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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국제 영장류의 날 기념 큐레이션: 영장류 책들

Editor! 2019. 9. 4. 15:59

 

국제 영장류의 날 기념 큐레이션
영장류 책들


매년 
9월 1일은 국제 영장류의 날(International Primate Day)입니다. 영국의 국제 동물 보호 단체인 ADI(Animal Defenders International)가 2005년 처음 조직한 기념일입니다. 서커스나 동물원에서 이뤄지는 동물 쇼나 생리, 의학적 실험 등에서 착취당하거나 희생되는 원숭이, 침팬지, 고릴라 같은 영장류들을 보호하고, 구조하고, 그들의 자연 생태를 보전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기념일입니다. 영장목의 포유동물들은 사람과의 유일한 동물인 현생 인류, 즉 우리와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조롱당하고 능멸당하며 잔인하게 해부당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490여 종의 영장류 중에서 60퍼센트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특히 상업 농경의 확대로 서식지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아시아 대륙에서는 70퍼센트 이상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가 즉각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주요 종들은 곧 완전 멸종 상태에 이르게 될 겁니다. 우리는 우리의 진화적 친척들에게 너무 모진 게 아닐까요?

절망도 희망도 서두르지 말죠. 그 전에 국제 영장류의 날을 맞이해서 영장류들이 주인공인 책 몇 권을 모아 봤습니다. 가장 먼저 소개할 책은 제인 구달의 『인간의 그늘에서』입니다.

『인간의 그늘에서』 표지.

이 책 『인간의 그늘에서』는 스물여섯의 나이에 침팬지 세계로 뛰어든 제인 구달이 처음 10여 년간의 연구를 토대로 출간한 첫 번째 침팬지 생태 보고서로서, 침팬지 생태에 관한 고전적 텍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인 구달은 이후 20년간의 연구를 추가하여 개정판을 냈고, 이 책은 그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이 책은 제인 구달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야생 침팬지의 생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제인 구달 특유의 아름답고 섬세한 문체가 살아 있으므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그늘에서』 232-233쪽.

본문에서 두 개의 문구를 뽑아 봤습니다. 우리의 인간관, 세계관을 뒤흔드는 관찰로 가득한 이 책을 절대 대표할 수는 없지만, 독자 여러분의 호기심을 끌어 볼까 해서 골라 봤습니다.

“침팬지들은 과일을 즐겨 먹으며 잠자리를 만든다. 그리고 잠자리에는 절대로 배설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가 오면 비를 피하지 않고 트인 공간에서 몸을 웅크린 채 비를 맞는다. 털손질을 부탁하거나 복종의 표현을 할 때는 부드럽게 응하며, 사냥한 먹이는 함께 나눈다. 이 책은 이러한 기본적인 침팬지의 습성과 침팬지 사회의 에티켓에서부터 침팬지의 유아기, 유년기, 사춘기, 성생활, 사회적 서열 관계, 가족 관계, 먹이 사냥과 도구 사용에 이르기까지 침팬지의 생태 전반적인 면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렇다. 인간의 그림자가 침팬지를 뒤덮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침팬지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엄청난 중요성을 지닌 생명체이다. 우리가 침팬지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침팬지도 다른 동물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침팬지는 상당히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으며, 이러저러한 목적으로 도구를 만들어 쓸 수도 있고, 복잡한 사회구조와 의사소통방법을 갖고 있으며, 자아 인식의 기원을 보여 준다. 침팬지가 지금부터 4000만 년 후에 어떻게 될지 그 누가 알겠는가? 침팬지들이 생존할 수 있고 적어도 진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일 것이다.”

『인간의 그늘에서』 402-403쪽.

추천사도 뽑아 봤습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쯤 세계 최고의 과학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스티븐 제이 굴드와 당대 미국 최고의 정신 의학자로 평가받았던 데이비드 햄버그의 서문에서 뽑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옮긴이이며 제인 구달의 동반자이기도 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 교수님의 추천사도 있습니다.

