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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편 수학이 민주주의를 구하리라... 본문

(연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16편 수학이 민주주의를 구하리라...

Editor! 2020. 11. 25. 16:33

전 세계가 미국 민주주의의 추이를 황당함에서 비웃음까지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던 미국 대선이 끝나 가는 듯합니다. 승패는 거의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이지만, 승복하지 않던 트럼프가 슬쩍 패배 인정 제스처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달 가까이 미국 정국은 혼란에 빠졌죠. 선거가 가져올 수도 있는 이런 혼란 때문에 대의 민주주의 자체를 의심하고 조롱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지만, 선거 제도는 기술적인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은 비약일 것 같습니다. 선거 제도의 기술적인 문제를 수학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수학자들은 어떤 선거 제도가 보다 공정한지, 보다 정의로운지 계산해 낼 수 있습니다. 선거 제도 개혁, 수학 모르는 국회 의원들에게 맡기는 것보다 수학자들에게 맡겨 보는 건 어떨까요? 이번 주 수요 수학 에세이, 수학이 민주주의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 봅니다.


고호관의 수요 수학 에세이 16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16편 수학이 민주주의를 구하리라...

 

수학자가 선거를 좌우할 힘을 가졌다고 한다면 믿으시겠어요?

 

현재 미국 대통령 선거가 진행 중이다. 남의 나라 선거지만, 우리나라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일이기에 우리도 큰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텔레비전에서도 마치 우리나라 선거이기라도 하듯이 계속해서 보도를 해 주었고, 인터넷에도 사람들이 올리는 관련 게시물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덕분에 누가 어디서 얼마나 이기고 있는지, 어디서 누가 역전했는지와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개표 현황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고 있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비단 미국 대선뿐만 아니라 대선이나 총선 같은 선거가 있으면 많은 사람이 밤잠을 잊고 경기를 관전하듯 상황을 지켜본다.

 

그냥 지켜보기만 하지도 않는다. 결과가 궁금하니 개표가 아직 안 된 남은 표와 각 후보 별 득표수의 변화 추이를 살펴보며 과연 누가 이길 것인지 예측해 보기도 한다. 만약 지지 후보의 역전 가능성이 보이면 손에 땀을 쥐고 끝까지 응원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어림짐작에 그치지 않고 이 추세대로 가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엑셀로 표를 만들어 계산하기도 한다. 여론 조사 같은 것을 보고 지역별 성향 같은 요소도 나름대로 꼼꼼히 고려한다. 가령 앞으로 개표해야 할 게 1만 표인데 그 지역에서 A 후보와 B 후보의 지지율이 8 대 2라면, A 후보와 B 후보가 각각 8,000표와 2,000표를 가져간다는 식으로 예측한다. 실제로 선거 예측에 참여하는 수학자, 통계학자, 데이터 과학자 같은 사람들이 쓰는 모형과 비교하면 대단히 조악하겠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이 정도의 계산으로도 결과를 왕왕 맞히곤 한다.

 

 

역전패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때로는 데이터에 잡히지도 않는 수많은 사람의 선택을 예측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전문가들의 예측은 꽤 높은 적중률을 보이는 편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처음 예상대로 바이든이 승리를 가져갔다.

트럼프도 예상보다 선전해 격차를 많이 줄였다. 그래서인지 부정 선거라며 소송을 걸고 결과에 불복하겠다고 나서 앞으로 진흙탕 싸움이 벌어질까 우려되기도 한다. 조지아를 비롯한 몇몇 주에서는 트럼프가 앞서고 있다가 도시 지역의 투표나 우편 투표분 개표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바이든이 역전하는 결과가 나왔다. 트럼프가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이지만, 이기고 있다가 갑자기 상대 후보에게 몰표가 가면서 역전당한다고 생각하면 억지를 부리고 싶은 심정이 들 법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총선 때 어느 지역을 먼저 개표하는지에 따라 승부가 뒤집히기도 하는 사례가 많았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대선 결과, 여러분은 어떻게 예측하시나요? 혹시 트럼프가 역전승할 확률은 어떻게 될까요?

