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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편 ‘매스 갬빗’, 체스를 가르치면 수학을 잘하게 될까? 본문

(연재)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17편 ‘매스 갬빗’, 체스를 가르치면 수학을 잘하게 될까?

Editor! 2021. 1. 6. 11:17

넷플릭스의 성장이 무섭다고 합니다. 전 세계인이 집콕할 수밖에 없는 코로나19 특수를 톡톡히 보고 있는 거죠. 넷플릭스의 드라마 중에서도 상한가를 치고 있는 드라마가 「퀸즈 갬빗」이라는 체스를 소재로 한 드라마죠. ‘갬빗(gambit)’이란 체스의 첫 수를 뜻하는데, 천재 체스 소녀가 세계 챔피언이 되는 성장물로 흥미진진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체스는 수학 교육과 관련해서도 유의미하다고 합니다. 2021년의 첫 수요 수학 에세이, 체스의 수학 교육적 의미를 탐구합니다. 집콕 시대 체스라도 한 판 어떠신가요?


고호관의 수요 수학 에세이 17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수학한다

 

17편 ‘매스 갬빗’, 체스를 가르치면 수학을 잘하게 될까?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퀸즈 갬빗」 포스터. 화면 갈무리.

 

최근에 「퀸즈 갬빗」이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다. 1950년대와 1960년대를 배경으로 고아가 된 미국의 체스 신동이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체스에 관해서는 기물 움직이는 법과 기본적인 규칙 정도밖에 몰랐고 컴퓨터와 몇 판 둬 본 경험밖에 없었지만, 드라마를 보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주인공인 베스 하몬은 교통 사고(사실은 어머니가 자살하려고 고의로 낸 사고였다.)로 어머니를 잃고 고아원에서 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실에서 청소부인 샤이벨 씨가 체스를 두는 모습을 보고 흥미를 느껴 여러 차례 조른 끝에 체스를 배우기 시작한다.

 

베스는 타고난 체스 천재다. 배운지 얼마 안 되어 스승인 샤이벨 씨를 이기고, 인근 고등학교의 체스 클럽 회원들을 다면기로 상대해서 전부 이긴다. 그 직후 약물 문제를 일으켜 체스를 금지당하지만, 시간이 흘러 청소년이 되고 양부모에게 입양된 뒤에 다시 체스를 시작한다. 그리고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대회를 휩쓸고 다니는데…….

 

이 드라마에서 흥미롭게 본 장면 중 하나가 실제 체스판과 기물 없이 머릿속에서만 상황을 떠올리며 체스를 두는 모습이다. 체스에 빠진 베스가 고아원에서 주는 진정제를 꼬불쳐 두었다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먹고서는 천장을 바라보면 가상의 체스판이 나타나는데, 그 모습이 음악과 어우러져 인상적인 장면을 만든다.

 

실제로 높은 수준에 오르면 머릿속으로 체스를 두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 심지어는 눈을 가리고 다면기를 둘 수도 있다고 한다. 체스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 많이 두는 장기도 이런 식으로 눈을 가리고 둘 수 있다. 바둑의 경우에도 가능하기는 한데, 체스나 장기보다 복잡해서 머릿속으로만 끝까지 두는 건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 같은 범인으로서는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 영역이다.

 

작중에서 베스의 라이벌이자 조력자인 베니가 지나가듯이 이렇게 묻는 장면이 있다. “너도 혼자서 머릿속으로 체스를 두고 그러니?” 그러자 베스는 “누군 안 그래?”라고 대답한다. 보다가 울컥해서 “너희만 그런 거라고!”라고 외칠 뻔했다.

 

8×8의 전장에서 펼쳐지는 가상의 전쟁. 체스는 수학 교육에 도움이 될까?

