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cienceBooks

5. 수학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 본문

(연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5. 수학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

Editor! 2020. 2. 12. 14:30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로 유명한 김별아 작가는 한 강연에서 소설은 “머리나 가슴이 아닌 엉덩이로 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타고난 재능보다 전업 작가로서의 노력을 강조한 말씀이겠죠. 그렇다면 수학은 어떨까요? 수학 역시 머리나 가슴이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걸까요? 날이 갈수록 눈 밝은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는 수학 저술가 고호관 선생님은 여기에 질문을 추가합니다. 시각 장애를 가진 수학자는 수학을 어떻게 할까요? 눈으로 할까요, 손으로 할까요? 그것도 아니면 마음의 눈으로 할까요?


고호관의 수요 수학 에세이 5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수학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

 

수학은 눈이 아니라 머리로,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사고나 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것이기에 만약 살면서 장애를 입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장애를 놓고 상상력을 발휘한 결과 내 생활 양식으로 미루어 볼 때 시력을 잃는 게 가장 타격이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매주 하는 축구는 못 하게 될 것이다.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도 보기 어려워질 것이다. 점자를 배우거나 오디오북을 이용하게 되겠지만, 이전처럼 마음껏 보고 즐길 수는 없을 터. 사실 이런 건 겪게 될 생활의 불편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문득 앞이 보이지 않으면 수학을 어떻게 공부하는지 궁금해진다. 한창 수학 공부를 하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해 보자. 문제를 눈으로 보고 이해한 뒤에 공책이나 연습장에 풀이 과정을 써 가면서 답을 구한다.

만약 눈을 감은 상태에서 수학 문제를 푼다고 해 보자. 일단 문제를 이해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글로 된 문제라면 누가 읽어 주면 된다. 하지만 기호가 나오면 좀 복잡하다. “삼 곱하기 구의 제곱근을 구하라.”라고 하면 9의 제곱근을 먼저 구하고 3과 곱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3 곱하기 9를 한 다음에 제곱근을 구해야 한다는 걸까? 그래프를 보고 푸는 문제라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문제를 풀기도 어렵다. 어차피 볼 수 없으니 연습장에 풀이 과정을 쓰는 것도 의미가 없어 보인다. 머릿속에서 다 풀어야 하는데, 아주 쉬운 문제가 아니면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어떤 천재 수학자는 머릿속에 커다란 칠판이 있어서 자유롭게 쓰고 지울 수 있다고 하던데, 보통 사람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어떤 천재 수학자는 머릿속에 커다란 칠판이 있어서 자유롭게 쓰고 지울 수 있다고 하던데, 보통 사람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시각 장애인이 공간을 상상하는 법

그렇지만 앞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수학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는 말년에 시력을 잃었지만, 오일러가 남긴 방대한 연구 성과의 절반은 시력을 잃은 뒤에 나왔다. 시각 장애인도 충분히 수학을 공부하거나 연구할 수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시각 장애인이면서 수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도 여럿 있다. 이들 대부분은 기하학자다. 얄궂게도 수학에서 가장 시각적인 분야다. 하지만 기하학 문제는 정보가 집약되어 있다. 머릿속에 담기 좋은 형태다. 반대로 길게 나열하며 계산해야 하는 문제는 시각 장애인 수학자가 힘겨워한다.

