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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손에 다윈을 쥐여 드립니다: 「드디어 다윈」 시리즈 출간에 부쳐 본문

(연재) 사이언스-오픈-북

여러분의 손에 다윈을 쥐여 드립니다: 「드디어 다윈」 시리즈 출간에 부쳐

Editor! 2019. 7. 26. 17:10

‘드디어’ 장대익 서울대 교수 번역의 『종의 기원』이 「드디어 다윈」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찰스 다윈 『종의 기원』의 출간 160년을 기념한 출간입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종의 기원』을 시작으로 해서 찰스 다윈의 ‘진화 3부작’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같은 다윈의 원전을 출간할 것이고, 최재천, 장대익 등 한국 대표 진화학자들의 다윈주의 및 진화론 소개 도서들을 「드디어 다윈」 시리즈의 책들로 펴낼 예정입니다. 다윈의 책을 엮은 ‘다윈 선집’으로서는 우리나라 출판 역사에서 최초의 시도라고 할 이 「드디어 다윈」 시리즈를 통해 어떤 책들이 나올지 기대해 주십시오.
「드디어 다윈」이라는 시리즈 제목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 교수가 정해 주셨습니다.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해 오신 『종의 기원』 등의 출간이 얼마나 반가우셨는지, 이 선집 제목에 묻어납니다. 최재천 교수님의 발간사를 사이언스-오픈-북의 일환을 살짝 공개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여러분의 손에 다윈을 쥐여 드립니다:

「드디어 다윈」 시리즈 출간에 부쳐 

 

『종의 기원』 표지. ⓒ (주)사이언스북스.

드디어 ‘다윈 후진국’의 불명예를 씻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이제 우리도 본격적으로 다윈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밀레니엄이 끝나 가던 1998년 미국의 언론인 네 사람이 『1,000년, 1,000인』이란 책을 출간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학자들과 예술가들을 상대로 지난 1,000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누구인가를 묻는 설문 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1,000명의 위인 목록을 만들어 발표한 책입니다. 구텐베르크가 선두를 한 이 목록에서 다윈은 전체 7위에 선정되었습니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설문 조사를 실시한다면 저는 다윈이 100위 안에도 들지 못할 것을 확신합니다. 2012년 번역되어 나온 존 판던의 『오! 이것이 아이디어다』라는 책에는 우리 인간이 고안해 낸 아이디어 중에서 전문가 패널이 고른 50가지가 소개되어 있는데 다윈의 진화론은 여기서도 7등을 차지했습니다. 우리와 서양은 다윈에 대한 평가에서 이처럼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2009년은 ‘다윈의 해’였습니다. 다윈 탄생 200주년과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 맞물리며 위대한 과학자이자 사상가인 다윈을 재조명하는 각종 행사와 출판 기획이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무슨 일이든 코앞에 닥쳐야 움직이기 시작하던 평소와 달리 우리나라에도 2005년 ‘다윈 포럼’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학계에서 조금이라도 다윈에 관심이 있거나 어떤 형태로든 연구를 하고 있던 젊은 학자들이 한데 모였습니다. 우리는 ‘다윈의 해’를 이 땅에 다윈 연구를 뿌리내릴 원년으로 삼는 데 동의하고 3년 남짓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논의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모두 다윈의 책을 제대로 번역해 내놓는 일이 급선무라는 데 동의했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거치며 놀랄 만한 학문 발전을 이룩한 데에는 국가 차원의 번역 사업이 큰 몫을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우리는 『비글 호 항해기』는 잠시 미뤄 두고 보다 본격적인 다윈의 학술서 3부작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을 먼저 번역하기로 했습니다. 다윈의 책을 번역하는 작업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우선 문장들이 너무 깁니다. 현대적 글쓰기는 거의 이유 불문하고 짧게 쓸 것을 강요합니다.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고 배웁니다. 그러나 다윈 시절에는 정반대였습니다. 길고 장황하게 쓰는 게 오히려 바람직한 덕목이었습니다. 어떤 다윈의 문장은 쉼표와 세미콜론으로 이어지며 한 페이지를 넘어갑니다. 알다시피 영어는 우리말과 어순이 달라 문장의 앞뒤를 오가며 번역해야 하는데 다윈의 문장은 종종 한 문장의 우리말로 옮기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번역된 많은 다윈 저서들은 대체로 쉼표와 세미콜론 단위로 끊어져 있어 너무나 자주 흐름이 끊기는 바람에 독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종의 기원』이 출간되기 바로 전날 원고를 미리 읽은 후 내뱉은 그 유명한 토머스 헉슬리의 탄식을 기억하십니까? “나는 왜 이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정말 바보 같으니라고.” 알고 보면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은 허무할 만치 단순합니다. 그러나 그 단순한 이론이 이 엄청난 생물 다양성의 탄생을 이처럼 가지런히 설명하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다윈은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이른바 ‘비주류’ 혹은 ‘재야’ 학자였습니다. 미세 먼지가 극에 달했던 런던에 살다가는 제 명을 다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경고 때문에 마지못해 시골로 이사하는 바람에 거의 언제나 혼자 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엄청나게 많은 편지를 쓰며 다른 학자들과 교신하려 노력했지만,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여러 동료 학자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것과는 사뭇 다른 연구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역지사지(易地思之) 방식을 채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늘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방식으로 연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글은 때로 모호하기 짝이 없고 중의적입니다. 생물학적 지식이 부족하거나 폭넓은 학술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칫 엉뚱하게 번역하는 우를 범하기 십상입니다.