 

 

만약 모든 표가 골고루 섞여 있다면, 역전이 거의 나오지 않을 테니 초반 개표 상황만 봐도 누가 이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유권자의 투표 성향은 지역, 연령, 성별, 직업 등 여러 가지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처음 개표 상황이 쭉 이어지지 않고 곧잘 역전이 일어나게 된다. 전문가들 역시 이를 잘 알고 있고, 예측에 반영한다. 초반 개표 상황에 따르면 바이든이 계속 뒤지고 있던 몇몇 주에서도 예측은 꾸준히 바이든 승리로 나왔던 게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사실 개표 과정 내내 한 후보가 다른 후보를 앞설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1878년 영국 수학자 윌리엄 앨런 위트워스(William Allen Whitworth)가 처음 발견했지만 이후 독자적으로 다시 발견한 프랑스 수학자 조제프 루이 프랑수아 베르트랑(Joseph Louis François Bertrand)의 이름을 딴 ‘베르트랑의 투표 용지 정리(Bertrand's ballot theorem)’에 따르면, (참조 링크) p 표를 받아 승리한 A 후보가 q 표를 받아 패배한 B 후보에게 개표 내내 앞선 상태일 확률은 다음과 같다.

 

(p-q)/(p+q).

 

A 후보와 B 후보가 각각 1만 표와 7,000표를 받았다고 해 보자. 앞의 공식에 대입하면, (10000-7000)/(10000+7000)=0.17…이 나온다. 즉 A 후보가 개표 과정 내내 B 후보에게 앞설 확률은 약 17퍼센트다. 표 차이가 작을수록 확률은 낮아진다. 각각 1만 표와 9,500표라면, 승자가 계속 앞설 확률은 고작 2.5퍼센트다. 패자 입장에서 보면, 어느 순간 앞서고 있다가 역전당해 졌을 확률이 상당히 높은 셈이다.

 

 

베르트랑 투표 용지 정리를 발견해 낸 베르트랑. 9세 때 라틴 어로 유창하게 대화할 수 있었고, 11세 때 프랑스의 최고 학부 중 하나인 에콜 폴리테크닉의 청강생으로 수학, 과학 강의를 들었고, 17세 때,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는 수학 역사상 최고 천재 중 한 사람.

 

 

어떤 선거 제도가 공정할까?

 

우리나라 대선의 경우 전체 득표수를 따져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후보가 당선되니 득표수만 보면 되지만, 미국 대선은 선거인단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있어서 따져봐야 할 게 좀 더 많다. 까닥하면 전체 득표수에서 이기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밀려서 지는 경우도 생긴다. 이기는 주에서는 큰 차이로 이기고, 지는 주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진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 바로 지난 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이 전체 득표수로는 트럼프에게 300만 표 정도 앞섰지만, 최종적으로는 패배했다.

 

우리 눈에는 불공평해 보일 수도 있는 제도다. 그런데 우리나라식은 공정하냐고 따져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럴 때 수학자들이 공정한 선거 방식을 만들어 주면 좋으련만. 아니면, 직접 어떤 선거 방법이 공정할지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일단 지금까지 나왔던 여러 가지 선거 아이디어를 참고해 보자. 먼저 가장 널리 쓰이면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다수결 투표제다. 유권자는 후보 여러 명 중에서 1명을 골라 표를 주고,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후보가 당선되는 방식이다. 일견 공정해 보이지만, 후보가 여러 명일 때는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생길 수 있다. 후보 다섯 명의 득표율이 22퍼센트, 20퍼센트, 20퍼센트, 20퍼센트, 18퍼센트라고 하자. 22퍼센트를 받은 1위 후보가 당선자가 되는데,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도 안 되는 득표로 유권자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사표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생긴다. 가장 싫어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내가 원하는 인물이 아니어도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다. 그러면 최종 결과가 민심을 완전히 반영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유권자 한 명에게 표를 여러 개 준 뒤 원하는 후보에게 원하는 만큼 나눠 주는 누적 투표제도 있다. 예를 들어, 유권자 1명에게 표가 5장 있다면, A와 B에게 각각 3장, 2장씩 줄 수 있다. 혹은 5명에게 1장씩 주어도 되고, 1명에게 모두 주어도 된다. 이 방법은 선호도가 차순위인 후보에게도 표를 일부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러다가 다수결 투표제일 때와 마찬가지로 1순위 후보가 탈락하게 될 수도 있는 단점이 있다. 