제인 구달의 침팬지 연구는 서방 세계가 20세기에 이룩한 가장 위대한 과학적 위업 중 하나!
─ 스티븐 제이 굴드(고생물학자)
1세기에 한 번쯤 인간이 그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연구 결과가 나온다. 이 책을 읽는 이는 바로 그런 경험을 할 소중할 기회를 얻을 것이다.
─ 데이비드 햄버그(정신 의학자)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침팬지 전문가가 된다. 배우고 있는 줄도 모르고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배움이다. 
─ 최재천(동물 행동학자, 이화여대 석좌 교수)

당연히 이 책과 함께 제인 구달의 자서전 『제인 구달: 침팬지와 함께한 나의 인생』도 읽어 보셔야죠. 

『제인 구달』 표지.

제인 구달의 책을 읽으셨다면 당연히 우리나라에도 영장류학자가 있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한국인 최초로 인도네시아의 열대 우림에서 긴팔원숭이를 연구하며 정글이 뿜어내는 생명의 다양성을 직접 목격하고 자연의 숨결을 피부로 호흡한 영장류학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열대 우림 ‘비숲’에서의 가슴 뛰는 모험을 글과 그림으로 담아 책으로 펴냈습니다. 그 책이 바로 김산하 박사의 『비숲: 긴팔원숭이 박사의 밀림 모험기』입니다.

『비숲: 긴팔원숭이 박사의 밀림 모험기』 표지.

아무런 기반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척박한 밀림으로 혈혈단신으로 떠나 인도네시아 구눙할라문 국립 공원 내에 한국 최초의 야생 영장류 연구지를 개척하고, 두 발로 땅 위를 걷는 인간을 조롱하듯 나무 위를 자유자재로 뛰어 달아나는 긴팔원숭이들과의 기나긴 줄다리기 끝에 마침내 긴팔원숭이들의 묵인과 암묵적 협조를 얻어 내기까지, 한국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 김산하 박사가 좌충우돌하며 겪는 갖가지 사연과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열대의 짙푸른 사진들과 저자가 직접 그린 형형색색의 그림들과 함께 풍성하게 펼쳐집니다.

『비숲』 44-45쪽.

자바긴팔원숭이들에 대한 영장류학자 관찰기이자, 인도네시아 열대 우림 속으로 떠난 기행문이며, 생명력 가득한 글쓰기를 맛볼 수 있는 탁월한 에세이의 한 권인 이 책에서도 문장을 뽑아 봤습니다.

“정글 이웃 간의 다양한 관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긴팔원숭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이종(異種)이 있다면 바로 우리인데, 과연 그들과 우리는 어떤 관계일까? 긴팔원숭이가 있는 나무 바로 밑에 찰싹 붙어 쫓아다녔지만, 거리를 좁혀 만질 수 도 없었고 만져서도 안 되었다. 영장류와 사람은 인수공통 전염병을 서로 옮길 수가 있기 때문에 접촉을 피하는 것은 영장류 연구자의 가장 기초 윤리 중 하나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제 정도 든 녀석들과 어떤 상호 작용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언젠가 한 번 젊은 처녀 아스리가 거미를 잡아먹으려 땅에 내려온 적이 있다. 끈적끈적한 거미줄이 털에 묻는 것도 아랑곳 안 하고, 그 큰 걸 우적우적 씹어 먹는 모습을 약 2미터 앞에서 마주 볼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녀를 보았고, 그녀도 나를 보았다. 서로의 두 눈을 응시할 줄 아는 것, 쳐다봐야 할 곳이 눈이라는 걸 아는 것, 과연 영장류이다.”

