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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수 문제는 전문가도 어려워! 본문

(연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1. 산수 문제는 전문가도 어려워!

Editor! 2019. 11. 13. 17:52

(주)사이언스북스 블로그에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전 《수학동아》 편집장이자 SF 작가로 활약 중인 고호관 선생님의 수학 에세이입니다. 방대한 수학 세계에서도 2015 개정 교육 과정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수학적 사고력을 주제로 한 에세이입니다. 먼저 고호관 선생님이 보내 주신 기획의 말을 보겠습니다.

 

흔히 수학을 공부하면서 익힌 사고력, 논리적으로 답을 찾아가는 능력이 평생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졸업하고 수학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모두 수학을 하며 사는 셈이지요. 이 수학적 사고력은 흔히 접하는 계산과는 다릅니다. 앞으로 할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수학적 사고력이란 게 무엇인지, 어떤 요소가 들어 있는지, 어떻게 발전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걱정 마세요. 어려운 수학 내용은 하나도 안 나옵니다. 왜냐하면 저도 모르거든요.

 

3주에 한 번씩, 수요일에 「고호관의 수요 수학 에세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가 찾아갑니다. 먼저 천재 수학자나 과학 기술 전문가도 쩔쩔매는 초등학교 산수 문제들입니다.


 

 

고호관의 수요 수학 에세이 1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산수 문제는 전문가도 어려워!

 

 

일상 생활에서 수학은 산수, 계산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수학자에 관한 흔한 오해 중 하나가 당연히 계산 실력이 뛰어날 것이라는 선입견이다. 실제로 이름난 수학자 중에는 엄청난 암산 능력을 보여 주는 사람도 있다.

 

헝가리 태생으로, 수학, 컴퓨터 과학, 양자 역학, 경제학, 통계학 등 다양한 분야에 업적을 남긴 존 폰 노이만이 그렇다. 노이만에 관해서는 이런 일화가 있다. 누군가 노이만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를 냈다.

 

“자전거 두 대가 서로 20마일 떨어진 곳에서 상대방을 향해 출발했다. 각 자전거는 시속 10마일로 움직인다. 동시에 파리 한 마리가 한 자전거 앞바퀴에서 출발해 시속 15마일로 두 자전거 사이를 계속해서 왕복한다. 두 자전거 앞바퀴가 만나서 짓눌려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한다. 이때 파리가 이동한 총 거리는 얼마일까?”

 

무한 급수를 이용해서 풀면 오래 걸리지만, 자전거 두 대가 만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과 파리의 속도를 곱하면 간단하게 풀리는 문제다. 노이만이 순식간에 답을 내놓자 질문한 사람은 “아, 속임수를 알아채셨군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이만은 “무슨 속임수요? 무한급수로 풀었는데요.”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다.

 

천재 수학자라고 하면 대개 이런 이미지를 떠올리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수학자이면서도 계산에는 젬병인 사람도 있다.

 

필즈 상 수상자인 프랑스 수학자 알렉산더 그로텐디크는 수업 중에 소수의 예로 57을 제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57은 3으로 나누어지므로 소수가 아니다. 그래서 57을 농담 삼아 ‘그로텐디크 소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19세기 독일 수학자 에른스트 쿠머는 간단한 7 곱하기 9 같은 간단한 계산도 헷갈려서 머뭇거리곤 했다.

 

역으로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 뛰어난 수학자가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봐도 계산 능력과 수학적 사고력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수학 능력이 뛰어나다는 건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최소한의 시간을 들여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하고, 아이를 씻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와 같은 일상 생활 속의 문제도 포함된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얼마 전부터는 실생활과 연관 지어 창의력과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 문장제 수학 문제를 도입했다. 문제 상황을 서술형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고 절차에 맞게 수학 기호로 바꾸어야 답을 구할 수 있다. 수학적 사고력이 뛰어나면 이 과정을 쉽게 해내는 것이다.

 

 

 

구조가 같은 문제도 다르게 푼다

 

최근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논문이 하나 나왔다. 프랑스와 스위스 공동 연구진이 2019년 6월 28일 《심리 작용학 회보(Psychonomic Bulletin & Review)》에 발표한 논문인데, 고등 수학 교육을 받은 전문가도 문제를 표현한 방식에 따라 초등학교 수준의 문장제 수학 문제를 맞히지 못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연구의 출발점에는 2010년 《학술지 학습과 지도(Learning and Instruction)》에 나온 한 논문이 있다. 일단 문제 하나를 보자.

 

*양적 문제

조는 무게가 5킬로그램인 러시아 어 사전을 들고 있다.
조는 스페인 어 사전도 들고 있다.
조가 든 무게는 총 14킬로그램이다.
롤라는 조의 스페인 어 사전과 독일어 사전을 들고 있다.
독일어 사전은 러시아 어 사전보다 2킬로그램 가볍다.
롤라는 몇 킬로그램을 들고 있을까?
*순차적 문제

톰은 5년 동안 그림 수업을 들었다.
톰은 특정 나이에 그림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톰은 14세 때 그림 수업을 중단했다.
루시는 톰과 똑같은 나이에 그림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롤라는 톰보다 그림 수업을 2년 적게 들었다.
루시는 언제 그림 수업을 중단했을까?

 

무게 문제는 두 가지 방법으로 풀 수 있다. 먼저 러시아어 사전의 무게가 5킬로그램이고, 총합은 14킬로그램이므로 스페인 어 사전의 무게는 9킬로그램이다. 따라서 독일어 사전은 5-2=3킬로그램이고, 롤라가 든 무게는 9+3=12킬로그램이다.

