는 계산에 성공했다. 실제로 몬테카를로 방법은 페르미가 중성자 특성을 연구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으로 원자 폭탄을 시뮬레이션 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좌)홀쭉한 포신형 핵 폭탄 리틀보이, (우)뚱뚱한 내폭형 핵 폭탄 팻맨

포신형 핵 폭탄 리틀보이는 우라늄-235를 농축하여 탄두로 제작한 것으로 농축 과정은 대부분 테네시 주 오크리지에 있는 공장에서 이루어졌다. 포신형보다 복잡한 내폭형 핵 폭탄은 플루토늄을 탄두로 제작한 것이다. 플로토늄은 주로 워싱턴 주 핸포드 사이트(Handford Site)에 있는 반응로에서 제작되었다. 우라늄-235와 플로토늄은 뉴멕시코 주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로 이송되어 핵 폭탄이 만들어졌다. 이 방식으로 만들어진 리틀보이는 별도의 실험을 하지 않았지만 정확히 작동한다고 예측되었다. 그러나 플루토늄을 탄두로 한 팻맨은 불발될 위험성이 있어 실제 핵 폭탄 실험을 수행해야 했다. 작전명 트리니티 실험에 성공한 이후 미국은 포신형과 내폭형 핵 폭탄을 모두 확보할 수 있었다. 핵 폭탄 투하에 이어 소련의 만주 작전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을 끝낼 수 있었지만 핵 폭탄에 피폭된 나라는 인류 역사상 일본 한나라로 충분하며 더 이상 이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확률의 개념

확률(probability)이란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수 값으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수학의 확률 이론은 17세기 중엽 프랑스의 수학자인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년)이 프랑스의 수학자인 피에르 드 페르마(Pierre de Fermat, 1601~1665년)와 서신으로 도박 상금 문제를 풀면서 다루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에도 확률은 여러 분야에서 아주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원자 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확률이라는 수학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앞뒤가 대칭인 동전이나 눈금이 6개인 주사위를 던졌을 때 특정한 면이나 특정한 수가 나올 가능성은 각각 1/2과 1/6이다. 또 주사위를 던졌을 때 짝수{2, 4, 6}가 나올 확률은 P(A)=3/6=1/2이다. 따라서 사건 A가 발생할 수학적 확률 P(A)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P(A)가 1이면 사건 A가 반드시 일어나며, P(A)가 0이면 사건 A는 반드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확률 P(A)의 값은 0≤P(A)≤1으로 표현할 수 있다. P(A)는 1에 가까울수록 사건 A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지만 0에 가까울수록 A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다는 뜻이다. 이러한 수학적 확률은 실제 경험에 앞서서 계산될 수 있다. 동전이나 주사위를 많은 횟수를 던져봄으로써 얻어지는 통계적 확률은 수학적 확률에 근접한다. 확률이 관찰하는 횟수를 거듭하면 할수록 일정한 값 P에 한없이 가까워진다는 큰수의 법칙(law of great number, 경험적 확률과 수학적 확률과의 관계가 점점 가까워진다는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확률에 관한 초보적인 성질 문제로서는 덧셈정리, 곱셈정리 등을 들 수 있다. 확률의 덧셈정리는 어떤 두 사건 A, B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두 사건 A 또는 B가 나올 확률은 한쪽이 일어날 확률 P(A) 또는 P(B)를 더하고 동시에 A와 B가 일어날 확률을 빼면 된다.

예를 들어 1개의 주사위를 던졌을 때 주사위에 홀수가 나올 사건 A={1, 3, 5}이거나 3의 배수가 나올 사건 B={3, 6}이 나타날 확률은 P(A)=3/6, P(B)=2/6, P(A∩B)=1/6이므로 확률의 덧셈정리를 이용하면 다음과 같다.

 

확률의 곱셈정리는 어떤 두 사건 A, B가 서로 무관하게 나타나는 독립 사건인 경우 A와 B가 동시에 일어날 확률 P(A와 B)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머니 속에 빨간 당구공 3개와 파란 당구공 2개가 들어 있을 때 한 개씩 두 번 꺼내는 경우 두 개가 모두 빨간 당구공일 확률을 생각해 보자. 이때 첫 번째 꺼낸 공을 주머니에 다시 넣는 경우와 아예 넣지 않는 경우에 두 번째 꺼낸 빨간 공의 확률에 영향을 주므로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

 

첫 번째 꺼낸 공을 주머니에 다시 넣지 않는 경우에는 사건이 종속되어 있으며 첫 번째 빨간 당구공이 나올 확률과 두 번째 빨간 당구공이 나올 확률이 다르므로 다음과 같이 계산할 수 있다.

 

다시 넣는 경우에는 독립된 사건이며 첫 번째 빨간 당구공이 나올 확률과 두 번째 빨간 당구공이 나올 확률이 동일하므로 아래와 같이 계산할 수 있다.