 

수학자 어머니에게 받은 천재성

 

또 하나 소소하게 눈에 띈 장면이 있었는데, 베스의 어머니가 정신이 무너진 채로 자기 물건을 마구 불태워 버릴 때 화면에 잠시 수학 박사 학위 논문이 보인다. 아마도 베스의 어머니는 박사 학위까지 받은 수학자였던 모양이다. 베스의 체스 천재성이 수학을 전공한 어머니에게서 왔음을 암시하는 내용인데, 베스는 수학 수업 시간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 준다. 어쩌면 체스 대신 수학을 계속 공부했어도 뛰어난 수학자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학적 재능이 뛰어나다는 건 모종의 지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일 테니 체스를 잘 둔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체스는 서양에서 인기가 높은 게임이니 실제로 수학자 중에 체스를 좋아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을 테고, 그중에는 체스 선수로 활동한 수학자도 있긴 하다. 다만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전부 체스를 잘 두는지는 알 수 없다. 음악과 수학의 관계 때도 그랬듯이 어떤 두 가지 사이의 연관성을 확실히 아는 건 어려운 일이다.

 

체스를 배우는 게 수학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2017년 독일과 덴마크 공동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초등학교 1~3학년의 수학 수업을 체스 관련 내용으로 대체했더니 수학 학습에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특히 학교 수업을 지루해 하는 아이들에게 더 큰 효과가 있었다. 체스가 어린 학생들의 수학 능력을 길러 주는 데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는 소리다. 이와 비슷한 연구를 몇 개 더 찾을 수 있었는데, 대체로 아이들을 무작위로 선발해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나눈 뒤 실험군에게만 체스를 가르치고 몇 개월 뒤에 두 집단의 수학 성취를 측정해 비교하는 식이었다.

 

흠, 그렇다면 자녀가 수학을 잘하기를 바란다면 체스 같은 게임을 가르치는 게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참에 또 다른 논문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내용이 다르다. 2017년 영국 리버풀 대학교 연구진은 실험 결과 체스가 수학적인 문제 해결 능력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밝혔다. 애초에 그런 쪽에 뛰어난 사람이 체스에 흥미를 느끼고 더 몰입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소리다. 농구를 열심히 하면 키가 커지는 게 아니라 원래 키가 큰 사람이 농구를 더 잘하게 마련이고 따라서 더 흥미를 느끼기 쉽다는 비유를 들 수 있을까?

 

 

코로나19 시대, 체스는 집콕 라이프의 좋은 솔루션일지도 모른다. 덤으로 아이들의 수학 능력을 향상시키는 수단이 될지도.

 

여전히 유용한 두뇌 운동

 

지금 어느 쪽이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 키가 작다고 해서 농구를 하는 게 아무 의미가 없지는 않다. 타고난 신체 능력의 한도 안에서 몸을 단련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이니까. 마찬가지도 체스도 없던 능력을 만들어 준다기보다는 타고난 사고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돕는 두뇌 운동이라고 보는 게 무난한 것 같다.

 

「퀸즈 갬빗」의 배경인 1960년대와 지금을 비교하면 체스가 갖는 의미도 달라졌다. 당시만 해도 체스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상징하는 게임이었다. 인공 지능의 지적 능력을 판단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인공 지능이 체스로 사람을 이긴다는 건 사람의 지적 능력에 대한 위협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마침내 1997년에 IBM의 ‘딥 블루’가 인간 체스 챔피언인 가리 카스파로프에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제 사람은 체스로 컴퓨터를 이기지 못한다. 슈퍼컴퓨터는 고사하고 스마트폰의 체스 프로그램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이길 수 있다. 체스보다 훨씬 더 복잡해서 컴퓨터가 사람을 이기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던 바둑조차 몇 년 전에 알파고가 등장하면서 컴퓨터가 사람보다 더 잘하는 영역이 되었다.

 

이제 체스나 바둑은 컴퓨터가 도달하기 어려운 인간의 지적 활동이라는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앞서 말했듯이 두뇌 운동으로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언젠가 컴퓨터에게 따라잡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지지 않았을까? 바둑의 경우 알파고가 기존 이론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었다고도 한다.

 

우리는 어차피 다른 동물이나 자동차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지만 달리기를 한다. 어차피 프로 선수보다 못할 걸 알면서도 열심히 조기 축구에 나가서 뛴다. 어차피 계산기보다 사칙 연산을 못할 걸 알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배운다. 그런 식이다.

