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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수학은 기세야, 기세! 본문

(연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6. 수학은 기세야, 기세!

Editor! 2020. 3. 4. 16:41

“24번 답 확실해? …… 다현아. 뒷문제 한참 풀다가 다시 24번으로 돌아왔어 그렇지?” “네.” “만약 이게 실전 수능이고 이게 첫 문제였으면 시작부터 완전 엉킨 거야. 이거 봐 맥박도 엉켰잖아, 심장이 거짓말을 못 해. 시험이라는 게 뭐야? 앞으로 치고 나가는 거야 그 흐름을, 그 리듬을 놓치면 완전 꽝이야. 24번 정답, 관심 없어 나는 오로지 다혜가 이 시험 전체를 어떻게 치고 나가는가! 장악하는가! 거기만, 관심 있다. 실전은 기세야, …… 기세.” 전 세계를 감동시킨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입니다. 배우 최우식의 강렬한 눈빛이 인상적이었죠. 최근 수학 교육학 연구자들에 따르면 수학 역시 ‘기세’라고 합니다. 고호관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 보시죠.


고호관의 수요 수학 에세이 6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수학은 기세야, 기세!

 

수학은 기세야, …… 기세.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지난 2월 24일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 다룬 주요 인물로 NASA의 달 착륙 계획에 크게 이바지한 미국 수학자 캐서린 콜먼 글로브 존슨(Katherine Coleman Goble Johnson)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드물었던 흑인 여성 수학자로서 존슨은 인종 차별과 성차별을 극복하고 초창기 우주 탐사의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마침 지난해 3월 《미국 수학회보(Notices of the American mathematical Society)》에 실린 글(링크)에 존슨의 생애가 간략히 담겨 있어 이참에 살펴보았다.

캐서린 콜먼(결혼 전 이름)은 1918년 8월 26일에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이었고, 아버지는 목수 겸 농부였다. 존슨은 어려서부터 영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말을 또박또박 잘했고, 호기심이 많았다. 존슨의 아버지는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수학 문제를 푸는 데 재능이 있었다. 어린 존슨은 수학 문제를 푸는 아버지를 흉내 내며 놀았다.

존슨은 학교를 월반하며 다녔고, 10세 때 이미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준이 되었다. 부모도 교육에 열정적이어서 자녀들이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존슨은 14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면서 여러 스승이 존슨이 수학을 공부하도록 권유했다. 이들은 존슨이 수학에 흥미를 갖게 해 주었고, 수학을 전공하도록 강력하게 권유했으며, “좋은 수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를 북돋웠다.

이번에 존슨의 생애를 요약한 이 글을 읽을 때 눈에 띄는 부분이 스승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뛰어난 수학 능력을 갖고 태어났다고 해도 인종 차별이 심했던 당시에 교육에 열정적이었던 부모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스승이 없었다면, 존슨은 수학자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2015년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은 캐서린 존슨의 90대 사진을 실은 《미국 수학회보》.

 

실력 좋아도 자신감 없으면 꽝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수학에서도 자신감은 중요하다. 수학이 두렵고 수학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수학을 잘하기 어렵다. 수학에 자신감을 키워 주는 건 수학 교육의 중요한 목표이기도 하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최근 자신감이 없으면 수학 실력이 좋아도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오리건 대학교와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 등의 연구자로 이루어진 공동 연구진은 개인의 수학 실력과 수학에 대한 자신감이 경제적·의학적 상황과 어떤 상관 관계를 보이는지 조사해 발표했다. (링크) 시험 성적이 아니라 돈이나 건강과의 관계를 연구했다는 게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두 가지 요소가 수학과 상관이 있다는 게 연구진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은행에 적금을 들거나 대출을 받을 때 이자는 모두 수로 나타난다. 이런 수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이 얼마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다달이 얼마나 갚아야 하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 신용 카드를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돈과 관련된 결정을 내릴 때는 수를 잘 다루는 편이 이롭다.