 

독립된 사건의 경우에는 첫 번째 일어난 사건이 두 번째 사건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동전을 던져 우연히 앞면이 연속적으로 10번 나왔다고, 다음에 던졌을 때 뒷면이 나올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전쟁 중에 폭탄이 떨어져 파괴된 웅덩이에 숨는다고 거기에 폭탄이 다시 떨어질 확률이 줄어 생존 확률이 높아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독립된 사건들이 동시에 발생할 확률은 각각 발생한 사건들의 확률을 곱해서 작용된다. 예를 들어 숫자 0와 1이 번갈아 나오는 회전 기계에 5자리 전부 숫자 1이 나올 확률을 계산해 보자. 숫자 1이 나올 확률이 50퍼센트이므로 1이 5자리 연속으로 나올 확률은 3.1퍼센트로 아주 낮아진다.

 

또 엔트로피 정의도 확률로 나타낼 수 있다. 엔트로피는 물질의 열적 상태를 표현하는 물리량의 하나로, 에너지 흐름뿐만 아니라 자연 현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중요한 지침 역할을 하고 있으며 엔진 사이클이나 비행기 날개 주위 흐름 해석에도 활용된다.

 

일반적으로 엔트로피(dS=dQ/T)는 고전 열역학적인 측면에서 거시적인 열역학적 물리량(온도, 부피, 압력)으로 다루지만 분자 운동의 통계적 분석으로 미시적인 관점에서 표현될 수 있다. 수많은 입자로 구성된 계(system)를 다루는 열역학을 통계적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처음 생각한 사람은 제임스 맥스웰(James C. Maxwell, 1831~1879년)이다. 맥스웰의 기체에 대한 동역학적 이론을 통계적으로 처리해 더욱 발전시킨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Eduard Boltzmann, 1844~1906년)이다.

 

(좌)제임스 맥스웰, (우)S=klogW가 새겨진 볼츠만 비석

수많은 입자들로 구성된 계는 여러 가지 거시적인 열역학적 물리량(온도, 부피, 압력)을 지니고 있다. 각각의 미시적인 상태에 있을 확률이 동등하다고 가정하면 거시적인 물리량에 대한 확률은 다음과 같이 기체 분자들이 어떤 부피에 위치할 방법의 숫자를 나타내는 미시적인 상태의 수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1877년 볼츠만은 논문에서 엔트로피를 미시적인 상태의 수 W에 로그(log)를 취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여기서 k는 볼츠만 상수를 나타내고, W는 계가 가질 수 있는 미시적인 상태의 수(열역학적 확률)를 나타낸다. 엔트로피는 미시적인 상태의 수, 즉 분자들의 배열 방법 수의 로그에 비례하므로 엔트로피는 확률의 로그에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로그를 취하면 곱셈으로 나타내야 하는 확률을 덧셈으로 바꿔 줄 수 있어 전체 엔트로피는 각 계의 엔트로피를 더한 값으로 단순하게 계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핵 폭탄 투발 수단: 비행기

인류 역사상 두 번 사용된 핵 폭탄은 비행기로 투발되었다. 첫 번째는 1945년 8월 6일 폴 워필드 티베츠(Paul Warfield Tibbets, Jr., 1915~2007년) 대령이 B-29 폭격기에 리틀 보이를 탑재하고 출격해 히로시마에 투발한 것이다. 이어 1945년 8월 9일 찰스 스위니(Charles W. Sweeney, 1919~2004년) 소령이 B-29 폭격기에 팻맨을 탑재하고 출격해 나가사키에 투발했다. 핵 폭탄 투발 수단을 운영하는 북한 공군은 2012년에 공군사령부를 항공 및 반항공사령부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사령부 예하 5개 비행사단을 비롯해 1개 전술수송여단, 2개 공군저격여단, 방공부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 핵 폭탄 투발 수단으로 비행기가 사용된 과정을 알아보고, 북한 공군이 보유한 비행기 중에서 어떤 비행기가 핵 폭탄의 투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도 살펴보자.

 

첫 번째 투발: 히로시마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직전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에서 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년)은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은 채 트리니티 실험이 성공해 강력한 신무기를 보유한 것을 밝혔다. 이 회의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으나 일본이 이를 거부하자 일본에 대한 핵 폭탄 투하는 기정사실화되었다. 미국 국방부는 일본 히로시마와 고쿠라(제2 목표: 나가사키)에 핵 폭탄을 투하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미국 본토에서 제작한 원자 폭탄을 사이판 남쪽으로 5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티니안 섬으로 운반해야 했다. 티니안 섬에 있는 활주로에서 미 육군 항공대 소속의 B-29 폭격기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기 위해 출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1945년 7월 16일, 중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의 함장 찰스 맥베이 해군 대령은 원자 폭탄을 탑재하고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열흘 만인 7월 26일에 티니안 섬에 도착해 원자 폭탄을 성공적으로 전달했다. 그 당시 미국 해군은 원폭 이송 임무를 극비로 취급했으며, 인디애나폴리스는 일본 해군이 눈치 채지 못하게 구축함 등 대잠 호위함 없이 단독으로 이동했다.