 

우리가 포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에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두 거물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과 에드워드 윌슨이 각각 편집하고 해설한 다윈 전집들이 나왔습니다. 왓슨은 전집의 제목을 “Darwin: The Indelible Stamp(다윈: 불멸의 족적)”이라고 지었고, 윌슨은 “From So Simple a Beginning(지극히 소박한 시작으로부터)”이라고 지었습니다. 지하에 계신 다윈 선생님이 무척이나 흐뭇해하셨을 것 같습니다. 물론 ‘다윈의 해’를 4년이나 앞두고 전집을 낸 그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도 나름 일찍 출발했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2009년이 지나갔고 또 꼬박 10년이 흘렀습니다. 처음에는 정기적으로 다윈 포럼을 열어 모두가 참여해 함께 번역 작업을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전혀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달았습니다. 용어 하나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를 두고도 하루해가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그건 단순한 용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개념을 제대로 정립하는 문제가 더욱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세 권의 책에 각각 대표 역자를 두기로 했습니다.『종의 기원』은 장대익 교수가 맡았고 『인간의 유래』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은 김성한 교수가 수고했습니다. 저는 다윈 포럼의 대표로서 번역의 감수를 책임져 역자 못지않게 꼼꼼히 읽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우리에게도 다윈을 탐구할 출발선이 마련됐다고 자부합니다.

 

거의 15년 전 다윈 포럼을 시작하며 우리는 이 세 권의 번역 외에도 다윈 서간집도 기획했고, 저는 다윈의 이론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소개하는 책을 쓰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네이버에 「최재천 교수의 다윈 2.0」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고 그것들을 묶어 2012년 『다윈 지능』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2009년 다윈의 해를 맞아 고맙게도 우리나라 거의 모든 주요 일간지와 방송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특집을 기획해 주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다윈은 미래다」라는 《한국일보》 특집 덕택에 저는 우리 시대 대표 다윈주의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40년 넘게 핀치새의 생태와 진화를 연구하고 있는 프린스턴 대학교 로즈머리 그랜트와 피터 그랜트 부부,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의 언어학자이자 진화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다윈을 철학으로 끌어들인 터프츠 대학교 철학과 교수 대니얼 데닛,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 리처드 도킨스, 그리고 하버드 대학교 윌슨 교수까지 모두 다섯 분을 인터뷰하는 기획이었지만 그분들을 만나러 가는 길목에 저는 다른 탁월한 다윈주의자들을 틈틈이 만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두 열두 분을 만났고 그들과 나눈 대담을 엮어 『다윈의 사도들(Darwin’s Apostles)』이라는 제목의 책을 국문과 영문으로 준비했습니다. 2019년 후반부에 일단 국문으로 선보이게 될 것 같습니다.