“나는 이곳에 왜 왔던가. 갈증과 더위와 가려움에 시달리는 불쌍한 생물이여, 무엇하러 여기까지 찾아 들어왔는가. 긴팔원숭이를 올려다 보았다. 내 짧은 팔을 뻗쳐 저 긴 팔과 닿으려고 온 거라 나는 나직이 속삭였다. 한 동물을 향한 이 몸짓에서 그토록 요원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 것은 아닐까. 아름다운 백발의 여인이 생각났다. 왜 침팬지를 사랑하고 연구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제인 구달은 이렇게 답했다. “침팬지는 자연이 인간에게 파견한 대사입니다.” 영장류 중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를 만나면 우리가 얼마나 자연적인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고, 그러면 침팬지가 대표하는 자연계 전체에게 마음과 눈이 열린다는 뜻이다. 우리와 너무도 닮은 침팬지는 과연 뛰어난 외교관이다. 나에겐 긴팔원숭이가 그렇다. 긴팔원숭이는 수교와 통상을 논의하는 공식적인 외교관이라기보단, 우리와 가깝되 적당한 거리가 있는 조용한 동양적 사절이다. 비숲의 높고 신비로운 생명 세계를 가장 훌륭하게 함축하고 체화(體化)하는 그가 나에겐 가장 진정한 생태적 시적(詩的) 존재이다.”

침팬지와 긴팔원숭이 같은 영장류들이 생태적 시적 존재이며, 가깝되 적당한 거리가 있는 조용한 동양적 사절이라는 표현이 와닿지 않으시는지요? 『비숲』 책 곳곳에는 김산하 박사가 직접 찍은 사진들과 삽화들이 있습니다. 열대 우림, 아니 ‘비숲’으로 안내하는 가이드로서 부족함이 없는 책입니다. 

“하늘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난다. 한발 앞서 불어온 바람에 긴박한 소식이 실려 있다. 공백도 잠시, 작품의 서곡처럼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진다. 비가 내린다.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진다. 적시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다. 검은 흙은 넘쳐흐르는 물을 담다가 그만 벅차 포기하고 하염없이 흘려보낸다. 몸부림처럼 땅을 파고든 뿌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을 들이마신다. 왕성한 생명 활동에 박차가 가해진다. 광합성과 호흡에의 열정이 발산한다. 빛을 향한 생장과 만개로 서로를 뒤덮는 녹음의 축제가 숲의 체온을 상승시킨다. 비가 탄생하고, 비가 몸을 맡기는 숲. 숲을 가능케 하고, 숲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비. 비라는 하늘과 숲이라는 땅의 맞닿음과 상호 침투. 지구상의 가장 완벽한 자연 현상. 정글, 밀림, 열대 우림. 이것이 바로 비숲이다. 나는 비숲에 살았다.”

“그림의 세계에서는 따라가기 어려운 긴팔원숭이와 어깨동무도 가능하지 않은가?” 『비숲』 본문에서. ⓒ 김산하.

국제 영장류의 날을 맞아 세 권의 책을 소개해 봤습니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EU 등 서구권에서는 8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영장류를 생리, 의학적 실험에 사용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감의 둘레가 넓어지고 있는 거죠. 그런데 한국은 어떨까요?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까요,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까요? 모든 것은 우리가 타고난 공감 능력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겠죠. 제인 구달과 김산하 같은 영장류학자들의 책은 공감의 둘레의 확장에 징검다리가 되어 줄 겁니다.

 

1.
제인 구달과 김산하 박사는 2014년 특별 대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이언스북스 블로그에 그 내용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한번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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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꽃과 나무와 함께 희망을 심는다 『희망의 씨앗』 출간 기념 제인 구달 ⋅ 김산하(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특별 대담 지난 11월 22일, 제인 구달의 2014년 방한 일정은 개원 1주년을 맞이한 서천의 국립..

sciencebooks.tistory.com


2.
9월에는 영장류 관련 기념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매년 9월 24일 세계 고릴라의 날(World Gorilla Day)입니다. 이날 관련 포스팅 하나 더 하겠습니다.

3.
그리고 김산하 박사의 『비숲』 후속편이 10월 이후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현재 한창 표지화를 그리고, 편집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좀 더 자세한 소식은 이후 사이언스북스의 SNS 채널을 통해 전해 드릴 예정입니다. 채널 고정!

『습지주의자』 표지 레이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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