 

인디애나폴리스는 괌으로 보내졌으며 차기 작전을 위해 필리핀 중부 레이테(Leyte) 섬으로 이동하기 위해 7월 28일에 괌을 출발했다. 이때에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상부에서 호위함을 붙여주지 않아 단독으로 항해했다. 인디애나폴리스는 괌을 출발한지 이틀 후 7월 30일 새벽 00:15분에 하시모토 모치츠라 중좌가 이끄는 일본군 잠수함 I-58에 어뢰 2발을 맞고 필리핀해(philippines sea)상에서 격침되었다. 원자 폭탄을 탑재했을 때 격침되었다면 제2차 세계 대전은 어떻게 되었을까?

 

4발 엔진의 프로펠러 전략 폭격기인 에놀라 게이(Enola Gay)는 제2차 세계 대전의 마지막 단계인 1945년 8월 6일에 핵 폭탄을 투발한 최초의 항공기다. 보잉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로 기장 티벳 중령의 어머니 에놀라 게이 티벳 이름을 딴 것이다. 이 폭격기는 두 번째 원자 폭탄 공격인 나가사키 투하에서 기상측정을 위한 항공기로 참여했다.

 

히로시마 임무 수행후의 에놀라 게이

에놀라 게이는 1945년 6월 14일 B-29의 훈련 기지였던 유타 주의 웬도버(Wendover) 기지를 출발해 괌(Guam)에 도착해 폭탄실을 수리한 다음 7월 6일에 티니안섬의 노스 필드(North Field)에 도착했다. 에놀라 게이는 7월 한 달 동안에 8차례의 훈련 비행을 수행했으며, 24일과 26일에 날씨와 대공 방어 태세를 파악하기 위하여 일본 고베와 나고야의 산업기지에 실험용 폭탄(pumpkin bombs, 모양과 크기는 원자 폭탄과 거의 동일한 폭탄이지만 핵을 탑재하지 않은 폭탄)을 투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에놀라 게이는 7월 31일에는 실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티니안 섬 인근에 모의 원자 폭탄을 투하하는 리허설 비행까지 수행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는 최초의 핵 폭탄 임무의 주 목표 지점이었고, 고쿠라(지금의 기타큐슈)와 나가사키는 대체 목표 지점이었다. 티베츠 중령이 조종한 에놀라 게이는 2대의 B-29를 동반하고 티니안 노스필드를 이륙한 후 히로시마까지 2,530킬로미터를 날아가기 위해 약 6시간을 비행해야 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비행 경로

이 지도에서 1945년 8월 6일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비롯하여 8월 9일의 주 목표였던 북 규슈의 공업 지대인 고쿠라와 2차 목표였던 나가사키 등에서 그 당시 수행했던 비행 임무를 파악할 수 있다. 에놀라 게이는 이오지마(Iwo Jima)를 통과해 히로시마를 향해 직선으로 비행하고 같은 경로로 귀환했다. 한편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복스카는 야쿠시마 섬을 지나 고쿠라, 나가사키까지 비행했으며, 티니안으로 귀환하기 전에 연료 부족으로 인해 오키나와에 비상 착륙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투입된 B-29는 6일 새벽 2시 45분 티니안 노스필드 비행장을 이륙한 후 오전 6시에 일본 남쪽 해상에 있는 이오지마까지 각자 비행한 다음 9,300피트(2,835미터) 고도에서 랑데부해 일본 히로시마로 향했다. 일본은 티니안 섬을 1920년부터 정식으로 통치하기 시작했으며, 1930년대 말부터 섬 북쪽 끝에 1,450미터 길이의 하고이 비행장(Hagoi field)을 건설했다. 1944년 7월에 미국 해병대가 티니안 전투를 통해 점령한 이후 미국 공군 기지로 활용되었다. 미국은 일본이 건설한 하고이 비행장을 B-29 폭격기를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2,440미터 길이로 확장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B-29는 일본이 건설한 비행장에서 출격한 셈이다.

 

에놀라 게이는 히로시마 상공에 도착해 32,333 피트(9,855 미터) 고도에서 명확한 시야를 확보했다. 오전 9시 15분(히로시마 시간으로 오전 8시 15분)에 계획대로 31,060 피트(9,470 미터) 고도에서 우라늄형의 포신형 핵 폭탄인 리틀 보이를 투하했다. 에놀라 게이는 폭발로 인한 충격파를 피하기 위해 60도로 급선회하고 속도를 증가시켜 투하 장소에서 18.5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피했다. 원자 폭탄 리틀보이는 530미터에 달하는 구름 기둥이 솟아오르고 TNT의 15 킬로톤에 해당하는 폭발을 일으켰다. 반경 약 1.6킬로미터 정도를 초토화시켰으며, 12제곱킬로미터가 파괴되었다. 도시 인구의 30퍼센트인 7~8만 명이 폭발과 폭풍으로 사망하고 또 7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에놀라 게이는 새벽에 이륙한 지 12시간 13분 만인 오후 2시 58분 티니안 기지로 안전하게 귀환했다. 언론인과  사진기자를 비롯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에놀라 게이가 착륙하는 것을 보기 위해 모여 들었다. 에놀라 게이 기장인 티벳은 제일 먼저 비행기에서 내렸고 그 자리에서 수훈 십자가(Distinguished Service Cross) 훈장을 받았다.