건강도 수와 관련이 있다. 미국의 경우지만, 비용 대비 보장이 가장 큰 건강 보험을 선택할수록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기 쉽다. 여러 가지 치료법 중 각 치료법의 효과나 생존율을 따질 때도 수 감각이 없으면 곤란하다. 연구진은 미국의 예를 들며, 미국인의 약 30퍼센트가 단순 계산과 간단한 백분율을 넘어서는 어려운 수학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분야에서 결정을 내릴 때 손해를 본다고 말하며 연구 계기를 설명한다.

그렇다면 수학 실력이 좋으면 재정적으로나 의학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자신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연구진은 수학 실력과 수학에 대한 자신감이 별개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상호 작용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진행했다.

먼저 경제적인 상황에 관한 연구를 보자. 연구진은 미국인 4,572명을 대상으로 신용 카드 빚, 투자액, 대출금과 같은 재정 정보와 객관적인 수학 실력,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조사했다. 결과는 연구진의 가설을 뒷받침했다. 수학에 대한 자신감이 높은 사람 중에서는 객관적인 수학 실력이 좋을수록 재정 상태가 좋았다. 그런데 수학 실력이 좋아도 자신감이 낮은 경우 결과가 좋지 않았다. 연구진은 수학 실력이 최상인 사람의 자신감 차이를 연수입 9만 4000달러 정도의 차이로 환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두 번째 조사는 루푸스라는 만성 질병을 지닌 환자가 대상이었다. 루푸스는 완치가 되지 않는 자가 면역 질환이지만, 적절한 방법을 쓰면 관리할 수 있다. 다만 수를 다루는 능력이 좋을수록 적절한 건강 보험을 선택하고, 약의 복용 시간과 양을 정확히 지키는 데 유리하다.

연구진은 이번에도 환자의 객관적인 수학 실력과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측정했고, 의사의 평가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조사했다. 자신감이 있는 환자 중에서는 객관적인 수학 실력이 좋을수록 몸 상태가 좋았다. 여기서도 자신감이 낮을 때는 수학 실력이 좋아도 유리하지 않았다.

종합하면, 수학 실력만 좋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자신감이 없으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력은 없는데 자신감만 높은 경우가 최악이었다. 두 번째 조사에서 자신감이 높은 환자 중에서 수학 실력이 좋은 환자는 불과 7퍼센트만 나쁜 징후를 보였는데, 자신감만 높고 실력이 나쁜 환자 중에서는 44퍼센트가 나쁜 징후를 보였다.

연구진은 실력이 좋아도 자신감이 없으면, 어렵거나 지루한 문제를 만나면 금세 포기하기 때문에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실력은 없는데 자신감만 높으면 거리낌 없이 덤벼드는데 실수가 잦다. 자신이 있으니 다른 사람의 도움도 잘 받지 않는다.

이 연구의 조사 대상으로 통계를 내면 수학 실력은 좋은데 자신감이 떨어지는 사람이 18~20퍼센트, 실력은 나쁜데 자신감이 높은 사람이 12~13퍼센트를 차지했다. 전체의 약 3분의 1이 실력과 자신감이 엉뚱하게 조합되어 있는 셈이다. 실력과 자신감 중 어느 하나만 높아서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고 하니 자기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그에 맞는 자신감을 갖추는 게 중요해 보인다.

종합하면, 수학 실력만 좋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자신감이 없으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림: Needpix.com 제공.