 

어느덧 이 땅에도 바야흐로 ‘생물학의 세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섭섭하게도 이 나라에서 생물학을 하는 대부분의 학자는 엄밀한 의미에서 생물학자가 아닙니다. 생물을 연구 대상으로 화학이나 물리학을 하는 자연 과학자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서양과 달리 상당수의 생물학과 혹은 생명 과학과 교수들은 다윈의 진화론에 정통하지 않습니다. 일반 생물학 수업을 하면서 정작 진화 부분은 가르치지 않고 자기 학습 과제로 내주는 교수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일반 독자는 둘째 치더라도 저는 우선 이 땅의 생물학자들에게 드디어 다윈을 제대로 접할 기회를 마련됐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기쁩니다. 다윈의 책을 원문으로 읽는 일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이제 드디어 다윈의 저서들을 제대로 된 우리말 번역으로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모름지기 다윈을 읽지 않고 생물을 연구한다는 것은 거의 성경이나 코란을 읽지 않고 성직자가 되는 것에 진배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모두 떳떳하고 당당한 생물학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다윈 포럼을 후원하고 거의 15년이란 세월 동안 묵묵히 기다려 준 (주)사이언스북스에 머리를 숙입니다. 책을 출간한다는 생각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기간이었을 겁니다. 학문의 숙성을 위해 함께 한 수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몸담은 분야는 서로 달라도 다윈을 향한 마음은 한결같아 투합한 다윈 포럼 동료들에게도 존경과 고마움을 표합니다. 함께 작업을 기획했으며 번역에 여러 형태로 기여했고 앞으로도 책을 알리고 이 땅에 다윈의 이론을 정립하는 데 앞장설 겁니다. 2009년 다윈 포럼이 주축이 되어 학문의 세계에서 아마 가장 혹독한 공격을 견뎌낸 다윈의 이론이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학문에 어떻게 침투해 있는지를 가늠해 『21세기 다윈 혁명』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작업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현존하는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 다윈의 이론이 깊숙이 관여하고 때로는 주류 이론으로 자리 잡아 가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 놀랐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어느덧 그로부터 또 10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다윈은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앞다퉈 영입하는 학자로 우뚝 섰습니다. 이제 어느 분야든 다윈을 모르고 학문을 논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늦게나마 「드디어 다윈」을 여러분의 손에 쥐어 드립니다.

 

 

─ 최재천(이화여대 석좌 교수, 다윈 포럼 대표)

 


■ 다윈 포럼

다윈 포럼 대표 최재천

이화 여자 대학교 에코 과학부 석좌 교수. 한국 사회에서 행동 생태학과 진화 생물학을 개척하고 ‘통섭’ 개념을 정착시켰다. 대한민국 과학 기술 훈장 등을 받았고, 초대 국립 생태원장을 지냈다. 『개미제국의 발견』, 『다윈 지능』, 『21세기 다윈 혁명』,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통섭』, 『인간의 그늘에서』 등의 책을 쓰고 옮겼다.

 

다윈 포럼 강호정

생태학자. 현재 연세 대학교 사회 환경 시스템 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전 지구적 기후 변화가 생태계에 야기하는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와인에 담긴 과학』, 『지식의 통섭』, 『유리 천장의 비밀』 등의 책을 쓰고 옮겼다.

 

다윈 포럼 김성한

진화 윤리학자. 「도덕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과 다윈주의 윤리설」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전주 교육 대학교 윤리 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동물 해방』, 『사회 생물학과 윤리』, 『섹슈얼리티의 진화』 등의 책을 옮겼다.

 

다윈 포럼 전중환

진화 심리학자. 현재 경희 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하며, 인간 사회의 협동과 갈등, 이타적 행동, 근친상간과 성관계에 대한 혐오 감정 등을 연구하며 심리학의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오래된 연장통』, 『본성이 답이다』, 『욕망의 진화』 등의 책을 쓰고 옮겼다.

 

다윈 포럼 주일우

생화학과 과학사를 공부한 출판인. 《과학 잡지 에피》와 《인문 예술 잡지 에프》의 발행인으로 과학과 문화 예술 사이의 역동적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든다. 『지식의 통섭』, 『신데렐라의 진실』 등의 책을 쓰고 옮겼다.

 

다윈 포럼 최정규

진화 게임 이론을 전공하고 있는 경제학자. 경북 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경제학, 정치학, 진화 생물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를 오가며 제도와 규범, 인간 행동을 미시적으로 접근하고 설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타적 인간의 출현』, 『다윈주의 좌파』 등의 책을 쓰고 옮겼다.

 


 

한국 진화 생물학계의 역량을 결집한 최초의 다윈 선집

드디어 다윈 시리즈

 

종의 기원 [도서정보]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근간)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근간)

다윈 서한집 (근간)

다윈 지능 (근간)

다윈의 사도들 (근간)

『종의 기원』 깊이 읽기 (근간)

 

「드디어 다윈」 시리즈는 찰스 다윈의 주요 저작과 국내 다윈주의자들의 연구 성과를 응축한 책을 엄선해 독자들에게 소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