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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2. 시험 시간이 길면 여자가 유리?

Editor! 2019. 12. 4. 10:00

이번 주면 각 대학의 대입 수시 모집 논술 시험이 거의 마무리됩니다. 먼저 입시에 지쳤을 학생들에게 위로와 축복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사이언스북스 블로그에서 연재하고 있는 고호관 전 《수학동아》 편집장이자 SF 작가의 수요 수학 에세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에서는 이번에 수학 시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수학 실력은 정말 다른 걸까요? 아니면 수학 능력을 평가하는 기존의 시스템이 잘못된 걸까요? 한번 함께 생각해 보시죠.


 

고호관의 수요 수학 에세이 2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시험 시간이 길면 여자가 유리?

 

영화 「히든 피겨스」(2016년)는 1960년대 미국 항공 우주국(NASA)에서 일했던 흑인 여성 수학자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 세 사람은 수학 실력이 뛰어남에도 유색 인종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 청소부로 오해를 받는가 하면, 공용 커피를 마실 때도 눈치를 봐야 하고, 유색 인종 화장실을 찾아 1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진 다른 건물까지 왔다 갔다 하고, 중요한 업무에서는 배제되는 수모를 당한다.

비교적 낫기는 했어도 백인 여성 역시 차별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과학과 기술처럼 객관적일 것 같은 분야에서도 능력 이외의 요소로 차별을 받는 일은 흔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차별적인 분위기는 점차 희석되어 왔고, 뛰어난 업적을 남긴 여성 과학 기술자들이 다시 조명을 받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 캐서린 존슨은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위한 계산에도 참여했고, 후기에는 우주 왕복선 계획에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2016년 NASA는 존슨의 업적을 기려 ‘캐서린 존슨 계산 연구소’를 열기도 했다.

 NASA에서 일하던 당시의 캐서린 존슨.

 

 

수학, 물리학,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여성은 아직 소수자

그러나 과학 기술계에서 남녀가 완전히 동등해졌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그렇다.”라고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특히 과학 중에서도 전통적으로 천재의 영역으로 알려진 물리학, 수학에서는 더 그렇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여성 물리학자는 지금까지 단 세 명이다. 1903년의 마리 퀴리, 1963년의 마리아 괴퍼트 메이어, 2018년의 도나 스트리클런드다. 거의 60년에 한 명씩 받은 셈이다.

4년에 한 번 수여하는 수학계의 권위 있는 상 필즈상은 1936년부터 시상했지만, 2014년에야 처음으로 여성 수상자가 나왔다. 필즈상은 만 40세 이하의 젊은 수학자에게 주는 상으로, 생애의 업적을 바탕으로 주는 노벨상보다는 더 최근의 성과를 반영한다. 그럼에도 여성 수학자가 상을 받은 게 고작 몇 년 전이다.

물론 이 분야에 남성 종사자가 많으니 자연히 뛰어난 성과로 상을 받는 연구자도 남성이 많을 거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현상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이다. 과거는 물론 지금도 물리학계나 수학계에는 남성 연구자가 더 많다. 2017년 미국 국립 과학 재단(NSF)이 발표한 보고서 「과학 기술에서 여성, 소수자, 장애인(Women, Minorities, and Persons with Disabilities in Science and Engineering)」에 따르면, 미국에서 물리학으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는 여성의 비율은 2014년 기준으로 20퍼센트 내외다. 1990년대와 비교해 늘어난 수치지만, 여전히 낮다. 수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컴퓨터 과학도 비슷한 수준이다. 수학과 통계는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는 여성이 40퍼센트 정도로 높지만, 박사 학위에 이르면 29퍼센트로 떨어진다.

 

 

여학생 드문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

좀 더 최근은 달라졌을까?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IMO)를 보자. IMO 참가 학생은 계속 수학 전공을 선택해 수학자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최초의 여성 필즈상 수상자인 마리암 미르자하니도 IMO 출신이고, 현존 최고의 수학자로 불리는 테렌스 타오, 은둔의 수학자로 유명한 그리고리 페렐만도 IMO 출신이다. 이 IMO에 각국 대표로 출전하는 학생 대다수는 남학생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IMO에 참가한 여학생은 전체의 10퍼센트 내외에 불과하다. 밀레니엄 세대에 이르면 다를까 싶었지만, 여전히 비대칭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녀의 수학 능력에 차이가 있다는 통념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에 관해 지금까지 다양한 연구가 나왔다. 직업 선택에 있어서 남녀의 가치관 차이, 사회적인 선입견, 공간 지각 능력의 차이, 교사와 학부모의 태도와 기대 등 여러 가지 요소가 관여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있고, 이런 요소는 당연히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쉽사리 결론을 내기 어렵다.

