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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9. 수학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Editor! 2020. 6. 3. 16:25

코로나19 이후 ‘언택트’, ‘격리’, ‘비대면’ 같은 용어가 일상어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발빠른 기업가들이나 투자가들은 이 비일상적 상황에서 새로운 투자 기회를 보기도 하고 새로운 부도 창출해 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그리워 합니다. 언택트가 아닌 콘택트, 격리가 아닌 소통, 비대면이 아닌 대면 만남 속에서 삶을 영위해 왔기 때문이죠. 코로나19의 비상 상황이 수학자들도 괴롭히고 있습니다. 삼라만상의 신비를 자기 머리와 연필 한 자루로 풀어 온 것 같은 수학자들 역시 만남과 소통 속에서 수학을 건설해 왔기 때문이죠. 이번 수요 수학 에세이는 수학이 공동 작업임을 성찰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코로나19의 위기를 잘 극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고호관의 수요 수학 에세이 9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수학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수학은 혼자 하는 거지요.”

 

몇 년 전에 유명한 수학 교재의 저자를 만났을 때 들은 말이다. 그때 나는 여러 사람이 협력해서 어려운 수학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내심 협력을 바라는 입장이었다. 그분의 이 한 마디에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지만.

 

거기서 논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터라 그분이 무슨 뜻으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를 빨리 돌려보내고 싶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을 수도 있고, 당장 입시가 급한 현실에서는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혹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수학은 혼자 하는 것일까, 팀 작업일까? 팀 스포츠처럼 수학을 하는 독일의 수학 연구소 오버볼파크 취재 기사가 실린 퀀타매거진 화면 갈무리.

 

 

수학은 팀 스포츠

 

잊고 있던 이 일화가 떠오른 건 얼마 전 미국의 온라인 매체 퀀타(Quanta)에 실린 글(링크)을 보고 나서였다. 제목은 「팀 스포츠로서의 수학(Mathematics as a Team Sport)」이다. 글쓴이는 올해 2월에 독일의 수학 연구소인 오버볼파크(Oberwolfach)에 다녀온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심각해지기 직전에 이곳에 세계 각국에서 온 수학자 50명이 모였다. 연구소는 외딴곳에 떨어져 있으며, 수학자들은 자신이 묵을 방의 열쇠도 받지 못한다. 잠을 잘 때는 안에서 잠글 수 있지만, 낮 동안에는 그냥 방문도 열어놓고 다니는 것이다.

 

여기 머무는 동안 무엇을 할까? 수학 이야기를 한다. 글쓴이가 방문했을 때의 주제는 위상학이었다. 누군가 발표를 하면 가서 듣기도 하고, 차를 마시면서 수학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산책하면서 수학 문제를 토론하기도 한다. 친한 사람과만 어울려 이야기하는 건 안 된다. 점심과 저녁 식사 때는 앉는 자리가 무작위로 배정된다. 어쩔 수 없이 처음 보는 사람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스피드 데이트’처럼 돌아가면서 5분 동안 짧게 자기 연구를 소개하는 활동도 있다. 예전에 이곳에 다녀온 한국 수학자에게서 들은 내용과 비슷했다.

 

수학자 수십 명을 한 공간에 모아 놓고 마음대로 이야기하게 만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는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고민하던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아낼 것이고, 누군가는 새로운 연구 주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문제가 풀리고 어떤 문제가 새로 생길지는 모르지만, 수학이 전보다 조금 더 발전하게 된다는 건 확실하다.

 

한 달쯤 뒤에 글쓴이는 이어지는 내용의 글(링크)을 올렸다. 그동안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져 여행이 어려워지자 수학자들도 공동 연구를 위한 만남을 기약할 수 없어서 난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메일이나 화상 회의 같은 기술이 있지만, 종일 같은 공간에서 어우러지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라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다.

 

 

수학자는 비사회적이라는 편견

 

흔히 수학자라고 하면 사회성이 떨어지는 천재, 은둔자와 같은 이미지가 있다. 이런 괴짜 수학자 이미지는 여러 매체를 통해 재생산되며 대중이 바라보는 수학자의 모습을 만든다. 350년 동안 난제였던 페르마의 정리를 해결한 앤드루 와일스나 필즈 상을 받고도 거부한 그리고리 페렐만 같은 사람이 이런 대중적인 수학자의 이미지를 대표한다.

 

 

뛰어난 업적을 남긴 괴짜 수학자로 알려진 그리고리 페렐만.

 

실제로는 이런 게 드문 사례다. 대부분의 수학자는 여느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몇 년 동안 수학 잡지를 만들며 만나 본 수학자 대부분은 수학을 좋아한다는 사실만 빼면 보통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학을 좋아하는 것 자체가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직접 만나 보면 선입견과 달리 대개 이야기도 잘하고, 농담도 (재미를 떠나서) 잘하고, 고민도 하고, 취미도 즐기고, 시샘도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현재 세계 최고의 수학자라고 평가받는 테렌스 타오가 방한했을 때 누군가 자녀의 수학 공부에 관해 물어보자 컴퓨터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일상의 고민거리도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

 

 

알고 보면 협력의 대가인 괴짜 수학자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아는 가우스나 오일러, 파스칼 같은 유명한 수학자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천재가 아니었다. 이들도 다른 사람과 자유롭게 소통했고, 동료와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연구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헝가리 수학자 에르되시 팔이다. 에르되시도 흔히 괴짜 수학자로 알려졌지만, 공동 연구에 관해서라면 독보적인 존재다. 에르되시는 평생 1,500편 정도의 수학 논문을 남겼는데, 그와 공동 연구를 한 수학자가 줄잡아 500명이 넘는다.