 

하지만 스페인 어 사전의 무게를 계산하지 않고도 문제를 풀 수 있다. 스페인 어 사전은 둘 다 공통으로 들고 있으므로 독일어 사전이 러시아어 사전보다 2킬로그램 가볍다는 사실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14-2=12킬로그램이 된다. 첫 번째 방법을 3단계 풀이, 두 번째 방법을 1단계 풀이라고 하자. 시간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두 문제의 표현은 다르지만, 수학적으로 나타내면 구조가 똑같다. 그렇다면 이 두 문제를 학생들에게 풀게 한다면 3단계 풀이와 1단계 풀이를 선택하는 비율이 서로 비슷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2010년 논문에 따르면, 희한하게도 무게로 나타낸 문제를 풀 때는 3단계 풀이를 쓰고 시간 문제를 풀 때는 1단계 풀이를 쓰는 경향이 있었다. 문제의 표현 방식에 따라 풀이 방법을 다르게 적용했던 것이다.

 

 

 

14-2=12를 틀려?

 

2019년에 논문의 연구진은 앞의 문제 형식을 살짝 바꾼 뒤 대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은 일반인과 입학이 까다로운 명문대 이공계 학생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제공하는 정보를 하나 줄였기 때문에 바뀐 문제는 1단계 풀이로만 풀 수 있었다. 문제 예시는 다음과 같다. 양적 문제는 총합, 집합 등으로 나타낼 수 있는 문제고, 순차적 문제는 시간축과 같은 축을 이용해 나타낼 수 있는 문제다.

 

*양적 문제

폴은 빨간 구슬 몇 개를 갖고 있다.
폴은 파란 구슬도 갖고 있다.
폴은 합쳐서 구슬 14개를 갖고 있다.
졸렌은 폴과 같은 수의 파란 구슬을 갖고 있으며, 초록색 구슬도 몇 개 있다.
졸렌의 초록색 구슬은 폴의 빨간 구슬보다 2개 적다.
졸렌은 구슬을 총 몇 개 갖고 있을까?
*순차적 문제

소피아는 몇 시간 동안 여행했다.
여행은 낮에 시작했다.
소피아는 14시에 도착했다.
프레드는 소피아와 같은 시각에 떠났다.
프레드는 소피아보다 2시간 적게 여행했다.
프레드는 몇 시에 도착했을까?

 

이 두 문제의 풀이는 14-2=12로 똑같다. 수학 기호로 나타낸 문제만 놓고 보면, 초등학교 저학년도 풀 수 있을 정도로 쉽다.

 

연구진은 이와 같은 형식의 문제를 모니터에 한 줄씩 띄우는 방식으로 실험했다. 참가자는 스페이스 바로 문제를 한 줄씩 넘기며 읽어 나간다. 문제가 다 나오면 이어서 “앞의 정보로 해답을 알아내는 게 가능합니까?”라는 질문이 나온다. 참가자는 “아니오. 해답을 구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합니다.”와 “네. 정답은 ****(문제에 따른 정답 표시)입니다.” 중에서 하나를 고르면 된다. 일부러 중간중간에 실제로 풀 수 없는 가짜 문제도 끼워 넣었다.

 

연구진의 가정은 이랬다. ‘순차적 문제를 풀 때 1단계 풀이를 더 많이 이용한다. 따라서 두 형태 모두 1단계 풀이만 가능하게 한다면, 순차적 문제 풀이의 정답률이 높을 것이다.’

 

실험 결과는 이 가정을 입증했다. 대졸 일반인 집단에서 양적 문제의 정답률은 47퍼센트에 그친 반면, 순차적 문제의 정답률은 82퍼센트였다. 논문에서 ‘전문가’로 지칭한 명문대 출신 집단에서도 양상은 비슷했다. 양적 문제의 정답률은 76퍼센트, 순차적 문제의 정답률은 95퍼센트였다.

 

 

 

세상에 관한 지식이 수학적 사고력 키워 줄까

 

이 연구는 우리가 수학적 사고력을 발휘할 때 언어적 표현 방식이나 의미, 수학 외적인 지식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수학 공부를 갓 시작한 초등학생만 그런 것도 아니다. 고등 교육을 받은 성인, 추상적 추론에 익숙한 수학 전문가 역시 수학 외적인 정보에 영향을 받았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건 정답률 100퍼센트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4-2=12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사람들이 초등학생 수준의 문장제 문제에 보기 좋게 당해 버린 것이다. 초등학생 자녀가 들고 온 수학 문제를 풀어 주지 못해서 한탄하는 부모님들도 너무 자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산수 문제는 못 풀어서 쩔쩔매도 게임 캐릭터의 공격력, 방어력 계산은 귀신같이 해내는 아이가 있을 수 있듯이 수학적 사고력도 현실 세계에 관한 지식이나 관심과 떼어놓을 수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으면 수학 능력을 키울 수 있는지 궁금해지는데, 관련 연구를 기대해 본다.

 

 

참고 문헌

Gamo, S., Sander, E., & Richard, J. F. Transfer of strategy use by semantic recoding in arithmetic problem solving. Learning and Instruction, 2010, 20(5), 400–410.

Gros, H., Sander, E., Thibaut, J. When masters of abstraction run into a concrete wall: Experts failing arithmetic word problems. Psychonomic Bulletin and Review, 2019.

 


고호관

대학에서 건축과 과학사를 공부했다. 《과학동아》 기자, 《수학동아》 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 과학 저술가이자 SF 작가 또는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우주로 가는 문 달』을 썼고,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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