 

전쟁이 끝나고 에놀라 게이는 미국 뉴 멕시코 주 로스웰 군 비행장(Roswell Army Air Field) 등 여러 장소에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1946년 8월 육군 항공대에서 제적되고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명의가 되었다. 1961년 메릴랜드 주 스윗랜드(Suitland)에 있는 스미스소니언의 저장 시설에 해체 보관되었다. 2003년에는 복원된 B-29가 워싱턴 DC 덜래스 국제 공항에 있는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인 스티븐 우드바 헤이즈 센터(Steven F. Udvar-Hazy Center)에 영구 전시되었다.

 

두 번째 투발: 나가사키

미국은 히로시마 원자 폭탄을 투발한 이후에도 일본이 항복을 하지 않고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히로시마 임무에 이어 또 하나의 원자 폭탄 공격을 속행하기로 결정했다. 원래 8월 11일로 예정되었으나, 악천후가 예상됨에 따라 8월 9일로 앞당겼다. 이번에는 스위니 소령이 조종하는 B-29 복스카가 플루토늄형의 내폭형 핵 폭탄인 팻맨을 투발하는 임무를 맡았다. 보잉 사에서 제작한 복스카는 1945년 3월에 미 육군 항공대에 인도되었으며, 조종은 프레더릭 복(Frederick C. Bock, 1918~2000년)이 담당했다. 이 폭격기는 그의 성에서 따와 복스카(Bock’s Car)로 불렀다.

 

복스카는 1945년 6월 16일 티니안 섬에 도착해 13번의 훈련 임무와 일본 니하마와 무사시노의 산업 기지에 실험용 폭탄을 투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훈련 임무를 마친 복스카는 히로시마 임무 때에는 정찰 비행 임무를 수행하고, 나가사키 임무 때에는 직접 원폭을 투하해 핵 관련 임무를 두 번 수행했다. 복스카는 원폭 투하 작전 계획대로 티니안 섬에서 고쿠라까지 왕복 비행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작전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 연료가 부족해 귀환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었다.

 

복스카를 비롯한 B-29들은 새벽 3시 47분경에  티니안 노스필드 활주로의 2590미터 거리를 활주해 이륙했다. 야쿠시마 섬 상공 랑데뷰 포인트까지 개별적으로 비행하기로 했으며, 복스카는 랑데부하기 30분 전에 3만 피트(9,100 미터)의 폭격 고도까지 상승했다. 정찰 임무를 맡은 에놀라 게이는 고쿠라 상공에 아침 안개가 있지만 곧 맑아질 것으로 보고했으나 복스카가 도착했을 때에는 연기로 인해 도시가 가려졌다. 오전 10시 44분 고쿠라 상공에 도착한 고쿠라는 도시가 짙은 연기에 덮인 것을 발견했다. 야와타 제철소(Yawata Steel Works) 직원들이 공습을 피하기 위해 석탄 타르를 태웠기 때문이다. 고쿠라는 군수 공장과 제철소 때문에 일본에서 가장 중무장한 도시 중 하나였고 이곳에서는 공습을 피하기 위한 방어 작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복스카는 11시 32분에 연기로 하늘을 가린 고쿠라 투발 임무를 포기하고 제2의 목표인 나가사키를 향해 남쪽으로 선회를 했다.  95마일 떨어진 나가사키에 도달하기 위해 최단 경로로 비행했으나 귀환할 만큼 충분한 연료를 보유하지 못해 오키나와 섬까지도 비행하기 곤란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스카는 11시 56분 나가사키에 도착해 보니 나가사키 역시 기상 보고와 달리 구름이 2/10 정도로 있었다. 복스카 승무원들은 구름 중에 구멍이 있어 목표물을 식별할 수 있자 폭탄실 문을 열고 팻맨을 투하했다. 1945년 8월 9일 12시 2분(나가사키 시간으로 11시 2분) 팻맨이 나가사키 상공 1,650피트(503미터)에서 폭발했다. 팻맨은 계획된 목표 지점에서 북서쪽으로 약 2.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TNT의 21킬로톤의 위력을 나타냈다. 나가사키 도시의 44퍼센트가 파괴되었으며, 약 3만 5000명이 사망했고 6만 명이 부상당했다.

 

임무를 마친 복스카는 미군 점령 지역인 오키나와에서 735킬로미터 떨어져 있었고 3만 피트(9.1킬로미터) 높이에서 최소한의 연료 소비로 거의 활공에 가까울 정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복스카는 연료가 부족했는데도 불구하고 간신히 오후 1시에 오키나와 옌탄 비행장(Yontan Airfield)에 간신히 착륙했다. 활주로에 접지할 때 시속 225킬로미터로  정상 속도보다 시속 48킬로미터 정도 빨라 공중으로 7.6미터를 부양했지만 무사히 착륙했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에 투입된 B-29 폭격기 3대는 오후 5시 30분에 오키나와를 이륙해 오후 10시 30분에 티니안 섬에 도착했다.