시각 장애인은 사물의 형태를 인식하는 방법이 다르다. 3차원 물체라고 해도 사람의 눈에는 평면으로 보인다. 망막에 맺힌 상을 바탕으로 머릿속에서 입체적인 형태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종이에 찍힌 수학 문제도 마찬가지다. 3차원 물체도 2차원 평면 그림으로 나와 있으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머릿속으로 형태를 떠올려야 한다. 많은 사람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각 장애인이 인지하는 방법은 다르다. 이들은 물체를 만지거나 소리를 듣고 그 정보를 종합해 형태를 상상한다. 여러 가지 감각을 통해 3차원 공간을 직관적으로 파악한다. 길을 찾거나 건물에서 위치를 찾는 등의 일상적인 활동으로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시각 장애인이 3차원 공간을 인지하는 능력은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러시아 수학자 알렉세이 소신스키(Alexei Sossinski)에 따르면, 앞을 보지 못하다가 시력을 회복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이 시각 장애인의 공간 능력에 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참조 논문 링크) 예를 들어 17세기 아일랜드 철학자 윌리엄 몰리뉴(William Molyneux)는 영국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에게 “선천적인 시각 장애인이 시력을 얻는다면, 그 전에 촉각으로 구분하던 구와 정육면체를 보기만 해도 구분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이후 실제로 실험이 이루어졌는데, 만져만 보던 구와 정육면체를 처음으로 보게 된 사람들은 둘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러나 구와 원환체(속이 빈 도넛 모양)가 다르다는 건 곧바로 구분했다. 이를 바탕으로 소신스키는 몇몇 위상학적 구조를 인지하는 능력은 선천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멍이 몇 개 있느냐로 구분하는 위상학적 특징으로 보면, 구와 정육면체는 같은 모양이다. 구멍이 없는 구와 구멍이 하나 있는 원환체는 다른 모양이다. 시각 장애인도 선천적으로 이런 위상학적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소신스키는 오히려 시각 장애인이 앞을 보는 사람보다 고차원적인 상상력에 더 능숙하다고 주장했다.

시각 장애인도 선천적으로 구와 원환체의 차이 같은 위상학적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한다. 러시아 수학자 소신스키는 오히려 시각 장애인이 앞을 보는 사람보다 고차원적인 상상력에 더 능숙하다고 주장한다.

 

다른 분야보다 수학이 더 적합해

기하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수학자도 있다. (참고 논문 링크) 미국 수학자 로런스 바젯(Lawrence Baggett)의 연구 관심사는 조화 해석과 디지털 신호 처리나 이미지 압축에 쓰이는 웨이블릿 이론 등이다. 바젯은 도형이 아니라 수식을 머릿속으로 시각화해서 문제를 푼다. 오히려 도형을 상상하는 게 어렵다고 한다. 바젯은 머릿속으로 문제를 풀며, 혼잣말로 과정을 읊는 방법을 쓴다. 칠판이나 종이를 사용하지 못해서 불편한 점은 있지만, 그런 건 단순히 편리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시각 장애인에게는 다른 학문 분야보다 수학이 더 적합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통적으로 많은 시각 장애인이 법을 전공하지만, 수학은 그런 다른 읽어야 할 텍스트의 양이 훨씬 적다. 수학 기호나 도형은 압축적이어서 적게 읽고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데 적합하다. 시각 장애인 수학자인 베르나르 모랭(Bernard Morin)은 기하학 문제를 풀 때 앞에 보이는 학생들은 종이에 그려져 있는 그림에 제한을 받지만, 시각 장애인 학생은 그림을 이용하지 않아서 더욱 자연스럽게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어쩔 수 없는 불리함을 극복하게 해 주는 기술도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1940년대에 미국 수학자 아브라함 네메스(Abraham Nemeth)는 수학 기호를 나타낼 수 있는 점자를 개발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부터는 자동으로 문자를 인식해 음성이나 점자책으로 바꿔 주는 장치가 여럿 나왔다. 앞에서 필자가 상상했던 것처럼 듣고도 이해 못 하는 사례가 생기지 않도록 수식을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 읽기 방법도 개발이 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수학을 공부하지 못한다면 직업 선택의 폭이 대단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전반적으로 볼 때 시각 장애인이 수학을 공부하는 환경이 불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추상적인 사고력에서 시각 장애인이 뒤지지 않고, 공간 능력에서는 오히려 앞설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여러 사례는 희망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뛰어난 시각 장애인 수학자가 나와 많은 학생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마음의 눈으로 연구했던 수학자들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년)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난 오일러는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성직자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했지만, 수학에 재능이 있음을 깨닫고 수학자의 길을 택했다. 18세기 최고의 수학자로 꼽히며, 수학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수학자였다. 30세경에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었고, 그러고 나서도 연구에 매진한 나머지 59세 때 나머지 한쪽 눈의 시력도 잃었다. 그런데도 연구 생산성은 거의 떨어지지 않았고, 뛰어난 기억력과 계산 능력으로 죽을 때까지 수학 연구를 계속했다.