 

보르다 셈법은 유권자가 각 후보의 순위를 정해 앞선 순위부터 높은 점수를 준 뒤 합산해 승부를 가르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후보가 3명이면, 1순위 후보는 3점, 2순위는 2점, 3순위는 1점을 받는 식이다. 그러면 사표는 없어질 수 있지만, 후보가 많아지면 유권자는 골치가 아프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선거를 하면 후보가 10여 명 나오는데, 1, 2, 3순위 정도야 확실하게 정할 수 있다고 해도 잘 알지도 못하는 군소 후보의 순위를 어떻게 정할까? 후순위로 갈수록 아무렇게나 정해 버리는 일이 빈번할 것이다.

 

이 외에도 마음에 드는 후보에게 모두 표를 하나씩 주는 승인 투표제, 상위 몇 명만을 대상으로 2차 투표를 하는 결선 투표제, 모든 후보에게 순위를 매겨 투표한 뒤 1위가 정해질 때까지 꼴찌를 탈락시키며 계속 투표하는 즉석 결선 투표제 등 여러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에도 제각기 장점과 단점이 있다.

 

 

수학자들은 어떤 선거 제도가 보다 공정한지, 보다 정의로운지 계산해 낼 수 있습니다. 선거 제도 개혁, 수학 모르는 국회 의원들에게 맡기는 것보다 수학자들에게 맡겨 보는 건 어떨까요?

 

 

후보와 유권자의 머리싸움

 

1951년 미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조지프 애로(Kenneth Joseph Arrow)는 『사회적 선택과 개인의 가치(Social Choice and Individual Values)』라는 책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Arrow’s impossibility theorem)’라는 개념이 담겨 있었다. 이 정리는 유권자에게 서로 다른 대안이 3개 이상 있을 때 어떤 선거 제도도 집단의 일관적인 선호 순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어떤 선거 제도도 다음의 세 가지 공리를 만족할 수 없다.

 

1. 만약 모든 유권자가 Y 안보다 X 안을 선호한다면, 그 집단은 Y보다 X를 선호한다.
2. 만약 X 안과 Y 안에 대한 모든 유권자의 선호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X 안과 Y 안에 대한 그 집단의 선호도도 변하지 않는다.
3. 집단의 선호도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독재자’는 없다.

 

흔히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에서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선거 제도는 없다는 결론을 도출하곤 한다. 이는 우리 같은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게 단순화한 결론이지만, 선거 제도를 이야기할 때 자주 접할 수 있는 이야기다. 현실에서 이 정리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연구도 있는 듯하다.

 

전문가가 아니니 자세히 알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완벽한 선거 제도를 만드는 게 수학으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눈치챌 수 있다. 어떤 선거 제도를 택해도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따라서 후보자는 후보자대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선거 운동 전략을 짜야 하고, 유권자는 유권자대로 원하는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투표해야 한다.

 

물론 후보에게는 수학이나 통계 전문가가 붙지만, 우리 같은 유권자는 각자 알아서 생각해야 한다. 1대 1 대결이라면 생각할 게 별로 없지만, 지역구도 뽑고 비례 대표도 뽑는 총선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해야 원하는 의석이 나올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지 않는가. 전문가들이 쓸 법한 복잡한 공식 같은 것까지 활용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선거가 다가오면 우리 유권자도 나름대로 수학적인 머리를 굴려야 한다. 아무래도 선거는 언제까지나 후보에게나 유권자에게나 수학적으로 고민해야만 하는 머리싸움이 될 것 같다.

 

 

 

 

참고 문헌

「누가 이길까? 선거 개표의 수학」, 《수학동아》, 2016년 4월호.

「선거제도 수학으로 파헤치다」, 《수학동아》, 2010년 6월호.


고호관

대학에서 건축과 과학사를 공부했다. 《과학동아》 기자, 《수학동아》 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 과학 저술가이자 SF 작가 또는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우주로 가는 문 달』을 썼고,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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