 

나가사키 임무는 승무원들이 임무 수행 중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그 목표를 달성했지만 히로시마 임무와는 달리 잘못 계획되어 실패한 임무로 묘사되었다. 미국은 두 발의 팻 맨의 조립을 완료하고 8월 19일에 제3의 원자 폭탄을 투하하기 계획했으나 일본이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항복함에 따라 제3의 원자 폭탄 투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좌)미국 공군 국립 박물관, (우)공군 박물관에 전시된 팻맨과 복스카

전쟁이 끝난 후 복스카는 1945년 11월 미국 뉴멕시코 주의 로스웰 육군 비행장에 돌아왔다. 1946년 8월에는 애리조나 주 투손(Tucson)에 있는 데이비스 몬탄 육군 비행장(Davis-Monthan Army Air Field)에 전시되었다. 그 해 9월 복스카는 오하이오 주 라이트패터슨(Wright-Patterson) 공군 기지의 미국 공군 국립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애리조나 주 사막에 오랫동안 보관됐다가 1961년 9월에 오하이오 주 데이턴으로 날아갔다. 현재 복스카는 데이턴에 있는 공군 국립 박물관에 원자 폭탄 복제물 팻맨 옆에 영구 전시되어 있다.

 

 

북한의 핵 공격 비행기

2018년 12월에 발표된 국방부의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810여 대의 전투 임무기, 30여 대의 감시 통제기, 340여 대의 공중 기동기(AN-2 포함), 170여 대의 훈련기, 290여 대의 헬리콥터 등 총 1,640여 대의 작전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폭격기는 공대지 공격 임무를 수행하는 군사용 항공기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폭격만을 위한 폭격기 임무가 확실했다. 왕복 엔진에서부터 제트 엔진 초기 시대까지 엔진 출력이 부족하던 시기에는 폭탄을 대량으로 탑재하기 위해 엔진을 다수 장착한 대형 폭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폭격기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을 거치며 폭격 임무가 점차 줄어들고 미국, 러시아, 중국 등과 같이 소수의 국가만이 전문 폭격기를 운용해 왔다. 현대 폭격기는 폭탄과 같은 공대지 무기를 떨어뜨리고, 총알을 발사하거나 공중 발사 크루즈 미사일을 전개하여 지상 및 해상 목표를 공격하도록 설계된 전폭기 역할을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폭격 임무뿐만 아니라 전투임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전폭기가 등장한 것이다. 이제는 폭격기라는 용어는 공중 급유 없이도 장거리 폭격을 수행할 수 있는 전략 폭격기를 뜻한다.

 

일류신 IL-28(www.militaryfactory.com)

북한은 폭탄 투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종으로 구형 폭격기인 일류신 IL-28을 비롯하여 안토노프 An-2, 일류신 IL-76 등 340여 대의 공중 기동기를 보유하고 있다. 일류신 IL-28은 1948년 7월 첫 비행한 쌍발 엔진의 제트 폭격기다. 원래 소련 공군을 위해 대규모로 총 6,635대를 생산했지만, 50여 년 동안 이집트를 비롯해 여러 국가에서 운용되었다. 이 폭격기는 동체가 전폭 21.5미터, 전장 17.7미터, 전고 6.7미터이며, 상승률은 분당 900미터다. 순항 속도와 최대 속도는 각각 시속 770과 902킬로미터이며, 항속거리와 상승 한계 고도는 각각 2,180과 12.3킬로미터로 최대 이륙 중량이 21.2톤에 달하며 폭탄실에 약 3톤의 폭탄을 적재할 수 있다. 북한군은 지금도 유일하게 1960년대에 제공된 중국 버전의 IL-28을 약 80대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IL-28은 현대의 대공 미사일과 요격기에 취약하지만 주변 국가들을 전략적으로 폭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만약 북한이 핵 폭탄 투발 수단으로 비행기를 택할 경우 이 폭격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안토노프 An-2

안토노프 An-2는 1947년 8월 첫 비행한 단일 엔진 소형 수송기로 범용 수송과 농업용 항공기로 대량 생산되었다. 이는 동체가 전폭 18.2미터, 전장 12.4미터, 전고 4.1미터이며, 단거리 이착륙 및 저속 성능을 갖기 위해 복엽기로 제작되었다. 또 순항속도와 최대속도는 각각 시속 190과 253킬로미터이며, 항속 거리와 상승 한계  고도는 각각 1,390과 4.4킬로미터다. 최대 이륙 중량이 5.5톤에 달하여 연료 1,200리터를 탑재하고 1톤의 화물 혹은 12명의 병력을 수송할 수 있다. An-2의 이륙거리는 플랩을 30도 내린 상태에서는 180~200미터 정도이며, 착륙 거리는 플랩을 39.5도 내린 상태에서 225미터 정도다. 긴 수명이 보장되는 An-2는 2001년까지 생산되었으며, 전 세계의 군수 및 민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본 기체는 다방면으로 적용이 가능하므로 다양한 종류로 변형되어 개발되었는데 산불을 진압하기 위한 소방용 항공기, 공수 낙하를 위한 경수송기, 부유식 수상 비행기 등이다. An-2는 특수 도료로 처리된 캔버스(직물) 날개와 세미모노코크(semi-monocoque) 구조의 경량 합금 기체로 제작되었다. 북한은 An-2기를 300여 대나 보유하고 있으며, 일부는 기체 바닥을 폭탄 투하용로 개조하여 운용하고 있다. An-2기는 1톤이 넘는 폭탄을 탑재할 수 있어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북한이 핵 폭탄 투발 수단으로 An-2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상식의 허를 찌를 수 있는 방법은 될 수도 있다.