실제로 차이가 있긴 있는 걸까? 최근 연구를 보면 평균적으로 남학생과 여학생의 수학 성적 격차는 작거나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실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조금씩 달라진다. 예를 들어, 전체 평균은 같아도 상위권으로 갈수록 남녀 격차가 늘어날 수 있다. 시험 내용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관련이 클수록 성별 격차가 줄어드는 경향도 있다. 또, 여학생보다는 남학생의 성적 차이(상위권과 하위권의 차이)가 약간 더 크게 나타나기도 한다.

2018 IMO 한국 대표단. 한국과학창의재단 제공. ⓒ 한국과학창의재단.

 

 

긴 시험에는 여성이 유리

최근에도 재미있는 연구가 하나 나왔다. 2019년 9월 3일 스페인 발레아레스 제도 대학교와 네덜란드 에라스무스 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시험 시간에 따라 남학생과 여학생의 성취가 달라진다는 내용의 논문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발표했다. (논문 링크)

이들은 국제 학생 평가 프로그램(PISA)의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이런 결론을 끌어냈다. PISA는 2000년부터 3년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데, 15세의 학생을 대상으로 읽기, 수학, 과학 세 분야의 능력을 시험한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읽기 분야에서는 여학생이 더 높은 점수를, 수학과 과학에서는 남학생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아 왔다. 2015년에는 처음으로 여학생이 모든 분야에서 남학생을 앞질렀다.

연구진은 2006년부터 2015년까지의 결과를 분석했다. 아무래도 시험을 보다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시험 시간이 흐를수록 정답률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조사하니 뒤에 있는 문제일수록 남녀 모두 정답률이 떨어졌다. 뒤쪽으로 갈수록 어려운 문제가 나왔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리고 남녀를 비교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남학생의 정답률이 더 많이 떨어졌다. 시간대별로 비교하면 수학도 시험 초기에는 남학생의 성과가 뛰어났지만, 뒤로 갈수록 거의 똑같아졌다.

시간이 다양한 여러 시험을 비교한 결과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시험 시간이 길수록 수학, 과학 분야에서 남녀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연구진은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이는 수학과 과학뿐만 아니라 원래 여학생이 잘 치렀던 읽기 시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규율이 더 잘 잡혀 있고, 얌전하며, 자만심이 덜하고, 배움에 진지한 태도를 보인다는 기존 연구는 이 결과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문제를 빨리 풀어내야 하는 시험과 달리 실제 수학에서는 한 문제라도 꾸준히 생각하고 오랫동안 집중해서 푸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성이 오히려 수학에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이런 연구는 앞으로 자라나는 학생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지에 관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묻힐 수 있는 재능을 살릴 수도 있는 일이다.

 

 

다양한 평가 방식에 관한 고민이 필요

남성과 여성의 수학적 사고력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지는 알아내기 어렵다. 솔직히 궁금하기는 하다. 수학자를 지망하는 남녀 학생의 수가 같다면 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그 답을 알 수 있을까? 하지만 IMO 참가 학생의 성비를 보면 앞으로 10~20년 안에 알아내기는 어려울 듯하다. 설령 같은 수가 수학 전공을 택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보이지 않는 차별, 경력 단절 등으로 여성이 불이익을 겪을 수 있으니 순수한 능력을 평가하기는 요원하다.

근본 원인을 알아내려면 외적인 요소가 모두 사라져야 한다. 수학은 남성의 영역이라는 선입견도 사라지고, 직업 선택에 성별이 어떤 고려 대상도 되지 않아야 하고, 여성이 임신과 출산으로 뒤처지는 일이 없는 세상이 오면 그제야 남녀의 두뇌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당장은 선천적인 능력을 판단하기에 너무 많은 요소가 관여하고 있다.

수학 능력의 남녀 차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평균적으로 여학생과 남학생의 차이가 거의 없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에 아직 남아 있는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다. 또, 시험 시간을 늘릴수록 여학생에게 유리하다는 연구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듯이 다양한 평가 방식을 도입하면 그동안 묻혔던 여러 재능을 건져낼 수 있을 것이다. 수학적 능력이라는 것도 어느 한 가지 특징으로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성별에 따라 어느 한쪽이 우월하고 열등한 게 아니라 성별과 무관하게 각자 다양한 수학적 능력을 지녔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참고 문헌

Balart, P., Oosterveen, M. “Females show more sustained performance during test-taking than males,”Nature Communications,  2019, vol.10, Article number: 3798.

“Women, Minorities, and Persons with Disabilities in Science and Engineering,” National Science Foundation, 2017


고호관

대학에서 건축과 과학사를 공부했다. 《과학동아》 기자, 《수학동아》 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 과학 저술가이자 SF 작가 또는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우주로 가는 문 달』을 썼고,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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