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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느님이 내린 천벌 - 중세 유럽의 페스트 대유행 본문

완결된 연재/(完) 무서운 의학사

2. 하느님이 내린 천벌 - 중세 유럽의 페스트 대유행

Editor! 2020. 2. 14. 10:37

울산 대학교 의과 대학장, 울산 대학교 의무 부총장을 역임하고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 200편 이상의 의학사 관련 칼럼을 쓴 이재담 교수님의 『에피소드 의학사』(2020년 3월 출간 예정)에서 전염병과 관련된 6편의 글을 미리 보는 특별 연재 '무서운 의학사', 그 두 번째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이번 연재의 주인공은 인류 역사에 기록된 많은 치명적 질병 중에서도 단연 최악의 범유행 유행병으로 손꼽히는, 중세 유럽의 흑사병입니다. 2020년 2월 11일 정식 명칭이 결정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ronavirus disease 2019, COVID-19)의 파급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전 세계가 숨죽이며 주시하고 있는 지금, 당시 사람들은 '신이 내린 천벌'에 어떻게 순응하거나 또는 대항했는지 14세기 유럽으로 한번 시간 여행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떠실까요?


무서운 의학사

2. 하느님이 내린 천벌
중세 유럽의 페스트 대유행

주세페 크레스피, 「역병의 퇴치」, 1735년 public domain

인류는 그동안 수많은 재난을 겪었지만, 사망자 수로만 본다면 중세 유럽의 페스트 대유행이 가장 규모가 큰 재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흔히 흑사병이라고 부르는 이 유행은 약 3년 동안 2000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중국이 근원지로 추정되는 이 병은, 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 지역, 흑해, 크림 반도를 거쳐 이탈리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크림 반도의 카파1)는 지중해를 무대로 동방 무역을 하던 제노바 상인이 오랫동안 경영해 온 도시였다. 1347년 이 성채를 포위 공격하던 타타르 군은 영내에 페스트가 발생하자 환자의 시체를 일부러 성벽에 내버린 후 철수했다고 한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세균전과 같은 발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성 안쪽으로 전파된 페스트는 도시를 쑥밭으로 만들었고, 이 무서운 역질을 피해 본국으로 철수한 이탈리아 인을 따라 시칠리아 메시나, 북이탈리아 제노바 등을 거쳐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미국 질병 통제 예방 센터(CDC)가 촬영한 동양쥐벼룩의 사진. public domain

원래 이 병은 동양쥐벼룩(Xenopsylla cheopis)이 전파하는 예르시니아 페스티스균(Yersinia pestis)의 감염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이 시기 페스트가 그토록 맹위를 떨친 배경에 칭기즈칸(Chingiz Khan, 1167~1227년)의 서방 원정으로 아시아모래쥐(Gerbillinae)가 유럽에 원래 살고 있던 쥐를 몰아내고 번성하게 된 일이 기여했다는 생태학적 가설도 있다. 즉 숙주가 되는 새로운 쥐와 쥐벼룩이 갑자기 증가했기 때문에 페스트가 창궐할 수 있었다는 학설이다.

이 균에 감염되고 약 6일간의 잠복기가 지나면 환자에게 가슴 통증, 기침, 각혈, 호흡 곤란, 고열 등의 증세가 나타나며, 대부분 의식을 잃고 사망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과였다. 내출혈로 생기는 피부의 검은 반점 때문에 흑사병으로 불렸던 이 병은 어깨 밑, 허벅다리 안쪽, 목과 귀 뒤에 달걀 크기의 종창을 동반하는 림프절성 페스트로 당시 사람들에게는 천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불가항력적인 재앙이었다.

흑사병의 참상을 묘사한 1353년의 그림. public domain

유럽 각지에서는 다양한 원인 해석과 대책이 마련되었다. 페스트가 인간의 죄에 내리는 신벌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기도와 금식에 매달렸고, 부패한 공기가 문제라고 여긴 사람은 장뇌나 강력한 향기를 내는 방향제를 지니고 다니며 좋은 냄새를 맡으려고 노력했다. 당시 그림을 보면 의사 역시 두건의 코 부분에 새부리를 닮은 방향제 주머니를 달아 썼음을 알 수 있다. 밀라노에서는 페스트 환자의 집을 - 환자와 가족이 있는 채로 - 아예 폐쇄해 버렸는데 그 덕분인지 사망률이 15퍼센트에 그쳤다고 한다.

독토르 슈나벨 폰 롬(로마의 새부리 의사)를 묘사한 1656년의 판화. public domain

이 유행병을 겪으며 여러 가지 공중 위생 제도가 정립되었다. 이탈리아 전역에서는 환자를 마을 밖 나병 수용소에 격리했고, 출입하는 사람과 물건을 일정 기간 격리하는 검역 개념을 도입했다. 라구사2)에서는 1377년 페스트가 유행하는 주변 섬에서 온 사람이나 물자를 30일간 격리하는 제도를 정식으로 시행했는데, 이것이 1397년 40일(quarantenaria)로 늘어나 오늘날 검역(quarantine)이라는 영어 단어의 어원이 되었다.


1) Cafà. 중세 리구리아 어이다. 현재는 페오도시야란 이름으로 크림 자치 공화국에 속해 있다.

2) Ragusa.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불리는 크로아티아의 항구 도시. 1358년부터 헝가리 왕국에게 자치권을 사들여 당시에는 라구사 공화국으로 지중해 세계의 중심 도시였다. 현재 이름은 두브로브니크다.


이재담
서울 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 시립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대학교 과학사학 교실 방문 교수와 울산 대학교 의과 대학 생화학 교실 및 인문 사회 의학 교실 교수, 울산 대학교 의과 대학장, 울산 대학교 의무부총장을 역임했다.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 의학사 관련 칼럼을 썼으며, 번역서로 『근세 서양 의학사』, 『의료 윤리 Ⅰ, Ⅱ』와 저서로 『의학의 역사』, 『간추린 의학의 역사』 등이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이재담의 에피소드 의학사 1: 무서운 의학사』
(출간 예정)

 

『의학의 역사』
한 권으로 읽는 서양 의학의 역사

 

『미생물의 힘』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바꾼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의 흥미진진한 역사

 

『아름다운 미생물 이야기』
미생물의 탄생과 진화 다 모았다!

 

『전염병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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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병과 의학을 보는 새로운 패러다임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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