 

자신감 부족할 때는 능력보다 노력을 생각하라

앞의 연구를 보면, 무작정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교육이 부작용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감을 가지라는 조언이 누구에게는 진짜 실력을 발휘하게 하는 좋은 효과를 내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실력에 맞지 않는 과도한 자신감만 갖게 할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감을 갖추게 하는 게 좋을까? 흔히 자녀에게 칭찬할 때 결과가 아닌 과정을 칭찬하라고 한다. “이 문제를 맞히다니 너 참 똑똑하구나.”가 아니라 “이걸 스스로 생각해서 풀었다니 훌륭하구나.”와 같이 칭찬하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이 시험에서 실제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나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교와 위트레흐트 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자기 대화(self-talk)라는 자신감 부여 방식이 수학 시험에 어떤 효과를 내는지를 조사했다. (링크) 예전에 리우 올림픽에서 펜싱 금메달을 딴 박상영 선수가 경기장에서 “할 수 있다.”를 되뇌는 모습이 화제가 된 적이 있듯이 자기 대화를 통한 암시와 자신감 부여는 여러 분야에서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보통 “나는 할 수 있다.”와 같은 말을 많이 쓰지만, 연구진은 자기 대화의 방식을 두 가지로 나눈 뒤 수학 시험 결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조사했다. 하나는 능력에 관한 내용으로 “나는 이걸 아주 잘해.”였고, 다른 하나는 노력에 관한 내용으로 “최선을 다할 거야.”였다.

대상은 네덜란드의 9~13세 어린이 212명이었다. 먼저 수학 시험을 보기 며칠 전에 설문 조사를 통해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조사했다. 시험 당일에 아이들은 먼저 문제의 절반을 풀었다. 그리고 편안히 앉아서 각자 주문받은 대로 행동했다. 3분의 1은 “나는 이걸 아주 잘해.”라고 자기 대화를 했고, 3분의 1은 “나는 최선을 다할 거야.”라고 자기 대화를 했고, 나머지 3분의 1은 자기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난 뒤 나머지 절반을 풀었다.

그 결과, 노력에 관한 자기 대화를 한 학생들의 수학 시험 결과가 좋아졌다. 이는 수학에 대한 자신감이 약한 학생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졌다. 반면 능력에 관한 자기 대화를 한 학생들의 수학 시험 결과는 자신감 수준과 상관없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연구진은 자신감이 없는 학생은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는 말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능력에 관한 자기 대화가 효과를 나타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노력에 관한 자기 대화는 학생으로 하여금 능력 부족이라는 현실을 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자신감이 있는 학생의 경우 능력에 관한 자기 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그럼에도 시험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연구진은 자기 대화를 통한 성과 향상이 실력 발휘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없애는 수준에서만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이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스포츠에서도 자기 대화를 통한 자신감 향상은 흔히 쓰인다. 이 자기 대화 방식은 수학 시험 결과를 향상시키는 데도 쓸 수 있다는 것이 최근 연구로 밝혀졌다. 

얼마 전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영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는 “시험은 기세다! 기세로 푸는 거야.”라는 대사가 나온다. (최우식의 명연기!) 과외 자리를 구하기 위해 사기를 치면서 하는 말이었지만, 나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말 같다. 수학 시험에 사기를 치자는 건 아니지만, 적절한 자신감을 갖출 줄 알아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안타까워할 일이 없을 테니까.

 

 

참고 문헌

Johnny L. Houston, “The Life and Pioneering Contributions of an African American Centenarian: Mathematician Katherine G. Johnson,” Notices of the American Mathematical Society, Mar 2019.

Ellen Peters, Mary Kate Tompkins, Melissa A. Z. Knoll, Stacy P. Ardoin,Brittany Shoots-Reinhard, and Alexa Simon Meara, “Despite high objective numeracy, lower numeric confidence relates to worse financial and medical outcomes,” PNAS, Sep 24, 2019.

Sander Thomaes, Iris Charlotte Tjaarda, Eddie Brummelman, Constantine Sedikides, “Effort Self‐Talk Benefits the Mathematics Performance of Children With Negative Competence Beliefs,” Child Development, Dec 17, 2019.


고호관

대학에서 건축과 과학사를 공부했다. 《과학동아》 기자, 《수학동아》 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 과학 저술가이자 SF 작가 또는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우주로 가는 문 달』을 썼고,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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