 

니콜라스 손더슨(Nicholas Saunderson, 1682~1739년)

영국의 과학자이자 수학자인 손더슨은 한 살 때 천연두로 시력을 잃었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라틴 어와 그리스 어, 수학을 공부했고, 결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수학과의 루카스 석좌 교수가 되었다. 루카스 석좌 교수직은 아이작 뉴턴, 찰스 배비지, 폴 디랙 등이 거쳐 갔던 자리다. 

 

루이 앙투안(Louis Antoine, 1888~1971년)

프랑스의 수학자로 29세 때 제1차 세계 대전 때 부상을 입고 시력을 잃었다. 시력을 잃은 뒤에는 위상 수학을 연구했으며, 칸토어 집합을 3차원 유클리드 공간에 나타낸 앙투안의 목걸이를 발견했다. 아래에 나올 베르나르 모랭을 만나 시각 장애인 수학자로서 조언해 주기도 했다.

앙투안의 목걸이.

 

에이브러햄 네메스(Abraham Nemeth, 1918~2013년)

미국 수학자 네메스는 선천적인 시각 장애인으로, 처음에는 수학을 포기했다가 뒤늦게 다시 수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로 꾸준히 연구하고 강의하며, 복잡한 수학 기호를 점자로 나타내는 방법을 개발했다.

 

베르나르 모랭(Bernard Morin, 1931~2018년)

프랑스 수학자 모랭은 여섯 살에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었다. 3차원에서 구의 안과 밖을 뒤집는 과정을 연구했다. 그 중간 과정을 보여 주는 모형을 모랭 표면(Morin surface)라고 하는데, 모랭은 직접 점토를 빚어 모형을 만들며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모랭 표면.

 

로런스 바젯(Lawrence Baggett, 1939년~)

바젯은 다섯 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원래는 시각 장애인이 다들 그러듯이 변호사가 될 생각이었지만, 수학적인 재능을 깨닫고 수학자의 길을 걸었다. 어머니와 친구들이 읽어주는 내용을 들으며 공부했다.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35년 동안 수학을 가르쳤다.

 

 

참고 문헌

Jackson, A. (2002) “The World of Blind Mathematicians,” Notices of the AMS, vol. 49, no. 10.

박경은, 이상구 (2015)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극복하고 학문적 기여를 한 수학자들과 특수수학교육 환경」, 《한국수학교육학회지 시리즈E: 수학교육 논문집》, vol. 29, issue 3.

「컴컴한 눈 대신 마음으로 연구: 시각 장애 뛰어넘은 수학자들」, 《수학동아》 2015년 4월호.


고호관

대학에서 건축과 과학사를 공부했다. 《과학동아》 기자, 《수학동아》 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 과학 저술가이자 SF 작가 또는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우주로 가는 문 달』을 썼고,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등을 옮겼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세상 모든 비밀을 푸는 수학』 [도서정보]
재난 예측에서 온라인 광고까지 미래 수학의 신세계

 

『수학의 파노라마』 [도서정보]
수학을 다시 시작하는 이들을 위한 최고의 비주얼 가이드

 

『자연의 패턴』 [도서정보]
우리 시대의 과학 큐레이터가 엄선한 형태학 미술관을 탐험하라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 [도서정보]
위대한 방정식에 담긴 영감과 통찰

 

『수학 학습 심리학』 [도서정보]
수학 학습을 위한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가득한 고전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53-1960』 [도서정보]
경이로운 소설가이자 예언자인 아서 클라크의 걸작 단편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