 

 

딥 블루에게 패한 체스 그랜드마스터 가리 카스파로프는 이 드라마 「퀸즈 갬빗」에 자문으로 참여해 도움을 주었다. 위키피디아에서.

 

 

꼭 수학 성적에 도움은 안 된다고 해도

 

체스와 관련된 수학 문제를 보면, 수학자들에게도 체스가 흥미로운 연구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체스의 규칙을 이용해 재미있는 문제를 만들어 푸는 것인데, 대표적인 예로 ‘여덟 퀸 문제(Eight queens puzzle)’가 있다. 혹시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퀸은 체스에서 가장 강력한 말로, 가로와 세로 및 대각선으로 원하는 거리만큼 움직일 수 있다.

여덟 퀸 문제는 8×8칸인 체스판에 퀸 8개를 배치하는 문제다. 이때 각각의 퀸은 다른 퀸을 공격하는 위치에 있어서는 안 된다. 이를 일반화하면 n×n칸인 체스판에 퀸 n개를 배치하는 문제가 된다. 이를 또 살짝 변형해 이미 몇 개의 퀸이 놓여 있는 상태에서 나머지 퀸을 배치하는 문제도 있다. 퀸이 아닌 다른 말로도 비슷한 문제를 만들 수 있다.

 

수학자들이 만든 본격적인 문제는 우리가 손을 대지 못하겠지만, 여덟 퀸 문제는 우리 같은 일반인이 퍼즐로도 즐길 수 있다. 방법은 이렇다. 두 사람이 번갈아 체스판 위에 퀸을 하나씩 놓는다. 퀸을 놓을 때는 이미 올라와 있는 퀸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 곳에 놓아야 한다. 계속 번갈아 놓다가 더 이상 놓을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 어디에 놓아야 승률이 높아질지를 궁리하면서 둔다면, 이것도 상당한 머리싸움이 될 것 같다.

 

「퀸즈 갬빗」이 성공하면서 미국에서는 체스 용품과 관련 책 판매량이 갑자기 뛰어올랐다고 한다. 사실 나도 이 드라마를 보기 몇 달 전에 아이에게 장기와 체스를 가르쳐 주기는 했다. 아이와 놀아 줄 게 필요하기도 했고,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아이의 수학적 능력이나 전반적인 사고력을 계발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얕은 생각도 있었다. 놀거리를 생각할 때도 공부 생각을 하다니 나도 어쩔 수 없는 학부모인가 싶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나중의 수학 성적을 위해 체스를 가르쳐 보려고 생각했던 일은 조금 반성이 된다. 사실 수학이든 체스든 체스 규칙을 이용한 수학 문제든 머리를 써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즐겁다. 혹은 다른 어떤 두뇌 운동을 하든 무슨 과목의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재미를 느끼게 해 주는 게 옳은 것 같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듯이 논리적인 훈련으로 단련된 두뇌도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다. 때로는 「퀸즈 갬빗」의 베스 같은 천재와 비교가 되기도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머리가 터질 것 같다며 얼굴이 시뻘게져서 끙끙대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게 그냥 귀엽기도 하고 그렇다.

 

 

여덟 퀸 문제의 한 가지 해답. 위키피디아에서.

 

 

참고 문헌

Michael Rosholm, Mai Bjørnskov Mikkelsen, Kamilla Gumede, “Your move: The Effect of Chess on Mathematics Test Scores,” PLOS One 12(5): e0177257.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177257.

Giovanni Sala, Fernand Gobet, “Does chess instruction improve mathematical problem-solving ability? Two experimental studies with an active control group,” Learning&Behavior (2017), 45(4): 414-421.

「콧대 높은 여왕들의 신경전, n-퀸즈 게임과 퍼즐」, 《수학동아》 2018년 8월호.


고호관

대학에서 건축과 과학사를 공부했다. 《과학동아》 기자, 《수학동아》 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 과학 저술가이자 SF 작가 또는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우주로 가는 문 달』을 썼고,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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