 

일류신 IL-76은 1971년 3월 첫 비행을 한 4발 터보팬 전략 수송기로 소련의 일류신 설계국이 개발했다. 이 대형 수송기는 초기 안토노프 An-12를 대체하여 상업용 화물기로 계획되었으며, 1974년에 러시아 공군에 처음 배치되었다. IL-76은 무거운 기계류를 서비스가 잘 안 되는 시베리아 지역에 전달할 수 있도록 비포장 활주로 및 짧은 활주로에서도 이착륙이 가능하다. 이러한 다용도 수송기는 동체가 전폭 50.5미터, 전장 46.6미터, 전고 14.8미터이며, 상승률은 분단 900미터다. 또 순항속도와 최대속도는 각각 시속 759와 850킬로미터이며, 항속거리와 상승한계 고도는 각각 4,400과 13킬로미터다. 최대 이륙 중량이 195톤에 달하며 약 50톤의 화물을 적재할 수 있다. Il-76의 군사용 버전은 항공 급유 탱커 또는 지휘 센터, 수송기 등으로 유럽, 아시아 및 아프리카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무장은 자체 방어용으로 동체 꼬리 부분의 포탑에 23밀리미터 기관포 2문을 장착했다. 이외에도 공중 소방 및 제로-G 훈련을 위한 특수 모델도 생산되었다. 북한은 1980년대 후반 IL-76을 도입해 고려항공이 민간용 화물기 IL-76MD를 3대를 운용하고 있으며, 이를 전략적 항공기로 전환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핵 폭탄 투발 수단: 탄도 미사일

탄도 미사일은 고체 또는 액체 연료의 로켓 엔진이 장착되어 있어 로켓의 추진력에 의해 발사 및 가속된 뒤에 관성 유도로 비행하다가 최종 단계에서 자유 낙하하는 미사일을 말한다. 한마디로 탄도 미사일은 로켓의 추진력으로 탄도를 그리면서 날아가는 미사일을 말한다. 탄도 미사일의 비행단계는 상승(추진)단계, 중간(자유비행)단계, 종말(대기권 재진입)단계 등으로 구분된다. 북한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탄도 미사일을 55번 발사했으며, 특히 2016년에는 23번이나 발사했지만 현재는 전혀 발사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 횟수

북한은 2014년 전략로케트사령부를 전략군으로 확대 개편해 각종 탄도 미사일을 운용하고 있다. 핵을 개발하고 이를 장착해 전략적 핵 공격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탄도 미사일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탄도 미사일의 궤적은 추력이 없어질 때의 속도, 공기력 및 중력 등을 고려해야 하므로 수학적으로 복잡하지만 로켓 엔진이 없는 장사정포로 쏜 포탄의 운동은 초기 속도와 중력만으로 간단하게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

 

북한은 1956년 북소 원자력 협정과 1959년 북중 원자력 협정을 잇달아 체결해 원자력 개발을 시작했으며, 1963년 구소련으로부터 연구용원자로 제공받아 평북 영변 지역에 1965년부터 대규모 원자력 단지를 조성하여 핵 개발의 기초를 마련했다. 1974년에 국제 원자력 기구(IAEA)에 가입한 후 평화적 핵 이용 명분하에 산업용 원자력 개발에 집중, 1980년대 이후부터는 군사 우선 핵 정책을 통해 원자로와 우라늄 정련 및 변환 시설, 핵 연료 가공 공장, 대형 재처리 시설 등을 건설하는 등 핵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1989년 프랑스의 상업 위성에 의해 핵 시설이 노출되어 핵 사찰도 이루어지면서 한때 중단됐지만 비밀리에 핵 물질인 플로토늄과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재개했다. 북한은 2006년 10월에 제1차 핵 실험을 시작해 2017년 9월까지 총 6차에 걸쳐 핵 실험을 실시함과 동시에 핵 폭탄을 소형화해 미사일 탄두에 장착할 수 있는 능력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보유한 핵 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북한의 탄도 미사일은 사정거리 6,700킬로미터를 넘는 대포동을 비롯하여 3,000킬로미터 이상까지 발사할 수 있는 중거리 미사일인 무수단, 잠수함에서 1,000~3,000킬로미터까지 발사할 수 있는 준중거리 미사일인 북극성, 사정거리 1,300킬로미터인 노동 미사일과 300~1,000킬로미터인 스커드 미사일 등을 보유하고 있다. 2016년에는 백두산이라는 신형 고출력 미사일 엔진을 개발해 탄도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노동 미사일은 1990년 후반에 배치되어 남한에 아주 위협적인 무기가 되었다. 노동은 북한의 미사일 기지가 있는 지명으로 미국 국방성이 붙인 명칭이다. 북한에서는 스커드(Scud) 미사일 개량형을 화성이라고 부르며, 화성 5호는 북한의 스커드-B 단거리 미사일이고 화성 6호는 북한의 스커드-C 단거리 지대지 미사일을 말한다. 북한이 2016년 7월 발사한 화성 7호(노동 미사일)는 사정거리가 1,300과 1,500킬로미터에 이른다.

