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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수학은 장수의 비결? 본문

(연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11. 수학은 장수의 비결?

Editor! 2020. 7. 22. 17:10

학창 시절 수학은 독자 여러분에게 어떤 존재였나요? 친해지곤 싶은데, 가까워하기 너무 어려운 친구 같은 존재였나요? 아니면 함께해서 괴로웠고, 다신 만나기 싫은 존재였나요? 누구나 한 번쯤 “그놈의 수학은 배워서 어디에 써?!” 하는 말을 하거나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학은 우리가 외계 지성체와 교신할 때 쓸 수 있는 유일한 의사 소통 수단인 동시에, 인류가 쌓아 온 지식을 응축하고 있는 문명의 정수입니다. 그리고 우리 수명을 연장시켜 줄 고마운 본능적 재능이기도 합니다. 수학, 너무 미워하지 마시죠.


고호관의 수요 수학 에세이 11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수학은 장수의 비결?



“그놈의 수학은 배워서 어디에 써?!”

 

“그놈의 수학은 배워서 어디에 써?!”

 

어려서 학교 다닐 때 많이 듣던 소리다. 주로 수학 공부에 지친 아이들이 투덜거리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사칙연산만 할 줄 알아도 사는 데 지장 없지 않으냐고. 그러면 으레 좋은 데 취직하려면 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 그러려면 수학을 잘해야 한다거나 수학을 공부하는 게 사고력을 키워 준다는 식의 대답이 돌아왔다.

 

틀린 건 없는 대답이었지만, 그래도 당장 공부에 허덕이는 어린 학생들이 체감하기에는 무리였을 것이다. 다행히 요즘에는 이런 의문에 관한 답이 비교적 잘 되는 것 같다. 장래에 어떤 직업이 유망한지, 그 직업에는 수학이 얼마나 필요한지, 더 나아가서는 수학의 어떤 분야가 필요한지까지도 관심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학 공부가 갑자기 재미있어지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다면 사고력은 어떨까? 수학을 직접 사용하지 않는 일을 할 때도 수학을 공부하면서 단련한 사고력이 힘을 발휘할까? 주변을 보면 학창 시절에 수학과 담을 쌓았던 사람도 사회에 나와서는 잘만 사는 사람이 많은데, 이 사람들도 사고력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다는 걸까?

 

 

수학을 잘하면 금연이 더 쉽다

 

최근에 흥미로운 뉴스를 하나 접했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금연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참조 링크)를 소개하는 뉴스였다. 수학과 담배라니 둘이 도대체 무슨 상관일까? 궁금증이 일어 연구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와 오리건 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온라인을 통해 700명가량의 흡연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계획했다. 이들이 세운 주요 가설 세 가지는 이렇다.

 

첫째, 자극적인 이미지와 함께 제시한 담배 관련 건강 정보는 직후에는 잘 떠오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도 잘 잊히지 않는다.

둘째, 수리력이 더 뛰어난 사람이 위험 확률과 결과를 더 잘 기억한다.

셋째, 위험 확률과 결과에 대한 기억력이 더 뛰어나면 위험을 인지하고 담배를 끊겠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될 것이다.

 

연구진은 먼저 실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흡연량과 끊고 싶은 마음, 위험 인지 등에 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서로 다른 경고 문구과 이미지를 여러 차례에 걸쳐 보여 주었다. 이미지는 덜 자극적인 것(만화로 된 무덤 그림)에서 자극적인 것(흡연으로 망가진 허파의 사진)까지 다양했다. 각 이미지에는 “흡연은 허파 질환을 유발한다.”, “흡연자의 20퍼센트는 허파 질환으로 죽는다.”, “흡연자의 75퍼센트는 85세 이전에 죽는다.”와 같은 경고 문구가 함께 있었다.

 

다 보여 준 뒤에는 그 직후, 혹은 6주 뒤에 다시 참가자를 대상으로 위험과 관련된 정보를 얼마나 기억하는지, 흡연의 위험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조만간 담배를 끊을 생각이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리고 간단한 수학 문제를 통해 참가자들의 객관적인 수리력을 측정했다.

 

이미지의 자극성에 관한 내용은 제쳐두고 일단 수리력과 관련된 결과를 살펴보니 가설대로 수리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통계처럼 흡연의 위험과 관련된 정보를 더 잘 기억하고 그에 따라 담배를 끊을 의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의향이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금연을 할 테니, 수학이 금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소리다.

 

 

금연하는 사람은 상종 못 할 ‘독한 사람’이 아니라 수학 잘하는 사람일 뿐이다!

 

건강 관리에 수학은 필수

 

연구 논문에서는 직접적으로 ‘수학을 잘하면’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수리력(numeracy)이라는 말을 쓴다. 수리력을 정의하는 방식을 학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대개 일상 생활에서 수를 이해하고 다루는 능력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는 간단한 계산 능력, 분수나 도형을 다루는 능력, 시간이나 그래프를 이해하는 능력, 수나 양을 어림하는 능력 등이 들어간다. 담배처럼 건강 관리와 관련해서는 위험 수준이나 확률, 통계를 이해하는 능력을 주로 보기도 한다.

