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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죽음을 뿌리는 자 - 타이포이드 메리 본문

완결된 연재/(完) 무서운 의학사

3. 죽음을 뿌리는 자 - 타이포이드 메리

Editor! 2020. 2. 21. 15:47

울산 대학교 의과 대학장, 울산 대학교 의무 부총장을 역임하고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 200편 이상의 의학사 관련 칼럼을 쓴 이재담 교수님의 『에피소드 의학사』(2020년 3월 출간 예정)에서 전염병과 관련된 6편의 글을 미리 보는 특별 연재 '무서운 의학사', 그 세 번째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세계 최고의 방역 수준이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ronavirus disease 2019, COVID-19)의 확산을 막아 왔던 대한민국. 그러나 2월 18일 166명과 접촉해 11명의 확진자를 발생시켰다고 추정되는 '31번 확진자'가 나타나면서, 이제 우리는 동일한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된 다른 환자보다 특별히 많은 2차 접촉 감염을 일으키는 슈퍼 전파자(Super-spreader) 개념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공식적으로만 장티푸스 감염 53증례의 원인이었고 그중 3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슈퍼 전파자를 알아봅니다. 연쇄 감염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대중의 불안감이 더해 가는 요즘, 100년 전 한 슈퍼 전파자의 존재를 놓고 벌어졌던 이 대혼란의 기록이 우리 사회 타산지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서운 의학사

3. 죽음을 뿌리는 자
타이포이드 메리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메리 맬런. (사진에서 제일 앞에 있는 사람) public domain

메리 맬런(Mary Mallon, 1869~1938년)은 북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독신녀였다. 내성적이고 무뚝뚝한 성격의 그녀는 희끗희끗한 백발에 숱이 많은 머리카락의 소유자로 굵은 눈썹에 둥근 철테 안경을 걸쳤으며 입가가 밑으로 처진 평범한 용모의 아줌마였다. 좀 뚱뚱한 그녀의 체격은 탁월한 요리사에게 걸맞은 인상을 풍겼다. 부잣집을 전전하며 요리사로 일하는 그녀에게 요리는 인생의 보람이자 목표였다.

 뉴욕에서 32킬로미터 떨어진 오이스터 만에서 장티푸스 유행이 발생한 어느 날, 죠지 소퍼(George Soper, 1870~1948년) 박사는 감염원을 특정하기 위한 추적에 나섰다. 환자들이 먹은 음식을 조사하던 그는 유행 과정에 한 명의 요리사가 계속해서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6개월 후, 뉴욕 파크 애비뉴의 저택 부엌에서 발견된 그녀는 칼을 들고 저항하며 도주하려다 경찰에 체포되었다. 요리사 메리는 7년 동안 8번 직장을 옮겼는데, 그중 일곱 집에서 그녀의 재직 기간과 일치되게 장티푸스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녀는 장티푸스균(Salmonella Typhi)의 온상인 담낭을 절제하자는 보건 당국의 제안을 거부했고, (당시 담낭 절제술은 수술 후 사망률이 매우 높았다.) 이스트리버에 있는 노스브라더 섬의 리버사이드 종합 병원에 강제로 격리 수용되었다.

메리 맬런을 소개하는 <더 뉴욕 아메리칸(The New York American)> 신문의 1909년 6월 20일자 기사. public domain

뉴욕 신문들은 이를 “타이포이드 메리(장티푸스의 메리) 사건”이라고 부르며 대서특필했다. 연재 만화에서는 그녀를 커다란 가마솥에 사람 머리뼈를 집어넣거나, 핫도그 크기의 장티푸스균을 스토브 위에서 굽고 있는 마녀로 묘사했다. 시민은 그녀를 연쇄 살인범쯤으로 여기며 경악했고, 실정법상 아무 죄도 없었던 그녀는 3년간 연금되어 병원의 세탁 일을 거들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의사들이 꾸민 음모의 희생자라고 굳게 믿었으며, 아무리 설명해도 장티푸스 보균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1910년 그녀는 요리를 절대로 하지 않겠으며, 1개월에 3번씩 보건 당국에 근황을 보고하겠다는 조건으로 석방되었으나 곧 행방이 묘연해지고 말았다. 약속을 어기고 브라운 부인이라는 가명을 써서 요리사로 되돌아가 버린 것이었다. 주변에는 예전처럼 장티푸스가 따라다녔지만, 그녀는 5년간 아무런 의심 없이 요리사로 일할 수 있었다.

 1915년의 어느 날, 슬론 부인 병원에서 25명의 장티푸스 환자가 발생해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장난삼아 “혹시 당신이 ‘타이포이드 메리’가 아니냐?”라고 묻자 요리사가 놀라 달아나 버렸다는 하녀의 신고를 받은 보건 당국은 롱아일랜드에서 그녀를 발견, 체포했다.

 메리는 다시 리버사이드 병원으로 보내져, 사망할 때까지 23년 동안 애견과 함께 종신토록 격리되었다. 세월이 흐르자 반항적이던 그녀의 태도도 점점 누그러졌고, 병원은 그녀가 전염병 검사실의 검사원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뉴욕 시는 병원 옆에 그녀의 집도 지어 주었다. 1923년 겨울 뇌졸중으로 쓰러진 그녀는 1938년 폐렴으로 사망했다.

그 후로도 리버사이드 병원은 1950년대 마약 재활 센터 등으로 계속 사용되다 1968년 끝내 폐쇄되었다. 현재 노스브라더 섬은 조류 보호 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reivax from Washington, DC, USA. CC BY-SA 2.0  

 장티푸스의 병원균은 담즙 속에서 증식하며 담석 속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균에 감염된 사람 중 20명에 1명 꼴로, 균을 배출하지만 건강한, ‘건강 보균자’가 생길 수 있다. 메리 맬런은 미국 최초로 장티푸스 보균자로 지정되었고, 신문이 붙여 준 별명 ‘타이포이드 메리’와 더불어 의학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타이포이드 메리'를 예로 들며 장티푸스 보균자의 위험성을 알리는 포스터. Otis Historical Archives Nat'l Museum of Health & Medicine. CC BY 2.0  


이재담
서울 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 시립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대학교 과학사학 교실 방문 교수와 울산 대학교 의과 대학 생화학 교실 및 인문 사회 의학 교실 교수, 울산 대학교 의과 대학장, 울산 대학교 의무부총장을 역임했다.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 의학사 관련 칼럼을 썼으며, 번역서로 『근세 서양 의학사』, 『의료 윤리 Ⅰ, Ⅱ』와 저서로 『의학의 역사』, 『간추린 의학의 역사』 등이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이재담의 에피소드 의학사 1: 무서운 의학사』
(출간 예정)

 

『의학의 역사』
한 권으로 읽는 서양 의학의 역사

 

『미생물의 힘』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바꾼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의 흥미진진한 역사

 

『아름다운 미생물 이야기』
미생물의 탄생과 진화 다 모았다!

 

『전염병의 문화사』
인류를 만들어 온 것은 병원성 미생물들일지도?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병과 의학을 보는 새로운 패러다임

 

『스트레스』
치명적인 질병을 부르는 현대의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