 

여기서 나온 에르되시 수라는 개념도 있다. 어떤 수학자가 공동 연구를 통해 에르되시와 몇 단계로 이어져 있는지를 나타내는 수다. 에르되시와 직접 공동 연구를 한 수학자의 에르되시 수는 1이다. 에르되시와 직접 공동 연구를 한 적은 없지만 한 다리 건너서 이어진다면, 그 사람의 에르되시 수는 2가 되는 식이다.

 

 

1985년에 찍힌 에르되시의 모습. 오른쪽에 있는 아이는 현재 세계 최고의 수학자로 불리는 테렌스 타오 UCLA 교수다.

 

오늘날 수학에서 공동 연구의 중요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02년 미국 산업 응용 수학회 소식지에 실린 글(링크)에 따르면, 20세기 내내 공동 연구의 비중은 꾸준히 늘어났다. 미국 수학회가 발간하는 《수학 리뷰(Mathematical Reviews)》에 실린 1940년부터 1999년까지의 논문과 저자를 분석한 결과, 1940~1950년대에는 단독 저자로 낸 논문이 거의 90퍼센트를 차지했다. 세 명 이상의 저자가 공동으로 쓴 논문은 1~2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런데 1990년대에 이르면 단독 저자의 논문은 50퍼센트대로 떨어진다. 저자가 세 명 이상인 논문의 비중도 10퍼센트를 훌쩍 넘어간다.

 

다른 과학 분야에서는 공저자가 훨씬 더 많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유럽 입자 물리학 연구소(CERN)의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를 이용해 힉스 입자의 성질을 밝힌 한 연구 논문의 경우 공저자가 무려 5,000명을 넘는다. 수많은 기관과 연구자가 협업해 수행하는 연구에서 기여한 사람을 하나하나 세다 보면 이 정도가 된다.

 

 

대규모 수학 공동 연구는 가능할까?

 

수학에서는 얼마나 큰 대규모 공동 연구가 가능할까? 2009년 영국 수학자 윌리엄 티모시 가워스는 자신의 블로그에 「대규모 수학 공동 연구는 가능할까?」라는 제목의 글(링크)을 올렸다. 수많은 컴퓨터를 돌려서 가장 큰 소수를 찾아내는 것처럼 작업을 잘게 쪼개서 나누어 수행하는 형식이 아닌 문제를 많은 사람이 공동으로 풀 수 있겠냐는 것이다.

 

가워스는 온라인 포럼에 문제를 올려놓고 각자 그 문제에 관한 아이디어를 올리는 방식을 제안했다. 몇 가지 규칙도 제시했다. 그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글은 짧고 너무 어렵지 않게 써야 한다. 아무리 바보 같은 아이디어라고 해도 예의 없이 비난해서는 안 된다. 일종의 실험으로 시작된 이 협업에는 ‘폴리매스 프로젝트(Polymath Project)’라는 이름이 붙었다. 폴리매스 프로젝트의 첫 번째 문제는 ‘헤일스-주잇 정리’와 관련된 난제로, 7주 만에 풀렸다. 문제가 풀릴 때까지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은 모두 40명이 넘었다.

 

 

폴리매스 프로젝트를 제안한 티모시 가워스. 사진: 위키피디아에서.

 

폴리매스 프로젝트는 그 이후로도 몇 가지 성과를 냈고, 지금은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한 온라인 협업의 대명사가 되어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교육에도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잡지 《수학동아》가 운영하는 폴리매스 프로젝트(링크)가 있어 청소년이라면 누구라도 공동으로 수학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수학, 혼자서는 못한다

 

폴리매스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집단을 이루어 협력 학습을 체험하게 하는 사례는 많다. 이런 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수학을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감을 되찾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서로 돕는 방법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을 지내다 보면 경쟁심이 너무 과한 나머지 혼자만 알겠다며 자신이 알아낸 풀이 방법을 꼭꼭 숨기던 친구를 하나쯤은 볼 수 있다. 당장은 이익을 볼 수 있어도, 이렇게 혼자 하는 수학 공부에는 한계가 있다. 많은 수학자가 수학자를 꿈꾸는 학생에게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소통하는 경험을 쌓으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요즘에는 수학자끼리만이 아니라 물리학자나 생물학자처럼 다른 분야의 연구자와 협업하는 일도 드물지 않아 다양한 경험이 도움이 된다.

 

또, 수학을 전공해도 상당수는 학자의 길을 걷지 않고 산업계로 진출한다. 기업에서 일하게 된다면 전공 지식에 더해 말하기, 듣기, 쓰기 등의 소통 능력과 팀워크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 생활을 해 보았다면 협업 능력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 것이고, 그것은 수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앞서 “수학은 혼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그분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라면,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수학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참고 문헌

Kevin Hartnett, “Mathematics as a Team Sport,” Quanta, 2020. 3. 31.

Kevin Hartnett, “Math After Covid-19,” Quanta, 2020. 4. 28.

Jerrold W. Grossman, “Patters of Collaboration in Mathematical Research,” SIAM News, Vol 35, No 9, Nov 2002.

「여행 중? 지금은 수학 중, 수학자가 사는 법」, 《수학동아》, 2016년 10월호.

 


고호관

대학에서 건축과 과학사를 공부했다. 《과학동아》 기자, 《수학동아》 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 과학 저술가이자 SF 작가 또는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우주로 가는 문 달』을 썼고,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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