 

따라서 위 연구에서 수리력을 말할 때 그건 시험을 보는 데 필요한 어려운 문제를 푸는 능력과는 조금 다르다. 당연히 관련은 있겠지만, 실험 참가자를 대상으로 수리력을 측정할 때 쓴 문제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문제였다. 예를 들어, “빙고 게임 쇼에서 상품으로 LED TV를 탈 가능성은 1000분의 1이다. 그러면 평균적으로 쇼에 출연한 사람의 몇 퍼센트가 LED TV를 탈 수 있을까?” 같은 문제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 않다.

 

이런 수리력이 건강 관리와 관련이 있다는, 즉 수리력이 뛰어날수록 건강 관리에 유리하다는 연구는 많다. 지난 6화 「수학은 기세야, 기세!」(링크)에서 소개한 논문에도 관련 내용이 나온다. 루푸스라는 만성 질병을 지닌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수리력이 높을수록 건강 상태가 더 좋았던 것이다.

 

수리력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건강 관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담배의 경우 흡연을 계속했을 때의 위험 수준과 자신이 죽을 확률을 더 잘 인식해서 끊을 생각이 들게 했다. 다만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있었는데, 위험 확률이 예상보다 낮을 경우 거꾸로 안심해 버리는 것이다.

 

또, 확률이나 통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검사를 제때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루푸스나 당뇨병 같은 만성 질환의 경우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양의 약을 투여하는 데 서툴러서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있다. 영양 성분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식단 관리에 실패할 수도 있다. 수리력이 좋으면 병원의 질을 나타내는 통계를 더 잘 이해해 더 좋은 병원을 고를 수도 있다.

 

 

약을 제때 정확히 챙겨 먹는 것도 수리력과 관련이 있다.

 

 

오래 살고 싶다면 수학을

 

요즘 세상에 그 정도 수학도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이 주제를 다룬 여러 연구를 보면 의의로 많은 사람이 수나 확률, 통계를 잘 다루지 못해 손해를 본다. 사실 멀쩡히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실수하지 않는다고 장담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 역시 예전에 비슷한 일화를 겪은 적이 있다. 첫 아이를 낳고 한창 분유를 먹일 때였다. 아이의 개월 수가 늘어나면서 분유를 바꾼 뒤였던 것 같은데, 어느 날 아내가 아이가 자꾸 배가 고파서 보챈다고 말을 했다. 한 번 먹이면 그대로 몇 시간은 얌전히 있어야 할 텐데 이상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가 크면서 먹는 양이 늘어나서 자주 먹나 보다 했다.

 

그런데 문득 분유통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그 이유를 깨달았다. 분유량을 알려주는 설명을 잘못 이해해서 적정량의 3분의 1씩만 먹이고 있었던 것이다. 먹는 양이 적으니 당연히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울 수밖에. 대학까지 나온 부모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때문에 아이는 며칠 동안 자주 배고픔을 느껴야 했다. 분유통의 설명에 맞게 제대로 타 먹이고 난 뒤부터는 보채는 일이 없었다. 그래도 배고프다고 울면 계속 분유를 줬기에 망정이지 만약 계속 그런 식으로 양을 적게 줬다가는 아이의 정상적인 발달에 지장이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건강 관리도 마찬가지다. 확률과 통계, 그래프로 나타나는 건강 정보를 이해하는 건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고 몸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사람이 어떤 병에 걸릴 확률을 0.01이라고 하자. 그리고 정확도가 90퍼센트인 검사를 받았더니 양성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자. 그러면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알고 가슴이 철렁할 것이다.

 

그러나 확률에 관해 안다면, 양성이라는 결과가 나와도 실제로 그 병에 걸렸을 확률이 약 0.08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안심할 수 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환경이나 너무 어리거나 많은 나이 때문에 다소 수리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언제나 있을 수 있으니 의료계에서도 환자와 의사 소통을 명확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필요는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수학은 배워서 어디에 써?”라는 질문에 한 가지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수학을 잘하면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 확률이 커진다고 하니 말이다.

 

 

 

참고 문헌

 

Brittany Shoots-Reinhard, Breann Erford, Daniel Romer, Abigail Evans, Abigail Shoben, Elizabeth Klein, Elle, Peters, “Numeracy and memory for risk probabilities and risk outcomes depicted on cigarette warning labels,” Health Psychology, 39(8), 721–730, 2020.

Russell Rothman, Victor Montori, Andrea Cherrington, Michael Pignone, “Perspective: The Role of Numeracy in Health Care,” Journal of Health Communication, Vol 13, Issue 6, 2008.


고호관

대학에서 건축과 과학사를 공부했다. 《과학동아》 기자, 《수학동아》 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 과학 저술가이자 SF 작가 또는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우주로 가는 문 달』을 썼고,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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