 

북한은 1976년부터 1978년까지 1,000킬로그램의 탑재량과 600킬로미터의 사정거리를 갖는 중국의 DF-61 프로그램에 관여했으나 중국 정부가 반대해 시행하지 못하고 1979년부터 독자적인 탄도 미사일 개발 계획을 착수했다. 또한 소련의 스커드-B 미사일을 입수해 1984년 복제품을 제작했다. 탄체 중량을 줄이기 위해 탄두 중량을 줄였으며, 탄체의 지름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둔 채 연료와 산화제 탱크 부분을 1미터 연장해 용량을 증대시켰다. 같은 해 9월 시험 발사에 성공한 뒤 1986년부터 양산하기 시작했다. 또 북한은 1989년 스커드C를 초도 생산하고 1991년 실전 배치했다. 1984년 첫 비행 시험한 스커드A, 1985년에 첫 비행 시험한 스커드B, 1990년 첫 비행 시험한 스커드C를 개발하여 사정거리를 300킬로미터에서 340킬로미터, 500킬로미터로 연장시켜 나갔다.

 

1990년대 초 러시아로부터 초청한 미사일 기술자들과 중국의 기술 지원으로 인해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급진전을 이루었다. 결국 1993년 5월에  1단계 이동식 액체 추진 중거리 탄도 미사일인 노동-1호를 동해 쪽으로 시험 발사해 성공했다. 1993년에 첫 비행 시험한 노동 1호는 지름 1.3미터, 전체길이 15.5미터로 탑재량 1,000킬로그램에 사정거리 1,000킬로미터로 알려졌다. 노동 1호는 사정거리 면에서 북한에서 발사하면 남한 전체를 포함해 일본 본토 안에 있는 미군 기지 등 주요 전략 목표를 공격할 수 있는 아주 위협적인 무기다. 노동 1호(북한에서는 화성 7호)의 기술은 비밀리에 이란과 파키스탄 등지로 상호 기술 교환을 기반으로 수출되어 왔다.

 

2016년 9월, 북한이 황해북도 황주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3기의 탄도 미사일은 1,000킬로미터 내외로 날아갔으며 1993년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발사된 노동 1호가 작전에 투입할 수 있는 성숙한 미사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 일본은 1993년부터 일찍이 북한이 핵 무기를 완성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자체적인 미사일 방어 체제(MD)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미사일 크기 비교

노동 미사일은 NK 스커드 Mod-B 엔진 하나만 장착한 스커드 미사일과는 달리 4대의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북한이 노동 미사일에 강력한 엔진 1대로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우선 새로운 강력한 엔진을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어 이미 시험을 끝내고 생산할 수 있는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미사일을 개발하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적으로 대형 엔진 테스트는 소형 엔진 테스트보다 훨씬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 4대의 클러스터링 엔진은 각각의 엔진 진동이 서로를 간섭하기 때문에 엔진의 기계적 진동을 크게 감소시켜 단일 대형 엔진을 사용할 때보다 부스터의 응력과 구조적 요구 사항을 낮출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노동 미사일은 스커드-B보다 4배 많은 연료(대략 12.4세제곱미터의 연료 탱크)를 보유할 것이다. 재진입하기 전에 탄두를 몸체에서 분리하도록 설계했을 것이다. 재진입 시 탄두의 가열을 고려해 탄두를 몸체에서 떼어내는 과정에서 미사일의 정확성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 미사일은 아주 위협적인 무기임에 틀림없다. 한국은 북한의 핵 탄두를 장착한 미사일 위협을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한국형 미사일 방어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으로 공격하는 미사일을 2차례 이상 요격하는 다층 방어 체계로 탄도탄 조기 경보 레이다, 이지스함, 패트리어트 등을 전력화했다.

 

 

자주포로 쏜 포탄의 사정거리 계산

장사정포(Long Range Artillery)는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장거리 사격이 가능한 화포류를 말한다. 이는 핵 탄두를 장착하기 곤란해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자주포로 쏜 포탄은 포물선 경로를 따라 움직이며, 초기 속도와 중력만으로 간단하게 수학적으로 사정거리를 계산할 수 있다. 북한은 수도권을 위협하는 장사정포로 170밀리미터 자주포와 240밀리미터 방사포를 보유하고 있다. 170밀리미터 자주포는 이동 수단에 얹혀 있어 스스로 궤도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자주포로 사정거리는 자료에 따라 54~60킬로미터다. 240밀리미터 방사포(M-1985는 12발사관, M-1991은 22발사관)는 발사관을 여러 개 묶은 다연장 로켓포로 사정거리는 최대 60~64킬로미터라고 한다.

 

장사정포(자주포)

수도권에 위협이 되는 장사정포는 170밀리미터와 240밀리미터로 총 300여 문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장사정포는 일정 고도 이상 고각도로 발사하기 어려우므로 북한산이나 관악산 등 비교적 높은 산의 남쪽 기슭 아래를 타격하기는 힘들 것이다. 170밀리미터 자주포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남쪽 외곽 지역까지도 타격할 수 있다고 한다. 240밀리미터 방사포는 서울 전 지역은 물론 한·미 핵심 전략 기지가 위치하고 있는 오산·평택까지도 타격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장사정포는 북한의 현재 기술 수준으로 볼 때  탑재 할 수 있는 탄두의 크기 및 무게 때문에 핵 탄두를 탑재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로켓 엔진이 없는 장사정포로 쏜 포탄의 운동은 포물선 경로를 따르는 포물체 운동(projectile motion, 지상의 대기 중에 던져진 물체의 운동)을 하며, 공기 저항, 지구 자전, 중력가속도의 변화 등을 무시하고 중력만을 고려하여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 포탄을 공중으로 초기 속도 υ와 초기 각도 θ로 쏘았을 때 어느 고도까지 상승해서 어느 장소에 떨어지는지 함수와 벡터, 미적분을 통해 비교적 간단하게 예측해 보자. 아래 그림은 포탄의 경로와 여러 점에서의 속도 벡터들을 표시한 것이며, 이동한 전체 수평 거리는 사정거리를 나타낸다.

포탄의 경로

장사정포가 포탄을 초기 속도 υ와 초기 각도 θ로 쏘았을 때 공기 저항을 무시하고 중력가속도만을 고려해 사정거리 R을 구할 수 있다. 포탄의 경로와 여러 점에서의 속도 벡터들을 표시한 그림에서 이동한 전체 수평 거리는 사정거리를 나타낸다.

 

초기 속력이 동일할 때 포탄의 각도에 따른 궤적

170밀리미터 자주포는 로켓이 없고 장약을 폭파시킨 힘으로 발사되는 전통적인 ‘포’이므로 초기 속도와 초기 발사각을 알면 사정거리를 쉽게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 미사일을 비롯하여 대포동, 북극성 등과 같은 탄도 미사일은 자체 추진력을 가진 일종의 로켓이므로 초기 속도만으로 간단히 사정거리를 계산할 수는 없다.

 

 

확률이 포함된 핵 폭탄과 투발 수단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 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세계가 주목했지만 결렬되었다. 핵 폭탄이 제2차 세계 대전을 끝낼 수 있었지만 현재까지도 세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핵 폭탄을 개발하는 데에도 함수의 값을 확률적으로 계산하는 알고리즘을 이용하므로 여기에는 확률이라는 상당한 수준의 수학이 필요하다. 또 로켓 엔진이 없는 포탄을 공중으로 쏘았을 때 어느 고도까지 올라가서 어디로 떨어지는지도 함수와 벡터, 미적분을 통해 비교적 간단하게 계산할 수 있다. 로켓 엔진을 장착한 탄도 미사일의 궤적도 추력이 없어질 때의 속도, 공기력 및 중력 등을 고려해 예측할 수 있다. 물리학은 물론이고 수학을 통해 포탄과 탄도 미사일이 어떤 궤적으로 진행할지 알 수 있는 만큼 수학의 응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저자 장조원

공군 사관 학교 항공 우주 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한국 과학 기술원(KAIST)에서 항공 우주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군 사관 학교 항공 우주 공학과 부교수,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방문 학자, 캐나다 라이어슨 대학교 겸임 교수 등을 지냈다. 한국 항공 운항 학회 부회장, 한국 가시화 정보 학회 편집 이사, 한국 항공 우주 산학 위원회 공력 해석 및 설계 분과 위원장, 대한민국 공군 발전 협회 연구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항공 우주 학회 학술상, 현대자동차그룹 우수 논문상, 한국 항공 대학교 최우수 교수상, 교원 업적 종합 부문 최우수상, 한국 항공 운항 학회 우수 논문상, 한국 가시화 정보 학회 우수 논문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항공 우주 과학을 일반인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쓴 『하늘에 도전하다』와 『비행의 시대』 등이 있다. 현재 한국 항공 대학교 항공 운항학과 교수, 공군 사관 학교 명예 교수로 있으며, 곤충이나 새와 같은 생체 모방 비행체, 경계층 흐름 제어, 유동 가시화 등을 비롯한 비정상 공기 역학 분야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저서

『비행의 시대』

하늘을 향한 끝없는 열정을 한 권에 담아낸 책으로, 항공 우주 분야 키워드 77개를 통해 인류가 어떻게 하늘을 바꿔 왔는지를 보여 준다. 최신 정보와 원리, 다양한 비행기 기종과 일화를 핵심 단어별로 분류해 빠짐없이 소개하는 본격적인 항공 우주 가이드북이다.

 

 

『하늘에 도전하다』

항공우주과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과 일반인을 위한 책으로, 비행기라는 개념의 탄생부터 스텔스 기술이 적용된 최첨단 전투기에 이르기까지 비행기의 중요한 발달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리고 그 발달의 배경이 되는 과학 이론을 함께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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